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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무너진 개혁과 대선, 그리고 변혁운동

[인권뉴스 운동평론]
무너진 개혁과 18대 대선 그리고 주체 통한 변혁운동



 

그간 정규직·대공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민주노조운동의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특히 관련 인사들이 노동자 주체의 정치세력화를 포기한 채 졸지에 철새로 주저앉은 현상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기록을 위해 최근 18대 대선 국면에서 이 모양을 가중시킨 장본인들의 이름을 불러보자.  

이용식(민노총 전 사무총장) 이영희(민노총 전 정치위원장) 이수봉(민노총 전 사무부총장) 김태일(민노총 전 사무총장) 곽태원(전 사무금융연맹위원장) 김형근(전 서비스연맹위원장) 구수영(전 민주택시 노조위원장)등 <이상 안철수 캠프행>, 배강욱(전 민노총 부위원장) 이경훈(전 현대차위원장) 장운(전 대노련위원장) 장도중(전 신용평가위원장) 문성현(전 민노당 대표) 이상현(전 민노당 대변인) 나지현(전 여성노조위원장) 김한상(전 사회보험노조위원장)등 <이상 문재인 캠프행> 

또한, 얼마 전 민노총에서는 부실투표(임시대대 의사정족수 부족 유회)로 인해 제7기 임원선거 절차가 모두 원인무효가 된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따라서 민노총은 현재 임원선거를 중단한 채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비대위 구성에 들어간 상태다. 민노총 중앙이 그야말로 무주공산이랄 수 있는 비상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다. 지난 2월 초 한국지엠 김일섭 활동가의 제안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동의한 활동가들은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을 꾸려 △정파적 질서와 한계 넘기 △현장에서 신뢰받는 현장활동가들 중심 △비정규직 동지들이 주체로 참여 △변혁적 현장실천 중심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추진을 기조로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선투본)를 통해 18대 대선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대통령을 ‘투쟁하는 민중 모두의 이름’으로 규정하고 기륭전자 투쟁의 성공 신화를 일군 주역의 한 사람인 김소연 활동가를 그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다. 

선투본은 ‘자본주의 반대와 정권교체를 넘어선 노동자‧민중의 직접 정치와 행동’을 주장하며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투기와 경쟁과 삶의 불안이 없는 세상 △차별과 배제가 없이 함께 사는 세상 △핵과 전쟁과 환경파괴가 없는 세상을 4대 과제로 내세운 유세를 진행 중이다. 선투본 유세는 울산, 평택, 유성, 전주, 동두천 등 전국의 고공농성장을 비롯하여 노동자들의 길거리 장기투쟁현장에 집중 연대함으로써 ‘당선’을 목표로 한 기존의 부르주아 선거유세와 달리 ‘의제투쟁’이라는 특별한 전술로 차별화하고 있다.  

‘의제투쟁’ 전술은 민노총 일각의 철새들 움직임과 상반되게 노동·사회운동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하고 있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지지선언은 강단으로 확대되어 전국 57개 대학 및 연구기관 교수와 연구자, 지식인 등 115명이 노동자대통령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 73명도 지지선언에 동참하는 등 확산일로의 ‘의제투쟁’은 대선이후 진보좌파진영의 재편성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노총만이 아니라 이러한 지각변동의 필요성은 최근 종잡을 수 없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하에 한광옥(전 민주당 상임고문) 한화갑(전 민주당 대표) 김경재(민주당 전 의원) 등 적지 않은 동교동계 인사들의 박근혜 캠프 합류는 그간 DJ에 기댄 지역정치에서 부르주아 계급정치로 제자리를 찾아간 것으로, 통진당 사태에서 빚어진 진보정의당이라는 또 다른 회색의 탄생을 오히려 조소케 한다. 결국 이는 87년 6월항쟁 이후 오늘까지 진보좌파진영을 끊임없이 교란해온 ‘비판적 지지론’의 시효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반증한다. 

또 다른 필요성의 하나는 운동의 내부인 것 같은 외부로서의 ‘여성운동’이다. ‘여성대통령’을 강조한 박근혜 후보가 국민들로부터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동안 운동 내외부를 치명적으로 관통하며 여론몰이에 성공한 성性분리주의인 ‘급진적 여성주의’ 운동의 반동적 성과로 이해해야 한다. 박근혜 캠프는 빨간 색깔부터 여성운동까지 이용할 정도로 지능적이므로 이제야 ‘생물학적 여성’ 등의 한계를 거론하며 뒷북 치고 있는 비박·반박 여성운동의 자기모순적인 비판에 일체 개의치 않을 정도로 여론장악에서 이미 우위에 서 있다. 문제는 주류 여성운동의 이러한 패닉현상 해소에는 오직 문재인이 답이라는 운동적 한계가 이들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짧은 예이지만, 이렇듯 운동과 시대정신은 필연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은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의 ‘의제투쟁’과 함께 노동운동의 진로에 대한 진정성 있는 비판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대선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한 노동운동의 업그레이드가 각별히 주목된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노혁추)은 ‘혁명’지(대선특보 1호)를 통해 이번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의 성격에 대해 “희망은 가진 자들 간의 권력 이동에 불과한 허구적인 정권교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 투쟁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모아내서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자본독재에 대항하는 계급적 전선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규정, ‘불편한 진실’을 서슴없이 제출했다. 

노혁추는 특히 쌍용차 문제에 대해 “'내 문제 해결‘로 빠져나가는 것은 정치권에 기대고 야권 대선후보들에 활용 당하고, 결과적으로 정권교체 지지몰이에 복무하는 길”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정치권에 의한 국정조사로 쌍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쌍차 활동가들의 국정조사 편향 기조가 잘못됐다는 인식이다. 즉, 쌍차 문제는 “이미 단사의 문제가 아니”므로 “정리해고 철폐투쟁으로 확대될 때만이, 계급적·사회적 연대투쟁으로 확장될 때만이 해고자 복직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황기를 맞아 지금은 사선에 선 노동자들이 자본에 맞서 전열을 재편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개별사업장의 요구를 들고 각기 문제의 단사와 기존 정치권에 SOS를 타진하는 식의 접근을 한다면 이는 운동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바로 그 민주노조운동의 폐해를 답습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 명백하게 한계에 봉착한 ‘개혁운동’을 노동운동이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되는 것도 별로 없이 여기 포진한 철새들과 함께 노동·민중운동에 대한 강력한 포섭이 진행되어 자본에 맞선 전선 형성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박근혜가 되면 현 정권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노동에 대한 적대적 모순이 그대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서푼어치 개혁운동이라면 모르되 “세상을 바꾸자”는 변혁운동이 만약 이들에게 기댄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운동은 미시적으로 때로는 우클릭으로 반동적 퇴행에 직면할 때도 있긴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진행방향이 좌클릭으로 부단히 전진한다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 우리는 ‘변혁운동’으로 새로운 전망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개혁운동의 시행착오 위에 변혁운동이 우뚝 서는 것은 역사의 법칙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다만, ‘불편한 진실’을 지혜롭게 풀어가며 꾸준히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글: 최덕효 (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20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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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 / Dr. Stephen Davies

 

[번역]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 2012·11·23 02:31
 
 

스티븐 데이비스(Dr. Stephen Davies)

옮긴이의 소개
최근 강력 시행되고 있는 강제성 금연정책과 주폭과의 전쟁 등 시민 건강 및 안전과 관련된 정책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와 관련, 끽연 자유권을 위한 조직(Forest)에서 발간한 스티븐 데이비스 박사의 <<건강 파시즘의 역사적 기원>>에서 제 1장 “건강 파시즘 사상”을 옮겨 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어떤 사상이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역사를 아는 일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이해하려면 18세기 “2중혁명”(얼마 전 타계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규정) 즉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이래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성패의 역사를 학습하여 성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까닭이다. 이 책은 제 1장 건강 파시즘의 사상, 제 2장 예방접종 논쟁 1808-1867, 제 3장 ‘사회적 위생’과 우생학, 제 4장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 최형록(인문학자) 
출처: www.forces.org/articles/forest/fascism.htm


머리말

서양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오늘날 개인의 자유에 가장 음험한 위협은 “건강 파시즘”의 위협이다. 이것은 여론 일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며 특히 정치적 엘리트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에 더더욱 의미심장한, 사상과 태도 전체이다. 이 사상에 대한 세상의 평판 탓에 이 사상은 분수에 넘치는 지위를 누리면서 비판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 영향력과 짝을 이루어 여론에 심각하면서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건강 파시즘” 사상은 의료업계를 비롯한 많은 힘 있고 영향력 있는 단체들뿐만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는 많은 압력단체들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 사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사상은 일관성 있는 체계로서 연관된 행동 프로그램을 갖추고  약 150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 주장과 그에 따른 강령의 정밀한 내용은 때때로 변화를 겪어왔다. 이전에는 “연약한 마음”과 “도덕적 비행”과 같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에 오늘날 그 초점은 식사, 흡연, 그리고 알코올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근본 가정들과 논의 방식들의 깊은 수준에는 연속성이 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건강과 공공정책에 관한 논쟁은 본질적으로 이전의 쟁점들과 동일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논쟁들과 그 결과를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건강 압력단체들의 성격 그리고 무엇이 이해관계에 걸려 있으며 어떻게 하면 “건강 파시스트들”에 가장 잘 저항할 수 있는 지를 보다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1장 건강 파시즘 사상

