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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9/06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7, 8)
    찌니
  2. 2008/09/06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6)
    찌니
  3. 2008/09/06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5)
    찌니
  4. 2008/08/17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4)
    찌니
  5. 2008/08/17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3)
    찌니
  6. 2008/07/20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2)
    찌니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7, 8)

 7. 5月21日   觀光  관광

 

 아침 10시쯤 사람들은 이시카와하고 슈리성으로 출발했다. 나와 정혁, 선봉형은 재작년에 가봤기 때문에 쇼핑이나 하자고 남았다. 우리는 다시 시장들을 돌아 물건을 좀 산 후 회를 사가지고 숙소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은 슈리성 관광 후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에 들어왔다.

일부 쇼핑하거나 남은 사람을 빼고 4시 쯤에는 가까운 바다로 갔다. 돗자리를 피고 맥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안나를 비롯한 몇 명은 바다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바다는 인공으로 만든 곳이라 우라소에나 다카에 바다와는 달리 별로 좋지 않았다.

 자진해서 첫날 식사당번을 했던 우리셋이 장을 봐서 삼결살을 구워먹기로 했다. 준꼬씨의 집을 들러서 고기판과 불루스타, 전기 냄비를 가져왔고 거실을 가득메우고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었다. 토미야마 씨도 오셨다. 한참 먹고 나서 돌아가면서 소감을 한 마디씩 이야기 했다. 토미야마씨는 오키나와 인들은 여유있고 느긋하다고. 이시카와는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계속 빨리빨리하는 게 아쉬웠다고 했고 준꼬씨는 오키나와에 운동하러 오지 말라고, 미군기지의 문제도 아주 중요하지만 오키나와는 너무 아름다운 섬이니까 관광하러 자주 오라고 했다.

 에리꼬는 오키나와 친구가 공연을 보았는데 공연을 보고 난 후 그동안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소홀했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며,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시카와가 자랑스럽다고 뽀뽀를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뽀뽀해! 뽀뽀해!” 하며 직접 해주라고 하자 남에게 보여주는 게 너무 아까워서 싫다고 한다.

 한국인들도 돌아가며 한 마디씩했다. 아쉬운 점도 많았고 또 평가를 해야겠지만, 단순 공연만 한 것이 아니라 행진도 참가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일정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의 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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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5月22日   韓國へ  한국으로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짐 정리를 한 후 9시반에 출발했다. 에리꼬 선물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었고, 같이 공항에 가주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는데 외국여행이 처음인 진영이가 티켓을 인천에서 버리고 왔단다. 하지만 다행히 걱정한 것 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 수속을 마치고 출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데 이시카와는 계속 울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 열심히 살게 라면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정말 수고많았고, 고생시켜서 너무 미안해. 하지만 분명 오키나와에서의 네 생활은 더 의미있고 즐거울거야. 에리꼬 많이 사랑하면서 살어. 라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보내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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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신문에 나온 기사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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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6)

 6. 5月20日  - 히가시손의 헬리콥터 기지 건절 예정지(다카에) 방문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죽과 라면?) 먼저 귀국하는 박정숙, 유영희, 정윤경, 고명원과 인사 나누고,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박미영도 남았다) 9시 반에 숙소에서 버스로 출발했다. 이번 버스는 동경 나리타 공항 반대투쟁에서 10년 이상 투쟁하다가 오키나와에 내려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 운전하는 차였다.  나가이 씨는 아침 일찍 동경으로 출발을 하셨는데 우리는 얼굴을 보지 못했고, 나중에 오자와씨와 통화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

 헤노코에 우선 들러 공동대표 중 한 분으로부터 헤노꼬 투쟁의 역사와 기지관련 설명을 들었다. 헤노코 앞 바다에는 ‘듀공’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고래 종류가 사는데 멸종 위기에 처해있고, 현재 이 앞에도 50마리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몇 년간의 투쟁 속에서 겪은 일들, 또 태평양 전쟁과 그 이 후의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 등, 너무나 하실 말씀이 많으신 듯했지만 시간 관계상 줄이고, 다들 긴 천에 염원을 담아 철조망에 묶고 사진촬영을 했다.

 바닷가 입구에는 현에서 걸어 놓은 경고판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쓰레기는 가져가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써있었다. 누군가가 ‘쓰레기’라는 단어 앞에 “미군과” 라고 적어놓았다. “미군과 쓰레기는 가져가 주십시오”라고.

