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그 공허한 눈동자

당 게시판에 민주노동당 노동조합과 관련된 숱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6일 출범식을 하는 것이 공식화되었고, 이미 언론기사에도 보도가 된 상황인데 당게시판은 무척이나 시끌벅적하다. 노조 준비위는 공식출범 전까지 당게시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해 노조차원의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당게시판의 논란은 개입할 여지가 있을만큼 재미있지도 않다. 노동조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워낙 바닥이 보이는 논리인지라 애초부터 대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그나마 이에 대해서 많은 당원들이 하나 하나 적절하게 노조반대론의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함께'의 거의 공식입장 수준에서 제기된 문제제기가 하나 올라왔다. 내용은 사실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데, 간단하게 이야기하겠다던 필자의 서문과는 달리 그동안 당게에서 주장되었던 반대론을 집대성한 내용이라 행인도 '간단하게' 이에 대해 검토를 해볼라고 한다. 그게 간단하게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만서도...

 

다함께의 일원인 전지윤은 그의 이 '간단한' 글을 시작하면서 "상근자노조 문제가 중요한 정치문제이기보다 부차적인 조직문제라고" 규정한다. 링크따라가 보시면 알겠지만 이렇게 스크롤 압박 대략 난감하게 만들어놓은 장문의 글을 부차적인 조직문제때문에 작성한 전지윤 다함께 회원에게 일단 박수를 보낸다. 수고하셨다.

 

"지난 수백년 간의 국제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아봐도 혁명적 정당에서든, 사민주의 정당에서든 상근자 노조가 중요한 쟁점이었거나 변혁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적은 없다"는 이 간단명료한 사적 고찰은 얼핏 보기에는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의 의의와 역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발언으로 보일 수 있으나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예컨대, "지난 수백년 간의 국제노동운동의 역사" 중에 "혁명적 정당에서든, 사민주의 정당에서든 상근자 노조가 중요한 쟁점이었거나 변혁운동의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면 사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것때문에 그 "혁명적 정당에서든, 사민주의 정당에서든" "중요한 쟁점"이 되서 왈가왈부하고 노조가 되니 마니 하는 민주노동당 당게시판 같은 논란이 횡행했으면 오히려 그게 뉴스거리고 역사에 길이남을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전지윤 다함께 회원은 "당은 기업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은 "상근자들의 잉여노동을 착취해서 이윤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상근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소외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 지도부와 상근자의 관계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라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도출한다. 이 결과의 끝에 전지윤은 "당을 기업으로, 지도부를 자본가로, 상근자를 노동자로 보는 것은 사회의 모든 분야를 공장 안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환원하는 조야한 노동자주의"라고 비판한다.

 

다분히 '다함께'스러운 이런 판단은 실제 당 노조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다. 전지윤의 제로에 가까운 현실인식 첫째, 당 노조는 당 지도부를 "자본가"라고 본 적이 없다. 둘째, 상근자들 중 상당수는 "소외된 노동"을 하고 있다. 셋째, 당 지도부와 당 상근자들은 상당부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넷째, 노동자성의 발현은 그가 속한 조직이 당이냐 기업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지윤이 보이고 있는 이해도는 사실관계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들의 머리속에서 조합된 관념만을 가지고 상대를 재단하는 전형적인 '다함께'의 비판방식 안에 머물러 있다.

 

전지윤은 묻는다. "상근자들이 ... 근무시간을 넘기면 시간 외 수당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민주노총이 파업을 선언했을 때 상근자노조가 있다면 파업에 동참해서 당무를 거부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묻는 것은 당연히 전지윤이 그럼 안 된다는 답을 도출하기 위해서이다. 매우 웃기는 사고방식이다. 당연히 "시간 외 수당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파업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지윤은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들고 있다. "당은 공동의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주적 결사체"이고 "상근자들은 이러한 당의 적극적인 활동가"이기 때문이란다. 그거 부정하는 노조원 한 사람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자주적 결사체"에 속해있는 "적극적인 활동가"들은 왜 자신의 노동자 성을 부정당해야 하는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상황, "소외된 노동"이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자주적 결사체"를 노동자들이 만들고자 하는 상황이 왜 도외시되고 "조야한 노동자주의"로 폄훼되어야 하는가?