“건강 파시즘”의 기초 사상은 무엇일까? 그것의 기본 가정은 사람들의 건강을 1차적으로 결정짓는 요인은 환경적이거나 내재적인 요인들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즉 특정 개개인이건 주민 전체이건 이 양자의 건강을 결정짓는 것은 식사, 습관, 생활양식, 노동 유형 같은 문제들, 세대 조직, 계급구조 같은 사회구조들 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의학적 치료를 사용해서라기보다는 이런 사회적 요인들을 통제하고자 함으로써 개개인들과 사회 전체의 건강을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 받지 않는 사회생활을 수반하는 예방활동. 이것은 본질적으로 논쟁거리인 것은 아니다-건강과 질병 대다수를 이런 방식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질병들 혹은 조건들의 발생에서 계급적 차이와 국가별 차이가 뚜렷한 것이다. 하지만 “건강 파시즘”에서는 다른 규범적 가정들이 평범해 보이는 이 믿음을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첫째, 방법론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집단주의.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민족, 인종, 혹은 사회 그 어느 것으로 정의되든 집단이 우선 된다. 개개인의 건강과 복지는 그것이 사물화된 집단의 복지에 기여하는 한 중요하다. 반대로 개개인의 병과 나쁜 건강은 그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보다 큰 우선적인 집단적 실체에게도 해롭다. 개인은 오로지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집단 내에서만 존재하며 그러하기에 그들은 집단에 기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들은 자기 나름으로 자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나쁜 건강은 어떻게 초래되었든 바로 그 개인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전체 사회 그리고 권력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한 것이다. 건강은 사적인 문제도 여흥의 선택, 식사 그리고 생식과 연관된 문제들도 아니다. 

둘째, 생활양식, 식사, 그리고 생식과 같은 문제들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암암리에 혹은 분명히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 선택들은 비인격적인 사회적 힘들 혹은 생물학적 필요 혹은 광고나 순응하고자 하는 욕망과 같은 해로운 영향력들에 의해서 미리 결정된다. 자유의지라는 요소가 인정되더라도 사람들은 무지하고 의지가 약해서 자신들에게 무엇이 좋은 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된다. 
어떤 경우이든 집단주의적 가정을 하면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그런 선택들을 해서도 안 되며 그리고 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이 흡연을 할 것인지 음주를 할 것인지 혹은 자식을 낳을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에서 집단적 이익이 최상인 것이다. 

셋째, 이 사상에서는 엘리트가 있어서 월등한 지식을 가지고 무엇이 대중에게 좋은 것인지 대중들 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엘리트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구성원들은 의사들과 의료 과학자들 이지만 다른 집단들과 사람들 역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 명제7의 역은 가장 버림받고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층 혹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이다.

넷째, 엘리트의 월등한 지식은 가치중립적인 탐구에 기초한 과학적인 것으로 그리고 과학적인 까닭에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현대문화에서 과학이 누리는 높은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장들과 판단들은 보통 사람들의 비판으로부터 면제된다. 

이상의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다수의 자유롭지 않은 선택 혹은 다수의 잘못 된 선택 그리고 엘리트의 우월한 지식을 전제한 집단적 이해관계는 개인들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도록 혹은 사람들이 취할 수도 있는 일을 단념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공적 권위, 국가는 건강 일반의 공공선을 진흥시키는 데 우선 관심이 있으며 과학 엘리트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면서 이런 목표를 추구할 때 국가가 사람들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상세하게 규제하는 일이 정당화된다. 

이런 행위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서 과세와 같은 방식 그리고 국가에 전권을 부여하는 것을 수반할 수 있다. 생활방식과 같은 문제들은 공공정책의 일부가 된다. 

실제로 이것은 국가의 행위와 규제라는 정말 만만찮은 의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이것은 세계보건기구의 간행물들에서 가장 완전히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정치화하고 조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건강을 근거로 사생활을 국가가 규제할 것을 옹호하는 많은 캠페인과 압력단체들에는 특정사안에 초점을 맞춘 제안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은 흡연, 식사, 알코올, 생활양식 전반 그리고 성 행위 같은 문제들에 관심이 있다. 이런 캠페인들 모두는 공통된 이데올로기로 연결되어 있으며 회원자격과 지지가 겹쳐있다. 취지상 과학적 기초를 갖추고 있고 의심할 바 없이 건강의 향상에 자임하는 덕에 그들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ASH(흡연과 건강 행동) 그리고 알코올 관심(Alcohol Concern)과 같은 현대 압력단체들은 다른 초기 단체들의 지적 후손들이다. 역사적 탐구는 그런 단체들이나 운동들의 몇몇 측면들을 밝혀준다. 그것들은 회원자격이라는 점에서 다소 엘리트 집단들이며 그들의 의제들은 계급적 입법이라는 요소가 두드러진데 그 효과라는 점에서 중립적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계급에 영향을 끼치게 될 강령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그 강령이 어떤 계급들을 상대적으로 더 강타하게 되거나 그 목표가 엘리트들 보다는 하층 계급들의 샐할양식과 선택들을 형성하고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건강운동은 엘리트들 일반이 아니라 특정 계급, 주로 공공 서비스에 고용된 숙련된 자격을 갖춘 전문직 종사자들 계급으로부터 회원들을 끌어 왔다.

둘째, 역사적으로 그런 운동들은 국가권력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주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럼으로 그들은 어느 모로나 인습적 의미에서 “좌익”이 아니다. 개개인과 집단들을 특정 정치세력으로 색칠하자들면 사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이나 보수주의적이거나 반동적이랄 수 있다. 
그런 “건강 파시스트” 운동들에 대한 저항은 정치적 스펙트럼 가운데 일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종종 사회주의자들이 지도하기도 해왔다. 따라서 온갖 색조를 띠는 집단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로 구분하거나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존하는 엘리트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다른 자들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 건강운동이 제기하는 논의들은 취지는 과학적이지만 뒤 돌아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과학적 내용이라는 것이 종종 빈약하고 대단히 논란거리 이다. 보통 그 주장들은 분명히 규정된 사회집단의 이익을 진흥시키는 한편 중립적이면서 이해관계를 떠난 듯한 효과를 초래해 왔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누구든 말해줄 것 같이 이런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과학주의, 과학적 논증을 잘못 적용하기 그리고 이기적 목적을 진흥시키고자 과학의 위의와 지위를 이용하는 고전적 실례 인 것이다. 

이상이 의미하는 바는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담배와 알코올 소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논쟁들은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계급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만큼이나 근본적인 정치적 원리에 관한 문제들이다. 

이전 논쟁들에서 이런 점을 명백히 인식해왔으며 이런 논쟁들을 연구해보면 무엇이 걸려 있는지 그리고 현대 “건강 파시즘”의 폭 넓은 동류성과 뿌리를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렇기에 대단히 경멸적인 “건강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 

                    
                    △ "끽연은 파시즘보다 건강하다"(Bureaucrash 그림)

▒ 번역= 최형록(인문학자)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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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대선투쟁에 대한 진보좌파의 태도

[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대선투쟁에 대한 진보좌파의 태도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야권연대 반대와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의  12.19 대선 대응에 대해 좌파진영 일각에서의 비판이 논란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부르주아 선거 무용론(無用論)이다.
코뮤니스트정치조직(CPO)에서는 지난달 19일 발표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명의의 문건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에서, “(변혁모임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둘째, 조합주의 정치활동 한계론이다.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도 최근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74호) 김인해 명의의 문건 “'노동자 대선 후보 전술'은 역사적 퇴행이다”에서 “노동자 대선 후보 전술이 10여년전처럼 반복해서 결의되고 있”는 것은 “조합주의적 정치활동에서 비롯된 정체가 주원인”이라면서 조합운동이 “기존 정당들에게 정치적 압박이란 이름으로 청원하고 타격한 것”밖에 없어 “스스로 정치쟁점을 만들고 투쟁을 한 경험도 적고 현안문제를 계기로 체제에 대한 분노와 회의를 노골적으로 표하거나 자본주의는 안 된다고 대놓고 싸워본 경험은 더더욱 없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제껏 봐왔고 익숙한 민주노동당 식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고 전망했다.

셋째, 비민주적 후보선출 경계론이다.  
사회주의 유기적 지식인은 1일 온라인 월간신문 ‘붉은 헤게모니’의 “이제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제하의 문건에서 ‘후보 경선’과 관련, “만약 ‘경선절대불가’와 ‘변혁모임의 투쟁하는 노동자 후보여야만 한다’면 변혁모임은 변혁모임만으로 의식적으로 대선을 조직해야”하며 이럴 경우 “실질적으로 변혁모임만의 대선운동을 하면서 독자후보운동의 공동선거대응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이 경우에 대선은 편협한 조합주의 이익에 기초한 조합주의 당을 건설하기 위한 요식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경계했다. 

