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차세대 동력사업 BT는 일단 한 걸음 쉬어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문제제기를 하고 논리를 다툴 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을까 고민했는데, 이제와서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허무할 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인데 자꾸만 화가 난다. 분노가 인다. 왜?

 

첫째, 황우석 연구팀의 발표를 보고 난치병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배신감과 허탈함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포털사이트 각 기사 밑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 아직도 황우석 연구팀의 좌초가 외부세력의 조직적인 황우석죽이기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격노한 주장, 어쩔 수가 없는 거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결코 이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건 마치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죽어 송장이 되었다는 뉴스를 받아들일 수 없는 예배당 신도의 심정과 같은 거니까. 그리하여 아직은 이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MBC에 비난을 퍼붓는다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터무니 없는 확신을 심어주고 마치 곧 누워있던 모든 자들이 일어나며 이 땅에 엄청난 "국익"을 안겨줄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의 성과를 과장하고 포장했던 사람들, 그리고 진실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그저 경마중계하듯이 써갈기고 내뱉으면서 환상을 유포했던 언론들, 이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둘째, 이번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군의 과학자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 말마따나 월화수목금금금하면서 월 40~70만원의 연구비에 만족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구에 몰두했던 이 땅의 수많은 과학자들이었다. 황우석 연구팀 하나에 올 한해 투자된 돈이 도대체 몇 백억인가? 그런데, 이 젊은 과학자들은 어째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어야 하는가?

 

올 초에 황우석 팀에게 엄청난 연구비가 지원된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정부의 지원이 대단히 불합리하며 동시에 불공평하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땅에 과학자가 황우석 연구팀에 있는 그 몇 명에 불과한가? 겉으로만 BT니 IT니 강국이 어쩌구 하지만 그 내막은 이렇게 연구가 아닌 정치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허약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문제제기는 이내 엄청난 욕설 속에 묻혀버렸다. 그 때도 이번처럼 그 문제제기는 "국익"을 배반하는 문제제기로 비난받았다.

 

애초부터 정도를 걸었으면 오늘날의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젊고 우수한 과학자들이 맘 편하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데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더 많은 분야에서 더 훌륭한 결과들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의 재원이 한 사람의 명성 아래 독식되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으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는 짓을 해댔다. 그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질 것인가?

 

셋째, 황우석 박사가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이건 두 번째 분노와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인데, 황우석 박사가 그토록 조속하면서도 명백한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 땅의 환경, 이 땅의 냄비근성은 황우석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저지르도록 조장한 것이다.

 

여론의 영향이던 스스로의 정치력이던 간에 황우석은 어느 순간 대중의 영웅이 되었고 한국 과학의 심벌이 되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다른 과학자들이 굶어죽건 말건 상관없이 엄청난 금액의 지원까지 제공했다. 이 상황에서 황우석이라는 한 개인은 어떤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미 그의 입장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자전거 꼴이 나고 말았다. 그는 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가 잘 달리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웅이 된 그는 계속 영웅이어야 했고, 그가 영웅이기를 포기하는 순간 그와 함께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운명 역시 나락으로 빠지게 되고 만다. 황우석의 심정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황우석 박사, 언젠가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과학적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렇게 영 엉뚱한 방법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황우석 박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해야한다. 그의 연구가 적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는 또 다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과정이 무시되고 결과만이 지상목표가 되버린 세상. 나는 혹시 또 다른 황우석이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황우석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자꾸만 화가 난다. 너무나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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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5 23:59 2005/12/15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