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

"APEC 시위 당시 막아놓았던 컨테이너가 무너지는 순간 그 위에 서있던 전투경찰들이 안다치려고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누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 죽는가 싶어 정말 가슴 많이 졸이며 지켜봤다" - 21일 APEC 정상회의 유공자 오찬

 

"돌아가신 농민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현장에서 대응한 전경도 우리의 자식" - 19일 수석·보좌관회의

 

황우석관련 PD수첩의 취재태도에 "짜증"까지 느꼈던 노무현, 그동안 전용철씨 사망과 관련하여 입을 다물고 있다가 홍덕표씨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전투경찰도 우리 자식이다. 맞다. 그들이 다쳐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들을 왜 시위진압하라고 내보냈나? 니들이 직접 농민들 만났으면 "자식"같은 전경이 농민들에게 맞을 이유도 없고, 농민들이 "자식"같은 전경에게 맞아 죽을 일도 없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라면 앞으로 집회 시위 있을 때 상대방이 직접 나오도록 해라. 농민집회를 하면 정부관계자들이 나가고 삼성반대 집회하면 이건희가 나오고. 그렇게 하도록 하자. 우리 "자식"같은 전경 다칠 이유가 없다.

 

전경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아버지" 노무현이 입으로만 자식사랑을 외치면서 골방에 들어 앉아 게시판에 답글이나 달고 앉아 있는 한 우리 "자식"들 계속 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아버지에 이런 "자식"이라면 그 집안 볼 것도 없이 콩가루 집구석이다. 나라가 이 집구석하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놈의 나라도 볼짱 다 본 콩가루 나라다. 이걸 지금 부모와 자식관계로 해석하고 적용해야하나?

 

컨테이너가 무너지는 순간, 노무현은 "사람 죽는가 싶어 정말 가슴 많이 졸이며 지켜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반 APEC과 이번 홍콩 반 WTO 집회를 이렇게 총평한다.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세계화가 뭔데? 우리 농민들이 그냥 우리 식대로 먹고 살자, 외국과 농산물 교역 하지 말자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나? 대책도 없이 쌀까지 개방해버리는 통에 마지막 기댈 곳까지 없어진 농민들, 결국 무논에 물대줄 시간도 없이 아스팔트농사지을려고 여의도로 왔다. 그리고 거기서 "자식"같은 전경들에게 맞아 죽었다. 이 상황을 노무현, "가슴 많이 졸이며" 지켜봤나? 그래서 전용철씨가 사망하고서도 입 꾹 다물고 있다가 홍덕표씨마저 죽자 이제와서 "세계화" 운운하고 자빠졌나? 유감이라고?

 

적어도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이라는 직을 수행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폭력이 무엇인지, 세계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 철학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폭력이 왜 "자식"같은 전경과 시위대 간에 발생하고 있는지, 진정 무서운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고찰하지 않는다. 그저 "자식"같은 전경을 생각하고 위로해주는 척함으로써 자신의 자애로움을 과시하고, "폭력"이라는 용어의 이면은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 경쟁의 강화, 불평등의 심화, 제로썸을 향한 투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고, 그저 하는 소리가 "대세"다. 세계화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안들을 검토하기 보다는 일단 "대세"를 인정한 후 생각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농민은 개방으로 죽어가고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한다.

 

힘의 대립관계와 그 내면의 역동성을 가족관계로 전환시켜 사고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순박한" 발상으로 인해 새롭게 구성되는 사회유기체론. 대세순응론. 역사의 흐름은 바꿀 수가 없다고? 세계화가 역사의 순방향인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세계화는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라 역사를 18세기로 돌려놓는 반동이다. 그 반동의 물결 속에서 농민이 죽고 전경이 다치고 있다.

 

그 입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유치한 말이 튀어나올 것인지 답답하다. 이 꼴을 앞으로 2년이나 더 봐야한다는 것도 이젠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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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2 08:45 2005/12/22 0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