 더늠에서 준비한 솟대와 기념품을 드리고 시간이 없어 버스 안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다카에로 이동했다. 다카에는 작년 8월부터 농성을 시작했는데 헤노꼬와는 달리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고, 북쪽 산 기슭에 있는 총 인구 140명인 작은 마을사람들이 투쟁을 하기 때문에 천막을 4군데 치고 1명씩 지키는 데 오늘은 한 곳에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 천막마다 돌아다니며 방문하고 설명을 들었고, 또 그 주변을 돌아봤다. 댐과 기지 건설을 위한 도로 입구 몇 곳을 갔는데 그 입구마다 천막을 치고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했다. 하지만 입구를 봉쇄하거나 바리케이트를 치면 그건 불법이라 연행되기 때문에 옆에 천막을 치고 있다가 차가 나타나면 사람들을 불러 막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번에는 트럭들이 몇 대 자갈과 모레를 싣고 와서 길을 깔았는데 연락이 안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한다. 한 곳은 노인 한 분이 교대도 하지 않고 몇 달간 계속 거기서 숙식을 하고 계셨다. 그 분 말씀이 평택같은 한국의 투쟁에 비하면 미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투쟁이고, 평화적인 투쟁을 하고자 한다고 하신다.

 풍물공연을 할까 준비도 하고 생각도 했으나 지금은 천연기념물인 새들의 번식기라 미군기지 건설도 중단되어 있을 정도니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아 공연은 생략하였다.

 산 입구에 쓰여진 푯말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다카에 바다는 우라소에 해변공원 바다와는 아주 다른 색을 띠고 있었고 산호 띠에 의해 파도가 잦아드는 선도 아름답고, 바다도 좀 더 깊은 듯 청록색을 띠고 있었다.

 다카에 지역의 산은 정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군이 정글게릴라 훈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이 지역에 사는 천연기념물인 뜸북이가 있는데 오키나와에는 포유류가 없어 천적이 없기 때문에 그 새가 날지 못하고 걸어다닌다고 한다.

 역시 더늠이 준비한 솟대와 기념품을 드리고 다시 출발했다. 오는 길에 바닷가라도 들를까 했으나 오자와씨, 메구미씨, 히나타 씨의 비행기 시간이 늦을 수 있어 그냥 바로 공항으로 갔고, 나하공항에서 일본분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고 헤어졌다.

 버스로 다시 숙소로 돌아와 버스 청소를 돕고 난 후 개인당 500엔씩 받아 알아서 각자 저녁 해결했다. 이시카와는 전날 에리꼬가 화가 났기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찬영이가 솟대를 만들어 집으로 찾아가 같이 라면을 먹는 등 애를 써서 화를 풀고는 다시 숙소로 왔다. 공연장 옆의 공원으로 가서 캔맥주를 마시다가 모기가 많아 숙소로 다시 돌아와 한 잔을 더 했는데 에리꼬에게 한국에서 가지고 온 반찬들을 주었다. 참 좋아했다. 이시카와는 에리꼬를 보내고 나서 역시 숙소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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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5)

5. 5月19日  평화콘서트 : 한국과 오키나와를 잇는 예술인의 밤 (사쿠라자카 극장)

 

  - 아침부터 공연 준비 / 공연은 18시 개장  /19시 공연 시작해서 21시 30분까지

  - 사전행사 : 인천노동문화제 영상 상영(5분), 평택 대추리 다큐상영 (40분)

  - 공연순서 : トヌム 더늠 (19:00~19:25) / まよなかしんや 마요나카 싱야 (19:25~19:35) / 金城繁 긴조시게르 (19:35~19:50) / しゃかり  샤카리 (19:50~20:30) / コッタジ 꽃다지 (20:30~21:10) / アンコール 앵콜 (21:10~)


 늦은 아침을 먹고 11시반에 꽃다지와 스텝을 맡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이동했다. 올라가는 길 옆 쪽으로 공원이 하나 있었다.

희망의 언덕 공원. 버려진 고양이들이 정말 많았는데 고양이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먹을 것을 달라는 듯 주변을 맴돌았다. 그 공원 앞에 있는 우리가 공연할 극장 이름도 사쿠라 자카 극장(벚꽃언덕?)이었다.

꽃다지가 리허설 하는 동안 진영이와 나, 정혁씨, 창곤형, 그리고 이시카와가 산책을 나갔다.

늦게 온 진영이에게 주변 관광을 시켜주자는 취지였다. 시장통을 누비고 재래시장에도 갔었다. 국제거리 뒤쪽의 시장은 정말 크고 여러 블록으로 되어 있다.

한참을 걸어다니다가 다시 극장으로 가서 리허설이 끝난 꽃다지 식구들, 에리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더늠은 2시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다.

