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 위기가 아니었나?

새벽길님의 [민주노동당의 위기?] 에 관련된 글.

가끔 한겨레를 보면, 특히 한겨레21을 보면, 소설쟁이 연합뉴스와 어떤 면이 다를까, 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불철주야 삽질을 하는 조선일보와 참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욕을 하는 것은 좋다.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 지금 너무 욕먹는 것에 둔감해져 있다고 본다. 노무현의 측근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19세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민주노동당 역시 이런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욕 먹어 싸다.

 

대통령 옹호발언을 한 그 측근은 나름대로 대통령을 보위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발언 덕분에 그 측근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노무현을 알아 보는 혜안을 가진 인물로 승격시킨다. 교묘한 자화자찬. 그 자화자찬을 위해 민중은 졸지에 19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개화기 이전의 조선인민들로 전락한다.

 

민주노동당은? 역시 마찬가지. 입으로는 인민을 이야기하고, 아니 민중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민중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민중을 위해 철저하게 복무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바로 이런 착각이 오늘 당의 현실이다. 이 부분에서 실은 매우 아프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면 싶다. 민중을 위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위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무작정 욕을 해놓고 그 근거에 대해 한겨레21식의 허공에 뜬 이야기로 얼버무리면 듣는 사람 매우 기분 나쁘다.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도대체 그넘의 혁신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당도 문제가 있지만, 마치 그런 당을 가장 잘 위하는 척 하면서 댑다 욕만 싸질러 놓는 것 역시 문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만...

 

일단 기사 안에서 보여지는 내용 중에 몇 가지 보자. 중앙당의 리더십 부재. 맞다. 부재하다. 아예 없다. 그런데,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그 부재력, 어디서 나왔는가? 민주노동당의 리더십은 불세출의 영웅 한 두명이 나와 장악력을 보여주나? 천만에 말씀. 그건 민주노동당의 현재 지도부 선출과정을 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적어도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원 직접투표에 의해 지도부가 선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뽑힌 지도부들 보면 한 마디로 가관이다. 진짜 솔직히 개인적인 심정을 말하자면 이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왜 지도부 하겠다고 설치고 나왔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든다. 부정선거시비에 휘말리면서 당 사상 초유로 당원들이 당 관계자를 검찰고발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대표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 누가 뽑아줬나?

 

정책적 의제에 대한 그림은 그려내지 못하면서 노가다판 작업반장의 역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정책위 의장. 미군기지문제와 반미에 관련해서는 탁월한 순발력을 보여주지만 정작 정책정당으로서 어떤 정책적 구상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이 사람은 누가 뽑아줬나?

 

당 사무총장은 중소기업 경리과장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1기 지도부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던 한 최고위원은 아직도 누가 밥 떠먹여주기만 바라면서 스스로 뭘 해야할지 모른다. 더불어 지난 1기 지도부에서 같이 떠나갔던 어떤 사람은 노동부문 최고위원으로 다시 등장하려고 하고 있다. 이 사람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어 줬나?

 

비전도 철학도 없는 대통령을 뽑아 준 국민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발언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정치인의 책임을 온전하게 유권자에게 돌리려는 음모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서 이런 지도부가 나오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 사람들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 그거 정파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결과라는 것 누구나 다 안다. 권력다툼의 와중에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 헤게모니 장악한 거라면 그 정파에서 진짜 쓸만한 사람들을 지도부로 내보내야 했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자기 정파에 가면 그래도 한 자리 하면서 대빵노릇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 동네 인물이 그렇게 없나?

 

그래놓고 나중에 나오는 소리가 지방선거의 첫 번째 패인으로 "중앙당이 없었다"라고 한단다. 중앙당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다. 조만간 당산역 근방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지만, 중앙당이 왜 없냐? 아닌 말로 중앙당 탓을 하기 전에 과연 우리의 풀뿌리는 어느만큼 탄탄한지를 스스로 생각해보진 않았나?

