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이야기

하루 종일 '지대로' 걸렸다. 아침 출근길에 바다이야기 관련 당 대응안 때문에 연락을 받더니 내내 이쪽 저쪽에서 바다이야기 관련된 이야기 줄창 나온다. 법적인 대응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이 오늘 이야기된 내용 중 거의 3분의 2가 된다.

 

대답은 간단하다. 이건 법으로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사행성 오락게임, 온라인 게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벌써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왔던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별다른 이슈거리가 되지 못했다가 덜컥 정치권이 이 사건을 스캔들로 비화시키면서 문제가 제기된 거다. 그동안 뭐 법이 없어서 이지경이 됐나?

 

도박이라는 거, 이거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행위다. 그리스시대 격투기 장에서 홀라당 벗고 생사를 걸며 격투기를 하는 투사들을 앞에 두고, 관중들은 돈을 걸고 돈따먹기를 했다. 이집트에는 기원전 1600년 경에 이미 도구를 이용한 도박이 성행했고, 로마 역시 도구를 이용한 도박이 있었다.

 

승패를 가르는 것이 목적인 모든 행위는 그것이 몸을 격렬히 쓰는 운동이 되었건 반상을 사이에 놓고 치열하게 뇌를 굴리는 바둑이나 장기가 되었건 간에 모두 도박의 대상이 되었으며, 주사위 굴려 돈따먹는 놀이를 하는 건 그 기원이 무려 2000년이 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카드놀이나 홧투 같은 것 역시 도박에 이용되는 전형적인 도구이다. 하긴 인간이 어디 도구가 있어야만 도박을 하던가? 교환물로 이용되는 동시에 그 교환물을 도구로 이용하여 벌어지는 도박이 있다. 바로 짤짤이.

 

뭐든 도박이 된다. '바다이야기'만 도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인간의 행위는 내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도박이 될 수 있다. 하긴 뭐 인생이 도박이라는데야...

 

백과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도박이 될 수 있다.

1. 기구를 사용하는 것 : 윷, 주사위, 장기, 바둑, 체스

2. 패를 쓰는 것 : 트럼프, 화투, 골패, 마작 등

3. 기계를 쓰는 것 : 룰렛, 슬롯머신, 빙고, 각종전자오락, 경품오락

4. 스포츠의 승패를 대상으로 정한 것 : 경마, 경륜, 각종 race, 권투 등 격투기 기타 등등

5. 추첨을 하는 것 : lottery, 복권

6. 증권투기 : 증권

7. 내기 경기 : 당구, 골프, 볼링 등

8.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도박

9. 기타 : 투우, 투견, 투계. 이외에 레크레이션을 도박에 이용하는 경우

 

실로 다양하도다. 맘만 먹으면 뭐든 도박이 될 수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이 도박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가상할 정도이다. 형법이론 상으로는 "피해자 없는 범죄"인 이 도박을 왜 처벌해야하는가에 대해 논의가 있지만, 일반의 감정상 도박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도박의 양상과 이 도박에 빠지는 일정한 경향이다. 이번 바다이야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골목 어귀마다 들어선 이 이상야릇한 게임장에 들어가서 가산탕진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물론 그 대상이 일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얼추 대부분 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장삼이사들이다.

 

돈벌이 하느라고 바쁜 이 사람들이 뭔가 한 방 터지길 기대하면서 오락장에 들어서는 거다. 이들에게 교묘한 방식으로 사행심을 부추겨 오락장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상술도 한 몫 하지만, 실제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거나 혹은 상류층으로서 일정한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여기 가지도 않는다.

 

왜? 어차피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승부근성 내지는 도박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의 분류에는 들어가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도박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일종의 게임을 상류층은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증권투자".

 

물론 소액주주들도 있고 하니 증권투자가 돈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돈 움직이는 사람들의 경우 증권투자는 이미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도박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땅투기는 어떤가? 일단 사놓으면 본전이라는 안정성도 있는 동시에 잘터지면 왕대박이다. 졸지에 땅값 올라 알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이거 주변에 널려있는 이야기지만 정작 행인 처지 비스무리한 서민들 사이에선 실제 사례를 발견하기가 영 힘든 이야기다.

 

더 웃기는 건 로또다. "일주일이 행복하잖아요~"라고 하시는 분들 있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로또 추첨을 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나? 일년에 한 번씩 하면 일년이 행복할텐데...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복권천지다. 로또뿐만이 아니라 별 희안한 복권이 판을 친다. 그거 다 국가가 인정해서 내놓은 복권들이다. 이유야 좋다. 기금마련해서 좋은데 쓴단다. 그런데 그동안 그토록 수많은 복권들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가지고 내 피부에 와닿게 좋은 일이 있었는지 별로 모르겠다. 월드컵 복권 통해서 월드컵 개최했잖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사실 그 월드컵, TV로 봐도 무방하다. 그럴깝사 차라리 전 국민들에게 월드컵 경기 열리는 경기장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해주던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도박이나 복권에 인민들이 빠져드는 이유다. 첫째, 먹고 살기 힘들어서다. 쎄가 빠지게 일해봐야 집살 때 얻은 빚갚는데 쓰고, 애들 학자금 쓰고, 이것 저것 사는데 필요한 만큼 아껴 써봐야 손에 남는 것도 별로 없다. 푼돈 쪼아서 목돈 쥐어보는 방법 중에 도박과 복권만큼 유인성이 강한 것이 또 있던가?

 

다음으로 여가다. 이놈의 여가, 별로 주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왕 어쩌다가 여가랍시고 생겨도 어떻게 써먹을지 방법이 종무하다. 술을 퍼먹던지, 디비 자던지, 아니면 겜방 가서 땡기든지 하는 게 제일 쉽고 간편하다. 이 땅의 노동자들, 너무 불쌍한 것이 도대체 대낮에 맘 편히 사람 만나서 차 한잔할 여유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야 겨우 수당받아 먹고사는 처지에 잔업포기하고 일찌감치 퇴근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도 챙기고 할 여유가 없다. 바다이야기 겜방 가서 땡길 시간에 그런 거 하면 되잖냐고 하실 분들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거 이상하게 쉽질 않다. 이걸 기냥 제대로 못사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거다.

 

이걸 어떻게 법제도 정비로 해결하려고 하나? 도박 자체가 문제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도박 전부를 하루 아침에 없앨 수도 없다. 현존하는 어떠한 형태의 도박이던지 간에 이를 행하는 자 전부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겠다고 엄포를 놔도, 또다시 어떠한 형태로든지 도박은 나타나게 된다. 초등학교때 책상 위해서 볼펜을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급우의 볼펜을 따먹던 "볼펜따먹기" 처럼.

 

문제는 그 정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다. 어떻게 하든 패가망신하는 사람은 나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적인 문제가 될 만큼 그 양상이 광범위하고 심각한 지경이 되도록 놔둘 것인지 아니면 일부 자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 되도록 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오는 해결책은 별 거 아니다. 첫째, 사람들 제대로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둘째, 광팔고 앉았는데 시간 죽이는 것 이외에 여가를 가질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 그리고 세 번째가 이렇게 사행성 도박행위 조장을 업으로 삼는 자들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2층엔 직업소개소, 1층엔 바다이야기 게임장이 있는 오늘날의 풍경. 사실 그 풍경이 이 문제의 심각성과 동시에 문제해결의 방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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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3 03:03 2006/08/23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