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통비법, 미드족

한미 FTA가 체결되고 이제 비준동의안 처리 절차가 남았다. 한미 FTA가 무사히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 발효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건 시리즈로 좀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으나 행인의 극단적 귀차니즘이 과연 그런 대업을 할 수 있을까 의심되므로 생각난 거 우선 하나만 끄적여보도록 하자꾸나.

 

최근 정부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안을 내놨다. 통신비밀보호법을 통신비밀보관법으로 전락시키면서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에 통신비밀의 자유열람권을 부여하는 이 법안의 특징은 이렇다.

 

○ 통신서비스업자로 하여금 log 기록을 포함한 일체의 가입자 통신기록 1년 보관

○ 통신서비스업자가 이러한 보관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반드시 할 것

○ 통신서비스업자가 보관한 개인의 통신기록을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원할 때 언제든 반드시 보여줄 것

 

이거 안 지키면 통신서비스업자는 억대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내거나 몇 천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때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과 맞서 깜빵 갈 각오를 하고 싸워왔던 진보넷 같은 경우, 이제 완전 공중분해가 될 수도 있는 법안이다.

 

평소 진보넷 같은 "빨갱이"들을 혐오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개악안이 요런 좌경용공마이너리티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고 좋아라 하던 분들 많을 것이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충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실상에 대해 조금만 들여다보자.

 

개악안에 따라 각 통신서비스업자들은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한 모든 사람들의 통신기록을 남겨야 한다. 인터넷 통신서비스 제공자들도 모두 포함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지만 해당 서비스업자의 범위가 굉장히 포괄적이어서 얘네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넷 같은 '영세업체'도 포함되고 그냥 게시판만 올려놓고 유저들이 알아서 놀도록 만들어 놓은 사이트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예가 '디씨인사이드'같은 경우다.

 

'디씨인사이드'가 개설한 각 게시판, 거기 용어로 '갤러리'들 중 다양한 방식의 검은 경로를 통해 여러 가지 콘텐츠를 다량 올려놓는 게시판이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미국 드라마 게시판, 일명 '미드겔'이다. 이 미드겔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이 대목에서 한미 FTA 협상 내용 중 저작권에 관한 부분만 살펴보자. 문화관광부가 FTA 체결 직후 뿌린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있다.

 

○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강화 - 권리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다음, 네이버 등의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대표적인 예)는 온라인 저작권을 침해한 자(네티즌)의 개인정보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하도록 함

 

디씨의 미드겔에 가끔 미국 현지에서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 동영상을 올리는 분들이 있다. 나름대로 양키들의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을 넓히면서 동시에 고 얍삽한 양키들에게 돈 주고 드라마를 보는 국부유출행위를 방지하겠다는 숭고한 뜻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분들이 시시때때로 올리는 미국드라마 상당하다. 이렇게 올라오는 동영상 파일은 거의 다운로드수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아파트 청약개시할 때처럼 달려들지 않으면 다운받아보기도 힘들다.

 

수많은 '횽아, 온니, 옾하'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이 미드겔은 통비법 개악안이 통과되고 한미 FTA가 효력을 발생하는 순간부터 이렇게 된다.

 

일단 통비법에 의해 디씨인사이드는 접속한 모든 사람들의 log기록을 보관한다. 그것도 1년 씩이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에 의해 디씨인사이드 완전히 X되는 수가 있다. 물론 운영자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고 가 '억'소리 나도록 책상을 '탁탁' 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지금이 5공이냐? 돈이면 다 된다. 먹고 토할 것도 없을 때까지 이행강제금 때리고 벌금 때린다. 어쩔 수 없이 디씨는 접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log기록과 회원기록을 죄다 보관하고 있게 된다.

 

미국에서 돈 퍼부어가며 쎄가 빠지게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FOX나 HBO같은 데서 어느날 전 세계에 자신들의 드라마가 얼마나 깔려있나 여기저기 다녀보며 확인하다가 덜컥 디씨인사이드 미드겔을 보게 된다. 얼라리요? 이넘들 미국에서 드라마가 방영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올리고 있네? 게다가 이 놀라운 지적능력을 자랑하는 디씨족들은 드라마 동영상이 올라오는 거의 즉시 대본도 보지 않고 번역질까지 해서 자막을 올린다. 그것도 씽크 딱딱 맞아 떨어지게. 이 아니 놀라울 소냐?