 

"조야한 노동자주의"를 비판하는 전지윤의 화려한 관념론은 계속된다. "노동자 당은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도 아니고 경쟁과 축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고 "당의 지도부도 ... 노동계급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기업노조 뿐만 아니라 공무원 노조조차도 당 노조와 비교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지윤은 애초 당 노조문제에 '다함께'의 입장을 제기하면서 노조는 "부차적인 조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대목까지 오면 이것은 당 활동을 하는 활동가와 상근자들의 계급성에 대한 문제로 비약된다. 활동가와 상근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 사고방식은 그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을 펼쳐야 하는 "정치문제"가 되어버린다. 결국 전지윤은 자기가 써놓은 글과는 달리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당내 노조건설문제가 사실은 매우 심각한 "정치문제"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정치문제"를 전지윤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고백한다. "당의 상근자가 정치활동보다 상근 간부로서 고용과 임금, 처우 개선에 치중하는 것은 개량주의의 발로"란다.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그 수많은 투쟁들, 이를 통해 건설된 민주노총의 역사적 의의, 현장에서 자신의 고용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전개되는 수많은 노조원들의 투쟁은 "개량주의의 발로"로 전락한다. 그토록 투쟁을 다짐하고 요소요소 안끼는데 없이 끼어들던 '다함께'의 사고수준이 결국은 이정도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마치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이 노조기구의 보존과 자신들의 안정적인 지위유지를 계급투쟁의 발전보다 우선시하는 것과 비슷"하단다.

 

사실 '다함께'의 글을 보는 맛은 여기에 있다. 이렇게 근엄하게 뻘타를 친다. 근엄한 목소리로 "개량주의의 발로"를 질타하는 그들의 주관적 판단은 객관적으로 웃음거리가 된다. 아직 탄생도 하지 않은 당 노조가 "자신들의 안정적인 지위유지를 계급투쟁의 발전보다 우선시"할 것이라는 이 별난 관심법은 전지윤을 다함께의 회원이 아니라 미아리 어느 구석에서 '00철학관'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사주팔자를 봐주는 사람 수준으로 보게 만든다. 하여튼 여기서 한 번 웃고 다음을 보도록 하자.

 

"이런 노조 간부들은 ... 자신의 직위와 수입을 보존하는데 치중할 뿐, 사회 변혁을 위한 정치활동과 투쟁에 대한 열의가 없어져 간다. 노조기구는 그들에게 사회변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며, '직장인'으로서 관점과 습성이 나타난다. 이것은 결국, 노조기구의 존재와 노조 간부들의 지위도 위협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근본변혁과 이를 위한 투쟁 앞에서 보수적 태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아예 모든 노조 해체하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솔직하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릴 노조, 뭐하러 만들고 지키고 노조의 이름으로 투쟁하나? 그런 식으로 전락해가는 노동조합들에 대한 비판, 즉 전지윤이 지금 진행한 이런 류의 비판은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왔고 나 자신도 그런 비판 무수하게 해왔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 결성하지 말까?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합을 포기할까? 오히려 그렇게 가지 않도록 질책하고 비판하면서 연대하고 함께 하여 궁극적으로는 소외된 노동을 일소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이룩하는데 노동조합이 선두에 서도록 해야하는 것이 '다함께'같은 '의견그룹'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전지윤은 이러한 "일부" 노조의 부정적 모습을 언급하면서, "당 상근자들이 당 기구와 기구 안에서 자신들의 안정적 지위 유지를 더 중시하게 되면 ... 마찬가지의 문제가 나타난다.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한 정치활동가보다 생계를 위한 직장인이라는 태도가 우선되는 것"이란다. 아예 가상소설을 쓰던지 예언서를 쓰던지 하는 것이 낫다. 당 노조, 물론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욕을 먹고 비판당하고 채찍질 당해야 한다. 그래도 이 부정적인 모습을 털어버리지 못한다면 그 때는 노동조합 해산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범죄의 양상과 범죄자들의 모습을 전제하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너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저주를 내뱉는 것은 "변혁"을 운운하면서 운동한다고 자임하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다함께'는 그런 것을 운동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더욱 웃기는 것은 이러한 부정적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은 임금과 처우를 받아 온 정책연구원들이 노조건설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란다. "시사적"일 정도란다. 상대적 기준으로 낫고 모자라고를 따진다면 당 내에서 정책연구원들, 사무총국 활동가나 지역 활동가들보다 "나은 임금과 처우"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책연구원들이 월급 올려달라고 아우성치던가? 시사적? 사실 시사적인 것은 '다함께'에서 그래도 말빨 좀 있다고 알려진 전지윤이 이정도 사고체계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시사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전지윤은 "상근자노조를 당내 분파투쟁에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 행인, 매우 가소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을 자기 조직의 활동을 위한 숙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다함께'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다함께'가 보여준 그동안의 행태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냥 해주고 싶은 말은 친절한 금자씨가 시원하게 내뱉어 주었던 "너나 잘 하세요~"하는 말 뿐이다. 요대목은 여기까지 한다. 더 재미있는 대목이 기다리니까.

