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런 식이다...

파르티잔님의 [집회 때 최루액이 나온댄다] 를 보고 '한 발 늦었군' 하면서 쓰는 글...

 

언론에는 경찰이 집회 때 최루액이 포함된 물대포를 사용하겠다는 말이 돌아다니고, 블로그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흘러 나온다. 일일이 링크를 걸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안 봐도 대충 비디오니까...

 

전경출신 또는 현직 의경인 어떤 블로거들은 시위대에 대한 비난과 '인권단체'들의 논평에 대한 비아냥으로 일관한다. 집회시위에 대해 일정한 지지를 보내는 측에서는 경찰의 반인권적 발상을 목놓아 비판한다. 양쪽 다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다. 그리고 결론은 또다시 '무탄무석 무석무탄'으로 돌아간다.

 

답답한 것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예컨대 전의경 부모들이 "우리 아들을 때리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평화시위를 요구하는 시위를 할 때도 그렇고, 도대체 이 사회에서 왜 아직 전의경제도를 없애라는 요청이 확산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경찰이 10만이고, 현재 의경, 즉 집회시위에 동원되는 의경들 말고 경찰업무를 보조하는 의경들을 없애겠다는 말이 나오는 지금, 왜 집회시위를 저지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보직인 전의경제도를 해체하자는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지 못하는 걸까?

 

'폭력시위'는 가혹한 물리력을 동원해서 진압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선 집회시위참가자들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사진이나 영상물을 들고 나온다. 다음으로 한국 전경들보다 더욱 강력한 물리력을 사용해서 집회시위를 진압하는 외국 사례를 함께 거론한다. 그래, 외국에서 그런 일 분명히 있다.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전경들이 휘두르는 방패에 찍혀 집회시위참가자들이 무참히 쓰러지는 장면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공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참여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에 의해 집회시위참가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과정, 즉 전의경들이 동원되는 절차상의 문제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는다. 얼마전 진압에 동원되는 전의경들에게 명찰을 달도록 한다는 방침이 발표되고, 이에 대해 인권보호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는 어떤 인권단체를 보면서 고소를 금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게 아니다.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행인 자신이 그런 입장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전의경들에 대해서는 짚어야 한다. 전의경들이거나 또는 그 출신이거나 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다보면 심각한 문제의식이 발생한다. 이 전의경들, 아닌 말로 무식해서 그런 생각들을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나름대로 지식을 쌓은 측면에서만 보자면 정규 중등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이고 거의 대부분이 고등교육인 대학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식해서' 그런 폭력을 자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죽봉과 쇠파이프와 화염병과 프로판 가스통 등을 들이미는 집회시위참가자들을 '폭도'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집회시위 참가자들은 그들이 믿어마지 않는 '정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사회분자'들이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하는 반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입대를 해서 훈련소를 거쳐 각 경찰서로 배속된 전의경들은 그 안에서 이러한 인식을 교육받고 현장에 투입되고, 거기서 집회시위참가자들과 부딪치고 때론 욕을 얻어먹고 때론 얻어 터지기도 하면서 자신들이 배운 내용이 진실이라고 여기게 된다. 한나 아렌트로 하여금 논문까지 쓰게 만들었던 한 나치대원의 모습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전의경들 안에서도 발견된다. 그 구조 안에서 시위대에 대한 지극한 동조의식을 가질 수 있는 전의경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들이 전역한 후에 사회생활의 쓴 맛, 단 맛을 보면 사람이 바뀔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일반적일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2년여의 교육, 그리고 '실전' 배치, 시위진압을 '풀 베기'로 표현하는, 그리고 참가한 사람들을 '~명'으로 세는 것이 아니라 '~점'이라고 세는 그들의 관행은 집회시위참가자들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몸 속에 배게 하기에 충분하다.

 

집회시위참가자에 의한 준비된 폭력도 있고, 또는 대부분의 경우 현장 상황에 따라 우발적인 폭력이 발생된다는 측면에서 시위진압의 양상이 어떠니 하는 이야기는 사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이야기로 계속 머물게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부이며, 장차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할 전의경들이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정의'에 반하는 행동으로 인식하게 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폭력경찰 물러나라"는 구호로 일관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 때,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 골때리는 전의경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의경 자원자 중 80% 이상이 집회시위 진압부대로 편성되는 이 어이없는 현실은 우리의 집회시위가 계속 '폭력'이라는, 본질과 동떨어진 사안 때문에 왜곡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일단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고 활동적인 시기에 '정의'가 아닌 것을 '정의'로 인식하게 되는 실로 반인권적인 현상에 빠지는 것을 개선하는 일도 될 것이다.

 

사람이 죽어 나간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3명의 시위참가자가 목숨을 잃었고, 태아 한명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망했고, 또 한 노동자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도대체 이런 판국에 정권차원에서 책임조차 지지 않을 수 있는 기형적인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이 와중에 '최루액'을 쓰느니 휴대용 최루가스분사기를 보급하느니 하는 이 정신나간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은 뭔 깡다구일까?

 

이 와중에 전의경들은 분명 또다른 피해자들이다. 청춘을 담보잡히고, 자신들과 함께 살아가야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인식하게 되고, 왜곡된 인식을 끝내 앞으로의 삶 속에서 계속 간직하고 살아야할 그들은 분명히 피해자들이다.

 

전의경들로 하여금 집회시위를 막는데 동원되도록 하는 이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최루액을 쓰고 싶으면 월급 제대로 받는 정규경찰들더러 쓰라고 하자. 그 많은 세금으로 얼마나 최루액 제대로 쓸 수 있는지를 한 번 보고싶다. 기동중대장이라는 작자가 애들 앞에 세워놓고 뒷전에 앉아서 "다 죽여, 책임 질께" 어쩌구 하는 거 말고, 지가 최루액 쏟아지는 물대포 호스를 들고 앞에 나와달란 말이다.

 

아, 그리고 덧붙여 "OECD 회원국" 답게 사람죽인 정권은 좀 꺼져주는 모습도 보고싶다. 집회시위 중에 사람이 이렇게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이 철면피한 정권이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 남아 지들 멋대로 떠들 수 있는 것인지 너무 어이가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8/22 23:01 2006/08/22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