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거인샬라, 2012

아직 개봉은 안한 거 같고.. 자막과 영상을 받아서 봤다.

 


 

(본지 거진 8달만에 이어 쓰는 건데, 당시 저 첫줄을 써놓고 말았었다. 찾아보니 지금도 개봉은 안한 듯하다.)

 

클로에는 의사다.

팔레스타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스라엘의 군인집에서 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고,

클로에는 매일 진료소를 오가기 위해 검문을 받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파국을 예고한다.

폭탄이 터지고, 아이를 잃은 이스라엘인 부모가 오열한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인이다.

 

클로에는 이편과 저편,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다.

클로에는 에바(이스라엘 군인)와 랑드, 파이살, 양편 관계를 모두 포기하지 못한다.

현실을 알아갈수록 마음은 팔레스타인에 기울지만,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 놓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의 저항운동을 묵인하거나 소극적으로 동참하는 게 자신의 최선이다.

 

이편과 저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팔레스타인 친구 랑드는 사산을 하고,

클로에는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실상 저편에 서는 것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편에 들어서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그 일을 한 순간,

영화의 첫 장면이 되풀이된다.

 

너무 처참했다.

더 괴로운 건, 이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내용의 비극성과 맞물려, 여러 질문을 수려하게 던진다.

 

여러모로 오락가락하는 나에겐 뼈아픈 질문이다.

이를테면,

넌 노동자계급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편에 서겠다 이야기 하지만

정말 그들과 함께하는가? 넌 '프롤레타리아'가 될 수 있는가?

난 언제든지, 이 공간을 떠날 수 있지 않은가?

난 클로에 같은 이방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그렇게 네편/내편이 구분지어지지는 않지만,

(애당초 '대중으로서' 노동자들은 혁명적이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질문일터이다.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선택지는 사치일 뿐이다.

난 나에게 선택지가 던져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극의 마지막은,

이 비극이 어떻게 무한회귀하는지를 보여주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지 질문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복합적이다.

극 중에서 에바는 자신도 힘들다고, 이 싸움으로 얻는 것이 있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그러할 것이다. 그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래서 에바는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까?

자신의 동생을, 성전에 내보낸 파이살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 채, 파이살과 랑드를 도운 클로에는?

 

구조가 문제라고 퉁치며 답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끔찍하고, 처참하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난 죽은 듯 살기보다 죽어서 존재하길 바란다.

아무도 내게서 존재할 권리를 빼앗지 못하리라.

난 벽이 아니며 돌이 아니다.

고개를 들고 내 아기에게 가리라.

내 피여 내 이야기를 해다오.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여 안녕히.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인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3/12/15 11:34 2013/12/15 11:34

지나간다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냐는 질문.. 뭐, 좋다.


하지만,

그동안 목숨 던져가며 질문 던진이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잠잠하다, 왜?

이 추운 날 안녕하지 못하다며 노숙하고 고공농성하고, 심지어 음독하는데, 여기에는 답하지 않다가, 왜?

그동안 수도없이 목터지라 외칠 때는 아무도 듣지 않다,

이제와 마치 처음인 것 마냥 소비하는 언론과 대중을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연달아 붙어있던 대자보들 중, 용기없음을 고백하는 대자보에 너무 화가났다.

지금까지 용기없었지만 이제 나서겠다는 게 아니라, 난 용기없으니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그 태도.

좀 봐달라는 그 옹알이. 난 당신의 용기없음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당신의 용기없음이 최종범을 죽였고, 유한숙을 죽였으니까.

 

 

난 첫번째 대자보도,

이 세상이 잘못된 거고, 우리의 방관은 어쩔 수 없던 것이라고 합리화가 포함된 걸로 읽힌다.

 

안녕하냐고 묻는 거 좋은데,

그렇게 묻기 전에, 당신은 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그냥 놓아뒀는지,

당신은 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책임이 없는지,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앞으로 바뀔 여지가 하나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었다면,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반성없이 앞으로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역사이고, 상식이다.

 

 

덧붙여, 이 대자보가 뜬 건 고려대이기 때문일거라는 혐의가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언론이 '고려대 학생'들에게 가지는 관심만큼을,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에게 쏟았다면,

세상이 그리 안녕치 못했을까?

그리고 언론이 이렇게 다룬 것은 그것이 '대자보'였기 때문이라는 혐의가 들어서 또 불편하다.

각 대학교에 번졌던 최종범 열사의 분향소는 몇개 언론이나 실었나?

분향소와 대자보 사이의 간극.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시니컬한건가?

2013/12/15 10:55 2013/12/15 10:55

2013/12/05

높은 징검다리(?) 같은 걸 계속 건너뛴다.

징검다리라기보다는.. 그러니까 게임에서 계속 허공을 건너 뛰어야 하는, 뭐 그런 거.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는데 가면 갈수록 거리도 멀고, 내가 떠있는 곳 높이도 높다.

 

나중에는 뒤로 돌아보니 천길 낭떠러지고,

앞을 보니 갈수록 더 뛰어넘기 어려워지는 허공과 발판이 있다.

 

바닥을 내려다보면 아찔하기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끙끙거리기만 하면서

허공에 매달려 있다, 이건 꿈이야! 일어나야 해! 라는 강한 주문과 눈을 떴다.

 

... 지금 내 상황이려나.. 앞으로 나가긴 나가야하는데, 끝도 안보이고, 더 힘들 게 환하고...

2013/12/05 11:36 2013/12/05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