 

미국 드라마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넘들의 입장에서 이건 가만 둬선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가만 두지 않는다. 한국 사법기관에 대해 고소를 한다. 한국의 사법기관은? 미국분들께서 요청하는데 모가지 빳빳하게 세우고 배째라 이러고 있을 넘들 단 한 '개'도 없다. 죄다 '아이구 그러셨어여?'하고선 당장 득달같이 달려가서 개악된 통비법의 조문에 따라 미국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미드족 일당의 log기록과 경우에 따라선 회원기록까지 싸그리 가져간다.

 

그리고 기냥 처벌? 아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미국측에서 이 괘씸한 미드족 일당의 개인정보를 친전하고 싶으다고 한 말씀하시면 FTA 협상 내용에 의거하여 사법기관이 확보한 네티즌의 개인정보는 일체 미국의 드라마 저작권자에게 넘어간다. 넘어가면 어찌 되느냐?

 

한미 FTA 협상안에 따르면 요런 내용이 낑궈져 있다.

 

○ 실손해배상 원칙 하에 법정손해배상제도 도입

 

원래 한국의 손해배상제도는 '원상회복의 의무'에 준하는 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한국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는 것이 도입되는데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를 통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그게 다름 아니라 "법정손해배상제도"라는 거다. 즉, 발생한 손해의 일정한 형태를 정리하여 그에 따른 손해배상의 규모를 법으로 정해놓겠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 규모는 원상회복정도가 아니라 "실제 발생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손해" 일체, 여기엔 위자료까지 포함되는데 어쨌든 그정도 규모로 아예 법에다가 손해배상의 규모를 정해놓게 된다.

 

그러나 미국분들이 어떤 분들인가? 이정도 손해배상으로 어디 꿈쩍이나 하겠나? 물론 맘씨 좋은 엉클 톰은 까이꺼 몇 푼이나 된다고 함서러 기냥 봐줄께 할 수도 있겠다만, 미국에서 돈 엄청 쳐들여 드라마 만드는 업체들이 마냥 웃으며 넘어가리라고 생각하는 순둥이들은 아마 없을 거다. 얘들은 한국 법에 의해 법정손해배상을 받더라도 이게 성이 차지 않으면 입수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미국식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때릴 수도 있다. 개인에게 받아내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결국 서비스제공자를 대상으로도 가능하다.

 

개인정보는 기냥 그렇게 쓰이고 마는 것이 아니다. 미국으로 넘어간 이 정보는 엄연히 범죄자의 정보다. 이걸 드라마 만든 넘이 지 혼자 쥐고 앉아서 밤마다 부둥켜 안고 어따 쓸지를 고민하는 닭짓은 하지 않는다. 이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퍼져나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범죄자의 개인정보 그것도 국제적 범죄자의 개인정보를 미국 수사기관이나 공안기관이 기냥 두지 않는다는 것은 뻔하다.

 

결국 드라마를 보고싶다는 팬들의 우렁찬 요청에 못이겨 미국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제공한 죄밖에 없던 어떤 네티즌은 앞으로 미국 비자받기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정보가 FBI에 의해 관리되는 영광을 얻을 수도 있겠다.

 

한국사회에서 이게 아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 특유의 독특한 회원관리제도때문이다. 디씨는 그렇다치고 다른 포털사이트들을 보자. 네이버, 다음 등에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남의 UCC를 지 UCC인양 가장해 올리는 사람들 퍽 있다. 이 사람들도 미국에서 제작된 UCC를 가지고 고따우 짓을 했다간 위의 사례처럼 인생 조지는 수가 생긴다.

 

그런데, 이들 포털사이트에 이런 콘텐츠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유저들이 해당 포털사이트에 회원가입이 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미 이들은 주민등록번호며 실명이며 연락처며 이메일주소며 하는 것들을 회원가입할 때 의무적으로 등록한다. 거기다가 앞으로는 이들이 언제 어디서 접속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log기록까지 1년간 업체에 보관된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반인류적 저작권 행사에 저항해왔던 수많은 업로드족들은 이제 한 마디로 X된 거다. 세상사가 어디 그거 하나로만 돌아가나? 다 이거 저거 맞물려 돌아가는 거다. 난 단지 재밌는 동영상 하나 올렸을 뿐인데... 이런 변명 이제 통하지 않는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처럼 저작권자가 심통 한 번 부리면 언제나 걸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정보까지 홀라당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고, 거기서 그 개인정보를 가지고 뭔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훌륭하신 대한민국의 정부는 이런 거 확인하고픈 의지도 없고 외국 기관이 달라면 다 주시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시다. 국민의 개인정보보호 같은 거 이분들은 모른다. 개쉐이들...