부르주아 선거 무용론과 조합주의 정치활동 한계론에 대해서는, 최근 변혁모임이 노동자대통령 후보선출위원회에서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단독 등록할 것을 결정한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조합원(공동소집권자)이 변혁모임의 기조를 담아 발표한 내용과 유비하면 좋을 듯하다.   

김 후보는 지난 10월 13일 전국활동가대회 발제에서 ‘2012년 대선투쟁 결의’를 통해 이번 대선투쟁의 목적으로 (1)대선이라는 정치 공간을 통한 노동자 민중의 전면적 투쟁 조직화 (2)대선투쟁을 통한 현장투쟁과 대중투쟁을 강화 및 노동자 민중의 정치·계급의식 고취 (3)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토대 마련과 ‘현장의 노동자 정치를 강화하는 대선투쟁 전개’를 제시한 바 있다.

물론, CPO가 지적한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이나 해방연대에서 말하는 ‘후보 전술이 10여년전처럼 반복해서 결의’되고 있다는 등의 우려에 대해서는 이념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전위적인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문제 삼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간 좌파서클들 사이에서 시도된 내부적 이론투쟁이 실패하는 등 전망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오늘까지 현장투쟁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제안·추진하고 있는 후보전술은 정세적으로 유의미하다. 이는 특히 변혁모임이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을 기조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지난시기 ’명망가형‘이었던 백기완·권영길 후보 당시와 커다란 차이가 있다. 

다만, 사회주의 유기적 지식인이 주장한 ‘(민주적인) 후보 경선’에 대해서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다급한 정치일정으로 인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시간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열린 경선이 가져올 수 있는 불협화음으로 인해 후보전술 자체가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산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현실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변혁모임이 제시한 기조와 이를 주도하는 활동가들의 진정성과 헌신성에 일단 신뢰를 보내는 정도로 관용함이 좋을 듯하다.  

변혁모임의 후보전술 효과는 연석회의에서 즉시 드러났다. 야권연대 반대·독자후보 완주 기조와 전국활동가대회 등 변혁모임의 일관된 노동자정치 행보는 야권연대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채 변혁모임을 염두에 두고 암중모색하던 연석회의의 더 이상 기웃거림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는 아무리 ‘진보’의 외양을 띈 움직임이더라도 선거 때만 되면 여지없이 야권연대에 올인하며 지분에 집착하던 과거의 행태를 전복시킨 쾌거로 봐야 한다. 

또한 5일 유시민(진보정의당)은 변혁모임의 ‘김소연 대통령후보 출마’에 대해 “금속노조나 다른 노조들이 하는 일이 아닌 진보정치권이나 노동계의 소위 정파라는 내부 모임들 중 일부에서 하는 것”이며 “민주노총 전체에서 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이러한 폄하는 상대적으로 변혁모임이 그간 활동을 통해 야권연대에 치중하고 있는 민주노총 새정치특위와 분명하게 차별화하고 있음을 널리 알린 정치적 성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유시민의 친親민주노총 의도와 무관하게)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에 찌든 민주노총을 바꾸는데 변혁모임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동자대통령 후보 김소연의 등장도 각별히 유의미하다. 김소연 활동가는 노동자로서 목숨을 걸 정도의 지난했던  기륭전자 싸움과 단사투쟁을 뛰어넘은 끊임없는 사회적 연대의 노력으로 후보에 이르렀다. 이는 ‘여성대통령’을 강조하는 박근혜나 갈지자 행보를 걷고 있는  심상정·이정희 류와도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현장노동자로서 학벌카스트로부터 자유로운 김 후보의 계급적 조건이 자본의 본질과 운동에서의 회색지대를 폭로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붉은 헤게모니는 변혁모임이 주도하고 있는 독자대선후보전술에 대해 “더럽지만 부르주아 선거에 당당하게 참가하여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부르주아 선거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하고 깨끗하게 구경할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진보좌파진영에 결단을 요구했다.   

그렇다. 변혁모임의 진정성과 “죽 쒀서 개 주지 말자!”고 외치던 김소연 활동가의 투쟁성을 인정하는 분들은 미진한 부분이 있다 해도 목소리를 함께 내며 힘을 보태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참이 어려운 분들은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어차피 선거 후에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해 만나야만 될 동지들이기에 과도하게 날을 세우는 것은 동지들 사이의 예의가 아닌 듯하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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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운동평론]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 통해 본 페미니즘의 현주소

 

- 사회주의 페미니즘 외피 쓴 급진적 페미니즘의 패권주의

 

최덕효 (인권뉴스 대표)


최근 벌어진 이른바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는 한 학생회장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국내 주류 페미니즘의 파쇼적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결코 이해당사자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조직이 개입된 일그러진 여성운동의 현주소라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의 대책위원회‘(대책위)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학생위원회 관악분회, 서울대 학생행진, 여성주의 자치모임 공간 등 서울대 학생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와 관련하여 서둘러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성性분리주의적 급진 페미니즘에 기반한 여성운동의 파쇼적 작풍은 여전히 대학을 비롯 사회 전역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해본다.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일지

1. 2012년 3월, 서울대 사회대 여학생 A씨는 연인 관계였던 남학생 B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음.

2. 이에 여학생 A씨는 B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요청서를 사회대 학생회에 투서(요지).
"B씨가 대화할 때 줄담배를 피우며 남성성을 과시해 여성인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침해했다“

3. 사회대 학생회장이었던 유수진씨는 남학생 B씨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해 신고를 반려.

4. 유수진씨, 다음날 B씨에게 서한 보여주며 A씨에게 사과하라고 권함. B씨에게 “사과 받았다"라는 A씨의 문자 받음.

5. A씨 등, 유수진씨를 성폭력 2차 가해자로 규정
"사과는 정치적인 것이었고 인간적 사과는 아니었다"며 전 남자친구의 줄담배로 상처를 받았으니 이는 곧 폭력에 해당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며 유수진씨를 비난. A씨와 주변인은 유수진씨를 “성폭력 2차 가해자”라고 몰아 세움. A씨의 말
“관악 학생사회 여성주의 운동은 성폭력을 강간으로 협소화하지 않고 외연을 넓혀왔다...반 성폭력 운동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라"

6. 유수진씨, A씨가 수차례 B씨에게 가한 언어폭력 증언  
A씨 "X발", "안경을 부수면 살인미수라던데 그렇게 하고 싶다" 

7. 유수진씨, A씨의 인터넷 공세에 대응. 
"(A씨는) 나를 2차 가해자로 취급하고, 내가 A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사건을 요약해 트위터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이에 화가 나서 나 역시 A씨의 언행을 비난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8. 유수진씨, A씨로부터 받은 정신적 상처를 호소
"A씨가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느낀 사건을 빌미로 무제한적 폭력을 휘두르면서 B씨와 나 등 가해자로 규정한 사람에게 인권을 박탈하고 그 사람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듯이 느껴졌다" 

9. 유수진씨, 대책위의 논리 비판
"A씨와 A씨를 옹호하는 대책위 논리대로라면 '가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를 죽일 권리까지 줘야 한다. 이건 피해자의 무한정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어떤 비판도 받지 않겠다는 '함무라비 법전 수준 이하'의 윤리"

10. 유수진씨, 10월 18일 사회대 학생회장직 사퇴. 학생회 홈페이지에 게시 
"사회대 학생 활동가 대부분이 여성주의자인 입장에서, 왕따를 당한 것과 비슷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껴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거식·폭식증 등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사회대 학생회칙이 규정한 '성폭력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지만 이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할 의사가 없어 학생회장으로서 직무에 맞는 책임을 다할 수 없다"

11. 10월 23일 대책위 사과문 발표. 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서울대 학우들과 상처 입은 당사자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과한다. 현명치 못한 대처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서울대 학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A 씨를 최대한 긍정하는 것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행위가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A씨가 '성폭력'이라고 제기한 부분들에 대책위가 명확하게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건 성격규정을 능동적으로 하지 않아 '담배' 부분까지 무리하게 성폭력으로 인정해버리는 모양새가 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왜곡한 것을 반성한다. B씨와 유수진씨에게 행해진 폭력에 대해 사과드린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해와 적용에 대해 엄밀한 성찰을 수행하고 대책위 운영 방식을 개선하겠다"
 


배운 페미니즘 행한 여학생 A씨

정황으로 볼 때 이 사건의 발단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연인들의 이별 스토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성애자인 이들 커플이 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보자.(성性을 반대로 놓아도 이야기는 유사하다.) 

