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왠만하면 그냥 넘어갈라고 했다. 원래 경제쪽은 문외한일 뿐만 아니라 일단 공식 또는 그래프와 도표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빡에 쥐가 오르는 행인에게는 경제지표 어쩌구 하는 이야기만 들려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증상이 있다. 해서, 이번에 목하 온 신문천지를 도배질한 국가경쟁력, 이 건에 대해서만큼은 모른척 후딱 지나갈라고 했다.

 

근데, 오늘 어떤 넘이 또 그 국가경쟁력 들먹이면서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난리도 아니다. 당장 대한민국호의 경제는 거대한 해일에 밀려 난파당할 위기에 처해있는듯 했다. 물론 먹고살기 허벌나게 어려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거 모르는 사람 이 남한 땅에 별로 없을 것이다.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는 넘들은 천지태배기지만서도...

 

아무튼지간에 뿔따구가 나는 것은 정말 그렇게 장삼이사 전부가 튀어나와 완전 망한 것처럼 설레발이를 칠 정도로 떨어졌다는 국가경쟁력이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신문에 나온 기사와 그래프를 보면서 안돌아가는 짱구를 굴려봤다. 실컷 뒤벼본 결과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이거다. 쥐뿔 암 것도 아니잖어??



일단 이거떨이 뭔 소릴 하는지 함 보기나 하자.

국가경쟁력 순위 (c) 세계일보

이 표에서 보듯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세계 29위란다. 그냥 29위였으면 이게 별로 뉴스거리도 되지 않았겠지만 이 순위가 작년에 비해 11단계나 추락한 순위라는 것이 언론을 뒤집어 놓은 원인 되겠다.

역쉬 친절한 동아일보. 아주 이쁘게 그려놨다. (c) 동아일보

이 어찌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소냐? 전 세계에서 당당 20위 권 안에 순위를 올렸던 일이 불과 한 해 전인데, 고작 1년을 못 버티고 11위나 떨어져 내렸으니 국가경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온갖 애국언론들이 호들갑을 떨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수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봤더니, 기본적으로 해당국 기업인들에게 설문을 실시해서 얻은 의견조사결과가 결정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란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부터 국가경쟁력은 경제학적 분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적, 사회학적 분석을 요하는 문제로 전환된다. 그 결과 행인이 이빨을 깔 부분이 생겨나게 된다.

이빨을 원활하게 까기 위해 다음의 그래프를 보자.

역쉬 이것도 동아일보 작품이다 (c) 동아일보

거시경제환경지수라는 것이 있단다. 뭔진 몰라도 저 지수를 결정하는 핵심 포인트는 경기후퇴전망이나 신용접근의 곤란 등이 그 내용이라고 한다. 이게 작년에는 23위였는데 올해 35위가 되었다. 은행건전성 77위, 입법기관 효율성 81위 등도 주목할만한 수치다. 또 주목할 부분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의 용이성이 99위, 모성보호관련법률 여성고용영향이 102위로 지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째 상당히 이상하지 않은가?

낮은 수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의 항목을 눈여겨 보자. 입법기관의 효율성부터 따져볼까? 재벌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치하는 넘덜이 다른 문제가지고 당파싸움하지 말고 경제살리기나 신경쓰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넘의 '좌파'정권이 하는 짓이라고는 국가보안법폐지니 과거사청산이니 하면서 경제살리기와는 '하등 관련없는' 짓거리나 하고 있었다. 기업하는 사람들 성질날만한 사유다. 그러니 기업인들이 점수를 후하게 줬겠는가?

외국인노동자고용의 용이성이나 모성보호관련법률이 여성고용에 끼치는 영향이 현저하게 낮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왜 이런 현상이 나왔는지는 이 항목의 내용을 뒤집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핍박을 받고 있는 현실조차도 성이 차지 않는 것이다. 그 값싸고 노예처럼 실컷 부려먹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뻔히 쳐다보면서도 부려먹기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것이 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인게다.

더구나 그 빌어먹을 모성보호관련법률이라는 것 때문에 이주노동자들만큼이나 싸게 고용하면서 저임금 고강도 단순노동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영 안타까운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나 여성노동자들을 지금보다 쉽게 부릴 수 있다면 힘 좀 쓴다고 뻑하면 대드는 한국남성노동자들 상당수를 산업예비군으로 전락시키면서 보다 더 많은 이윤을 확실하게 추구할 수 있을 것이 뻔한데 그거 못한다고 심통이 난거다.