 

그런데도 좋다고 FTA 찬성하고 통비법 개악이 되던 말던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무수한 분들이 있도다. 이분들의 주옥같은 말씀은 이렇다. 영화나 드라마 보고 싶으면 DVD 사서 봐라. 포털 기사에 악플같은 거 달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그럼 괜찮지 않느냐? 안 괜찮다. 그렇게 착하게 살면 아무 일 없을 거 같지? 군대에서 껀수 잡는 게 뭐 그리 어렵더나? 잘못한 게 눈에 보여야 껀수 잡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여러분들이 통신판매를 이용해 영화 DVD를 주기적으로 다량 매입하는데, 통신판매에 이용된 log 기록과 여러분들이 이것 저것 짜집기해서 영화평도 올리고 스냅샷도 올리고 가끔 동영상 일부를 편집해서 올리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log기록이 다 남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러분이 편집해서 올려놓은 동영상조차 저작권 침해로 걸릴 수 있다.

 

예컨대 미국 드라마 중 "24시"라는 드라마가 있다. 여러분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 드라마를 편집해서 올렸는데 거기에 "24시"의 상징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는 초침 돌아가는 소리, 아니 정확히는 매 초마다 울리는 타임시그널, 이걸 음향으로 올림 아주 쉽게 이해하시겠는데 본인이 컴맹이라 딴 분이 올려주심 더 좋고, 암튼 이거를 그 동영상에 끼워 넣었을 경우 심각하게 쌍코피 터지는 수가 있다.

 

잘 하면 앞으로는 특정 음향에도 특허권이 부여될 수 있단 말이다. 인텔인사이드 선전할 때 나오는 "딩동댕동"하는 고 희안한 소리에도 특허권이 부여될 수 있다. 이거 잘 못 쓰면 작살나는 거다. 겨우 그거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여러분 진짜 순진한 거다.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멍청한 거고...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안을 당장 철회하고 한미 FTA비준동의를 중단하라고 외치시라. 그게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이 앞으로 다만 몇 년 간이라도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길이다. 미국드라마, UCC 등에 관심 많은 분들, 오늘이라도 광화문 앞으로 촛불들고 가시기 바란다. 돈 안 들이고 재미난 미국드라마 계속 보고싶으시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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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08:30 2007/04/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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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처밝히고, 마구 퍼감돠.

  2. 통비법 트랙팩으로 트랙백 한방 쏴주심이 어떤지~

  3. not/ 어둠의 경로 사람들이 음지를 포기하고 양지로 나와 반대투쟁 하려나 몰러...

    달군/ 아깐 안 되더니 지금 되네요. ㅎ

  4. 윈엠엑스나 위니는 가입절차 전혀 없이 P2P가 되던데, 이런 것도 붙들릴 수 있나요? 본문과 약간 다른 질문;
    국부유출 너무 웃겨요 ㅇ<-< 그래!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더더욱 외제를 다운로드하자꾸나!! ㅋㅋㅋㅋ

  5. 역시 행인님은 저의 영원한 우상이 되실 자격이 백만스물일리터가 넘치고도 남습니다~ T▽T

  6. 훕 전 24는 안 봤음;
    사진 설정을 뭐로할까 하다가 요즘 잘나간다는 그 석호필로-_-;

  7. 투쟁!!! +_+

  8. 와우~!

  9. 뎡야핑/ 각종 어둠의 경로가 국부유출을 막은 사례를 종합하면 엄청난 국익창출이 있었을 것이라고...(헉...)

    P2P의 경우도 조만간 걸고 넘어지리라 예상되어요. 그 까이꺼 중계프로그램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되는데요 머... 그러나 아직 거기까지는 이야기되지 않은 듯 합니다. ㅎ

    끝지/ 사실 행인은 끝지의 팬이었슴돠 ㅋㅋ

    샤♡/ 24는 몇 번 보다가 때려쳤져. 그런 스타일 별루... 갠적으루다가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즐겨 봤는데, 시즌 종료하고 다음 시즌은 내년이나 되어야 나온다네요... 그 때면 한미 FTA 발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즌 4의 감동을 느끼려면 돈 쎄려 박아서 DVD를 사던지 아님 방송사에서 방송해줄 날만을 손꼽아 지둘려야 겠져. 뒌장... "배갈"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 비준 결사 반대여요! ㅋㅋ

    에밀리오/ 옙. 투쟁입니다.

    개토/ 나도 와우~!

  10. 와와. ㅜㅜ

  11. 쥬느/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