 

"상근자 노조를 추진하는 동지들이 정치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부차적으로 보기 때문""당 지도부의 정치성향과는 무관하게 자체의 논리를 형성"할 것이란다. 가지가지하고 있다. 하여튼 이 '다함께', 팩트를 지들 머릿속에서 멋대로 조립을 해놓고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재주는 타고 났다. 당 노조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정치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고? 당 노조는 분명히 정치활동가와 노동자는 양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왔다. 당 활동가들은 정치활동가이자 동시에 노동자다. 이게 이해가 가지 않나? '다함께'라는 조직은 뭔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반드시 선차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나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연성을 이념으로 가지고 있나?

 

전지윤은 평소 행인이 매우 분개했었던 사실을 훌륭한 전범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2004년 총선 이전만 해도 수많은 활동가와 상근자들이 거의 무급으로 활동했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지구당에서는 1명분의 상근비로 2~3명이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활동가들은 상근비는 커녕 오히려 자기 돈을 쓰면서 헌신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더구나 당 밖의 사회단체나 지역 풀뿌리 단체들을 보자면 이런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조금 더 보자.

"물론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 상근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기본적인 생계비를 지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상근자 노조를 만들어서 상근자들이 당 지도부를 상대로 협상하고 투쟁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당이 건설하는 운동이 승리하고 당이 강력한 대중정당으로 성장하면서 함께 해결될 문제이다."

 

이쯤 되면 전지윤의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다 들여다볼 수 있다. 2004년 총선 이전에 무급으로 활동가와 상근자들이 활동했던 것. 이걸 지금 상황과 등치시켜 비교하는 이 논리수준, 아무리 봐도 어이가 없다. 그래서 '다함께'는 2004년 총선 이전에 어떤 골때리는 짓을 하면서 지역위 한 군데를 날로 먹으려고 했나? 지역위에서 '다함께' 모여 헌신하려고? 무급으로 활동하려고?

 

1명의 상근비로 2~3명이 활동하면서 헌신하는 그 동지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현상을 당연한 것인냥 받아들이고 혹은 전지윤처럼 그것을 조장하는 이 작태. 87년 대투쟁이 왜 일어났는지 전지윤은 이해를 하고 있는 건가? 당 노조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그동안 "상근비는 커녕 오히려 자기 돈을 쓰면서 헌신적인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임을 전지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모르고 이 글을 썼어야 한다. 만일 알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전지윤은 지금 엄청난 폭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당 노조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근비 더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자기 멋대로 재단질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당 노조 건설의 필요성을 제공했다는 것을 전지윤은 알아야 한다.

 

당이 승리하면, 강력한 대중정당이 되면 다 해결될 문제들이라고? 이건 태어나지도 않은 노조에 대해 개량주의로 점철될 것이며 변혁을 폐기할 것이라고 주장한 전지윤이 할 소리가 아니다. 강력한 대중정당이 되면, 그래서 덩어리가 더 커지면 문제가 다 없어지나?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생각은 못해봤나? 아직 그렇게 안 되었으니까 모르겠다는 소리는 할 수 없을 거다. 건설되지도 않은 당 노조에 대해 사용했던 관심법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전지윤이 이야기한 것 중에 당 노조가 지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한 전략전술을 치열하게 논쟁하며 끊임 없이 자기 혁신해 나가는 진지한 활동가들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거다. 물론 전지윤은 당 노조가 이러한 "정당의 상과는 매우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끊임 없는 사실관계의 왜곡 내지는 지 멋대로 조립.

 

'다함께' 전지윤의 동공은 촛점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한채 허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그림자들을 보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런 현상은 흔히 뽕 등의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되었을 때 나타난다. 이 수준이 되면 교육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 중독증상이 심해지기전에 하루 속히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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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02:05 2007/01/05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