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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87년 다시보기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이렇게 주장하기 시작한 건 2000년 노문센터를 만들고 그해 메이데이 땐가, 아님 노동문화일꾼캠프 땐가... 하여간... 노동문화운동의 큰 방향에서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름대로 사랑방 토론회를 2년간 진행하면서 일상의 다양한 부분들을 새롭게 보고자 했었고, 그것을 구체적인 프로그램 기획으로 연결해서 교육도 하고 캠프도 하고...

노동문화를 문화예술로만 바라보지 말고 삶 전체로 바라보자고 주장도 하고 교육도 했었다.

그러면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그러다 어떤 술자리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는데(원래 내가 술먹으면 논쟁하듯이 주장을 내세우는 편이라 ^^;;) "일상의 모든것과 싸우자는 문제의식으로 내 일상을 뜯어보니 첨부터 끝까지 너무나 싸울게 많아... 정말 고민은 많은데 그걸 다 생각하려니 살 수가 없어... 너무 힘들어..."라고 토로하자

어떤 문화활동가가 듣고 있다가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

“넌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운동은 좀 사람들이 편해지려고 하는 거 아냐?”

앗... 문화활동가들 조차도 이런 문제의식을 못 받아들이나?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들의 문화권에 대해 교육을 하러 갔을 때 노동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고 분반 토론을 붙였다.

토론 결과를 발표하는데 난 정말 부끄러웠다.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통역(?) 하는 분이 옆에서 말을 옮겨주었다.

- 왜냐하면 가까이서 일대일로 천천히 대화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마이크로 여러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잘 알아듣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

나 역시 말로만 떠들고 다녔을 뿐인데 이들을 삶으로 바로 연결시켰다. 전부 다 기억은 못하는데... 인상적인 부분만 옮겨보면.

“우리 장애인들도 경증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좀 편하게 활동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중증 장애인들과의 결합이나 소통에 대해 소홀해 왔다.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차별당해 본 사람이 차별당하는 사람 심정을 안다고?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육하면서 느낀 건데, 차별 당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또 차별하더라고.

물론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곧 알게는 되지만...


나는 노동문화운동을 하지만 그것은 큰 범주에서 노동운동이라는 생각을 떼어내 본적이 없다. 여러 영역 중에서 노동문화운동이 나의 주요한 역할로, 또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길로 선택한 것일 뿐.


노동운동이 편해지려고 하는 거라고? 천만의 말씀.

모두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거라고? 만만의 말씀.

너무 편해지는 거. 많이 벌어 잘 사는 거 좋아하지 마시라.

그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이고, 자본주의적인 일상을 재생산 할 뿐이다.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그 당시 일어섰던 노동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투쟁에 동참을 했을까?



무슨 거창한 이유나 잘 조직되고 단련되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어서...

기계나 노예가 아닌 인간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40년, 50년, 60년을 그것이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며 숨죽이고 살았지만 그 억눌려왔던 분노가 터지면서 50여년을 길들여 온 삶을 떨쳐내며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소박한 마음 아니었을까?

그 처절한 분노와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서 민주노조를 세운 거 아닐까?


87년 노동자투쟁 20주년에 다시 생각해보자.

인간답게 산다는 게 뭔지... 그 때 주장했던, 그 때 열망했던 인간다운 삶이 지금도 유효한지... 그 당시의 인간다움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노동조합운동으로 확대 발전하면서 그 동안 잘 먹고 잘 사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해 온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러한 가치가 이미 자본의 가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새로운 노동자의 가치로 다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일상의 모든 것과 싸우는... 내용적 토대와 구체적인 실천들을 만들어 가보는 작업을 올해 해보고 싶다.

이제부터 하나씩 내가 고민해온 작은 실천들이라도 하나씩 풀어볼까 한다.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하고 교육을 하면 간혹 마지막에 물어보는 교육생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무나 막연하지만... 나의 모든 일상을 꼼꼼히 되짚어 보고, 다르게 생각해보고... 그래서 내 몸에 내재되어 있는 자본의 가치들과 싸우는 겁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과...” 라는 궁색한 답변을 하고만다.

그러면서  빨리 정책 대안과 구체적 실천과제들, 그리고 프로그램 기획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수억 고민만 해왔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내고 우린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뭔가 큰 대안을 내는 것 말고...(역시...실력이 모자란다는 걸 실감하고... ㅠㅠ)

그냥 내가 최근 몇 년간 생각하고 해왔던 일과 또 놓치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하나씩 뜯어보는 작업을 해보려고...

올해 인천과 울산에서(지금까지 노동문화제라는 이름을 걸고 지역에서 꾸준히 문제의식을 유지해온 지역은 이렇게 둘 밖에 없지만) 87년 7,8,9 투쟁의 정신을 되짚어보는 노동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마침 내가 두 지역의 사업에 살짝 혹은 깊이 발을 들이고 있다보니 대체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 참에 좀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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