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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까?



미디어몹 ( http://www.mediamob.co.kr/ ) 헤딩라인 무비입니다.

이번 헤딩라인무비 스페셜판 제목이 재미있다. '영화는 세상을 바꿀수 있을 것인가?' 글쎄,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까?

한때 그런 생각에 골몰하던 적이 있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생각은 '콘돌의 피' 라는 작품을 알게 되면서 더 강하게 들었었다. 비록 아직까지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 살고있는 인디오 들을 상대로 평화봉사단 이란 이름을 달고 진주한 미군들이 무료진료 라는 명목하에 인디오들 모르게 불임수술을 진행했던 실화를 다룬 극영화다.

'콘돌의 피' 는 정부에서 상영을 불허했으나, 곧 여론의 항의에 부딪쳐 불허결정을 철회할수 밖에 없었다. 상영된 '콘돌의 피' 는 볼리비아 전역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미국의 위선과 원주민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만행에 분노한 대중들의 여론과 항의시위가 전국을 뒤덮었다. 내가 보지도 못한 영화의 제목이나 '우카마우 집단' 이라는 제작팀의 이름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것은 71 년 미국의 '평화봉사단' 이 볼리비아에서 추방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이 영화가 만들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결코 잘 만들어지지 않은 ( 영화 전반적인 느낌이 파업전야와 비슷하다고 한다 ) 한편의 영화가 미국의 영향력을 꺽은 셈이다. 대단한 쾌거가 아닌가? '콘돌의 피' 야 말로 '세상을 바꾼' 영화라고 할수 있을것이고, 이 사건이후 '우카마우 집단' 은 전 세계 민중영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콘돌의 피' 가 극장에서 상영할수 있도록 한것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었다. 영화 상영 이전에 민중들에게 폭 넓은 저항정신과 투쟁의 분위기가 없었다면 '콘돌의 피' 가 그토록 광범한 지지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콘돌의 피' 는 그전부터 이어져오던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을 촉발시키는 매개체의 역활은 했겠지만, 아무런 조건도 조성되지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저항정신을 창조한것은 아니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평화봉사단을 추방한것은 꾸준히 이어져오던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이었지, '콘돌의 피' 가 추방한것은 아니다.

볼리비아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2003년 10월 볼리비아에서는 젤리그나이트 라는 폭약으로 무장한 수천명의 광산노동자들이 농민, 노동자, 원주민들과 함께 수도 라 파스 의 도심을 장악했고, 결국 대통령 산체스 데 로사다 는 헬기를 타고 도망쳐야 했다. ( 2000년 이후로 남미각국에서는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도망치는게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 그러한 봉기를 촉발한것은 2000년 코차밤바 지역의 물 사유화 계획이었고, 당시에도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 결국 정부는 사유화 계획을 철회했다. 그 뒤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갖가지 투쟁이 잇따라 일어났다. 2003년 2월에는 정부가 세금을 인상하고 복지를 삭감하자 수도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이 파업을 벌이고 정부 관공서들이 불에 탔으며 헌병과의 충돌 와중에 33명이 희생됐다. 결국 정부는 세금 인상안을 철회해 가까스로 정권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뒤, 정권이 칠레를 통해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던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자 저항은 걷잡을수 없이 번져나갔다. 약 3년 동안의 모든 운동이 이 투쟁에 결집되었고, 결국 로사다는 쫓겨나고 카를로스 메사 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볼리비아를 바꾼 몇년동안의 싸움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지, 영화때문에 일어난 운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볼리비아 투쟁에 있어서 나름대로 역활을 한 영화들도 있다. 그 영화들은 볼리비아 민중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으며, 운동을 기록하고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헤딩라인무비는 마치 '재미있는 다큐' 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말하는듯 하지만, 볼리비아 민중운동의 그 영화들에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와 달리 어떠한 '유머'도 의도적으로 삽입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가 베르토프 식의 다큐멘터리 관점이 도입되었다.

사실 '세상을 바꾼' 모든 영화에는 '의도된 재미'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인 피케테로스의 성공에는 피케테로스의 활동들을 기록하고 전파한 '노동자의 눈' 이라는 다큐영화 집단의 공이 숨어있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들 역시 마이클 무어의 '재미있는 다큐' 하고는 거리가 멀다. 볼리비아의 '콘돌의 피' 도, 우리나라의 '파업전야' 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지한 주제를 더 재미있고 세련되게 다룰수 있다면 더 좋을것이다. 하지만 헤딩라인 무비는 진지한 주제를 재미있게 전달해야 세상을 바꿀수 있는 영화가 될수 있는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세상을 바꿨거나 바꿀수 있는 영화들은 반드시 '재미' 가 있어서 그리 된것들이 아니다. 화씨911 이 볼링 포 콜럼바인 보다 재미가 없어서 세상을 바꾸는데 실패했나?
영화는 세상을 바꾼다기 보다 변혁운동에 촉매제 역활을 한다. 그 중심요소는 재미가 아니라 투쟁을 고양하고 전파하는 기록성이다.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양시키고 심지어 조직할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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