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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옛집 답사(2)--신항리 행평윤씨촌(윤보선생가)

  • 등록일
    2005/03/07 08:52
  • 수정일
    2005/03/07 08:52

아산시에서 두번째로 들른 곳이 둔포면 신항리다.

 

보통 이 곳 아산시는 청주에서 1시간에서 2시간 내의 가가운 곳이라서

자주 답사 내지 바람 쐬러 오는 곳이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는 빠졌지만

외암리 민속마을이나 맹씨행단은 1년에 2-3번씩은 오는 곳이다.

 

그런에도 아산시 북쪽에 있는 이 곳은

계속 오려고 눈여겨 보긴 했지만

왠지 멀게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한번도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막상 차로 달려보니 맹씨 행단에서 20여분 정도의 시간밖에 안걸리는데도

왠지 멀게만 느꼈던 것으로 보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요상하긴 한가보다.

 

아산시에서 잘닦여진 45번 국도를 따라 둔포방면으로 가다보면

신항리 입구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정표를 따라 한 5분이 안되게 들어가면

해평 윤시들의 한옥을 볼 수 있다.

보통 길가의 이정표를 신항리보다 윤보선대통령 생가라는 표지가 훨씬 크게 나와 있다.

이 표지판을 보고 오면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이자 해평윤씨들이 지은

약 100년이 좀 넘어보이는 한옥집들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마을을 들어가다보면 중간쯤에 솟을대문이 나온다.

다른 어떤 마을에서도 본적없는 독특한 솟을대문이

이 마을의 해평윤씨 한옥집들의 특징을 말해준다.

 


이 솟을 대문과 그에딸린 행랑채가 끝나는 왼족에 원래는 담이 있어야 할 곳에

지금은 길이나 있다. 그리고 물론 대문도 잠겨져 있다.

 

 

그 잠겨진 대문 안쪽으로는 지금은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는데

그 너머에 당연히 나와야 할 사랑채 혹은 안채 뭐 이런

한옥의 일반적인 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잡들이 서너채가 나온다.

 

마치 이 솟을 대문이 이 마을 전체의 대문 역할을 하듯이

덩그란이 독립된 형태로 서 있고 그 안쪽으로 한옥집들이 별개의 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서원 입구에 서 있는 홍살문처럼

이 문이 해평윤시 일가들이 모여 사는 이 한옥들의 전체 대문 역할들을 하고

안에 있는 한옥들은 일면 평범해 보이는 기능성이 강조된 작은 대문들을 가지고 있다.

 

처음 나오는 집은 대문을 통과하여 계속 진행되는 길을 중심으로 옆으로 늘어서 있다.

 

방향이 거의 서향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납쪽 혹은 동남쪽을 향하지 않고

그저 대문을 통과한 동선에 맞추어 길옆에 요즘의 무슨 가게처럼 늘어서 있는 형국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퇴락한채 쓸쓸히 망가져 가는 듯한 인상이다.

형식은 민도리집으로 조선말 혹은 일제초기의 전형적인 한옥집의 양식이다.

 

 

그 건축의 시대적인 특징인지는 모르지만

집안 곳곳에 이 문처럼 서양양식이 가미된듯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년대가 100년정도 즉, 조선 개항후임을 알수가 있다.

 

 


 

길을따라 늘어섰다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시원한 마당의 느낌 뭐 이런 것보다는 왠지 답답한 느낌이 주로 들 정도로

전통 흙담이나 붉은 벽돌로 막아 놓아서 공간공간들이 독립적이긴해도

막힌 느낌이 많이나는 편이다.

 

 

다음 집도 비슷하게 길을 따라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사람이 현재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는 하고 잘 정돈된 느낌을 준다.

 






 

현재 살고 있는 집들은 거의 대다수가 문을 잠가두고 집주인이 외출한 관계로

들어가 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져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로 걸어갔다.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는 솟을대문에서 시작되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바로 보인다.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고 유일하게 별도의 솟을대문을 가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아 ! 저기가 거기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솟을 대문 자체가 이빚이 처음생길때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전체적인 이 동네의 집들을 보아서는 윤보선대통령이 이후 정치적인 출세를 거듭하면서

개축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솟을 대문 옆으로 담장이 이어져 있지 않고 차가 들어갈수 있도록 담의 일부를 헐어버려서

누구나 대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집구경을 할 수 있는 집이다.

