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 목소리

노무현 대통령의 입은 언제나 뉴스를 만든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별로 뉴스가 될 일이 아닌데, 야당이고 언론이고 간에 이걸 뉴스로 만들기 위해서 기를 쓰는 것 같다. 이번 선거법 위반 혐의 역시 언론의 침소봉대가 노무현을 뉴스메이커로 만드는데 한 몫 했다. 어떤 언론사에서는 선관위 결정에 따라 '파란'이 예상된다고 난리 부르스를 췄던데, 그게 언론의 생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르면 입 닥치고 있는 것이 여러 사람 편하게 해주는 지름길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중선위의 결정은 예상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공무원의 정치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입에 거품물고 난리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짓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공무원의 정치중립은 공무원들보고 정치에는 아예 눈길도 돌리지 말라고 정한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정권이 공무원들을 지들의 시다바리정도로 알고 함부로 정치판에 동원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공무원들로 하여금 그러한 정치동원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더구나 대통령은 국가 최고위직 공무원인 동시에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데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중선위가 노무현에게 선거중립을 지켜달라고 권고하는 것도 문리해석에 치우친 법 적용이다. 대통령은 입을 여는 순간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한 노무현의 발언을 모욕죄로 고발했다면 모를까, 이놈의 나라는 법을 우습게 아는 인간들이 꼭 지들 필요할 때는 중선위니 헌재니 하면서 법이 어쩌구 한다.

 

문제는 노무현이 박근혜와 이명박의 뒷다마를 깐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중선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노무현과 청와대,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건 엄연히 현직 대통령이 직위를 이용해 (중선위) 공무원의 중립의지를 위협하는 행위다. 바로 이것이 헌법이 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중립보장을 깨는 행위였던 거다. 말 그대로 위헌적 행동이다.

 

노무현은 얼마전 지 신세 한탄을 하는 과정에서 "그놈의 헌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물론 그 이전에 노무현이 말도 안 되는 '원 포인트 개헌' 운운하면서 현행 헌정질서에 균열을 가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그 자신이 헌법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헌재에 의해 스릴감 넘치는 "탄핵의 위기"상황을 겪기도 했고 신행정수도이전이 불발로 끝나게 되는 등 곡절을 겪은 노무현은 나름대로 현행 헌법체제 하에서 그다지 덕 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노무현이 자신의 선거중립위반여부에 대한 중선위의 결정을 코앞에 두고 공무원인 중선위원들의 중립보장을 해치는 발언을 했다. 그것도 "그놈의 헌법"을 가지고 헌법소원을 하겠다는 거다. 대통령 스스로 헌법파괴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도 크게 다루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중요한 것인지 야당이고 언론이고 분간을 못하고 있는 거다.

 

노무현이 이처럼 큰 소리치는 배경에는 나름대로 지가 판사까지 지낸 경력을 가진 법조인 출신이므로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닥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언필칭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도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그 나름의 오만도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오바질이다. 내지는 법전에 기록된 문자가 법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부 사시출신들의 버릇을 노무현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자신이 저지르는 위헌적 행위에 대해서 노무현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를 따르는 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선관위 역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못된다. 왜냐하면 선관위가 해석하고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것은 노무현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과 한 치도 다름 없이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놈의 헌법"이 처한 상황은 대략 안습이다. 하긴 한국사회에서 헌법이 어디 "법 위의 법"으로 대우받은 적이 있었는가 만은, 그 헌법구조 하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본 현직 대통령이 은혜는 생각못하고 "그놈의 헌법" 운운하는 배은망덕까지 저지르고 있으니 헌법이 애처롭다.

 

일각에서는 노무현을 예전부터 "놈현"이라고 불러왔다. 졸지에 "Mr. 놈"이 된 대통령. 그 "놈" 덕분에 호구가 되버린 "그놈의 헌법"의 모양새나, 이 꼴 보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에라, 정치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하고 환멸해버리는 인민들이나 딱하긴 매한가지다.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그 놈" 목소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법상으로는 내년 2월까지 "그 놈"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 때마다 이 난리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분 참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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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22:52 2007/06/07 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