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은 종교의 다른 이름일 뿐

얼마나 더 이 주제로 논의가 이루어질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서 언급해야할 부분이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근거없이 나도는 소문들, 내지는 음모론들이다. 써프라이즈라는 동네에서 현재 황우석 사건과 관련한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는데, 재미있는 현상은 황우석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쪽에서 예외 없이 이상야릇한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섀튼과 미국 정부가 황우석의 연구를 좌초시키고 그 이후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다는 것. 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섀튼의 입장에서 그 난리 굿을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오히려 섀튼은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학자적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황우석과의 관련성을 끊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황우석에게 딴지를 걸었다고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좌파들이 조직적으로 황우석을 침몰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완전 개코메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황우석의 연구와 관련되어 제기된 문제들을 보면 단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그게 정말인가?" 그냥 이거였다. "정말 그토록 높은 수율을 올렸는가?"가 2005년도 논문에 대한 질문이었고, "정말 줄기세포가 있는 건가?"라는 질문은 의혹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질문이었다. "정말 황우석이 그렇게 많은 정부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되는 건가?"라는 것은 예전부터 나왔던 질문이었고, "정말 줄기세포 이식하면 강원래가 휠체어 박차고 일어나 댄스가수로 복귀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이었던 거다.
보라, 여기 무슨 좌파고 우파고 간의 문제가 껴 있나? 물론 논의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주장, 예를 들자면 생명윤리문제, 여성인권문제, 재원의 평등분배문제, 언론의 취재윤리 등이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듭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이 문제들을 거론하면 좌파인가? 생명윤리문제와 관련하여 난자를 실험에 이용하는 것에 극력 반대하는 집단은 다름 아닌 종교계인데, 이들이 좌파인가? 여성인권문제가 좌파의 전유물인가? 재원의 평등분배가 좌파의 이데올로기 공세인가?
황우석이 줄기세포 샘플 중 일부가 이동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증발되었다는 말을 하자, 어느 네티즌이 이런 글을 올렸다. "좌파들이 숨겼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지금 퍼지는 음모론 중에는 거의 이런 식의 허무맹랑한 주장도 눈에 띈다. 그것도 아주 자주.
노성일이 기자회견을 하고 나자 일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황우석이 혼자 뜨니까 노성일이 삐져서 딴지 걸려고 하는 거라고. 행인의 전 글에 대해 어떤 분이 이런 의견을 주셨다. 그러나 노성일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이 주장 역시 노성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그닥 신빙성이 없다.
기본적으로 노성일이라는 사람은 사업가다. 그것도 매우 수완이 좋은 사업가다. 이 난리 북새통 과정에도 노성일은 성체줄기세포배양에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계 M사와 미즈메디 간의 공동연구를 발표했다. 이거 가지고도 거 봐라, 미국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거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주장 하시는 분들은 사업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부터 좀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사업하는 사람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지구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곳에 핵폭탄이 터녔다고 해도 돈만 된다면 쫓아가고야 만다. 조중훈 회장이었나?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군용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가던 중 해안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을 보면서 저게 다 돈이다라고 생각했단다. 그게 사업하는 사람들의 생리다. 그 정글 안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건 말건 간에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성일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황우석과 한 배에 타고 있는 한 돈 새는 소리가 귓전에 씽씽 울린다. 그리고 잘못하면 앞으로 들어올 돈도 못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줄기세포 샘플을 지가 잘못 관리해서 없어졌건 누가 잘못해서 어찌되었건 간에 그건 과정상의 문제이고, 결과적으로 보면 제 손에 들어올 떡도 놓쳐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거다.