B(남)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다. A(여)는 전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매우 힘들고 불쾌한 상황이다. B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별을 강권(?)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떠날 때는 말없이> 유행가처럼 “그래! 알았어, 잘 살아”라고 초연하기도 어렵고, 영화처럼 “지옥에나 가라!”며  따귀 날리기도 난감하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A는 눈물만 삼킨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일반의 사랑 이야기와 맥락이 달라진다. A의 내면에 급진적 페미니즘의 개입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그렇게 헤어졌다. 시간이 흐른다. 사랑이 미움으로 돌변한다. “남자.. 남자라는 족속이 문제인 거야”. 그날 B의 행동에서 그의 담배 피우던 모습과 일방적인 이별 선포가 겹쳐지며, “이거 뭐야, 지가 뭔데!” “담배.. 그것도 줄담배, 상대방에게 그렇게 해롭다는 간접흡연으로 정말 괴로웠지.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내가 발언도 못하게 방해했잖아. 그래. 그런 모든 분위기의 남성성이 결국 문제였던 거야. 넓은 의미의 성폭력.. 맞네!”  

여기서 우리는 A의 판단이 나름 일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학 학생회칙에서 성폭력은 엄연히 신체적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차별, 성희롱, 성역할 구분 단어 사용 등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칙 제정은 그동안 페미니즘 투쟁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를 바탕으로 학내에 제도화한 것이기에 하등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학생회장인 유수진씨가 감히 투서를 반려했다. 뿐만 아니라 유씨는 사과는커녕 자신감 있게 논쟁을 이어나가며 A씨의 언어폭력을 밝히고 인터넷 공세에 대응했다. 

A는 분노했다. A가 보기에 “성폭력 2차 가해자”인 유씨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이러한 A의 논리를 적극 옹호하게 된 주변인들과 대책위 또한 유씨를 거세게 압박했다. 결국 유씨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존재하기 어려운 학생회 분위기에서 반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힌 채 회장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별 스토리’에 개입한 페미니즘

누구나 사랑할 때는 바보가 된다고 한다.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고 서로 관용적으로 대하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애할 때 A는 남학생 B가 담배 피우는 것(평소 담배를 피운 것을 전제했을 때)과 그의 남성성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만약 그 점이 애초 이들 사이를 해칠 정도로 심하게 눈에 거슬렸다면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애감정에서 남성성은 종종 사랑의 촉진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A가 새삼 문제를 제기한 담배와 남성성은 B의 이별 선포에 대한 반작용이나 방어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B의 당시 어투가 A에게 강압적으로 비춰져 기분이 몹시 상했다면 마땅한 조치가 따르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유수진씨가 △B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해 신고를 반려한 것 △B에게 (A의)서한을 보여주며 사과를 권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B는 유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A에게 사과를 했으므로 그만하면 유씨와 B의 사후조치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연인들의 이별 스토리’에서 비롯된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더 이상의 개별적인 귀책사유로 따지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통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를 수 있는 대책위를 포함해 관련자 모두가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즘이라는 철지난 이데올로기의 영향권 아래 놓인 피해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이념적 기반인 급진적 페미니즘과 진보적 여성이론이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미 좌파진영에서 이를 우려하는 문건을 수차례 제출한 바 있다. 해외에서도 인류학·정신분석학·사회학 등을 토대로 여성운동(제3세계 여성운동 등)을 폭넓게 재구성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서구 페미니즘의 패권적 경향이 강하다. 


자신들 보위 위한 페미니즘 

4인터는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문건(진보넷 속보 44206번 문건)을 통해 “비과학적 부르주아 사상이 제어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유사한 사례로 2008년 있었던 “해방연대 활동가가 '민투위'건과 관련하여 당시 노힘의 무원칙성을 비판하기 위해 노힘과 민투위를 '아가씨와 건달들'에 비유”한 것을 '노힘' 활동가들이 해당 해방연대 활동가를 “‘성폭력’ 가해자로 규정했고, 그 규정을 부정하는 다른 논자들을 ‘2차 가해’로 몰았”다고 상기시켰다.  

또한 “만약 피해자의 명망(?)이 없고 그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 역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기 십상”이었으며, “십 수 년 간 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구축되어 온 '성폭력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론'의 권위에 누구도 함부로 도전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류이건 비주류이건 남한의 여성주의자 대부분은 이 '성폭력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론'의 충실한 지지자”임을 그 이유로 들었다. 

아울러 “이 사회의 그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일반 대중이 접하자마자 터무니없음을 간파한 사안에 대해서, 마치 아무 일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듯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핵심 이론의 권위를 보위(!)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보위(!)하기 위함”이라고 4인터는 강력 비판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비판

해방연대의 경우에는 ‘사회주의 강령을 토론하자(제4호)’에 실은『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제하의 문건을 통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정리한 바 있다. 

해방연대는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이론에 있어서,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과는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가부장제를 주장하면서 이원론적 구조로 나아갔”으나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내지 못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원론적 입장은, 결국에는 여성운동을 하나의 부문운동으로서, 사회주의 변혁운동과 병렬적으로 위치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게”되므로 결국에는 “‘급진 여성주의’의 입장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러한 페미니즘은 “노동자계급적 여성해방운동보다는 범계급적 여성운동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여성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사회주의 여성주의’로 빠지는 것을 명확히 비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희생자 자처하기 속내

4인터에서 페미니즘을 ‘비과학적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규정한 데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다수 페미니스트들의 기반은 대학/강단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남한사회가 지닌 가공할 학벌카스트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성폭력과 ‘2차 가해’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배경에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엘리자베트 바댕테르(행동주의적 페미니스트, 프 에콜 폴리테크니크 철학과 교수)의 견해를 경청할 만하다. 바댕테르는 급진적 여성운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자신의 책 『잘못된 길』에서 ‘희생자 자처하기’의 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바댕테르는 “‘희생자’라고 하면 선한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희생자가 항상 옳다는 이유 말고도, 가해자에 대한 가차없는 증오에 비례하여 피해자에게는 동정심이 유발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을 희생자화’하면서 여성의 실제적 위상과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공통점을 갖게”되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골치 아픈 문화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차이점들을 요술지팡이처럼 한번에 없애 버릴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억지논리에 대해,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유럽’ 여성들의 상황과 ‘동양’ 여성들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도처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들은 증오와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는 “파리 7구에 사는 부르주아 집안 여성과 파리 외곽에 사는 젊은 아랍 여자가 똑같은 투쟁거리를 가지고 있다고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조소한다. 

바댕테르는 “남성의 절대권에 대항하는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통적인 여성성에 남성을 끼워 맞추기 위해 남성성을 파괴하는 것은 오류이거나 실수”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끊임없이 주장해 왔던 ‘남자들과 끝장내기’는 결국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을 평가하는 최종적인 잣대가 되면서,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급진적 여성운동을 ‘잘못된 길’이라고 지적한다. 


국가주의 페미니즘화, 파쇼화

‘서울대 담배 성폭력 사건’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A가 B에게 막무가내식 성폭행 혐의를 부여하기 위해 ‘담배 피우는 행위’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A가 정부 및 지자체들이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강제성 금연정책을 받아들여 자신의 필요에 따라 줄담배와 남성성을 꿰어 맞추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A와 주변인들 그리고 대책위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데올로기인 ‘건강파시즘’에 포획됐음을 반증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외피로 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국가주의 페미니즘으로 자연스레 이행 중이며 파쇼화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과 따른 구체적 후속조치를 

위의 4인터 문건처럼 “만약 피해자의 명망(?)이 없고 그리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 역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학생회장이 유시민의 딸인 유수진씨처럼 여학생이 아니라 어떤 이름 모를 노동자민중의 아들인 ‘남학생’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들이 쳐놓은 성폭행과 ‘2차 가해’의 올무에 여지없이 걸려들어 더 심한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어쨌든 대책위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왜곡한 것을 반성”하며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해와 적용에 대해 엄밀한 성찰을 수행하고 대책위 운영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했으니 재앙적인 운동의 종식을 위해서도 향후 대책을 엄정하게 주시할 일이다. 

또한 ”B씨와 유수진씨에게 행해진 폭력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한데 대해서는 ‘사과’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나와야 할 것이다. 대책위가 두 학생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는데 일익을 담당해놓고는 달랑 사과문 하나로 끝내는 건 있을 수 없으므로 이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배상은 물론 원직복직(학생회장) 조치가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인권뉴스 201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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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인권뉴스 운동평론  2012.10.8] 

건강파시즘과 낙인찍기, 
그 무서운 음모와 공모자들


건강한 모럴 테러리즘?


   “오늘은 또 어떤 험한 일이 벌어질까?” 차마 눈 뜨기가 무서운 세상, 연일 성범죄(성폭력)으로 도배하는/되는 언론들. 객관적 사실의 실체와 (성)범죄의 발생 원인과 분석은 수박겉핥기 수준이지만, 여하튼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평균 43명(2010년 1만 5천여 명, 자살률 OECD 1위)이 목숨을 끊는 사회적 살인과 정신분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 하루도 위태롭게 지내고 있다.  

잡다한 정치권력들이 마침 대선 길목에서 선정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강력한 ‘도덕’의 칼을 뽑았다. 

