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전쟁

엄마되기님의 [분유 공장 폭격과 제노사이드] 에 관련된 글.

고백하건데, 행인은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천주교로 개종을 했다가,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가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뭔지 궁금해하다가 그냥 지금 이대로 살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예배 중에 목사가 하나님이 인도하시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겼고, 하나님을 배척하던 이교도들은 벌을 받고 있다는 설교말씀(?)을 전했다. 그해 여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즉 PLO를 섬멸한다는 명목으로 베이루트에 대한 무차별 포격을 자행했고, 그 결과 수도 없는 민간인들이 비명횡사를 했다.

 

1982년 학살의 참상

 

 

그리고 그해 가을, 이스라엘 군인들이 완전 밀봉한 상태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엔 레바논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이 들이닥쳐 공식집계 900여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TV와 신문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과 폭파된 건물의 잔해들이 지옥도처럼 그려졌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학살당해야 했던가? 어린 마음에 궁금증이 도지던 때였는데, 마침 그 때 그 목사가 한 말이 그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이다...

 

감히 목사'님'에게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냐고 묻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 교리시간에 교리교사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교리 교사를 하고 있었고, 평소때는 형, 교리시간엔 선생님 하면서 친분도 있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중동땅의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 교리교사의 말인즉슨,

 

성경에 나와있단다.

즉, 하나님이 이미 수천년 전에 이렇게 되도록 준비하신 거란다.

 

정내미가 확 떨어졌고, 그 사건을 계기로 예배당과는 아듀를 선언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친한 동생이 그 근처에 살고 있어 어쩌다 그 예배당 근처를 지나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인지는 몰라도 그 예배당, 아직도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

 

 

1982년 6월 5일, 이스라엘 내각은 '갈릴리 평화작전(원래 작전 명은 큰 소나무 작전)'의 결행을 승인했다. 그리고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절멸"을 목표로 내걸었던 PLO는 이스라엘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100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정확하게 그들이 목표로 한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제노사이드'의 역사가 되풀이 된 것이다. 2차대전때는 희생물이었던 유대인들이 이번엔 가해자가 되어 역사를 반복한다.

 

2006년 여름에 1982년의 여름은 부활했다.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희생을 담보로. 이스라엘의 이번 목표는 헤즈볼라였다. 이스라엘은 7월 12일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하고 또 다른 8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납치된 2명의 병사를 구출하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참에 헤즈볼라를 영구히 괴멸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전쟁도발을 했다는 것은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 이스라엘 병사들을 체포한 헤즈볼라는 단순한 게릴라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레바논에 중요한 정치조직의 하나이며, 자치적인 행정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 '납치'되었다던 이스라엘 병사는 이스라엘의 주장과는 반대로 무장침투조의 역할을 하다가 헤즈볼라에게 포로로 잡힌 것이었다.

 

억지를 부려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은 역시 이번에도 1982년과 같은 엄청난 민간인 희생을 낳고야 말았다. 물론 헤즈볼라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이스라엘측의 민간인 희생자도 속출했다. 그러나 레바논이 겪은 피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어서, 현재까지 추산된 바로는 이번 전쟁기간 동안 1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레바논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2006년의 참상...

 

1982년에 이스라엘이 박멸하겠다고 나섰던 PLO와 마찬가지로,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이스라엘 자신의 그림자이다. 1982년 레바논 침공 과정에서 파견된 1500명의 이란 혁명수비대가 근간이 되어 오늘에 이른 조직이 바로 헤즈볼라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건국 이후 지금까지 중동의 화약고로 스스로를 위치지우면서 자신들에 대해 적대적인 자신들의 그림자들을 양산해왔다.

 

물론 그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4차에 걸친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것을 두고, 1982년에 레바논 침공을 통해 일시적이나마 레바논에 위성정부를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행인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 같은 자들은 '골리앗을 이긴 다윗'으로 이스라엘을 평가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는 단지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교도들의 머리를 쳤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제사회 부동의 패권집단이 무기와 자본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외교력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빈틈없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목적때문에도 그렇지만, 중동의 지배를 노리는 미국의 이해에 의하여 탄생한 미국의 그림자이다.

 

이번 전쟁을 두고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헤즈볼라의 성격과 레바논의 정치상황을 두고 본다면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 말을 그대로 받는다면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룬 레바논, 아니 더 엄격하게는 헤즈볼라는 이란의 그림자다.

 

그림자 사이의 전쟁, 또는 그림자를 잡기 위한 전쟁. 이 불가해한 싸움질의 와중에 어린 아이와 민간인들은 공포에 떨다가 죽어간다. 무너진 폐허의 잔해 밑에서 이들은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된다. 또는 썩은 송장이 되어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른채 묻혀진다.

 

이스라엘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PLO에 대한 압살정책, 헤즈볼라에 대한 절멸정책은 사실 자기 그림자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점을.

 

자기 그림자를 향해 총을 쏘고 미사일을 날리고 칼부림을 하는 이 정신착란적 광기가 이번 휴전을 통해 중단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60억 인류 중에 몇 명이나 될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8/15 02:24 2006/08/15 02:24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571
  1. ㅠ.ㅠ

  2. 그림자 전쟁이라... 다른 곳에도 많이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표현이라 생각되는군요. 언제나처럼 잘 읽었삼 ^^

  3. 이스라엘과 미국만을 비난하는 건 너무해 ㅠ.ㅠ



    2차대전 후 영국이 앞장서서 소위 승전국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해 줬잖아. 그리구말야... UN은 너무 비겁해. 91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미국의 대이라크 군사작전을 승인해줬잖아? 근데 지금 이스라엘이 레바논 침공에 대해서는 '좀 고만하지?'만 주저리잖아... 왜 자꾸 이스라엘과 미국한테만 뭐라그래? ㅠ.ㅠ

  4. 말걸기/ ㅋㅋㅋ 기냥 그림자 이야기를 하다보니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된거유. 암시롱~~. 까놓고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봉쇄했을 때, 그 이유가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를 대고 팼지. 그렇게 따지면 욕먹어야할 넘들 천지 사방이여. 제2찬가 3찬가 중동전쟁 때는 북한이 아랍에 전술교관과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하기도 했다는데, 남한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대해 공식적으로 한 마디 코멘트도 없는 거 보면 남한 역시 대고 욕을 먹어야겠지. ㅋ

  5. 지각생/ 님 글도 잘 읽었333 ~~ ^^;;;

  6. 행인님 ... 제 블로그에 퍼갈께요 ... ^^;

  7. 손윤/ 제 글은 언제든지 쓰시고 싶은 곳에 쓰실 수 있습니다. 아, 그런데 손윤님 블로그는 찾질 못하겠네요... 혹시 나중에라도 보시면 블로그 주소 남겨주심 감사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