3시 반부터 샤카리와 긴조시게르, 마요나카 상이 공연 리허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우리는 밥을 먹고 다시 진영과 주변을 돌아다녔다.

츠보야에 한 번 가보자고 해서 물어 물어 찾아갔다. 츠보야는 도자기 거리로 대부분 상점에 공방이 같이 있어 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고, 돈을 조금 내면 직접 제작 체험도 가능한 곳이다.

가서 보니 우리가 매일 다니던 시장길 평화의 통로로 나가면 바로 츠보야 였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반대편 길로 빙돌아 물어물어 찾아간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가본 곳이라 오래된 가마와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굽는 공방도 들어가 사진도 찍고 구경도 했다.

그리곤 맥주 몇 개 사서 공원에서 쉬자고 하여 다시 극장 앞으로 왔다. 이미 사람들은 매대를 펼치고 있었고, 그 동안 만났던 오키나와 분들이 몇 분 와 계셨다.

 밖에서 매대를 펼치고 오자와 상과 진영, 광배, 창곤형이 판매를 담당했고, 에리꼬도 계단 중간에서 팜플렛을 나누어 줬다. 진행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준비가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덕분에 아무도 공연 사진은 찍지 않았다 ㅠㅠ)

 도시락을 먹고 평택 다큐멘터리 ‘들사람들’이 먼저 시작을 해서 극장에 들어갔다. 40분 정도의 다큐였는데 일본어 자막을 준비못해서 사람들이 잘 이해를 했는지 의문이다. 이어서 인천 노동문화제 동영상 5분짜리가 상영되고 7시 정각에 더늠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걱정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거의 객석이 가득 찼다.

 더늠은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는 소리로 치기 시작해서 객석 중간을 돌아 무대에 입장했다. 선봉형이 하얀 민복을 입고 나와 넘어가세를 2절까지 불렀다. 시간이 늘어지면 안된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한 절을 뺐다고 한다. 그 다음엔 마요나카 싱야 씨의 공연. 마요나카 싱야 씨는 삼신을 연주하는 김상(金さん)과 같이 나와 노래를 두곡 불렀는데, 노래들이 중간에 에드립도 많고 말씀도 많으셔서 15분가량 늘어졌다. 두 번째 곡에서는 더늠이 나와 함께 연주를 했다. 마요나카 씨가 긴조시게르씨를 소개했다. 긴조 시게르 씨는 오른 팔을 교통사고로 잃고 손 대신 쇠꼬챙이를 달아 삼신을 연주했는데, 연세가 75세가 되는 분으로 연주 실력이 아주 뛰어나고 노래도 오래 부르셨다고 한다. 하지만 눈도 어둡고, 숨도 가쁜 듯했다. 헤노꼬에서 만난 미찌루상이 타이고 연주를 같이 했는데 표정이 너무 예뻤다. 두 번째 곡에선가 객석을 향해 노래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은 듯했다. 누군가 안다고 하자 올라오라 하고, 젊은 여성이 신발을 벗고 무대에 올라왔다. 아마도 그 노래는 듀엣곡인듯 여성은 자신이 불러야 할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후 곡들도 객석에서 사람들이 일어나 (좀 전 여성의 일행인 듯) 오키나와 전통 춤을 추었고, 객석 중간 중간에서도 일어서지는 않았으나 팔을 올려 춤을 같이 호응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음순서로 샤카리 공연을 위해 무대를 정리하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는데 아주 정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아는 듯 아무도 불평은 없었다. 샤카리는 전문 활동을 하는 대중가수인데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느낌이 많았고, 오키나와 전통 민요도 부르고 전통민요와 대중음악을 접목한 노래들을 불렀다. 우리가 일본 가요라고 느낄 만할 그런 노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꽃다지 공연을 위해서도 역시 무대 셋팅을 바꾸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듯해서 샤카리를 보기 위해 온 그런 팬들이 아닐까 싶었으나 거의 모두 다시 들어왔다. 약 15분 정도의 셋팅시간이 흐른 후 꽃다지가 공연을 시작했다. 정서적으로도 약간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있었겠지만 자막을 쏴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용을 더 잘 느끼는 듯했다.

