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0/10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0/31
    강권석 할아버지(4)
    넝쿨
  2. 2010/10/21
    2010/10/21
    넝쿨
  3. 2010/10/17
    2010/10/17(6)
    넝쿨
  4. 2010/10/12
    자극
    넝쿨
  5. 2010/10/02
    대만에 오다.(2)
    넝쿨

강권석 할아버지

 

#목요일

 

목요일에는 집에 내려갔다.

아직 정신을 온전히 찾은 건 아니지만,

일반실로 올라간 삼촌을 보러 엄마가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서울에 다녀가는 동안, 가게를 보러 내려갔다.

 

동네는 조용했고,

가끔 술 취해 비틀거리는 손님들이 소주를 사갔고,

약간 어려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사갔고,

어린 아이들이 와서 새콤달콤이나 뿌셔뿌셔를 사갔다.

 

아빠는 막일을 나갔다고 했다.

 

저녁에 가게로 돌아온 아빠에게서 흙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더 늙어있었다.

그래도 나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흙냄새가 좋았다.

당뇨라 몸도 안좋으면서 막일은 왜 다니는지.

철딱서니 없이 그저 그런 생각만 들었다.

두 달 전에 난 상처가 낫질 않는다며

걱정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곤 곧 동네 아저씨들과 놀러 나가버렸지만.

 

#금요일

 

전날 언니랑 엄마랑 술을 또 진탕 마셨다.

아빠가 한잔 먹고 남긴 고량주를 전부 마셔버렸더니 속이 쓰리고 토할 것 같았다.

가게로 해장국을 시켰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애꿎은 엄마한테 막 짜증을 냈다.

엄마에게 나를 확인 받는 방식은 늘 그런것이었다.

속 쓰린데 밥도 못 먹고 가겠네.

이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는 걸 보여주면 엄마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빨리 가야 되? 밥은 먹고 가야지.

라고 말한다.

언제나 엄마가 오바하지 않으면서 나를 걱정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왜 좀더 격정적으로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거야? 하며.

 

해장국을 기다렸다.

밥은 먹고 가고 싶었으니.

 

니*에게 카메라를 주러 새 대추리로 갔다.

팬션촌처럼 예쁘게 지어놓은 집들 사이로 콩쥐놀이를 하는 니*와 마리*가 보였다.

길에서 마주친 노영희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마리* 화장실 가고 싶대요!"

라는 말을 하고.

 

할머니네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뭐, 작은 집들이 꽤 많긴 했지만.

 

아직도 대추리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셨다.

대출받아서 지은 집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돈 많은 사람들이야 모르지만 내년에 공공근로도 끝난다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하다고.

데모라도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 때 너희들도 다 와~, 다 와서 도와줘야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니*는 애인이 있다고 뻥쳤고, 할머니는 얼렁 시집가라고 성화셨다.

아직도 이런데 다니냐? 직장다니면서 돈벌어야지!

 

쇼파에 앉아서 주름진 얼굴로 보*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그이는 잊지도 않아. 꼭 이렇게 기억나.

 

보*은 대추리에 있을 때, 들소리에서 미디어교육을 했는데,

노영희 할머니와 함께 영상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때의 기억이 각인되었나보다. 각인될만한 기억이었을거라 짐작한다.

 

어디를 돌아다녀볼까 하고 헤메다가 김영녀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들소리 애들이 왔다고 하니 엄청 기뻐하며 반겨주셨다.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는 것 같았고,

다리가 불편하신데, 이제는 운동도 잘 안나가신다고 하셨다.

이리로 이사하고 나서는 한번도 밖에 안나갔어.

 

이제는 왠지,

 

 

김영녀 할머니 댁에 나와서 나는 인천으로 가야했다.

머무를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을 입구에서 강권석 할아버지와 한대수 할머니를 만났다.

한대수 할머니는 마당을 쓸고 계셨고, 강권석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밭에 다녀오시는 길이셨다.