화학적 거세에서 물리적 거세까지 일사천리로 나가자고. 전자발찌도 더욱 강화하고 성범죄자 신상을 동네방네 알리자고. CCTV를 대폭 증설하고 불심검문 정도는 순순히 받으라고. 이참에 사형제를 존속시켜 흉악범들로부터 우리 아이들과 연약한 여성들을 보호하자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품안에서 ‘안전’하게 살자고 말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성특법) 시행 직후 현장 성노동자들을 만나 전국 성노동자 조직을 제안(성매매 여성 연대기구 뜬다: 경향신문 2004.11.06/ `성매매 금지법` 반대 첫 인터넷언론: 문화일보 2004.12.15)하고 성노동/성노동자운동에 직접 관련해 온 한국인권뉴스는, 성특법을 시작으로 향후 유사한 법·제도들이 등장해 파시즘의 강력한 일상적 수단으로 귀결되리라 예상하고 먼저 성특법 폐지운동부터 나섰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확산돼 ‘건강파시즘(Health Fascism)’에 대한 저항운동으로까지 확산해야 할 형편이다.   

  성특법 시행 8년이 지난 지금 그 아류인 법·제도들은 ‘건강이데올로기(Health Ideology)'로 가일층 진보?했다. 역사적으로도 나치(NAZI)가 ‘모럴 테러리즘’(대상: 술·성性·담배, 방식: 낙인찍기stigmatization)으로 인종청소 등을 통해 아리안족의 건강성을 강제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그 길을 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性분야(매춘/성매매)는 실효성과 무관하게 어쨌든 금지주의 성특법으로 법제화를 이루었으니 담배와 술이 그 다음 순서였다. 그 외에도 건강파시즘을 뒷받침 하기위한 법·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금연구역을 크게 넓히고 과태료를 10만원까지 증액시켰다. 도심지에서는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담배 피울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게 했다. 

대 시민 서비스도 친절하게 진보?했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본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몰래 신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T알리미 서비스 시범지역: 강남구, 대전시 등) 덕분에 완장 찬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됐다. 군(軍)도 입영장병들에게 금연서약서를 작성케 하는 등 강력한 금연운동으로 화답했다. (인권침해 관련, 본지 2012.6.28 인권위 진정) 

  경찰청은 술에 취해 주민들을 폭행하거나 관공서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주취폭력배’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도 공원에서 음주행위를 전면 금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음주를 못하게 강제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곧 입법예고된다. 내년부터는 대학 내에서의 술판매와 음주가 전면 금지되며, 따라서 대학축제 기간 동안 열렸던 일일주점이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의 대학 내 후원주점 행사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얘기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은가.  

  전과자의 일상생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 경찰이 입법예고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은 살인·성폭력·강도·상습절도·조직폭력·약취유인 등 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주소지 거주 여부, 가족 상황, 직업 및 직장 등 소재지, 교우관계, 재범 위험성 및 사회생활 적응성 판단에 필요한 자료 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재범 우려’가 높은 사람이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의적 잣대가 공권력의 도덕성?과 함께 어디로 불똥이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개인별 정신건강수준을 확인하는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한다고 선포했다. 취학 전 2회, 초등생 2회, 중고들 각 1회, 20대 3회, 30대 이후 각 10년마다 2회씩 정신건강을 묻는 문답지를 개인들에게 보내 이를 기준으로 위험군인지 아닌지를 가려내어 위험군인 경우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을 통한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상담들을 적극 권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진미(진단검사의학 전문의)는 “전 국민 정신건강검진이 국가 감시시스템의 일환으로 위험한 개인을 색출하여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배제의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거나, 전문상담시장의 마케팅이 될 수도 있다.”고 크게 우려한다. 

국민건강당, 권력 방해자들에 대한 규제

  건강파시즘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책으로 알렉스 쉬어러의『초콜릿 레볼루션』이 있다. 이 풍자소설에서는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의 모토로 삼는 ‘국민건강당’이 집권한 뒤 모든 단 것을 금지하는 ‘사탕과 초콜릿에 관한 특별법’을 선포하는 독재국가가 등장한다. 

‘초콜릿과의 전쟁’이 선포되고 단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먹거리를 억압당한다. 과자와 빵을 만들어 파는 서민들은 생계가 벼랑에 몰리고, 경찰은 초콜릿 탐지기를 지닌 채 거리를 활보하고, 청소년선도단은 동료를 감시·밀고하며 당에 충성한다. 집집마다 도청은 기본, 불법자들은 잡혀가 혐오치료법이라는 정신교육을 받은 뒤 통제에 복종하는 순한 양이 돼 복귀한다. 저자는 이런 폭압적 사회에서 초콜릿 밀거래자들을 희망의 저항투사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학자 스티븐 데이비스(Dr. Stephen Davies, 맨체스터 폴리테크닉大)는 오늘날 개인의 자유를 가장 교활하게 위협하는 것이 건강파시즘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 이와 관련하여 대중들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인해 공공정책에 심각한 해로움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연가 자유기구」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의 견해는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고의 문제를 넘어 우리들의 일상을 함부로 규율하려는 ‘건강파시스트’의 정체를 이해·폭로하고 저항하는 데 매우 유용해 보인다. 

스티븐 데이비스는 첫째로, 건강파시즘은 파시스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세밀한 건강추구 정책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즐겨 사용된다고 경고한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가 건강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건강파시즘에 해당하는 전반적인 프로그램들은 공동체 사회를 위협할 정도의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파시스트로 명명될 만한 사람들에 의해 제안되고 시행된다고 말한다. 이는 건강파시즘 프로그램들이 온갖 낙인찍기로 사회 구성원들을 이간질 시켜 갈라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국회입법과는 별개로 행정관료들에 의해 날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행정입법(위임명령, 집행명령, 행정명령 등)도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 건강파시즘을 추진하는 사회적 환경에는 엘리트주의적인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스티븐 데이비스는 건강파시즘 프로그램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습관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내용(건강정보)들로 채워지며 이러한 정책의 실현은 특정 엘리트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네 번째로, 건강파시즘은 (현재로선) 우파와 좌파가 혼재된 상태이며 따라서 건강파시스트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있어 모든 영역에서의 지원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性분야(매춘/성매매)의 경우 국내 성특법은 매우 후진적인 금지주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 주류 여성계에 의해 제안되고 좌우불문 모든 정치집단들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운동진영 또한 묵인·방조한 사실이 있다.    

다섯 번째로, 건강파시즘의 성격을 지닌 다양한 건강운동들의 핵심 전략은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패닉’에 대해 강력한 자극을 주는 데 있으며, 파시스트들은 건강파시즘의 관철을 위해 프로그램 제안 전에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본다. 이는 그 사회 대중들이 국가라는 빅보스의 도덕적 훈육을 통해 고분고분 순치될 정도로 정치적 의식이 저열한 상태라야 건강파시즘이 성공할 수 있다는 파시스트들의 지능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격조 높은 저항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철 지난 나치식 건강파시즘이 광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성특법 당시도 그랬던 것처럼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진보진영에서조차 이런 화두를 꺼내면 돌아오는 건 “난 성매매 반대해” “난 담배 안 피워” “술은 몸에 나빠”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지만 잘 안 되네”라는 단편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본주의 아래 파시즘이라는 구조적 음모와 재앙을 말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엄중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사안별로 개별적인 ‘도덕적 찬반론’ 수준에 머무른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건강파시즘에 공모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성특법 시행 8년, 그만하면 우리는 혹독한 후과를 지긋지긋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치르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파시즘에 제대로 맞설 수 있는 격조 높은 저항을 준비해보자.  


글: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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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형제 & 물리적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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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성폭력(강간) 폭증은 '금지주의' 정책이 주범

 

[운동평론] 성폭력(강간) 폭증은 '금지주의' 정책이 주범 2012·09·03 09:10
 

최덕효(대표겸기자)

 

유엔 성폭력 통계(UN Rape Statistics) 집중분석  

 

스웨덴(금지주의): 유럽 최대의 성폭력 국가로 전락해
한국(금지주의): 성매매 특별법 이후 성폭력 약 3배 폭증

독일(합법주의): 성폭력, 스웨덴의 1/7, 한국의 1/4 수준
합법주의가 비범죄주의보다 성폭력 범죄 발생 다소 낮아
    
매춘(성매매, 편의상 용어 혼용) 금지주의 국가의 성공적 모델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이 실제로는 유럽 최대의 성폭력 국가로 전락한 사실이 밝혀졌다.

