답답해서...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간단다. 노무현이 왕이 아닌 다음에야 촛불들고 사람들이 몰려간다고 해서 지 맘대로 모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혹시나 이 촛불의 행렬을 노무현이 보지 않을까, 그리하여 뭔가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싶어 그리로 간다. 신문고를 때려 왕에게 억울한 사연이 들어가길 바라는 조선시대의 신민처럼.

 

그러나 평택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평생을 땀흘리며 가꾸어왔던 땅에 날카로운 쇳조각이 붙은 철조망이 둘러쳐지고, 도대체 왜 이 땅에서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요구하던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그들도 '국민'이며 이 땅의 사람들인데, 그들의 생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어찌하여 일언반구 한 마디도 없을까?

 

권력을 차지하는 그 순간까지 노무현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소위 개혁을 요구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에 노란 손수건을 들고 목에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바보 노무현을 연호했다. 특히나 미국에 대해 당당한 모습을 견지하겠다는 그의 말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운동하시던 많은 분들이 이회창 대통령되면 전쟁난다는 식의 선전을 동원하여 노무현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감행했다.

 

권력을 차지한 이후부터 보여주었던 노무현의 모습은 도박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좋은 말로 "승부사" 기질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제 패도 제대로 읽지 못한채 올인만 외치는 초보 도박사의 서툰 모습뿐이었다. 탄핵정국에서 어떻게 제대로 올인이 먹혀 들어가는 통에 기사회생했지만, 어디에서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보여주었던 노무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라크에 대한 파병, 신행정수도 선정과정에서의 혼란, 정부 여당에 대한 리더쉽 부재(리더쉽을 권위주의로 착각하는 착란증세까지 더하여), 정책의 혼선 등등은 그래도 참을만 하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내오는 과정에서 보여진 비굴함은 주권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전쟁통 같은 아비규환 속에서 침묵하는 그는 스스로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권력은 미국의 이해를 위한 곳에서 빛난다. 아시아 일대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밀어넣는 것으로 권력은 행사된다. 생존권과 평화권을 지키자는 사람들을 군화발 아래 짓밟히게 하고 곤봉과 방패에 머리가 터지도록 하는 데에 이 권력은 동원된다. 그는 왕이 아니므로 촛불의 탄원은 의미가 없다. 이 권력은 이렇게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까지 만들어놓고 있다.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상소문을 올리러 가는 유생들처럼 엎드려 전하의 성은을 빌어야 하는가? 아니면, 아니면 짱돌을 들어야 하는가? 어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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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6 17:31 2006/05/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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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05/06 21:21

    행인님의 [답답해서...] 에 관련된 글. 촛불 집회를 취재를 할까, 참여를 할까 하다가 그냥 안 갔다. 평택 취재간 후배한테 집에서 인터넷 켜놓고 상황 전달해주면서 혼자 술 홀짝 거리고

  1. 저는 정치에 무관심했지만 남편은 희망저금통도 꽉꽉 채워넣고 노란 목도리도 샀습니다(그때다른 물품도 있었는데 다 나가서 목도리를 샀을 겁니다) 그거 제가 갖다 버렸는데 갖고 있었다면 이럴 때 그 목도리 들고가서 돈으로 바꿔달라고 할텐데요.남편이 꽉꽉 채웠던 희망저금통을 찍어두었더라면 가서 돌려달라고 할텐데요.싸이에 어떤 분이 '평택에 돌을 던질거면 나한테 던져라'하는 글을 썼는데 덧글들 장난아닙니다. 그덧글 단 사람들 몇몇의 홈피에 가봤는데 한사람은 애국가가 배경음악이고 두 사람은 사진첩에 군인때 찍었던 사진 있더군요. 지금은 전역했다던데. 군대 갔다오면 눈먼 애국심이 강해지나보죠? 국민이 뽑은 대통령한테 왜그러냐고 하지만 이 대통령, 선거 나올 때는 안 이런 척 했잖아요.그 노란 목도리 집에만 있어도 기자회견 할 것을. 목도리 값 돌려달라고!!

  2. 개인적 의지로는 당근 짱돌을! 그리고 쉴새없이 우루루 몰려가서
    몇 번이든 철조망을 끊고 흩어지고 또 몰려가고 하는 산개전을!
    그런데...이 분노의 조직화를 어떻게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하면 단 사나흘의 격한 이벤트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어요

  3. 알엠/ '눈 먼 애국심'이 군대 갔다 와서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정반대였거든요. 군대 갔다 오자 그나마 있던 애국심도 사라져 버리는... 오늘 기사검색을 하다보니 평택관련 기사 밑에 어떤 분이 "그래도 노무현대통령만큼 자주적으로 대미외교 한 사람이 어딨냐, 이번에도 끝까지 믿고 지켜봐줘야하는 거 아니냐"라는 리플을 달았더구만요. 거의 뭐 절망수준인데... 황건적 일당의 이론적 근거지인 서프라이즈 같은 곳은 지금까지 평택문제에 대해 대문에 글 하나 올라오지 않더니 겨우 하나 올라온 것이 평택에서 범대위는 손 떼라는 거더군요. 이 희안한 사고들... 참 갑갑합니다.

    나루/ 맞아요. 저 역시 지금 그것이 고민입니다. 지금 이럴 때일수록 더욱 냉정하고 주도면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광화문으로 촛불들고 몰려가는 것이 가지고 있는 파급력이라는 것, 이게 주한미군재배치는 물론이려니와 평택 주민들의 권리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죠.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널부러져 있는 것보다는 천배 만배 좋은 일이지만... 보다 더 확실하게 이 문제를 알려내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저 역시 며칠 내내 답답한 마음으로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4. 피 흘리면서 연행/구속될 각오가 된 사람들의 평택투입작전과 함께
    각 도/시/지역별 대중들의 평화행진/집회에 대한 두 가지 행동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면 하는데
    지금까지 범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집회방식은 정말...
    실망스럽고 발언권도 너무 제한적이어서 참...
    고민은 짧게, 행동을 길게, 그렇게 하고 싶어요

  5. 서프라이즈... 황건적 >_< 크... 알엠님께 한 마디 드리면... 글쎄... 그 '눈먼 애국심' 이라는게 말이죠.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그거 보다는 '체제 순응적' 으로 길들여 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그거 확실히 근거 있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_< 마치 그게 철드는 것 처럼 말이죠. 물론... 저는 그게 철드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영원히 철들 생각이 없습니다만서도...

    그나저나 고민에 고민중 >_<

  6. 나루/ 넵!

    에밀리오/ 군대 갔다 와서 철드는 것이 아니라 굴종의 내면화가 이루어지는 거죠. 힘내세요.

  7. 네이~ (아... 저 위의 이야기는 마치 그게 '철 드는 것' 처럼 여겨지게끔 구조적으로 조장한다는 의미였어요 >_<: 아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