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대국의 핵실험

행인[예상했던 대로] 에 관련된 글.

조선중앙통신은 장엄한 서사체로 핵실험 성공을 만방에 알렸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창조해나가는 벅찬 시기에 우리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주체 95(2006)년 10월 9일 지하핵 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류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핵시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으로서 강위력한 사회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력사적 사변이다.

 

핵시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어떤 분이 글을 남기길, 북한으로서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라고 한다. 남한을 평화정착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북한 태도에 대해 행인이 비판한 것에 대해 남한의 역할이라는 것이 한정적이어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한 논거이다.

 

물론 참여정부 들어와서 노무현이 보여준 태도는 북한이 남한을 신뢰할 수 있는 일단의 여지마저 보여주지 못한 것임에 분명하다. 김대중이 비판하듯 노무현은 국민의 정부가 놓았던 다리마저도 건너지 못하고 오히려 걷어 치우는 짓을 해왔다. 대북관계의 정상화를 전제로 놓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미공조라는 명목하에 치우친 대미의존적 대북전술을 펴왔던 거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아무리 그러한 노무현의 실정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태도에 점수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핵을 보유한다는 것이 강성대국의 선군정치를 통해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에 전면적인 반동의 물결을 몰고 오게 되었다. 북한이 남한을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호간의 협력적 관계 구축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군의 전략적유연성에 대한 남한 내의 비판 목소리는 더 이상 힘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내포하고 있는 전략적유연성의 경우 한반도를 비롯한 극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침략적 전쟁수행이 가능해진다는 판단으로 인해 비판의 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북핵시험으로 인해 물타기가 되어버린다.

 

평택 역시 마찬가지다. 전 국민적 동의를 얻으면서 진행해나가야할 평택투쟁, 북핵시험으로 인해 오히려 반격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렇잖아도 작통권이니 뭐니 하는 사안마다 한반도 전쟁위험을 근거로, 더 정확하게는 북한남침의 위험을 방패삼아 수구반동세력들에게 매도당하는 상황에서 평택 역시 그러한 반동의 물결과 싸우느라 많은 힘이 소요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핵시험을 통해 수구반동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자칫하다가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평택 사태가 진행될 가능성이 더욱 농후해졌다.

 

덕분에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다.

 

더욱 문제는 평화헌법 폐기를 주장하며 자위군을 설치하고 핵무장을 하자는 등 노골적인 군사대국화를 주장해온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들의 주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핵무장은 극동아시아에 엄청난 파국을 예고한다. 북한이 핵 미사일 몇 기 보유하는 정도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이 미국의 암묵적 승인을 통해 이용될 경우 일본은 급속한 핵무장이 가능하다.

 

일본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개방화 시대 이후 자국 내 사회불안의 급증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은 북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계기로 더욱 강력한 군사동원체제를 강구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열망이 고조되고 소수민족의 독립열기가 상승할 수 있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타개할 비책이 마련되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었다면 적어도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발마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오직 남한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의 난맥상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은 최소한 그러한 차원의 전술적 행보를 취했어야 하고 남한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주었어야만 한다.

 

혹자는 북한이 핵 개발하면 통일된 이후 그게 다 남한 것이 되니까 좋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웃기는 소리다. 남북이 통일된다고? 만일 북한 정권 내에 이상기류가 발생해 정권붕괴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현재 북한의 수뇌부가 남한으로 백기투항할까? 그럴 가능성은 미안하지만 거의 없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이 중국으로 투항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남한과 지리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것도 미지수다.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 높여도 된다. 아니, 더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북한의 무책임한 핵무장에 대해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은 안 된다. 북한이 남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핵은 공멸이다. 누군가가 "핵에 대한 대등주의"를 주장하더라. 같잖은 소리다. 핵은 무조건 안 된다. 미국이건 러시아건 중국이건 핵은 폐기해야할 것이지 "대등주의"를 주장하며 같이 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한다는 사람들 속에서 이런 주장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대한민국 진보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핵시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조선중앙통신의 발표내용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핵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 그건 목숨을 내걸고 철로 위에서 치킨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뭐가 평환가? 누군가의 손가락 하나로 수억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장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 그걸 평화라고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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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9 13:27 2006/10/09 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