스웨덴은 1999년 의회가 통과시킨 ‘성구매 금지법’으로 인해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완전 불법화했고 2003년에는 성매매와 관련된 새로운 추가 법안으로 인신매매 금지법을 강화한 국가이다. 한국은 성매매 금지 특별법(성특법)을 제정하는 데 스웨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자료가 실린 『유엔 성폭력(강간) 통계』(UN Rape Statistics. 경찰 기록분, 10만명당 범죄건수)에 의하면, 스웨덴은 매춘 불법화를 더욱 강화한 이후부터 성폭력이 대거 폭증(2010년 현재: 2003년 대비 254%)한 것으로 나타났다. 1)

스웨덴 10만명당 성폭력 범죄건수
2003년 : 25.0
2004년 : 25.2
2005년 : 41.9
2006년 : 46.3
2007년 : 51.8
2008년 : 59.0
2009년 : 63.8
2010년 : 63.5

상대적으로, 2002년부터 매춘 합법화를 시행한 독일의 경우는 2010년 현재 10만명당 성폭력 범죄건수가 9.4로 스웨덴에 비해 7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독일 10만명당 성폭력 범죄건수
2003년 : 10.6
2004년 : 10.7
2005년 :  9.9
2006년 :  9.8
2007년 :  9.1
2008년 :  8.8
2009년 :  8.9
2010년 :  9.4

『유엔 성폭력(강간) 통계』에는, 한국은 성특법 시행 이후인 2005년부터 현재까지의 자료가 빠져 있는데 이는 정부가 유엔에 기록을 보내지 않은 결과로 추정된다. 2004년까지 기록에는 한국은 12.7(2003년), 13.5(2004년)로 동년 대비 스웨덴의 절반 수준으로 나와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그간 국회 제출 등 언론에 보도된 경찰청 자료를 토대로 10만명당 성폭력 범죄 건수를 환산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는 엄청난 성폭력 폭증 현상(2010년 현재: 성특법 제정 이전인 2003년 대비 290%)이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건수는 불과 4년 만에 240% 폭증했다.    

한국 성특법 제정 이후 10만명당 성폭력 범죄건수 2)
2003년 : 12.7 (유엔 자료)
2004년 : 13.5 (유엔 자료)
2005년 : 15.0 (경찰청 자료 7,323건)
2006년 : 17.0 (경찰청 자료 8,376건)
2007년 : 18.0 (경찰청 자료 8,726건)
2008년 : 20.0 (경찰청 자료 9,883건)
2009년 : 21.0 (경찰청 자료 10,192건)  
2010년 : 36.9 (경찰청 자료 18,220건)

국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건수 3)
2007년 :   857건
2008년 : 1,203건
2009년 : 1,359건
2010년 : 1,922건
2011년 : 2,054건

한편, 『유엔 성폭력(강간) 통계』에 나타난 매춘 ‘비범죄화주의’(de-criminalization) 채택 10개국에 대한 ‘10만명당 성폭력 범죄 건수’는 잉글랜드(28.8), 아이스랜드(24.7 2009년), 노르웨이(19.2), 프랑스(16.2 2009년), 핀란드(15.2), 아일랜드(10.7), 이탈리아(7.6 2006년), 덴마크(6.4), 폴란드(4.1), 스페인(3.4) 순으로 평균 13.63을 기록했다.  

그리고, 매춘 ‘합법적 규제주의’ (regulamentarism) 채택 10개국에 대한 ‘10만명당 성폭력 범죄건수’는 벨기에(27.9), 뉴질랜드(25.8), 룩셈부르크(11.7 2008년), 오스트리아( 10.4), 독일(9.4), 네델란드(9.2), 스위스(7.1), 그리스(1.9), 캐나다(1.7), 터키(1.5) 순으로 평균 10.66로 나타나, 합법주의가 비범죄화주의에 비해 범죄건수가 다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 성폭력(강간) 통계』에서 미국은 27.3으로, 일본은 1.0으로 각기 나타나 있으나, 필자는 매춘 정책을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국가로 판단했다.

즉, 미국은 명목상으로는 금지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네바다주와 같이 자국 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합법적 규제주의를 시행하는 곳이 있는 등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또한, 일본은 ‘제한 적법’(업 소유 및 알선 불법)을 채택하고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거래 시장이 있는 곳으로 사실상 법시행을 유보하며 사문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이다.      

참고로, 매춘 정책으로 ‘합법적 규제주의’를 채택한 독일과 ‘금지주의’를 채택한 한국에 있어 두 나라의 여론과 정치권력의 행태에 대해 간략하게 고찰해본다.

2002년 1월 1일 발효한 독일의 "매춘(성매매) 여성의 법적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법“("Gesetz zur Regelung der Rechtsverhaltnisse der Prostituierten“ : 합법적 규제주의)을 제정하는 데에는 독일인들의 68%가 지지를 통해 힘을 실어주어 법제도화로 완성되었고,  그 시행 효과가 가장 탁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2004년 9월 23일 시행된 국내 성특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 금지주의)은 일간지 및 인터넷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치권은 애써 여론을 외면한 채 법 강행으로 일관, 예상한대로 오늘 전 사회적으로 가공할 성폭행 사고들을 자초하고 있다.


매춘(성매매) 관련 한국사회 여론조사 4)

[한겨레신문]
조사기간 2004년 10월 20일 수요일17:36 ~ 2004년 10월 28일 목요일15:44
질문) 성매매 특별법을 지지하십니까? 13443명 응답
1. 지지한다 4345명(32%)
2. 지지하지 않는다 8558명(63%)
3. 모르겠다 540명(4%)

[조선일보]
최종 조사일자 2004.10.02
질문) 여러분은 경찰의 성매매 특별법 강력 시행이 문제가 없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문제가 있으니 법 시행 속도를 조절하거나 강도를 완화해야한다고 보십니까? 4638명 응답
1. 문제없다 37.34% (1732명)
2. 문제있다 62.66% (2906명)  

[인터넷 여론조사 - 네이버]
조사기간 2004.9.21~ 10.26
질문)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로 성매매 근절에 효과가 있을 것인가? 26만8286명 응답
1. 큰 효과 25.89%
2. 음성화될 뿐 효과 별로 71.24%
3. 잘 모름 2.88%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적 폭력 현상이, 2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예로 들어 "지금부터 100일 간을 '범국민 특별안전확립기간'으로 정하고, 민관 합동으로 각종 반사회적 범죄의 대책을 수립하고 예방 방안을 세우자"는 식의 엄포와 강력 처벌로만 풀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성폭력에 대한 스웨덴의 참담한 정책 실패와 상대적으로 독일의 효과적인 성공 사례를 보고 있다. 아울러 ‘비범죄화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성과 또한 가늠할 수 있는 발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가 도덕적 ‘금지주의’ 정책인 성특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사회적 약자인 애꿎은 어린 아이들과 힘 없는 여성들만 계속 위험에 처하게 돼 있다.    

2001년 독일 가정부 장관 베르그먼(여성)은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세월이 증명한 것과 같이 (매춘에 대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솔직해집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법·제도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요즘 독일은 전 유럽에서 어린이와 여성들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국가군에 속한다.

그들은 처절하게 파시즘을 성찰한 결과 합리적인 제도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 우리는 대다수 보수·진보가 공모한 채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와 같은 인권침해성 '강력 처벌' 위주의 파시즘을 향해 맹돌진하고 있다.

대안은 있다. 무엇보다 우리들이 '자기검열'을 피해 좀 더 진보적인 성담론 학습으로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해외 합법주의와 비범죄주의에 대한 사례를 놓고 폭넓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민심을 수렴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보다 더 파시즘적 요소가 많은 성매매 특별법을 이런저런 권력들의 먹이사슬에 두고 더 이상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매춘에 대한 정책 5)

[금지주의]
‘금지주의’(prohibitionism)는 도덕주의적 접근의 매춘(성매매) 대책이다. 즉, 단순 성매매 행위를 포함하여 성매매 조장․알선행위 등 일체의 성매매 관련행위를 처벌하는 입법주의이다. 단순 성매매의 경우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처벌대상이 되는 ‘범죄인’으로 파악된다.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베트남 등 공산권과 한국, 스웨덴 등이다. 스웨덴을 제외한 금지주의 국가들은 성폭력 통계를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 입장.

[비범죄주의]
‘비범죄화주의’(de-criminalization)는 단순 성매매행위 쌍방을 처벌하지도 않고 합법화하여 관리․통제하지도 않으며, 다만 이를 조장․착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입장이다.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혹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입장.

[합법주의]
‘합법적 규제주의’(regulamentarism)는 단순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며, 등록증과 의료감시체계를 의무화하거나 특정지역 지정을 통해 성매매를 규제하는 입장으로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이 대표적인 국가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혹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입장.

1) http://en.wikipedia.org/wiki/Rape_statistics
2) 시민일보 2006.12.18, 문화일보 2010.03.08, 일요신문 2011.10.12 보도
3) 연합뉴스 2012.08.31 보도
4) 한국인권뉴스 집계(발췌), 전문은 아래 주소로
http://www.k-hnews.com/home/bbs/view.php?id=freeboard&no=770
5) 조국 교수 논문 ‘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 참조


[알림] 이번 운동평론은 한 네티즌의 제보에 도움 받았음을 밝힙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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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평론] 성범죄 원인과 국가주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운동평론] 성범죄 원인과 국가주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범죄예방학적인 접근

  경남 통영 초등학생 피살사건과 제주 올레길 여성 피살사건이 일어나자 정부 여당은 이참에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착용 소급적용 등을 추진하겠다며 징벌 강화만이 유일한 근절 대책인 양 내놓고 있다.   

  그러나 특정 강력 성범죄 사건 말고도 국내 성범죄는 날로 증가 추세다. 성폭행(강간)과 성추행범은 2001년 1만446명에서 2010년 1만9939명으로 10년 간 무려 2배나 증가했다(법무연수원 범죄백서). 이러한 현상은 특히 2005년(1만1757명) 이후부터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경찰의 관리 대상인 성범죄 우범자는 2008년 1200명 수준에서 2012년 7월 현재 2만명으로 17배나 늘었다.

