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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반사같은 노동귀족, 불법파업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파블로프는 그의 여러 연구중에서 특히 조건반사에 대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키우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기전에 종을 울렸는데, 그러기를 여러번 하다보니 나중에는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강아지가 먹이를 주는 지 알고 군침을 흘리더라며 이와 같이 특정한 조건하에서 특정한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를 조건반사 라고 이름 붙였다.

 

마치 비정규직의 처지를 말해주듯 레미콘에 깔려 살해당한 김태환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8 년 만에 재개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투쟁을 필두로, 고용보장과 안전운항을 위한 조종사 노동조합의 파업, 지난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권을 노무사에 위임하는등 불성실한 산별교섭 태도를 보여온 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 금속산업연맹 노동조합 등에서 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론들은 경기불황 등을 이유로 파업에 대한 비난여론을 조성하기에 여념이 없다. 가뭄이 지면 가뭄에 왠 파업이냐고 하고, 월드컵을 앞두고 있을때는 축제를 준비하는 마당에 왠 파업이냐고 그래왔었던것이 언론들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러한 반응들은 마치 '파업' 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입에 게거품을 물도록 잘 훈련된 조건반사형 강아지를 연상하게 한다.

 

정부와 언론들은 현재 시한부파업에 돌입하고 있는 조종사노조의 임금이 1억을 넘는다며 벤츠를 몰고다니는 고임금 '노동귀족' 들이 왠 파업이냐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들은 노동귀족론을 내세울때 항상 그래왔듯이, 그들이 얼마나 '귀족' 인지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파업이 일어나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개한다. 그것도 세금및 각종 공제이전의 액수를 발표하여 실제 임금액에 비하면 굉장히 부풀려진 채로 공개한다. 더 웃기는것은,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자신들의 회계장부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봉을 얼마로 받든, 개별 노동자들 스스로가 창출해낸 이윤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조종사의 연봉이 1 억을 넘는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는 곧 조종사 개인이 매년마다 항공사에 창출해주는 이윤이 몇억 이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신문에 '귀족노조의 불법파업' 하면서 광고때리는 돈, 그 돈 조차도 '귀족노동자' 들이 창출한 이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업은 철저하게 노동자들이 창출한 이윤에 기대야만 존재할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노동귀족론을 내세울때 항상 그래왔듯이, 이러한 주장은 노동조합의 핵심 요구사항은 은페한채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기 쉬운 '임금' 이 핵심 쟁점인것처럼 위장하여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조종사 노동조합의 핵심 요구사항은 정년보장과 특히 안전운항을 위한 휴식시간의 확보가 그것이다.

 

사측은 현재의 근무제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마치 조종사들의 과도한 요구사항을 수용할경우 휴식시간이 업무시간보다 길어지는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작년 서울행정법원이 정년퇴직한 한 조종사의 만성피로증후군 등의 질병으로 인한 산재신청건에 대해서 '근무기간동안 70시간 이상 비행과 50회 이상의 이착륙, 무박 2일 운행을 하면서 한달에 순수 휴일은 많아야 사흘밖에 되지 못했' 던 점을 인정한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그와 같은 주장들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것이다.

 

특히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안전운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조종사의 연간 총비행시간과 관련하여 항공법규에 의해 1000 시간으로 제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경쟁사인 대한항공의 경우 3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조종사 노조의 파업에 대해 회사는 총비행시간을 1200 으로 2년간 유예시켜주면, 이후에 1100 시간으로 해주겠다는 기만적인 입장만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월휴보장, 여성조종사의 임신과 출산기간 2 년동안을 비행휴로 지정하고 임금과 상여금 일체를 보장하라는 요구조건에 대해서도 사측은 '경영권 침해' 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 노동조합의 골프채 구비 와 같은 요구안이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지나치다고 반론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지나친' 요구들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반면에, 사측이 '절대로 양보할수 없다' 고 협상조차 거부하고 있는것은 그와 같은 '일반인들이 접해보지 못한 파격적인 조건' 이 아니다. 높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오히려 그와 같은 조건들은 협상에 따라 얼마든지 수용할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있다. 조종사 노조와 사측간에 진정한 핵심쟁점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은 사측의 대응만 보더라도 알수 있는 사실이다.


'노동귀족론' 이외에도 유전게이트·행담도게이트 등 온갖 부패의 주범인 노무현 정권은 올해 초부터 기아자동차, 항운노조 등의 노조 간부 비리를 문제삼아 노동운동을 공격해 왔다. 물론 노조 간부 비리는 척결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측과 결탁한 부패한 노조관료에 대항하여 현장노동자들이 통제권을 장악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할 일이지, 항운노조 대책문건에서 드러났듯이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노무현식의 노조 간부 비리 해결책이 될수는 없는 것이다.

 

정권과 언론은 조건반사 식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노동운동의 가치를 폄훼할수는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열우당 이목희가 '이 정권 내 비정규직 입법이 불가능하다' 며 좌절감을 드러낸 발언에서 보이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넣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또 한번 좌절시킨것 또한 노동운동이다.

 

노무현 정권은 노조비리 등을 핑계삼아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한편 노동운동 지도부를 노사정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 발목을 잡아두고 개악안을 통과시킬 예정으로 올해 초 부터 비정규직 개악입법안을 밀어붙여 왔으나 한원CC, 현대차·기아차 비정규직, 울산건설플랜트, 하이닉스 매그나칩, 덤프연대, 레미콘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한 현장 노동자들의 강력하고 끊이지 않는 투쟁과 압력은 노동운동 지도부가 교섭에 치중하다가 부분 수정된 개악안을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을 방지하며 지금까지 4 차례나 이러한 계획을 저지해내는 힘을 보여줌으로서 상황이 언제나 저들의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 등 협상에 의존하는 전술이 아니라 강력한 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지금 한국노총은 1987 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20 년 만에 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고 심지어 해외투자 유치 설명회까지 함께 다닌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노무현은 김태환 열사의 처참한 주검을 보답으로 안겼으며,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일어난, 나와는 무관한 사건' 이라며 애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용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 틀을 완성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해 왔던 것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는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대화 로 우리 조합원을 지킨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 며 투쟁에 나설것을 독려하고 있으며, 비록 부족하나마 민주노총과의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청와대 스스로 재신임과 탄핵에 이은 '세번째 위기' 라고 인정할 정도로 심각한 노무현 정부의 위기 상황에서 양대노총의 공동투쟁은 상당히 중요한 역활을 수행할수 있을것이다. 그런면에서 민주노동당의 '개혁공조' 입장이나 '연정' 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듯한 제스쳐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며, 투쟁의 국면에 찬 물을 끼엊는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구원투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김태환 열사는 죽기 전에 '노동자를 업신여기는 자들의 말로가 어떤지를 반드시 보여 주리라' 고 썼다. 김태환 열사의 정신은 정규직이 앞장서서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연대의 정신이며, 12톤 트럭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투쟁의 정신이다. 이제 우리가 파업 소리만 나오면 조건반사로 발악을 하는 정권을 깔아뭉갤수 있도록 밀어붙이고 파업투쟁을 방어할 차례다. 그것이 비정규직 차별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박살내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 당한 몫을 찾고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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