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리 윗층 옥탑방 아저씨

재작년 7월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은 반지하에서 2층까지 두가구씩, 옥탑방 포함하여 총 7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우리는 2층 202호인데 무슨 연유인지 옥탑방과 우리집은 전기가 이어져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달이 옥탑방 아저씨가 우리에게 전기세를 1만원씩 주신다.

고지서에 보면 가구수 2, TV대수 2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

수도도 가구 전체가 물려있어 두달에 한 번 집주인 아주머니가

인원수대로 요금을 나누어 받으러 다니신다. (덕분에 한 두집이 세탁기를 돌리면 물이 거의 안나온다.)

 

처음 몇달은 윗층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며(우리집은 초인종이 없다) 찾아와 돈을 주고 가시곤 했다.

그 아저씨... 나이가 50대 정도고 체구가 아주 작고 왜소하다.

얼굴은 창백하리 만치 하얗고 너무 착하게 생기셨다...

어디 호텔 경비를 하신다는데 24시간 교대인지, 주야간 교대인지 모르겠으나

새벽에 출근하기도 하고 어느날은 하루종일 집에 계시기도 한단다.

부인과는 이혼을 했는지, 자식은 있는지...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고 혼자 사신다.

남편과 나의 생활 사이클이 불규칙해서 아저씨를 만나지 못할 때가 많다보니

한두달씩 밀려 두달치, 세달치를 주시곤 하신다.

어느날은 아저씨가 찾아오셔서는

'이번 달은 제가 돈이 없으니 다음달에 꼭 같이 드리겠습니다.' 하신다.

전기세 만원도 없는 때도 있다니 참 힘들게 사시나 보다.

 

1년쯤 지나 작년 하반기 부터 아저씨가 통 찾아오시지 않는다. 집에도 안오시는 것 같다.

몇달 지나고 오셔서는 몸이 아파 그동안 병원에 있었다며 밀린 몇달치를 주신다.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했더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암이라고 한다.

깜짝 놀라 괜찮으신거냐고... 누가 병원에 돌봐주실 사람은 있냐니까

그냥 웃으신다. 이제 얼마있다 또 치료를 받으러 입원하셔야 한단다.

 

올해들어서 거의 얼굴을 못봤다. 벌써 4, 5개월은 된거 같다.

집 주인 아주머니 한테 물어보니 그 아저씨 못나올 거 같단다.

집도 이사를 할 거란다. 그럼 어떻게 되시는 거냐니까 전기세 못받았냐고 물어본다.

그렇지요... 얼마나? 한 5개월? 어떻게 하냐고 나한테 되묻는다.

집주인 아주머니 순박하고 뭘 잘 모르시는 분이시긴 한데...

그걸 자기가 주인인데 알아서 해결해야지 우리한테 어떻게 하라고... 참, 무책임하다.

하여간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어느날 남편이 낮에 아주머니가 올라와 윗층 이사갔다고

딸이 왔었는데 밀린 전기세 분할로 갚는다고 했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주셨단다.

전화해서 계좌번호 하나 알려주라며...

 

직접 아저씨와 통화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살지도 않았던 딸한테 전화하려니 좀 그렇다.

해봐야 6만원인데 그것도 분할로 입급시킨다니 딸도 살림살이가 그런가 보다.

나이도 20대 초반인데 학생인지...직장다니는지 잘모르신단다.

고민고민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저... 000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는 화곡동 사는 사람인데... 저기... 저희 윗층 아저씨...' (뭐라 설명을 해야 하는지...대략 난감.)

'아, 네...'

'아저씨하고는 어떻게 되세요?'  (이미 들어놓고....)

'딸인데요'

'네... 아버님은 좀 어떠세요?' (일단 좀 친근감을 좀 줘볼까?)

'돌아가셨는데요?' (허걱!!! 갑자기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너무 당황을 한 나머지)

'어머... 언제요?'

'두 주 전에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 그랬군요. 많이 상심하셨겠어요. 경황도 없으실텐데... 제가 나중에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냥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아... 저... 그게... 주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보라고 해서...저기.. ' (허둥지둥 허둥지둥 막 줏어다 댄다)

'아, 네... 전기세 때문이시죠?'  (어쩌나...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아... 네... 근데... 지금 경황도 없으실텐데... 제가 참... 전화를 ...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요'

'아니예요.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제가 다달이 2만원씩 보내드릴께요.'

'아... 저...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나중에 제가 이 번호로 메시지보내드릴까요?'

(어떻게든 빨리 끊고 싶다 ㅠ)

'아니, 그냥 불러주세요.' (헐~~~ 어쩌지? 어쩌지?)

'저... 국민은행이구요...(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  000-0000000 (이럴 때 나는 왜 이런 걸 다 외우고 있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줄줄 나오냐고오오오오!!!!)

저는 (헉!! 이제 이름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 000 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이달 말부터 보내드릴께요.'

'아... 그러시겠어요?  (뭘? 그걸 원한거면서...) 괜찮으시겠어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건지...촴~~놰) 그럼... 저기...'

'네. 보내드릴께요.'

'아...네... 고맙습니다... 경황도 없으신데...이런 전화를... 저기...'

'네...' 

삐~ 뚜뚜뚜...

 

이게 뭐~~ 야?

에이씨... 정말 짱나... 왜 이런 상황이... 나 정말 왜 이래?

그 아줌마는 왜 돌아가셨다는 이야긴 안해가지구... 우이쒸... 이러면 안되는 거 같은데...

괜히 전화했다...난 몰라 난몰라...

집에가서 아줌마 한테 따져야 할까나? 휴우~~~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이라도 빈다고... 상투적인 말이라도 할걸..

기양 나중에 전화한다고 할걸...

아니... 여유있게... 너그러운 척... 인간적인척...

아, 됐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구요... 조의금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닌가? 그거 쫌 이상한가?

아~~~ 우울하다...

 

얼굴이 하얗고 작은 체구를 가진, 정말 너무 착하게 생기다 못해 좀 안스럽게 생긴

윗층 옥탑방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살면서 얼굴 마주한 건 한 10번이나 될까... 싶지만... 사람이 사는 게 이런 건 아닌데...

 

다음날 문자를 보냈다.

'주인아줌마한테 이야기를 못들어서... 어제는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의금이라고 생각하시고, 전기세는 그냥두십시오."

 

"아저씨... 좋은 데 가셔서 편안히 쉬세요... 명복을 빌께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