우리는 이제라도 성범죄에 대해 관성적으로 법·제도 강화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특히 어린이나 일반 여성과 같이 자신을 방어하기 힘든 약자들을 노리는 성범죄 현상이 이 사회에서  증가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범죄예방학적인 차원에서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계급모순

성범죄에 대해서는 물론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오늘 자본주의 하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성의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제적·사회적 계급 모순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결혼/연애제도를 통한 성의 교환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혼인관계에도 불구하고 섹스리스 부부 등 성관계가 소원해진 커플들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혼외관계로 일탈하거나 그 일부가 성범죄화 되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성범죄 대상이 점차 아동으로 옮아가는 추세다. 최근 5년간 아동성범죄 발생건수 조사(경찰청)에 의하면,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가운데 중랑구, 영등포구, 강북구, 은평구 순으로 성범죄로 인한 위험지역이 경제적 여건에서 매우 취약한 강북지역에 몰려있다. 

이유는 대부분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학원 등에 다니기보다 집에 혼자 방치된 저소득층 자녀가 많아, 집 근처 골목이나 공원에서 놀다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비교적 저소득층 지역 거주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는 양극화와 범죄 발생과의 관련성을 잘 보여준다.   


성욕과 무관한 성범죄들

  범죄학에서는 성폭력(강간) 범죄 형태를 크게 3가지로 나눈다. △성욕과 무관하게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려 상대를 지배할 수 있다는 지배능력을 드러내는 ‘권력형’ △성욕과 무관하게 상대에 대한 분노를 성적인 공격으로 가하는 ‘분노형’ △성욕과 유관하며 비정상적 폭력을 수반한 성행위 등 성폭행 과정에서 상대를 괴롭히고 고통을 보면서 성적 쾌감을 높이는 ‘가학형’이 그것이다. 

권력형과 분노형은 성욕과 무관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상황 요인과 관련해 개인의 행동·생각·느낌이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가학형 중에는 선택수단이 적은 저소득층 남성들 중에서 주로 발생하며 이들이 목표(성적 접근권)와 수단의 괴리로 인해 발생한 신경증적인 성격이 성범죄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신분석학적인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주의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자신의 책『오르가즘의 기능』에서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증적인 성격 분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신경증적 성격’은 ‘오르가즘 능력’을 상실할 때 생겨난다. ‘오르가즘 능력’은 단순히 성적 흥분의 절정만이 아닌 “아무런 장애 없이 생체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이 차단될 경우 ‘신경증적인 성격’이 발생한다. 

따라서 성범죄에 대해 사회심리학적인 측면과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의 원인분석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법·제도적으로 추진하는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전자발찌 착용 등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처방에 불과하며, 이는 범죄예방과 재범발생 억제책으로 실효성이 없는 전시행정적인 정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   


낙인찍기 

  또한 성범죄라는 사회현상 앞에서 오로지 “남성(성욕)이 문제”라는 식의 급진적 페미니스트(급페)들의 상투적인 성기중심주의/성분리주의식 비난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권력형’과 ‘분노형’에서 보듯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급페들은 한국 남성들이 세계에서 가장 성욕이 과잉된 집단처럼 선전하며 성매매/성범죄와의 관련성을 암시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듯하다. 여기서는 사이코패스의 극악한 성범죄와 일반 남성들의 성적 일탈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져야 한다.   

지난해 말, 한 다국적제약사가 전세계 13개국 남녀성인들을 대상으로 성생활 패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성관계 횟수는 1주일에 1.04회로 조사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40대 이상 중년 남성 8500명을 대상으로 한 성생활 중요성과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도에서도 한국 남성은 26%로 평균치(44%)에 현저하게 못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 수치가 절대적인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사회의 노동자민중들이(성정체성을 불문하고) 고강도의 노동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그리고 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인 성욕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복잡다기한 사회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를 일반화 해 법·제도를 만능으로 한 당국의 징벌 위주의 대응(강력 성범죄에 대한 당위적 엄벌과는 별개로)이나, 단순히 성별적인 비난에 골몰하는 급페 쪽의 관점은, 범죄예방보다는 결과적으로 범죄자에 대한 전형적인 ‘낙인찍기’에 해당하므로 문제가 된다.  

범죄학에서도, ‘낙인이론’은 범죄자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건 범죄자라는 대표지위가 형성되어 자신이 나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고 쉽게 제2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므로 ‘낙인찍기’는 반드시 지양해야 할 행위라고 권하고 있다. 

따라서, 윌리엄 마셜(캐나다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이 전자발찌·신상공개·화학적 거세 등과 같은 징벌적 대책은 성범죄를 막는 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재범률을 높인다고 한 것처럼, 이들이 사회에 재통합되기 위해서는 심리치료와 함께 비범죄화나 탈시설화 등의 탈낙인화 정책으로 낙인효과를 대폭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다.  


최근 성범죄와 성특법

  성범죄 급증 시점인 2005년은 성매매 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성특법) 시행 1년 시점으로, 최근 성범죄 유형은 음성 성매매와 함께 성특법으로 인한 또 다른 풍선효과로 볼 수 있다.   

매춘을 인신매매로 간주한 금지주의 정책인 성특법이 시행되자 동네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범죄가 많아질 텐데 어쩌지.."라며 크게 걱정했다. 물론 지식인들과 활동가들도 내심 우려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정직한 언로(言路)의 부재로 자신들의 견해를 드러낼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고 예상대로 성범죄는 급증했다.  

양극화의 심화와 매춘/성매매 금지주의가 결과적으로 ‘성적 접근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출구를 찾지 못한 성적 빈곤계층 중 일부가 자기 방어능력이 취약한 약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증가하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는 “알아도 말할 수 없다”는 무거운 침묵의 파시즘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여기에는 ‘국가주의 페미니스트’(국페)들의 점증하는 정치적 영향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국페는 성특법 입법과 시행을 강력 주도하는 과정을 통해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의 중추에 진입했고 속속 관료화가 진행 중이다. 

이들은 노동자민중인 대다수 블루칼라 여성들과 별개로 국페의 계급적 기반인 화이트칼라 여성들의 요구를 ‘여성’으로 일반화시켜 독과점 함으로써 노동시민사회운동 영역에까지 발판을 넓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도덕주의 성정치(성주류화 전략)를 통해 가부장제 사냥에 나서고 있다.(가부장제는 계급별·지역/국가별·연령별 편차가 매우 심하다.)   

이에 대해 지식인들과 다수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성범죄에 대한 ‘원인론’을 제기하면 곧 국페에 의해 매춘/성매매 찬성론자로 간주되고 가부장제 옹호론자로 몰릴 것이라는 점. 이로 인해 그들의 정치적인 먹잇감으로 전락해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밥그릇마저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직면해 있다. 해서 진실에 눈 감은 채 굳게 입 다물고 있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깨진 유리창 이론」(J․Q․윌슨, G․켈링 1982)에서는 건물주가 방치한 ‘깨진 유리창’ 하나가 그 지역 주민들에게 나쁜 사회심리학상의 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를 황폐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범죄증가를 초래하는 원인을 고찰한 이론인데, 이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 현상에 대입하면 성특법이 우선순위에 해당한다. 

성특법은 성매매라는 범죄를 막으려 인위적으로 만든 방범창이다. 그러나 효과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는 안전한 방범창이 아니라 신뢰를 상실한 ‘깨진 유리창’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는 공동체를 포기한 범죄자들이 증가하고 방어력이 취약한 어린이와 여성들은 주요한 표적이 된다. 

그럼에도 국페는 ‘깨진 유리창’이 자신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므로 고수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문제는, 마을이야 황폐화 되건 말건 자신이 잃을 게 겁나 ‘깨진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지식인들과 도덕주의에 매몰된 활동가들의 정치적 비겁함이다. 

실패한 성특법으로 인해 성폭력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만 더욱 바빠진 무서운 세상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PS: 언론의 무책임한 선정적 보도로 인해 마치 파렴치범처럼 몰리곤 하는 이 사회 다수 노동자민중들의 성적 행태는 부르주아들의 통치기제가 만들어 낸 허구성이 많으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한국인권뉴스 201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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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품성

[정신의 모험] 혁명가의 품성

이성과 정신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전체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자기의식 개념부터 시작하죠. 자기의식이야 데카르트의 발견이죠. 의식이 곧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 데카르트는 이런 의식의 자기의식성을 의식의 본질적 규정으로 고양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죠. 의식되지 않는 의식은 전혀 없는 건가? 무의식적 지각이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런 비난을 받아도, 데카르트의 자기의식 개념은 꿋꿋하게 대륙의 합리론 철학에서 계승되어 그 근간이 되었습니다. 칸트, 그리고 헤겔 모두 자기의식 개념을 출발점으로 해서 자기 철학을 시작했었죠. 나중에 브렌타노, 후설로 가면서 의식의 본질적 규정이 지향성으로 바뀌는데, 그때까지 자기의식 개념은 철학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식을 철학의 왕좌에 올린 사람은 바로 헤겔입니다. 헤겔은 자기의식 개념을 통해 다양한 의식의 형태들을 포괄했습니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의 각 단계는 자기의식의 종류에 의해 즉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죠. 즉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감각, 자기의식, 이성, 정신, 절대정신이라는 5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 정신이라는 항목과 감각, 이성이라는 항목에서 다루는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차이가 보입니다. 감각, 이성의 경우 인식론적 개념이 다루어집니다. 여기서는 대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주관과 대상이 일치하고, 이때 대상의식은 자기의식이 되죠. 진리의 상태가 곧 자기의식이죠. 