 

지난 지방선거과정에서 가장 난처한 것은 자기 지역에서 내세울만한 공약을 제시해달라는 지역의 요청을 받을 때였다. 뭔 소린가?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어야할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중앙당에 지역에서 제시할 공약을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 황당한 것은 왜 중앙당이 고공전을 제대로 펴지 못하느냐고 힐난을 할 때이다. 고공전, 그래 더 어떻게 할까? 그넘의 고공전 한답시고 원내대표가 열우당 사표론을 이야기할 때 속으로 환장을 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런 고공전을 왜 해야 하나? 우리가 한나라당인가? 우리가 열우당인가?

 

한겨레21은 죽었다 깨나도 민주노동당 부진의 원인이 바로 오늘날 지도부를 뽑아준 특정정파의 몰지각에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바로 그들의 이해와 한겨레21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니까. 조국의 통일, 민족의 웅비를 바라마지 않으면서 반미와 친북만이 그 길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는 이 심정적 동일시가 존재하는 한, 한겨레21의 비판은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만다.

 

오픈 프라이머리와 북한문제에 대해선 새벽길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에 대해선 생략하고...

 

진보정치연구소 김윤철동지의 글을 보면서 솔직히 실망을 감출 수 없다. '교과서 좌파'라고? 김윤철동지의 글은 솔직히 한겨레21의 형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이야기하는 '행복추구권 보장운동', 그거 지금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일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란 말이다. 김윤철동지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기왕에 하고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서 '교과서 좌파'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그나마 색다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사회연대임금'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난 당직선거과정에서 한참 논의되었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일단의 동의를 보내기는 하나, 사회연대임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본가집단과 이를 위해 어떻게 대치해야 하는지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제가 논의되지 않는 '사회연대임금'은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나눠먹으라는 이야기냐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지난 당직선거에서 '사회연대임금'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욕만 퍼지게 먹었던 기억을 벌써 잊었나?

 

게다가 이 진부한 인물론이란... 새벽길님 말처럼 "이것만큼 구태의연한 것도 없지 않은가?" 인물정치타파하고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 나선 것이 민주노동당 아니었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것도 '교과서 좌파'적 발상일까?

 

당 법제실을 담당했던 김정진동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원내정치에 매몰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증거로 '과도한 입법발의'를 이야기한다. 내가 법제실에 오면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입법발의 실적, 이거 다른 정당의 눈에 띄는 의원들에 비해 결코 과도하지 않다. 오히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입법발의라는 것의 상당수는 사회인권단체, 노동단체들과의 합작 내지는 그들이 준비한 안을 발의하는 것으로서 의원실에서 직접 뭔가를 처음부터 준비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김윤철동지나 김정진동지의 이러한 주장은 일리는 있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말하려면 그 직접적인 본질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그건 바로 오늘날 민주노동당 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도부와 같은 사람들이 지도부로 나오게 되는 배경이다.

 

노동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상실한 채 오직 통일과 반미만이 '조국과 민족'의 살길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민주노동당에서의 정치활동을 할 것이 아니라 통일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해야 한다. 정히 정당활동을 하고 싶다면 깨끗하게 민족통일당이나 이와 유사한 자기정체성이 확실한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면 된다. 왜 구질구질하게 민주노동당 안에서 주제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지도부로 밀어 올려 당의 위기를 조장하나?

 

당의 "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동할당이다. 할당제라는 거, 그거 소수자의 정치참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동당 안에서 노동부분이 소수자 부문인가? 이거 붙잡고 기어이 내놓지 않으려는 민주노총.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분야별 위원회는 어떤가? 까놓고 사회주의 정당에서 청소년위원회, 청년위원회, 학생위원회가 각각 있는 이유가 뭔가? 하긴 사회주의 정당에 내부단위로 독립적 위원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지만, 이렇게 계급적 구분에 따른 위원회도 아니고, 계층적 구분에 따른 위원회도 아닌 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맥락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조직만들고 사람 딸려 허덕거리는 가운데 "위기"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렇게 따져보면 우리 안에 위기는 언제나 존재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그 위기를 돌파해나갈 용기도 방향도 없다는 거다. 관성에 무뎌진 지금의 모습으로는 백날 떠들어 봐야 당 혁신안이 기껏 인사관리 한다는 정도로 종치게 되는 거다. 민중에게 비전을 뭔 수로 보여주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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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5 05:40 2006/08/15 0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