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경찰 해체하라

여의도는 항상 전경들로 넘쳐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긴칼 옆에 차고 시름하던 충무공의 후예들임을 자랑하듯이 이들은 항상 긴 곤봉 옆에 차고 밤낮으로 여의도를 돌아다닌다. 가끔은 보란듯이 시위진압훈련을 노상에서 진행하기도 하고, 닭장차 뒤에서 선임들이 후임들을 갈구거나 얼차려를 주기도 한다. 지나다니는 여성들을 보며 지들끼리 희희덕 거리기도 하고, 때론 근처 노점상에서 뜨신 오뎅 국물을 마시기도 한다.

 

전투가 시작되면 이들은 긴장한다. 그리고 싸운다. 왜 싸우는지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고 시위대에게 전열이 뚫리거나 흐트러지면 내무반 침상의 편한 밤은 꿈이 되버릴 것이다. 개중에는 진압의 전과를 자랑삼아 자기 미니홈피에 올리는 녀석들도 있고, 거기에 그거 밖에 못하느냐는 리플을 다는 녀석들도 있다. 방패에 1001, 1002, 1003 숫자 씌어있는 전경들을 보면 이가 갈린다.

 

그들의 곤봉과 방패에 두 명의 농민이 사망했다. 세상이 황우석, 노성일의 진실게임으로 시끌벅적한 동안 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이 속출한다. 그러나 오늘도 여의도에는 곤봉찬 전경들이 돌아다닌다. 언제 누구의 머리가 깨질지 모르는 날들은 여전히 계속된다.

 

한쪽에서 강경진압에 대한 분노를 표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왜 폭력시위를 하느냐, 폭력시위한 주제에 동생같은 전경들을 살인자로 몰아부치지 말라고 항의한다. 외국같으면 더 잔인하게 집회시위 진압한다고 엄포를 놓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 어느 나라를 말하는 건지...

 

민주화된 나라에서 군인이 시위진압하는 거 본 적 있는 분? 사실 문제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군인이 시위진압을 하는 거, 우리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80년 광주. 공수부대원들이 동원되어 시위진압을 했다. 그 참상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지만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들 알고 계실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때까지 군인이 시위진압에 심심찮게 동원되었던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다시 질문. 군인이 집회시위를 진압하는 나라가 민주화된 나라인가?

 

외국이야기 참 많이들 한다. 그러나, 민주화된 국가에서 군인이 시위진압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들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전투경찰 중 절대 다수가 군복무를 위해 징집된 청년들이 전투경찰로 배속되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그들을 군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상징이 주는 혼란인가? 그들이 경찰소속차량(닭장차)를 타고 나타나 경찰들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까 그들을 경찰의 일부라고 생각들 하는 건가?

 

병역법에는 국방부장관이 경찰청 등으로부터 소요인원 배정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현역병으로 입영하여 소정의 군사교육을 마친 사람중에서 소요인원을 전환복무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4조 제2항). 이 규정에 따라 군사교육 즉 훈련소를 퇴소한 현역병 중 일부를 소속을 전환시켜 전투경찰로 배속하는 것이다(전투경찰대설치법 제3조). 이들이 '경찰'로 인정받으려면 위의 과정이 뒤바뀌어 있어야 한다. 즉, 전투경찰에 응시하고 여기서 뽑힌 전투경찰들의 기초훈련과 실무능력 함양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 군대에 훈련을 위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들은 경찰로 뽑힌 사람들이 아니라 군대에 징집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을 자꾸 '경찰'로 착각하는 것일까?

 

전투경찰의 존재이유는 "간첩(무장공비를 포함한다)의 침투거부·포착·섬멸 기타의 대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이다(전투경찰대설치법 제1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구절이 치안업무의 보조인데, 원래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즉 1970년에는 이 구절이 없었다. 그러다가 1975년 이 법이 1차 개정되는 과정에서 "경비임무"가 전경의 임무로 추가되었고, 이 구절이 1980년에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로 바뀌었다.

 

개정과정을 보면 벌써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1975년, 유신정권의 폭압이 극한에 이를 때이다.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고 박정희가 정권안보를 위해 온갖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긴급조치를 내릴 때이다. 1980년은 어떤가? 공수부대 동원해서 광주라는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다. 이러한 시기적 상황에서 전투경찰은 "경비임무"까지 맡게 되었고, 곧 "치안업무 보조"라는 광범위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군인이 민간의 "경비임무"를 담당하고 "치안업무"를 하는 수행하는 나라. 이게 지금 제대로 된 나라라고 보이는가? 기왕에 업무가 전환되었으니 이 사람들을 군인으로 보면 안 되고 경찰로 보는 것이 맡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 하실려면 전투경찰대설치법에 근거하여 이들의 복무전환이 어떻게 순환되는지를 본 다음에 그런 말씀 해야한다. 복무전환의 허가는 국방부 장관이 하게 되어 있다. 경찰청장은 요청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전경의 복무기간은 현역병 복무기간으로 간주된다. 또한 전역 후 현역제대한 군인과 마찬가지로 예비역에 편입된다. 이거 쉽게 이야기하자면 경찰이 필요에 의해 군인을 잠시(라고는 하지만 복무기간 내내) 파견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된다.

 

경찰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이다(경찰법 제3조). 본질적으로 경찰이라는 공무원의 임무는 집회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때려 죽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군인은? 적을 만나면 이를 "섬멸"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이다. 군인에게 네 앞에 있는 자가 적이다라고 했을 경우 이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적의 항복을 받아내던지 아니면 저항하는 적을 무력으로 진압하던지 그것이 용이치 않을 때는 죽이는 것이 군인의 임무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의 전투경찰대를 계속 운영하는 이상, 집회시위의 진압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이 난무하고 사망사건이 일어나는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외국사례 말씀하시는 분들, 그 외국에서 시위진압하는 경찰들 월급이 얼만지 그거부터 좀 밝혀 주시라. 그들은 시위진압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경찰들이 어떻게 처분되는지 그것도 좀 밝혀 주시라. 왜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 지들 편한대로 외국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가?

 

전투경찰 해체하라. 그것이 정답이다. 인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밝히기 위해 집회 시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억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의사표현을 막기 위해 군인을 동원하는 나라는 이미 제정신 가진 나라가 아니다. 시위 진압하려면 제대로 월급받고 다니는 경찰공무원들이 정복 입고 나와서 하길 바란다. 싼 값에 청년들 군대에서 빼내 사람죽이는 살인기계로 만드는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거 하기 싫으면 아예 계엄령 선포하고 군인들 동원해서 시위진압을 하던가. 자신들의 본질을 아예 드러내놓고 설치던가 하란 말이다. 참여정부니 하는 개 헛소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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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8 17:20 2005/12/18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