노성일 같은 사업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우선적으로 이윤이 먼저지 지 이름이 논문에 올라가고 아니고 신문에 제 얼굴이 팔리고 안팔리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에 이름 팔리기 좋아하는 사업가 치고 끝이 좋은 사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될 수 있는 한 본인은 숨기고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사업가가 나중에 기업에 문제가 생겨도 요리조리 잘 빠져다닐 수 있다. 그게 재산 건사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그런 사업가인 노성일이 황우석은 뜨는데 자기는 안 알아준다고 삐져서 이런 사단을 벌였다는 것은 대단히 단편적인 판단일 뿐이다. 의사이자 학자인 사람이 어떻게 한솥밥을 먹던 동료의 등짝에 칼을 꼽는가라고 분노하는 많은 분들은 노성일이 의사이자 학자이기 이전에 사업가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섀튼이나 노성일이나 판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 지 살길 찾기 위해 잽싸게 발을 뺐고, 발 빼는 과정에서 적어도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황우석의 책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줄기세포가 있냐 없냐라던가 이것을 만들기 위한 메커니즘의 문제가 뭐냐는 등의 이야기는 내 영역 밖의 이야기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부쩍 BT에 대한 상식이 늘기는 했으나(줄기세포란 말을 이렇게 뇌리에 깊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계기가 언제 있었나?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을 과거에 알고나 있었나?) 그건 딱 고 수준일 뿐 내 의견을 더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PD수첩이 처음 보도를 하였을 때 나타났던 현상, 즉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MBC 앞에 집결하여 촛불집회를 하고, PD수첩과의 싸움을 성전으로 칭하고, 자발적 난자제공자를 모집하고, 그렇게 해서 1000여명의 난자제공희망자를 만들어 내고, 이들을 성녀라고 부르고, 황우석의 연구실에 진달래꽃 깔면서 사뿐히 즈려밟고 오시라고 축원을 하고, 사이버테러 사이버집회를 감행하고, 광고 끊으라고 기업들에게 압력행사하고... 이 현상들 가만히 살펴보면 웬만한 사이비 종교집단이 교세확장을 위해 하는 방식 그대로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코디네이션을 했을까? 황우석 본인? 노성일? 윤태일? 황금박쥐? 박기영? 노무현?
그런데 상황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황우석과 노성일이 2시간 차이로 기자회견을 가지고 나자, 전부터 꼼지락 꼼지락 하던 각종 음모론이 계속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그 내용들을 보며 음모론적 수준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어떤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거나 미국 정부의 개입, 국제적인 검은 커넥션 등의 이야기가 동원된다. 이정도 수준이 되면 이제 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일 뿐이고, 소설일 뿐이며, 어느 쪽이 집단화를 잘 이루었나로 판단되는 힘의 대립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이제 대한민국 검찰이 나서도 풀지 못하는 괴기스러운 사태로 전환되며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급기야 FBI 특수요원 멀더와 스컬리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좀 더 이성을 가지고 밝혀진 사실에 대해 평가하고 밝혀야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며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할 때이다. PD수첩 파동 과정에서 있었던 집단적인 린치는 한 번으로 족하다. 그 난리 버거지를 그만 홀딱 잊어버리고 황우석 박사님 돌아오시길 기다리며 켰던 촛불자리에 모락모록 김 피어오르는 음모론을 대체해봐야 결과는 마찬가지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픔을 잊어버려서야 되겠는가
 
덧 : 노성일의 변절 내지는 뒤통수 후리기에 분노하시는 분들, 그런 분노를 사람 때려죽이고도 잘했다고 큰소리 치는 정부나 온갖 파렴치한 짓을 하면서도 떵떵거리고 사는 삼성일가족 같은 분들에게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덧2 : 아무리 생각해봐도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너무 엉성할 뿐만 아니라 그 태도 역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식이었다. 이건 60억 인류의 뒤통수를 갈긴 사람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의도적 실수"? 이런 말도 있나? 이걸 법률용어로 풀어보자면 "고의적 과실"인데, 이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잔치일까? 하나면 어떻고 두 개면 어떻냐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2005년 논문 낸 이유가 뭔가? 이동하는 중간에 샘플이 없어져? 누군가 가져갔다고? 연구책임자가 할 소린가? 이것 저것 할 말은 많은데, 해명은 커녕 의혹만 더 만든 기자회견이었다.
덧3 : 검증하자니까 재현한다고? 좀 더 기다려 달라고? 이걸 다시 풀어보면 이런 거다. 로또를 한 번 맞았는데 복권을 그만 잊어버렸거덩. 그래서 다시 로또복권을 살테니까 당첨될 때까지 기다려줘... 장난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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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7 14:45 2005/12/17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