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13일자 대부분의 일간지에 한 장의 사진과 기사가 떴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 17면에는 "삼성봉사단 나눔의 바자회"라는 제목으로 포토뉴스가 정 중앙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삼성사회봉사단은 12일 창단 1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 빌딩 1층 로비에서 '사랑나눔 바자'를 열었다. 계열사 사장단이 내놓은 만년필, 서적, 양주, 의류 등 300여점과 삼성 임직원과 계열사의 기증품, 아테네 올림픽 출전 삼성스포츠단이 기증한 물품 등 모두 4만여점이 팔렸다." 이런 내용이 사진 밑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신문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이 각 신문에 게재된 그 사진, 그거 기자들이 찍어온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이 제공한 거란다. 어쩐지 똑같더라...

사진 잘 나왔다. 장하다 삼성! (c) 삼성그룹제공

 

아름다운 일이다. 삼성사회봉사단이 발족한지 어언 10년. 그동안 무수한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소외되고 고통받은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단다. 삼성은 전사적으로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있으며, 사원들의 참여도도 엄청나게 높다고 자랑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삼성은 사내에서 사원들에게 지속적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삼성의 사원들이 봉사정신의 화신이 되어 뛰고 있다고 보고한다.

2003년 한 해동안 43만5000명, 전 사원이 평균 2회의 자원봉사!



삼성사회봉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건희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삼성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온 국민이 주목하는 '국민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막중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구구히 명언이요 절절이 명창이다. 국민이 주목하는줄은 아는구나... 앞으로도 이런 사명감 가지고 열심히 대한민국 대표하고 세계를 선도했으면 한다. 이건희 회장 각하, 만수무강하소서...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공헌을 중시 생각하는 삼성의 봉사활동 이면에서는 대를 잇는 무노조 경영신화의 악몽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 SDI가 사내 노조활동을 하려고 하는 노동자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위치추적사건 고소를 진행한 당사자 중 유일하게 삼성 SDI에 남아 있는 강재민씨. 출근길에 공장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듣고 직원들에게 들려나와 팽개쳐진 강재민씨의 그늘진 얼굴이 연간 전 직원이 2회 이상 봉사활동을 한다고 자랑하는 삼성의 정문 앞에 놓여있다.

왜 그들은 강재민씨를 쫓아냈는가...(c) 오마이뉴스

생전에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했단다. 그의 눈에 흙이 들어간 후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한 번 변하려고 하는 지금 이 때까지 삼성은 무노조 경영으로 일관하고 있다. 눈에 흙들어가는 것과 노동조합의 건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아무튼 강재민씨는 쫓겨났다. 그리고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공장 정문 앞에서 완전히 버려진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삼성의 경영원칙. 밖에서는 봉사활동, 안에서는 노동자 탄압. 어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 많은 삼성맨들이 공장 바깥에 존재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어떻게 자기 옆에서 고통받는 동료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걸까? 수십만명의 직원이 봉사활동을 하고 수천억원을 사회봉사를 위해 희사하는 삼성이 왜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뼈빠지게 일한 노동자에게는 잔혹한 탄압을 일삼는 것일까?

 

삼성의 노동자 탄압은 비단 이번 SDI 사건만이 다가 아니다.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면서 온갖 특혜를 향유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카린 밀수에서부터 변칙 증여까지 벼라별 위법, 불법행위를 저질러온 삼성의 역사. 그 안에서 재벌독점의 공고화를 위한 희생양으로서 착취당하고 탄압당해왔던 노동자들의 눈물. 그 피눈물. 동료의 뼈를 에는 피눈물에 대해서 침묵하는 삼성맨들. 그 침묵의 바깥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삼성맨들.

 

10월 12일부터 24일까지는 삼성자원봉사대축제 기간이라고 한다. 같잖게도 이 대축제 기간에는 "삼성 CEO 봉사의 날"도 끼어있다. 노조를 이야기하는 자사의 노동자에게는 처절한 탄압을 하는 그들의 손으로 봉사를 한단다.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번에 신문 기사에 난 "사랑나눔 바자"도 웃긴다.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변칙증여한 주식으로 발생한 이윤만 환원해도 임직원과 계열사로부터 수집한 기증품 다 판 거보다 훨씬 풍부한 사회봉사 할 수 있겠다. 그거 내놓기는 싫고, 임직원과 계열사에게 기증받아 바자하려고 또 얼마나 닥달을 했을까?

 

삼성. 이제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세계를 선도해? 삼성의 가공할만한 노동자 탄압의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이 분노하고 세계가 웃고 있다. 봉사활동의 가면 뒤에 숨겨진 삼성의 실상이 속속들이 파헤쳐진 후에도 대한민국 대표와 세계 선도를 운운할지 궁금해진다. 아주 궁금해진다. 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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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3 22:22 2004/10/13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