반면 자기의식, 정신의 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잘 보면 실천적 의지의 개념들입니다. 자기의식 장에서는 욕망이, 정신의 장에서는 자유의지가 다루어지죠. 이런 실천적 의지의 경우는 의도가 실제로 실현되는 경우 자기의식이 됩니다. 이 경우는 자유로운 상태가 자기의식이 됩니다. 

그러니까 헤겔은 진리와 자유, 인식론적 규정과 의지의 규정을 모두 자기의식의 단계로 포함했습니다. 본래 데카르트가 진리의 상태에만 적용했던 자기의식 개념이 이렇게 확대된 거죠. 어떻게 보면 자기의식 개념의 이런 확대에 의해 정신현상학은 무척 혼란스럽게 여겨집니다. 앞 장에서 이미 자기의식에 도달했는데, 또 뒷장에서 자기의식을 향해 또 나아가니까 뭐 이런 게 다있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헤겔이 자기의식 개념을 이렇게 확대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자기의식의 개념이 각 장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정신현상학의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감각-자기의식-이성-정신-절대정신 , 이렇게 나가니까, 앞의 자기의식의 두 종류를 고려해 보면, 이론-실천-이론-실천, 이렇게 나아가죠. 지그재그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감각과 이성은 어떻게 다를까요? 감각이 대상의 개별성을 인식하고, 이성이 대상의 보편성 즉 법칙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이니까 더 설명할 필요 없겠죠. 

그런데 감각 다음의 자기의식 장이 다루는 실제 내용은 욕망이죠. 정신 장의 내용은 자유의지입니다. 실천적 의지의 종류이지만 두 가지는 단계적으로 구분되죠. 헤겔은 욕망이 사회와 대립되는 개별적 자아라고 본다면, 자유의지는 이미 사회와 자아의 통일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죠. 즉 개별적 실천의지와 보편적 실천의지의 차이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서 다시 정신현상학의 구성을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되죠. 개별적 인식-개별적 의지-보편적 인식-보편적 의지... 이런 식으로 정신현상학의 구성을 정리해보면, 이제 정신현상학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다룰 정신의 장이 어떤 운동을 다루는지 이해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이런 얘기가 됩니다. 우리는 이성의 단계에 올랐습니다. 세계의 보편적 법칙을 인식한 거죠. 그런데 이제 실천적 의지가 이 보편적 법칙을 실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지는 개별적 욕망 단계에 있어서, 보편적 법칙을 알면서도 스스로 실현하지 못하죠. 

여기서 실현한다는 의미를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사실 보편적 법칙이 성립한다는 것은 그가 의지로서 이 법칙을 수행하든 말든 실제로 객관적으로는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렇게 실제로 실현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지는 자기의 주관적 욕망을 고집해서 그것을 실현하려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자기도 모른 채 수행하고 만다는 겁니다. 

헤겔은 이런 상태를 역사철학에서 *이성의 간지*라는 개념으로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역사적 영웅과 관련해서 설명한 것인데,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정신의 출발점에 선 인간이면 모두 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게 이성 장이 끝나고 정신 장이 시작될 때 인간이 부딪힌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신 장의 운동이 지향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얼마간 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거죠. 보편적 이성의 원리를 스스로 자각해서 자기의 의지가 이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걸 자유의지라 하죠. 자의가 아니라 자유의지입니다. 즉 의지가 자유의지에 도달하려는 것이 정신 장의 목표입니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사실 칸트가 이미 제기했죠. 아마 그 유명한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입니다. 칸트가 루소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 에밀을 읽다가, 달걀이 아닌 자기의 시계를 삶았다는 에피소드 말이죠. 

그런데 칸트는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이 가지는 위험을 깨닫고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이성 비판을 작성했다고 하죠. 그 실천이성 비판의 핵심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도덕법칙을 법칙으로서 또는 의무로서 의지하는 것, 그게 바로 자유의지이죠. 헤겔이 도달하려는 것도 사실 동일한 것입니다.  

결국 정신현상학의 정신 장은 프랑스 혁명의 원리인 일반의지를 다루기 위해 쓰여 진 장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일반의지의 한계를 극복할 길을 찾는 거죠. 

헤겔은 물론 칸트를 넘어서려 합니다. 그는 칸트의 의무로서 자의의지의 한계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칸트의 한계를 미리 본 낭만주의자들의 양심 개념의 한계도 들여다 보죠 .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절대정신을 제시합니다.

세계의 법칙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문제이다. 실현의 방법은 자연상태에 내버려 둘 수도 있지만, 이 법칙을 자각적으로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비단 칸트 헤겔에게서만 문제된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마르크스주의에 이르러 다시 이 문제가 제기됩니다. 

마르크스의 역사법칙은 그대로 두어도 실현되죠. 많은 우여곡절을 통과해서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전위라는 개념이 나오죠. 이 역사의 전위는 역사법칙을 자각하고 이것을 실현하려는 자입니다. 레닌이 제시한 이 역사적 전위라는 개념, 그것이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혁명가의 의식을 볼 때, 그들이 역사의 전위로서 역사법칙을 자각적으로 수행하려 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과연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차원에서 수행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많은 혁명가들은 루소의 일반의지에 머물렀고, 기껏해야 칸트의 의무감이나 낭만적 양심 개념에 기초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과 사회주의 혁명은 많은 혼란과 고통을 동반했던 것이 아닐까요? 현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지금, 많은 자기비판이 필요하지만 혁명가의 의식 문제 역시 주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품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품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영웅적 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미 발견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혁명가의 품성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것이 목적이죠. 그리고 그런 혁명가의 품성을 파악하는 데서,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을 참고사항으로 제시하려는 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주석을 쓰는 저의 목표입니다. 


글: 이병창 (한국철학연구회) / 출처: 한국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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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의 간지 [Trick of reason , 理性의 奸智]

헤겔의 저작에 종종 나타나며, 그의 철학을 특징지우는 사상. 가장 유명한 것은 『역사철학』에 있는 것으로, 세계정신 스스로는 배후에 있어 공격도 당하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으면서, 개인을 조종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것을 희생시키는 것에 의해 자기의 목적을 실현한다. 이 세계사의 과정은 마치 이성이 교활하게도 가지각색의 정열을 서로 손상시킴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이성의 간지(교지)라고 불려진다. 
『논리학』 중의 목적론에는 주관적 목적이 자기와 대상의 사이에 다른 대상을 도구로 끼워 넣고, 이 대상들을 서로 마모시켜, 스스로는 이 과정의 밖에 있는 채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개체의 움직임을 그것이 모르는 사이에 전체의 필요에 따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주관적인 이성을 초월하여 객관적 관념론을 취하는 철학에서는 자연스러운 사상인데, 헤겔이 역사적 정신의 측면에서 사고했던 것을, 괴테도 자연의 측면으로부터 자연의 간지(List der natur)로서 인정했던 것이다.


참조어 : 이성(理性)의 교지(狡智)  
출처: 철학사전, 임석진 외 편저, 2009, 중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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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식 인권침해 교육' 발레오만도, 인권위에 진정

'삼청교육대식 인권침해 교육' 발레오만도, 인권위에 진정

한국인권뉴스(대표 최덕효)는 한 활동가(임경일)가 본지에 제보한 7월 19일자 기사 “삼청교육대식 강제훈련으로 노조탄압, 발레오 자본 규탄한다!! 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사실을 발견,  당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시켰습니다.

이번 인권위 진정에는 굴욕적인 인권침해를 당한 노조원들이 속한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 지회의 지회장 (정영재)과 사전 전화로 동의를 거쳐 내용을 보강했으며, 관련증거(기사 전문, 사진 3매)가 함께 제출됐습니다.  

본지는 진정서에서  
1. 발레오만도 사측이 노동자들의 금속노조 가입 여부를 이유로(현재 탈퇴하였다고 해도 과거 금속노조 노조원이었거나, 현재 금속노조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2. 노조원들에게 업무를 못하게 하고 풀뽑기와 이른바 한강철교 등의 벌을 주고
3. 업무와 상관없이 안동에 (강제성) 봉사활동을 보내고
4. 이러한 일명 혁신교육(삼청교육대식) 배경에는 이 교육을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성과급이 (최고)2,400만원까지 차이가 나며
5. 따라서 이는 사측이 금속노조 노조가입을 이유로 업무 배치 및  임금 등에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고 차별행위를 하고 있는 것

이라고 밝히고, 이에 대한 인권위의 철저한 조사와 조치를 강력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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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201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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