지금 왔어요?

아뇨, 좀 전에 왔는데 지금 가요;;;

가만있어봐, 버스 시간이..

지금 바쁘게 가면 저기 삼거리 있는데서 버스 탈 수 있겠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올거죠?

네? 네.. 내일올게요

뻥쳤다. 내일은 못온다.

 

길을 나서려 하자 강권석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태워주신다고 했다.

버스타는데까지 가려면 바쁘게 가야한다며.

나도 급하기도 해서 좀 민망하지만 할아버지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았다.

 

삼거리에서 10분쯤 기다렸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번 버스는 놓쳤겠거니, 20분 후에 있다는 버스를 타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권석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려 오셨다.

아무래도 버스가 간거 같애, 객사리까지 데려다줄게요.

 

다시 할아버지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았다.

내일 오지요?

네, 내일 올게요.

 

삼거리로 나올 때였나, 객사리로 나올 때였나.

할아버지가 한번 더 확인을 하셨다.

나는 아마 지킴이 명단에서 제명당하고도 더 큰벌을 받을 거다.

 

추운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니 달달 떨렸다.

할아버지도 '빔' 이라고 써진 캡모자를 다시 눌러써야 했다.

근데 참,

우리가 무엇이라고, 내가 뭐라고.

찬바람을 맞으며 이 사람의 등짝을 보고있노라니,

오토바이라 춥지만, 밭일하고 온 터라 운동화는 꺽어 신었지만,

바래다 주시겠다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게 너무 좋아서 왠지 미안해졌다.

 

할아버지에게서도 흙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도 흙냄새가 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객사리까지는 가지도 않았는데 추팔공단을 지나자 3번 버스가 옆에 섰다.

대로에서 갑자기 버스 문을 두들겨 버스에 올랐다.

급하게 버스에 타느라고 할아버지께는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다.

못난년.

 

 

 

#일요일

 

토요일에 있었던 마을잔치에 다녀온 니*가 집에 왔다.

마을잔치가 어땠는지, 백서가 어떻게 나왔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물론 좋은 얘기는 별로 없었다.

분위기는 싸-했다고 한다.

좋을턱이 있나.

쫓겨나서 빛져서 새 집 지으면, 집이 깨끗하다고 좋은가? 뭐.

노영희 할머니 댁 화장실에서 봤던,

쌔삥에 삐까리한 집과 어울리지 않게 있었던 놋대야가 생각났다.

 

지금와서 대추리를 기억하는 것은,

쫓겨나와야 했던 당시에는 너무나 슬펐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떤 순간이고, 어떤 투쟁이고, 어떤 공간이고.

꼭 함께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물론 그 와중에 당연히 상처받는 사람은 생기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처럼,

애도하는 것, 생채기 난 이후 그 상처를 보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걸,

잊지 말아야지.

 

 

아, 근데 지킴이 명단에서 제명당하면 안되는데.. 어쩌지..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10/21

 

#

알바 때문에 어떤 감독을 만나러 갔다.

 

이런 저런 일 얘기를 하고,

점심때가 되서 밥을 먹자고 하길래 같이 밥을 먹었다.

 

 

인사치례처럼 감독님은 뭐 작업하고 있는게 있냐고 물어봤다.

일단 먹고사느라고 바쁘긴 한데,

오랫동안 작업 해오던 것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해보였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요, 다큐멘터리는 이것저것 하는 것 보다 한 두가지를 집중해서 오랫동안 하는게 좋은거 같아요.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방송국에서도 오랫동안 일했고, 꽤나 오랫동안 작업해왔을 사람에게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라는 말을 듣다니,

왠지 충격 받았다.

 

그리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우울해졌다.

 

나는 얼마나 편협한 인간이던가.

얼마나 얕은 시선으로 사람을 가볍게 판단하려 하는가.

 

내게 있던 껍데기들을 벗기고 보니

가장 안 쪽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같은 욕심이 보였다.

