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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 반대·부시 반대 국민행동과 부산시민행동'이 17일 저녁 부산시 부산진구 서면 밀리오레 앞 거리에서 연 문화제에는 학생과 시민, 노동자, 농민 등 모두 5000여 명의 관중이 모였다. 문화제는 '일터' 대표 윤순심 씨의 사회로 노래와 춤 공연, 즉석 참석자 인터뷰, 구호 제창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전경들도 흥얼흥얼
○…18~19일 이틀간 열릴 예정인 '10만 범국민대회'를 앞두고 전야제 성격으로 열린 이날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은 무대 위에서 풍물과 노래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아펙 반대", "부시 반대" 구호를 외치면서 같은 문구가 적힌 카드를 손에 들고 흔들었다.
경찰은 문화제 행사장 주변에 경비 담당 26개 중대, 교통 담당 3개 중대 등 모두 30여개 중대를 배치하고, 행사장 안에도 곳곳에 사복 경찰을 심어놓았다. 그러나 문화제 행사 자체가 워낙 흥미롭게 진행되다보니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어깨를 들썩이는 전경들도 있었다.
○… 아펙이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아펙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했다. 호주, 일본, 대만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산에서 벌어지는 반아펙 행동에 동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미국과 부시, 그리고 초국적자본을 정당화하는 아펙을 반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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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부산 서면 밀리오레 앞에서 열린 '아펙반대, 부시반대' 문화제에 참가한 해외 참가단체 인사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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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공동행동일본연락회의(AWC)의 공동대표인 시나마츠 데츠오 씨는 "16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기간을 연장할 뜻을 내비쳤다. 우리는 고이즈미 정권을 강력히 규탄하며,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군국주의 시도에 대항해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사회를 맡은 윤순심 씨는 문화제 중간중간에 참석자들 속에서 눈에 띄는대로 사람을 가려내 즉석 인터뷰를 해 행사 분위기를 돋웠다.
무대에서 내려온 사회자가 문화제에 참가한 이유를 묻자 한 여성은 "서민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너무 살기가 힘들다. 아펙이 여성의 빈곤 해결에 관심이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중년 남성은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아펙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미얀마에서 왔다는 외국인노동자는 "아펙 반대를 위해 한국의 농민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시와 아펙 패러디한 노래 인기 ○… 이날 문화제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공연팀은 부산지역 '아펙반대 학생실천단' 5명으로 이루어진 '힘빤쯔'였다. 빨강, 노랑, 초록, 보라, 검은 색의 쫄티와 타이즈를 입고 손에 '이태리 타올'을 든 채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참석자들은 포복절도했다. 힘빤쯔는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그룹 '신화'의 '와일드 아이즈'와 그룹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부시와 아펙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각색해 부르기도 했다.
○… 시끌벅적한 문화제 뒤편에는 어묵과 닭꼬치 등을 파는 노점이 여럿 서 있었다. 다른 집회 같으면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부산시에서 아펙 회의 기간을 전후해 한 달간 노점상 휴업 조치를 내린 터라 심상치 않았다.
한 노점상 아주머니는 '오랜만에 장사하니 좋으세요?'라는 질문에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경찰이 뭐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저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이날 문화제 참석자들은 'APEC'을 모두 '아펙'이라고 불렀다. 정부나 방송에서는 언젠가부터 '에이펙'이라 말하지만 아펙 반대운동 진영에서는 계속 '아펙'이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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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 대통령을 규탄하는 선전물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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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석자에게 이런 발음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에이펙보다 아펙이 발음하기가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도 '아펙'이 맞는데 '외래어 심의위원회'에서 '에이펙'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정부의 설명을 무색하게 하는 반문이었다.
"진짜 싸움은 내일" ○… "기자 아가씨, 여 와서 사진 좀 찍어주소." 노래패 '꽃다지'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합창하던 아저씨들이 갑자기 사진 좀 찍어달라며 경상도 사나이답지 않은 애교를 피웠다. 일터에서의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서면을 찾았다는 철도노동조합 부산정비창지방본부장 한대구 씨. 그와 동료들의 얼굴에는 '아펙 반대, 부시 반대'의 비장함보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펙 반대 부시 반대 문화제'인데 너무 즐거워하시는 것 아닌가요?"라는 우문에 그는 "집회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하죠"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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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천을 풀어내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된 전야제(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나타내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우).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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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문화제 행사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정보원이다. 이번 아펙 행사에는 한국의 주요 정보기관에서 요원들을 일제히 출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철통경계로 인해 "부산은 반계엄령 상태"라는 말도 오간다.
○… 문화제가 끝난 뒤에 인근에 위치한 하얄리아 미군부대까지 행진이 있을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았다. 만약 미군부대를 향한 가두행진이 시작되면 문화제 행사장 주위를 감싸고 대기 중이던 경찰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행사 주최측은 예정된 순서가 모두 끝나자 "진짜 중요한 싸움은 내일부터이니 오늘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며 참석자들에게 더 이상의 행동은 자제하도록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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