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에 미친 아버지

간혹 바빠서 블로그 업뎃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보다는 더 많게 별로 할 말이, 아니 별로 쓸 말이 없어서 블로그 업뎃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딱 그모양이었다. 머리는 아프고 밤샘작업 뒤끝이라 눈도 가물거리고 피곤하고...

 

그러나~!

 

이렇게 컨디션이 바닥을 굴러가는 날에도 그분은 실망을 주시지 않는다. 언제나 글감을 던져주시고 행인으로 하여금 뭔가 깊이 사색하게 하며 그 결과 행인의 블로그에 또 하나의 글이 올라가도록 영감을 던진다. 그분이 '지름신'이냐고? 천만에, 그분은 종교집단의 우상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시는 이 땅의 정치인이시다. 국가보안법 철폐하면 나라가 다 무너진다고 큰소리 치시다가 뒷목을 부여잡고 단상에서 엎어져 버리셨던 바로 그분, 갑사마, 김용갑 의원이시다~!

 

노무현이 평택을 피바다로 만들어놓고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해 엄단할 것을 주문하면서 날라간 몽골. 그 광대한 초원에 우뚝 서서 노무현은 북한에 많이 주겠다고 선언했다. 뭘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발언이 우리 갑사마의 귀를 때리고 국가보안법으로 굳어졌던 뒷목에 피가 돌게 만들었나보다. 그리하여 이 불멸의 갑사마, 벌떡 일어나 노무현을 향해 "화투판에 미쳐서 집문서까지 들고 나가는 아버지"라고 힘찬 욕지거리 한무더기를 투척하셨다.

 

일단 이분은 한말씀 한말씀을 하셔도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 노무현을 "아버지"에 비유한 모습을 보라. 아직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유구한 전통적 가부장제 사고방식을 고수하시며 대통령을 아버지라 표현하시는 것은 즉 아직도 대통령을 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충정에서이다. 사실 행인이라면 대통령을 머슴이라고 불충스럽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나 예의바르고 점잖으신가, 우리 갑사마. 예의가 바르신 분이긴 하나 너무 혼미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너 미쳤냐?"는 싸가지 없는 말씀을 하긴 했으나 이 부분은 넘어간다. 어쨌든 말 한마디에서도 이분이 수구보수의 핵심 지도인물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분, 피아(彼我)의 구별이 너무도 명확하신 분이다. '북한'이라는 '적'에 대한 이 꺼질줄 모르는 적개심! 그리하여 이 철전지 원수 '북한괴뢰도당'에게 뭔지 모르지만 많이 주겠다고 하자 "무조건적인 퍼주기"를 염려하며 "화투판에 미쳐서 집문서까지 들고" 나가나며 언성을 높인다. 이분을 보면 잡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분은 그동안 노무현이 미국에다 "무조건적인 퍼주기"하는 동안 찍소리도 하지 않고 퍼질러져 있었다. FTA며, 전략적 유연성이며, 평택미군기지 이전 등등에서 보여진 노무현의 뒤끝 없는 알아서 퍼주기에 대해 갑사마께선 아무말 없이 환한 미소만 보내주고 있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역만리도 멀다 않고 군대까지 보내준 은인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다가는 간 쓸개 다 빼주더라도 우리 갑사마,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한편, 영명한 정치인이신 우리 갑사마, 이번 노무현의 발언이 "북풍을 이용한 새로운 대선전략"임을 즉각 간파하시고 만다. "우리 경제가 무너지더라도 대선만 이기면 그만이라는 발상"임을 만천하에 폭로해버리고 마시는 거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억력이 성추행사건의 경우 두 달, 공천비리사건의 경우 2주 정도에 그칠 뿐이며 초대형 사고가 터지더라도 불과 1년을 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 갑사마에게는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러므로 용감무쌍한 갑사마, 앞으로 1년 반이나 남은 대선을 위해 노무현이 북풍을 조성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시고 있는 거다.

 

"다이나믹 코리아"에서는 실상 내일 아침에 뭔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차피 노무현의 발언이라는 거, 북한과 사전 교감도 없이 거의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거라서 당장 뭔 효과가 있겠는가라는 회의론도 팽배하다. 게다가 지방선거 코앞에 남겨두고 한 이 발언이 정당지지도나 정치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괜한 발언으로 열우당 표깎아 먹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여당쪽에서 나오기도 하거니와 더 나가서는 대통령이 몽골가서 뭔 소리를 하던 뭘 쌈싸먹던 간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현상이 우려가 되기도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어디 우리 갑사마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시면서 오바질 하시던가? 그분의 오바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는 YS이후 가장 알맹이 없이 사람 웃기는 장점을 가진 분이 이 분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에게 조금 더 강력한 발언을 요구하고 싶다. 좀 더 쌔끈하고 쌕쒸한 발언을 하면 우리 갑사마, 말로만 오바질이 아니라 또 뒷목 잡고 나뒹구는 스펙터클한 액션을 보여주실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온 국민들이 한 번 더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다면 까짓 정치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아무튼 가끔 구정물을 시원하게 들이키시는 퍼포먼스로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만들어주시거나 단상에서 뒷목을 부여잡고 바닥 뒹굴기 연기를 해주시는 이분께서 또 언제 어떤 활극으로 이 일찍 뜨거워진 대지를 식혀주실 것인지 기대가 만빵이다.

 

p.s. 갑사마가 벌렁 쓰러질 때, 사실은 뒷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이마를 잡고 있었다. 본 글에서는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손으로 이마가 아니라 뒷목을 잡았다고 썼다. 실제 상황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들어가서 확인하시라.

 

p.s. 2. 감격스럽게도 갑사마를 직접 뵌 일이 있는데, 마침 그 때가 국가보안법 철폐 국회 앞 1인시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단상앞 엎어지기 액션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갑사마가 그 앞을 지나가기에 아, 이분이 또 대로상에서 거품물고 기절해버리시겠구나 했는데, 왠걸? 멀쩡하게 잘 지나가더라. 그래서 몸자보를 두른 채 실실 따라갔더랬는데, 모른척 하면서 계속 딴청만 피웠다. 그 때 가까이서 갑사마를 알현했는데, 이 분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계셨다. 피부는 또 어찌나 고우셨던지... 절대 국가보안법 따위로 마빡 잡고 뒹굴 분이 아니셨던 것이다. 그 때 깨달았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도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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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1 16:30 2006/05/11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