한옥집이 아무도 살지 않아도 집이 금방 퇴락하지만

사람이 살면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이정도의 개축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냥 대문밖에 주차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시골동네임에도 꼭 차를 대문안까지 끌고 들어가기 위해 담을 헐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실제 그 집에서 살지않고

그냥 이렇게 구경만 다니는 관광객의 입장이기에 생기는 감정이리라 자위했다.

 

여기서 참고로 윤보선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면

워낙 최근가지 생존했던 사람이니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노파심에서 이야기하면

우리나가 제 4대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만 보면 이승만 다음이고 선거로 보면 4대 대통령이고

헌법의 개정으로 보면 제 2공화국 대통령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내각책임제로 인하여

그 실권을 갖지 못해 사람들이 대통령인 것은 알지만 언제인가 잘 모르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4.19 혁명이후 들어선 정권 자체가 단명한 이유도 있지만

내각제 실시로 인해 총리 이름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 정권을 장면정권 혹은 장면내각이라 부르니

당시 대통령인 윤보선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경향인 것이다.

 

여하튼

박정희의 군사구데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고도

1990년까지 생존했으니 그 뼈져린 감흥이야 어떠했으랴.......


실제 장면 내각이 집권했을 당시 민주당의 신,구파의 분열과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실제 그렇게 크게 잘못한 부분이 없음에도

당시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진 정권탈취는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장면과 윤보선 등에게 무능과 무절제, 부패의 이미지를 온통 뒤짚어 씌웠고

이로인해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우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중

솔직히 윤보선이나 장면보다 비리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대통령이 누가 있겠는가 ?

 

실제 박정희는 자신이 집권한 후에도 이들 윤보선과 장면에게 정치활동을 못하게 했을망정

어떠한 비리나 잘못을 처벌하지 못했던것처럼

사실은 이들은 아직 채 자신들의 어떤 정책들을 펴보지도 못한 채로 박정희의 권력욕에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잃어야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아직 4.19 이후의 상황에 대한 명확한 검증들이 없고

아직도 박정희 망령이 한국사회를 옥죄는 상황에서

그 잘난 노태우니, 전두환이니, 김영삼이니 하는 정치범죄형에 가가운 대통령들의 생가도

복원하고 관광지로 만드는 판에 문화재적 가치가지 있는

또 한명의 전임대통령의 생가는 퇴락한 채로 방치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윤보선이나 장면은

국민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정책으로 인해 욕을 먹었지만

노태우나 전두환이나 김영삼은

최대한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한 공로 이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

 

당시 박정희의 집권을 바라본 김수영시인이

" 이제 한국은 다시는 자유를 만끽하지도

만끽한 자유에 대한 책임의식을 배울기회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배울 기회도 잃어버렸다 " 고 울면서 이야기 했단다.

 

자유가 지나쳐 다소 방종하기로서니,

민주주의를 실행하면서 다소 혼란스럽다고해서

반만년만에 처음으로 만끽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훼손할 만큼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꼭 이렇게 군대처럼 국민들을 일렬로 줄세우고 무책임하게 강요하고

개패듯이 몰아부쳐야 하는 것인지를 물었던

김수영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자유니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식이니 하는 것들을 배워보지도 못하고 빼앗긴 것이다.

 

그러니 요즘에도

어느 한 정치인도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고

어느 한 개인들도 공동체적인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국민성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배우려 했는데

총칼로 위협해 배우지 못하게 한 박정희와 그 떨거지들이

이제와서 국민들에게 책임의식좀 가져라 소리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 가 중요한 것이다.

 

자유란 책임이므로.....

 

갑자기 오바를 했다.

뭐 여하튼

이런 것이 답사의 재미 아니겠나 싶다.

잊혀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되짚어보게하는 힘.....!

 

 

새로 지은 솟을대문만이 위로 덩그라니 솟아 있고

왠지 사람들이 사는 집임에도 퇴락해 보이는 윤보선 생가를 보면서

언듯 박정희생가가 떠올랐다.

 

자신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 자신의 친척까지도 밀고했던 박정희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민족까지도 팔아먹었던 박정희를

뭐 기억할게 있다고 생가를 복원하는지 말이다.

 

그곳에 가서 구경하면서

아 ! 나도 친척 팔아먹고

민족 팔아먹고

자유 짓밟아서 권력만 잡으면 된다...뭐 이런 생각하려고 기념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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