 

그래.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그래서 영화가 나오면,

잘 했다고 칭찬받고 싶다.

상도 받고 싶고, 훌륭하다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그것밖에 없다.

 

어떤 때는 그런 욕심이 좋은 자극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근데 지금은 그것밖에 없어.

앞도, 뒤도, 관계도, 아무것도 없이.

다른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그 욕심밖에 없다.

 

바닥을 치는 순간이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더럽고 위선적인가.

 

촬영할 때 종종 느끼는 외로움은 나의 껍데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스스로를 내몰고 있는 것은 이 '욕심들' 때문이 아닌가.

 

어쩌면 그냥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을 받는다는 것, 그런 방식으로 칭찬 받고 싶은건,

남들 위에 서고 싶다는 뜻인거다. 경멸스럽게도.

 

그런 욕심이 강했다. 강하다.

 

그런데, 그걸 버리고 나면,

무엇으로 작업을 계속하지.

 

난 원래 이런 인간이었던가.

 

웃기게도 내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이 증오스럽다.

정말로 사춘기다.

나아지질않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10/17

 

#평범한 삶의 진리.

 

오늘 인천노동문화제에서 생각했던 것.

 

내가 촬영하고 있는 공부방은,

그냥 보기에 정말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물론 지역에서 탁아소-어린이집-공부방-지역아동센터로 변화한 곳으로,

(실제로 이 공부방이 이전에 탁아소나 어린이집을 운영하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면면이 그것을 경험하고 지나왔다)

어떤 '지역운동' 이라는 것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근데 사실,

그건 있다.

종일 공부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로 아이들이 와서 공부하고, 선생님들은 공부를 봐주거나 밥과 간식을 준비한다.

생협 물건을 쓴다는 것 말고는 딱히 뭔가 특별해보이지 않는 곳이다.

 

음.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하고.

 

투쟁이 이뤄지고 있는, 혹은 이뤄졌던 곳의 (기록)다큐멘터리가 작업자의 자기 동력을 생성하면서도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계속 급박한 일이 벌어지고,

지금의 투쟁의 의미들이 계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종의 '동지적 관계'로서 스스로도 그 투쟁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평정을 잃기가 쉽상이다.

쉽상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평정따위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물론 내 경우지만;;)

그래서 거리두기가 참 힘들다.

그러나 그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태어나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에서 헷갈리는 부분들은 많겠지만-)

그건 소위 '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 그 작업자 또한 그 사건, 그 사람, 혹은 무엇이든간에 어쨋든 '그것'에

이미 푹 마음담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것.

 

지금 작업을 하면서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오늘 노동문화제에서 공연을 구경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것.

그 '평범하게 잘 사는 것'과, 공부방은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는지,

그리고 평범하게 '잘'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숙제를 풀지 못하면 영화는...

 

평범하게 살면서, '잘' 사는 방법.

지금 떠오르는 것은 '편견을 갖지 않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

선생님들이 은연중에, 생활중에 던지는 한두마디에 녹아있는 그것.

그래서 잡기 힘든 그것들 말이다.

 

음..

근데 사실, 선생님들은

중학생들에게 학생인권운동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고등학생, 이제는 졸업해서 사회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회사에 들어간 사람이 있으면 노조에 들라던지....근데; 지금 내가 아는 선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청년층은 주변에 없다. 나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들만을 알고있을 뿐이다.)

 

흠..

 

편견없이 사는 것, '잘' 사는 것이,

꼭 '투쟁'하는 삶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어떤 삶이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태도' 여야 하는 것일까?

 

나는 행동/저항하지 않으면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더 강력하게(!) 말하지 않는 선생님들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뭐.. 그래도 중요한 것은 역시 '태도' 겠지만..

너무 두루뭉실하고 어렵다-_-;;;;

흠........... 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극

 

#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는 단 두 작품 밖에 보지 못했다.

