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풍경, 그리고...

#1. 준비

무척 정신이 없었습니다. 준비할 것은 많은데 제대로 챙기기는 한 것인지 이것 저것 점검을 해보니, 소소하게 빠진 것이 많더라구요. 복작복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습니다. 다했나 싶으면 또 빠진 것이 있고, 이젠 다 됐나 싶으면 그래도 또 모자란 구석이 있었습니다.

 

늦게나마 이럭저럭 준비를 마치고, 조합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행사장소로 이동하려는 찰라... 고사문을 한지에 옮기지 못했군요. 다행히도 글쓰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있어 일필휘지 멋있게 고사문을 옮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저마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분들이 보입니다. 매일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사는 정책위 연구원들은 물론이고, 사무총국의 각 위원회 간부들, 지역의 살림을 맡아 하는 활동가들 모두 보석같이 반짝이는 자신의 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강호는 넓고 인물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지경이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분들이 발휘한 능력이라는 것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분들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기획력을 가진 분들,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난 조직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 노도처럼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보여주는 분들, 전문분야에서 그 어느 전문가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전문성을 보여주는 분들 등등 행인이 보기에 경탄과 존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나... 이런 인재들을 모아놓고 이 당이 이 모양이라니... 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말이죠.

 

#2. 창립총회 직전

솔직히 떨렸습니다. 조합원들이 얼마나 올까, 혹시 사람들이 적으면 어쩐다, 축사를 해주시기로 했던 00노조 위원장님이 전국순회 중이라고 하던데 올 수 있으려나, 준비가 소홀한 점은 없나 등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웃고 있어야 하는데, 걱정하는 표정이라도 보일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하더군요.

 

창립총회가 열리기로 한 4시. 전국에서 달려온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지만 전체 80명 발기인 중 겨우 20여 명. 회의가 성립할 수 있을지(규약 안에 준해서 개최되었습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이라는 조합 구성의 한계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날 비와 눈이 교대로 쏟아지고 오전에도 폭설에 준하는 정도의 눈발이 날리더니 찬 바람이 휭휭 불어대는 날씨가 또 한 몫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조합원들이 계속 몰려들었고, 결국 성원이 되어 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총회 중간에 집계를 해보니 50명이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3. 창립총회

창립총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규약안 검토시간이 생각 외로 오래 걸리더군요.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규약안 조문 하나 하나를 꼼꼼히 검토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규약안을 준비했던 입장에서는 마치 시험보고 나서 채점자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수험생과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몇 가지 규정 변경이 논의되었고, 동의절차를 밟아 정비되었습니다.

 

임원선출이 있었습니다. 경선은 없었고 모두 찬반투표였습니다. 위원장 1인, 부위원장 2인, 운영위원 2인, 회계감사 1인을 선출하는데, 극소수의 안티세력(?)이 있었습니다만 압도적인 찬성으로 전원 당선되어 민주노동당 노동조합 1기 집행부가 꾸려졌습니다.

 

사업기획, 예결처리 등은 2월 3일 개최되는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위임하고 창립총회를 마쳤습니다.

 

#4. 출범식

출범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노조깃발과 임원이 등장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조합원들의 열렬한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축사와 연대사를 위해 참석한 분들이 벌떡 일어나 깃발과 임원을 맞이합니다. 정작 우리 조합원들은 앉아서 박수치고 휘파람 불고 소리 지르는데 말이죠. ^^;;; 일어나셨던 분들이 좀 머쓱해하면서 다시 앉는 모습도 재미있더군요.

 

힘찬 축사와 연대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고사식.

 

유세차

 

병술년 신축월 경자년 을유시에

 

문래동 종도빌딩에 자리 잡고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이 출범하여

전국각처 많은 분들 모셔 새 시작을 알리오니

 

천지사방의 온갖 신령이 우리를 도우사

 

신자유주의 세계화귀신

제국주의 패권귀신

노동자 등골 빼는 자본가 귀신

농민 후려치는 WTO 귀신

서민 울려놓는 부동산 귀신

걱정근심 우환귀신

일체 잡귀잡신을 물려주시고

 

노동자가 행복하고

농민이 행복하고

서민이 행복하고

평등과 자주가 넘치고 흘러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소원성취를 하게 하시고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이

귀신 때리는데도 앞장

세상 바꾸는데도 앞장

온갖 궂고 힘든 일에도 앞장서서

민주노동당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하시길

 

약소한 주육병과를 올려

정성들여 축원하옵니다

 

상향

 

#5. 말과 말들

- 당에 들어온 후 오늘처럼 뭔가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든 게 처음이에요

- 노조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조에 가입하고 탈퇴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 사용자 대표로 참석한 당원입니다(^^). 노조창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앞으로 민주노동당 노조에 대한 연대의 요청이 많아질 것이다.

- 만들긴 했는데 만들다가 힘 다 빼고 정작 일 못하는 거 아냐?

- 등등등...

 

당활동을 한지 만 4년이 지났고, 중앙당에서 일한지 2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당 내부에서 하는 행사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도 드물고, 모인 사람들의 눈빛이 이렇게 생기있고 희망에 찬 적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입니다.

특히 진보블로거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격려가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진보블로거 여러분, 여러분들이 행인을 도와주신 것처럼 앞으로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에 많은 도움을 주시고,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에 대한 따끔한 채찍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진보블로거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행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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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9 11:10 2007/01/09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