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노동자라 하지 못하고

홍길동이 가출결의를 하게된 결정적 계기는 '호부호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핏 응석받이가 지 맘대로 안 되니 뗑깡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출의 신분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하는" 그 상태는 다름 아니라 존재상실의 상태이다. 홍길동은 집구석에서만큼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없었던 거다.

 

홍길동처럼 가출을 비롯한 일탈행위-도적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는 움직임은 비유하자면 마음 떠난 중이 절을 떠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러나 이게 올바른 사태해결의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음 떠난 원인이 중에게 있지 않고 절에 있다면? 그건 중이 나서서 절을 바꾸어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홍길동은 표면적으로 마음 붙일 수 없던 집을 떠난 행위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출로 하여금 '호부호형' 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구조에 대해 도전했다. 도전은 실패하고 결국 중이 절떠나듯이 나라마저 떠나 지가 율도국을 만들어 버렸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벌어지면 결국 셋 중 한 가지 방법을 택해야 한다. 떠나거나 바꾸거나 순응하거나. 당 내에서 상근자 노조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당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거의 북한 핵실험 당시 수준으로 시끌벅적한데, 2007년 1월 3일 오전 10시 현재 당게시판의 상황은 이렇다.

 


한 화면 20개의 글(맨 위의 하나는 공지라서 그림에 안 들어감) 중 반이 노조관련 글이다. 찬반론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맨 아래 노조공고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글 중 5개가 반대글이다. 물론 이전에 올라온 글들은 거의 대부분 반대글들이고.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당 상근자 노조는 당원이 사용자냐, 그럼 노조 만들겠다는 니들은 당원이 아니냐는 질문에서부터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내부분란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가당하냐는 도덕론(?)도 있고, 역시 '헌신과 희생'을 당위로 하는 당 활동가들이 임금'투정'이나 하려는가라는 질책도 있다. 여기에 더해 노조건설에 주된 작업을 한 사람들이 정책연구원들인데 니들은 지역위상근자들에 비해서 엄청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 않느냐와 같은 민중의 소리 김경환기자류의 '이간질초식'과 '침소봉대초식'같은 무림비급을 동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악랄한 부류는 노조문제를 정파문제로 치환하여 현 지도부에 대한 반대정파의 조직적 저항이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반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맨날 했던 소리 하는 부류에 불과하고 뭔가 색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또 우려했던 것만큼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당 게시판의 저 모습은 오히려 한산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뭐 앞으로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제일 걸리는 것은 반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당이나 노조,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희생과 헌신을 부르짖으며 "당원이 주인"인 진보정당에서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노-자 대립구조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노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한 사회주의국가에서 노조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물론 같잖은 주장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사회주의정권하의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운동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이들은 설명할 수가 없다.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은 결코, 절대로, never!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의 생각을 확장하면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정권을 획득하면 민주노총은 결코 정치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 이걸 말이라고 하고 자빠졌냐?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면 누구나 노동자다. 자신의 노동이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노동자는 누구나 자주적인 결사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노동조합이다. 여기에 무슨 맑스니 레닌이니 뭐니 하는 사상가들의 이론을 더덕 더덕 갖다 붙일 필요도 없는 거다. 이 간단한 구조를 왜 외면하려 하나?

 

'희생과 헌신'이 개인의 덕목일 수는 있지만 그게 왜 구조적으로 강제되어야 할까? 니들은 당 간부인데 '희생과 헌신'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라는 주장은 물론이려니와 나도 '희생과 헌신'하니까 니들도 '희생과 헌신'해라라는 이 주장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른다. 상근자노조를 만드려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당에 대해 '희생과 헌신'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누가 옆에서 '희생과 헌신'하라고 하지 않아도 그동안 스스로 앞장서서 '희생과 헌신'해왔던 사람들이다. 더 이상 뭘 또 '희생과 헌신'하란 말인가? 노조 만들면 이 사람들이 그동안 해왔던 '희생과 헌신'을 접어버린다는 말인가?

 

노동자에게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당신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자본가들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해방하겠다고 모인 조직 내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자기정체성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이 구조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떠나거나 바꾸거나 순응하거나.

 

물론 떠날 수도 순응할 수도 없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꾸는 것이다. 이 골때리는 가치전도현상을 때려 엎어야 하는 것이고, 내 정체성을 내 스스로 확인하고 알리는 것 뿐이다. 떠나거나 순응하는 것은 솔직히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당게에서 열심히 삽질을 해주는 여러 골빈당 당원들 덕분에 되려 노동조합 건설에 관한 광고는 충실히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여기서 행인도 광고 한토막.

 

진보블로거 여러분.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의 창립총회가 1월 6일 4시부터 중앙당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창립총회가 끝난 직후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 출범식이 연이어 진행됩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노동해방의 그날을 향해

 

민주노동당 상근자 노조가 달려가겠습니다.

 

힘찬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캄샤~! ^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03 10:32 2007/01/03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