예매 안했더니 올매진이라-_-;;;;

표를 구할 수가 없드만-_-;

뭐 그리 사람 많음;

인천인권영화제도 매진행렬ㅋ원츄ㅋ

 

아무튼, 부산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내게 자극적이었다.

 

# 두 편의 영화, 감독과 주인공들

<종로의 기적>, 그리고 <꿈의공장>

두 편의 영화 모두, 내게 감동을 줬던 것은

감독들과 함께 서 있는 수많은 주인공들이었다.(물론 영화도 좋았다)

각 감독들이 그 주인공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은, 그런 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계속 서로를 함께 봐주고, 서로를 밀어주면서,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이 감독 하나의 고뇌, 몇 스태프의 험난했던 여정이 아니라,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내가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잡지는 않았어도,'내 영화'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감독이 아니라 영화에게,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캬~

내가 썼지만 감동적인 멘트야!!...........;;; 물론 너무 낭만적이긴 하다-_-a

 

어쨌든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주인공들에게 솔직한가.

그녀들/그들과 어떤 공통의 '지향'이나 '꿈'에 대해서 '함께' 말할 수 있는가?

 

...

 

잘 모르겠다.

 

일단 나는, 나를 계속 압박해 왔던 사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앞뒤 없이

"나는 영화를 찍기 위해 당신들을 만나러 왔소"

라며 그렇게 관계를 맺었다는 압박 말이다.

 

지금 작업에서 나의 시작은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당신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다"

가 아니었다.

정말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어서, 프로필에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가면 멋질 것 같아서,

집도 가깝고 마침 학교도 가기 싫고. 그랬던 차라서.

그래서 생전 안면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얼굴을 보자마자 불쑥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 생각에 난 참 싸가지가 없는 것 같은데,

왠일인지 주인공들은 참 친절하기 그지없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거지?-_-;;;;;;

 

암튼,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마음속에 압박이랄까, 강박이랄까. 그런것들이 항상 있었다.

잔뜩 움츠러들어있고, 경계하고 있고. 긴장하고 있었다.

 

마음을 좀 놔도 되고, 좀 쉬어도 된다고, 편하게 생각하자고.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를 그렇게 다독였다.

 

 

영화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나는 사실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흠.

그러고보니 관계맺는 법, 유지하는 법에 대해 주인공들에게 물어나 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만에 오다.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가 대만의

SHOOTING LEFT ASIA '10

이라는 작은 영화제에 초정되어서 대만에 왔다.

지금은 대만.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공항에서부터 S와 함께 오고,

대만에 와서도 한국말 잘~하는 대만 사람이랑 계속 한국어로 얘기하니깐,

별로 대만같지가 않다;;;

 

간판들이 한문인거 빼면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야시장을 지나서 오는데,

셔터를 내린 시장 골목 안쪽을 들여다보니 정말 한국과 비슷.

 

Shooting Left Asia 에서는 이번에 한국에 포커스를 맞춰서 한국 영화들을 상영한다.

상영작은

<경계도시2>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외박>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대추리에 살다>

<땅의 여자>

 

이렇게 7작품이다.

 

<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와 <대추리에 살다>

상영 후 이야기 시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철거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야외 상영을 한다고 한다.

아직 영화제와 관계된 사람은 한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오늘 밤에 왔으니깐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대만에 대해서는 저~엉말로 아는게 없는디-_ㅠ;;;

 

무슨 복인지 용산 덕분에 외쿡에 두번이나 다니게 됐다.

근데 사실 내가 와도 되는건지 원..

대만도 엄청나게 재개발이 진행될거라고 한다.

타이페이만 400군데라고 했던가?;

그래서 용산의 상황을 (영상을 통해서) 보고,

철거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고자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 이거 뭐 잘 할 수 있을까요;;

쵸큼 걱정되지만...

 

날씨는 조금 후덥지근 하다.

 

아직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아는 건 없지만-_-;;;

일단 내일을 기대해본다.

험난할지도 모르는 대만 여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