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회가 싫다

참으로 건실했던 선배가 하나 있다. 이 선배, 장장 7년이라는 열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형수가 될 사람도 어찌나 참했는지 주변에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벌레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둘 다 착한 사람들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 아마 앞으로 잘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역시나 참 가난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결혼식을 할 비용마련도 버거웠다. 어떤 사람들은 냉수 한 잔 떠놓고 맞절 한 번 하고 결혼식을 끝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비록 남들처럼 호화찬란하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격식만은 차리고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래서 최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제대군인들의 경우 향군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배가 일하고 있는 동안 행인이 향군회관에 결혼식 접수를 해주기 위해 움직였다. 쥐뿔이나 연애질 한 번 못해본 행인은 남 결혼식을 위해 이렇게 뛰어다녔는데 아직 요모양 요꼴이다. 어쨌거나 향군회관으로 가서 결혼식 접수를 하려고 했는데,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안내원이 대뜸 물어보는 것이 결혼할 사람이 장교출신이냐는 거다. 전혀 아니고 육군 땅개 병장 출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비용계산표를 내보여주는데 아무리 봐도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것하고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들은 얘기를 주어 삼키면서 제대군인들에게는 많은 혜택이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재향군인회의 평생회원이냐, 회비는 냈느냐, 지금이 시즌이라 시간맞추기가 어렵다 등등 별 야리꾸리한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다.

 

원래 중간에서 거간하는 넘은 아무리 벨이 꼴리는 일이 있어도 사근사근히 제 할 일만 하면 된다. 그런데 행인은 성질머리가 지랄맞아서 그만 그 자리에서 또다시 악을 쓰고 말았다. 이런 줴기럴, 제대한 넘이면 다 같이 제대한 넘이지 군복 벗은 다음에도 장교가 사병 윗끝발이냐? 나도 전역신고하자마자 젤 먼저 한 짓이 향군회비 납부하는 거였는데, 사병들 피같은 돈 끌어다가 먹고 사는 넘들이 그래 사병출신이라고 이렇게 차별을 하냐? 난리 버거지를 피우다가 문짝이 부서지라고 걷어차버리고 향군회관을 나왔다. 결국 그 선배는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문날인 반대연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터졌던 사건이 성남 붕어빵봉지사건이었다. 공공기관과 은행에서 폐기처리한 문서가 붕어빵봉지가 되어 돌아다녔던 사건이다.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와장창 담겨있던 이 문서들은 봉투공장에서 확인된 것만 몇십만장이 넘는 양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재향군인회였다. 재향군인회 경기지회가 경기지역 일대의 폐지처리 사업을 맡아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다. 사실은 관리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재향군인회 자체가 중간에 깊숙히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조직적인 차원의 도움이 없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이후에 재향군인회라는 존재가 도대체 뭘 하나 봤더니 이넘의 재향군인회, 벼라별 이권사업을 다 가지고 있었다. 돈 버는 일이라면 손을 안 뻗친 곳이 없는데, 도대체 그렇게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돈벌이 많이 하면 적어도 향군회관에서 제대병사들 결혼식 같은 것은 무료로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요새도 악날하게 돈 다뜯어 먹으면서 부대시설 이용 허가해주나??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열우당 의원들이 재향군인회를 찾아갔다. 갔더니 재향군인회 대표들, 근엄한 표정으로 국가안보 자신들이 다 지킨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까는 소리다. 솔직히 지들이 국가안보 했나? 지들 관사에서 따땃한 방 구들장 지고 누워 어떻게 하면 쿠데타나 함 해볼까 고민하면서 관사 관리병에게 술상이나 봐오도록 시키고 있던 그 순간에 눈내리는 전방 철책에서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하면서 살을 에는 칼바람 온몸으로 맞고 서서 총을 끼고 있었던 병사들이 있었다. 지들이 대위에서 소령달기 위해, 대령에서 준장 달기 위해 윗사람에게 손바닥을 부비기 위해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묵묵히 소총수입하면서 제대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병사들이 사실은 그 잘난 애국 하고 있었던 거고 국방의 첨병으로 역할했던 거다.

 

그런데 이것들이 군복입고 있을 때나 장교고 간부지, 군복벗은지가 언젠데 아직도 지들이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인줄 아나? 나이 처먹을만큼 처먹고, 그 나이 처먹는 동안 새파란 청춘들 등골이 휘도록 굴리면서 지들 배때기 채울만큼 채웠으면 이제 배부른 줄도 알아야할텐데, 국가지원금 날름날름 챙겨먹고, 사병출신들에게 향군회비 꼬박꼬박 받아 처먹고, 각종 이권사업 줄줄이 해먹으면서, 정작 사병출신 재향군인들의 복지에는 단 한 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 이 악질적인 인간들이 이젠 사회의 어른노릇까지 할려고 한다.

 

예전에는 독재정권의 주구 노릇 하면서 독재자가 부르는 곳마다 달려가더니, 이젠 파병찬성, 미국찬양, 국보법 수호 등등 개떡같은 짓은 골라서 하면서 '재향군인회' 이름 떡떡 붙이고 살고 있다. 나도 명색 재향군인인데, 이 더러운 노땅들이 언제 행인에게 단 한번이라도 이런 짓거리 한다는 이야기 한 번 해본 적이 있나?

 

언능 언능 칠성판에 몸들 뉘이시기 바란다. 그리고 염불에 잿밥이나 꼬박꼬박 챙겨드시기 바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 미륵부처 석가모니 예수님 성모님 하느님 알라신 기타등등 온갖 잡귀잡신들에게 비나이다. 언능 언능 데려가소서...

 

하긴 귀신이라고 이 귀신 잡아먹을 인간들 데려가고 싶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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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9 11:06 2004/09/09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