기업인들은 싼 노동력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심통을 이런 식으로 부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들 자화자찬에는 인색하지 않다. 경쟁력 향상 노력은 24위, 기업 경쟁력도 24위에 랭크되어 있다. 기술력은 9위란다. 기업의 연구개발지원은 21위를 마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기업의 노력은 세계 수위권을 다투고 있는데, 노동유연화정책의 부재, 정치의 비효율성, 기업활동규제 등의 문제로 인해 남한의 경쟁력이 급락했다고 우리 기업인 제위는 판단하고 있다는 거다.

기업인들이 느끼는 인식과 일반이 느끼는 인식은 이렇게 천지차이가 난다. 여성노동자들,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점점 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모성보호법률? 그게 뭔 소용이 있나?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렇게 만들어놓고 기껏 정부가 하는 짓이 애 많이 낳으란다. 미쳤냐? 이렇게 살기 빠듯한데, 애까지 낳아서는 아예 옴쭉달삭 하지도 못하게 하고, 그 애 크면 또 얼마나 부려먹을려고 그런 헛소리를 하나?

이주노동자들, 코리안드림 품고 브로커들에게 상납해가며 어렵게 들어와 노예처럼 취급받다가 급기야 쫓겨나고 있다. 그것도 테러리스트로 몰려서. 죄다 불법체류자가 되는 통에 숨어다니는 이주노동자 지금도 충분히 기업인들 멋대로 부려먹고 있다. 완전한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이 땅에서 아직까지 인종차별이라는 말은 부시가 사는 아메리카에서나 있는 일인 것처럼 나몰라라 하고 있다.

정치야 뭐 그렇지, 언젠 정치가 아주 잘 돌아가서 지들이 기업했냐? 정치가 황당하고 독재가 횡행해서 나라가 혼란할 때 오히려 지들은 더 잘 벌고 더 많이 쌓아놨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정치의 안정을 운운하냐? 낯짝도 두껍지. 좌파정권 들어서서 기업하기 곤란해졌다는 넘들이 그래 어떻게 작년까지는 연 3년을 국가경쟁력 순위상승하는데 표를 찍었다냐? 낼름 1년만에 이렇게 홱 돌아설 것을? 게다가 좌파정권은 무슨 빌어먹을 좌파정권이냐? 자본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좌파정권도 있냐?

그 반면에 "돈이 있어도 투자할 곳이 없다"고 돈자랑을 하던 기업인들, 기술경쟁력 개발에 얼마나 돈 들였는지 궁금하다. 기업연구소들이 줄초상 나고 학교마다 기초분야 연구원들이 실종되어버리고 있는 이 판국에 얘네들이 투자한 기술경쟁력 부문은 도대체 뭔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할까? 기업경쟁력 24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삼성의 2004년 브랜드 순위가 21위다. 그 이하 나머지 기업들의 브랜드 순위는 얼마쯤이나 되나? 도대체 몇 놈의 기업인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대한민국 기업경쟁력이 24위로 나타날 수 있는 걸까?

궁금한 것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라는 것들이 이렇게 제 살 깎아먹기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나라망신을 시키고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국제적 신인도를 스스로 깎아 내리면서 정부를 뒤흔들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어서 얻는 것이 뭘까? 기업도시? 5000만평 골프장? 정부 바뀌면 또 발표되는 신도시 계획 건설경기 부양? 전 노동자 파견직화? 전경련의 정권장악?

고만 좀 했으면 쓰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해봐야 지들 얻는 거 하나도 없다. 물론 설문지에다가 지 쏠리는대로 뭔 이야기를 끄적거리던 내 알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로 신문지며 텔레비전이며 도배질을 하고, 낼 모레 나라살림이 거덜날 것처럼 난리 버거지를 치고 그러면서 국가경쟁력 높일려면 기업 원하는대로 다 해줄 것을 요구하는 이런 짓은 누가 봐도 그 속이 뻔히 보이는 짓 아닌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0/15 20:38 2004/10/15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