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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투자전략: 토론문

다른 자료를 찾다가, 지난 건강형평성 학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준비했던 원고 확인... 기록차 남겨둔다. ------------------------------------------------------------------- 토론 3: 이 글에서는 사회투자전략 중 건강투자 전략에 집중하여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건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두 번째 발표 (이원영, 건강투자전략과 국민건강)의 첫 머리에 정리되어 있듯,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으며 참여정부의 건강투자전략은 그 중 인적 자본, 투자재로서의 건강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효용이나 가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 건강이 항상 최고, 우선순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고, 반면에 다른 차원의 안녕을 포기하고 건강을 지키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선택과는 별도로, 인권으로서 그리고 잠재력(capability)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것이 건강이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것이자 유보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속성이다. 건강권은 세계인권선언(25조)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제 12조)에 명시되어 있는 사회권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이는 경제개발의 동력, 혹은 개인의 경제적 성취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질 수 없다. 물론 충분한 교육을 받고 높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개인 수준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취, 사회 수준에서 생산성의 증대와 경제개발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만일 높은 교육수준과 건강상태가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적자본은 회수되어야 하는가? 건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성취는 오로지 상품생산에만 존재하는가?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의 지적대로, ‘인적 자본’ 개념은 우리가 “왜”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개발’을 ‘경제성장’으로만 이해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와 가치 있는 삶을 증진시키는 ‘포괄적 사회개발’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인간 잠재력’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참여정부의 ‘건강투자론’은 개발지상주의와 시장동원체제의 수사적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2. 건강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 한편, 인적자본 개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건강투자의 문제인식과 접근의 방식을 살펴보자. 건강은 생물학적/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차원적 속성으로서, ‘정상성’에 대한 생물학적 규범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생물학적/사회적 가치판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직한 건강상태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며, 인구집단에서 관찰되는 건강 수준의 변이도 매우 광범위하다. 우리는 다양하게 구분되는 집단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강 수준의 모든 차이를 불공정, 혹은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거나 혹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적․지리적으로 구분되는 인구집단들 사이에서 체계적이고 잠재적으로 개선 가능한 차이가 존재할 때, 즉 건강결과 그 자체의 분포보다는 건강 격차가 불공정한 사회질서의 결과물로 나타날 때 이를 문제라고 여긴다. 건강 형평성이 곧 사회정의의 문제라면, 결과의 평등을 넘어서 과정과 절차에서의 공정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건강 불평등의 개선을 위해서는 격차가 발생하는 사회구조/자원의 분포 방식 자체에 대한 교정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가난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가?’, 혹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가?’라는 인과성 문제에서, 그동안의 역학적 연구들은 건강 선택(health selection, 건강 →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는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사회경제적 요인 → 건강)의 역할을 더 강조해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건강 불평등은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회적․경제적 질서의 상당한 변화 없이 소위 건강 투자 - 특히 개인의 생활습관 개선이나 보건의료서비스의 확대/적정화 -를 통해 개인들, 더구나 취약계층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생산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완수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보자. 지역안전보건센터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여러 모로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 고용을 영속화시키는 고용정책,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노동안전 법규/제도의 변화 없이, 안전보건 서비스의 추가제공만으로 과연 건강이라는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이것이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금도 한국사회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건강 수준이 낮아서 노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의 노동과 혹독한 노동 강도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여성의 고등교육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이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진다. 이들 생산 활동 적령기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불충분한 인적자본 때문인가? (그림 1). 그림 1 OECD 국가들의 교육수준에 따른 30-44세 여성 취업률, 1995년 (자료원: OECD Center for Educational Research and Innovation. OECD Publication, Paris 1998) 3. 정치적 수사 혹은 진심? 두 번째 발표에서 지적했듯, 건강투자를 통한 경제개발의 논리는 어린이와 청장년 집단에서 심각한 사망과 상병 문제를 경험했던 저개발 국가들의 지원과 관련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에서 제기한 사회투자전략, 특히 건강투자전략도 정치적 우파와 개발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서의 순기능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성장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건강투자전략’의 추진과제를 통해 과연 ‘전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 소득/지역에 따른 건강격차의 해소, 적정 수준의 국민의료비 증가속도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럽 등을 위시한 소위 선진국에서는 ‘건강투자’라는 표현을 잘 안 쓰기도 하지만, 쓰는 경우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수단적 속성보다는 건강 불평등의 극복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포괄하는 통합적 ‘사회개발’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 서비스 투입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영역을 넘어서, 건강 결정요인들을 다루는 다양한 정부 부처 (예, 교육, 농업, 노동 등) 사이의 협업과 공조에 의해 보건목표와 건강증진 전략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복지부의 전략과 과제를 본다면 불평등을 야기하는 ‘결정요인’에 대한 고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보건의료서비스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개발논리에 근거한 건강투자전략에서 벗어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권고안에 근거하여 건강권을 포함한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개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부처 간 협력을 통해서 ‘보건복지정책’을 넘어서는, 건강 결정요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역군’으로서 민중들은 그동안 충분히 노력하고 시달려왔다. 생산성 운운하며 사람들을 ‘인적자본’으로 무장시켜 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최소한(!)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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