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널뛰기 해본 사람은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균형잡기도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호흡이 기가 막히게 맞아야 한다.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며, 그 훈련의 결과 마치 꽃송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점프가 가능해진다. 한복 곱게 입은 처자들이 한번은 이쪽, 또 한번은 저쪽에서 솟구치는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진짜 꽃송이들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널뛰기 (작자미상)

숙달이 되면 사람을 꽃송이처럼 만드는 이 널뛰기가 숙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 되기 딱 좋은 운동이다. 높이 뛰는데 신경을 쓰다보면 타이밍이 맞질 않고, 타이밍에 신경쓰다보면 몸이 굳어 뛰어오르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꽈당 넘어지면 상당히 쪽팔린다. 주변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몸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해야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그런데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널뛰기 한다"는 표현을 쓴다. 줏대 없이 오락가락 하는 인간들에게 흔히 쓰이는 말이다. 또는 촐싹거리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가리키기도 한다. 연원이 되는 속담은 "미친X 널뛰기 하듯"이라고 한다(X자 안에는 원하는 말을 넣어보세요~. 예를 들어 웬수같은 직장 상사 이름을 넣어보시면 잼있슴돠~ㅋㅋ).

 

요즘 이렇게 널뛰기 하는 인간들 여럿 본다. 대표적으로 열우당.

처음부터 당론도 없이 우왕좌왕 -> 노무현의 한마디, "낡은 유물은 박물관으로" -> 폐지당론 -> 반발봉착, 당내 혼선으로 인해 우왕좌왕 -> 4가지 대안 제시 -> 형법 일부조항 개정으로 당론 결정 -> 대체입법도 가능하다는 발언(2004.10.19)

이런 현상을 보고 "널뛰기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속담적용의 실례를 이렇게 확실하게 발견하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다.

 

이건 별로 아름답지 못한 널뛰기... 열우당, 쥐가 되려나 고양이가 되려나...

 

문제는 이 열우당의 널뛰기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대가 그 예이다. 열우당의 움직임 따라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인다. 국보법 완전폐지를 주장하던 그들이 이제는 역사적 상징성을 운운하면서 열우당 안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시민단체 중의 하나에서 수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모씨 역시 그 현란한 언변을 동원하면서 열우당 안이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한 안임을 역설한다. 사실 행인은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얼마나 싸웠는지 알지 못한다.

 

열우당의 안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룬다. 시간도 없고, 사실 그들이 내놓은 형법개정안이라던가 대체입법안이라는 것은 들여다볼 수록 부아가 치밀어서 팽개쳐버리고 싶을 정도니까. 그러나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떠나서 이토록 자기정권의 안녕만을 생각하는 열우당을 '개혁'정당이라고 부를 근거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싶다. 뭔 놈의 개혁이 그래 대통령 눈치나 보고 있다가 결정이 되고, 지들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천차만별 엇갈려 좌충우돌하고 있나? 하긴 지들은 좌충우돌이 아니라 좌고우면이라더라... 말은 참 뻔뻔하게 잘해요...

 

거기다가 열우당의 이러한 좌충우돌에 계속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고 있는 국민연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체입법안을 열우당이 다시 논의하고 당론으로 가져가면 그 때는 대체입법안을 따를 건가? 역사적 상징성 운운하면서? 지금 이게 뭐하자는 수작인지 알 수가 없다. 제 역할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정당, 즉 열우당이 우왕좌왕 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원래 태생 자체가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노무현 1인의 이미지메이킹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던 자들의 두뇌 속에 거창한 개혁프로그램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순박함은 이제 약발을 다했다. 믿을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빈 두개골을 머리라고 달고 다니는 열우당 의원들을 제대로 이끌려면 사회인권단체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력하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꾸 현실론에 치우쳐서 어떻게든 "역사적 상징성" 정도 얻어나가는 방식으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임하려면 차라리 그냥 현재의 국가보안법을 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형법 보완이 되면 내년 회기에는 형법 개정안 올릴 건가? 대체입법 되면 그 때는 대체입법 철폐투쟁 하는 건가? 이게 뭐하자는 건가?

 

민주노동당 역시 마찬가지다. 10명 의원으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거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있어서도 힘겹게 싸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사회인권단체를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과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가는 것과는 아예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이 현재의 당론이 가장 원칙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여기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열우당은 우왕좌왕 하고, 사회인권단체들은 여기 따라서 좌충우돌 하는데, 민주노동당은 이 사회인권단체들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고 있어서는 결코 국가보안법 폐지논의는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널뛰기를 해도 좀 제대로 할 일이다. 호흡도 맞지 않는 널뛰기 하다가는 어느 한쪽이든 아니면 두쪽 다든 엎어지고 넘어지고, 코깨지고 다리 부러지고, 게다가 주변의 구경꾼들에게 비웃음 사기 딱 알맞다. 꽃송이처럼 하늘로 비상하는 그런 널뛰기 좀 해봤으면 좋겠다. 좌파고 우파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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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9 15:21 2004/10/19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