 10시가 다되어 공연이 끝나고 무대 및 밖에서 음반 파는 일도 정리를 한 후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아주 큰 술집이었는데 엄청난 안주들이 등장했다. 초밥과 오리고기, 소고기, 생선찜, 오키나와의 전통음식인 고야 복음 등. 샤카리 팀도 모두 참석했고, 헤노꼬에서 온 미찌루와 미온상, 마요나카 상, 야기상, 이시우 일행, 첫날 사회복지센터 뒷풀이 때 보았던 센터 사무국장님과 소설가 등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공연이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몇몇 분은 전날의 연설이 감동적이었고, 나의 일본어 발음이 매우 좋았다고도 했다. ㅋㅋㅋ

 야기상은 수상을 보좌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계속 음식을 챙겨주셨고, 술집의 서빙보는 사람으로 오해한 한국사람들이 그를 마구 불러 음식을 시켰다. 그러나 전혀 불평없이 너무나 친절하게 다 챙겨주셨다. 더늠은 옷을 갈아입으니 아무도 공연단으로 알아보지 못하여 소외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곧 곳곳에 끼어서 같이 어울렸다.

 이시카와의 병원 직원들이 20명 정도 공연을 봤고 뒷풀이에 같이 온 4명이 인사를 하며 공연이 너무 좋았고, 또 이시카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다음에 다시 공연을 온다면 자신들이 스텝을 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이시카와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대표선수(?)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동경을 대표해서 야기상이, 한국인을 대표해서 이은진이, 오키나와를 대표해서 토미야마상이, 그리고 이시카와가 나왔고, 메구미 상이 통역, 샤카리 그룹의 리더가 오키나와 말로 통역하겠다고 같이 나왔는데 “니헤 뒤베~~” 이런 식의 도통 뭔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반복했다. 아마도 ‘감사합니다’라는 오키나와 말인듯 했고, 사람들은 재밌어 했다. 동경에서는 1700명이 이 행사를 위해 오키나와에 왔다고 했다. 

 정리한 후 숙소로 이동했는데 이 시우 일행과는 여기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거리에서 퍼커션 잼을 한 팀도 있고, 따로 술집을 찾아간 사람들도 있고, 준꼬상의 차를 타고 야경을 보러 간 사람들도 있고, 숙소에서 한 잔 한 사람들도 있고 다들 어디선가 알아서들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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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4)

 4.  5月18日(平和行進3日目) 평화행진 3일째

     현민대회

 10시 출발하여 기노완시의 해변공원에 도착했다. 해변공원 야외 공연장 입구에 짐을 내려 놓고 오자와상, 요오꼬상, 박정숙 일행은 후발대를 마중하러 나하공항으로 떠났다.

시간이 많이 남아 이시카와가 바닷가에 가서 맥주나 먹자고 했다. 미영이는 피곤하다며 짐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가이 상, 메구미 상과 함께 바로 옆 해변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쉬었다. 바다색이 정말 예뻤다. 해변에는 천막을 쳐놓고 나무의자와 테이블이 쭉 있었다.

그 중 한 칸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이런 자리에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나 써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약한 사람이 있다면 비켜줘야 한다고... 옆에서는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여기는 신청하면 바비큐 장비를 빌려준다고 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바닷가 산책을 하는 사람, 사진도 찍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 가졌다.

 12시에 도시락을 먹고, 1시반부터 행사 진행 준비를 했다. 그 때 후발대가 도착 (민정연, 정윤경, 고명원, 박진영)했다. 서울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반가웠다.

 매대를 펼치고 인천노동문화제 티셔츠와 뺏지, 인천CD를 판매하면서 오키나와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냈다. 티셔츠에 요오꼬 상이 오키나와 신기지건설 반대. 라고 써주었다.

 선봉형과 광배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판매하면서 호객행위 했다. 선봉형은 어설픈 일본어지만 아주 열심이었다. “티셔츠를 뜨겁게 살고 있습니다” (티셔츠를 싸게 팔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잘못 함) 뺏지를 빤쓰라고 하는 등 아주 갖가지 말 장난으로 주위사람들을 뒤집어지게 했다. 우리만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나보다.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이 많았다. 

 오후 3시부터 사전행사가 진행되었다.

오키나와 음악팀이 한 팀 나와서 공연한 후 더늠의 풍물공연 10분하고 꽃다지가 노래 2곡(반격과 사람꽃)을 불렀다.

 사전공연이다 보니 행진대오가 계속해서 입장을 하고 있었고, 대오가 들어올 때 노래 중간인데도 안내 멘트를 했다.  객석은 반 정도 차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4시가 되어서 집회는 시작했다.

 영택이와 내가 대회 공식 참가자(게스트)로 되어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역을 맡은 준꼬 씨와 단상에 올라가 미리 앉아 있었다. 참, 한국에서도 드문 이런 일이 오키나와에서 있다니. 한국에서 누가 문화단체들을 이런 귀빈 대접을 한단 말인가...

 연설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연설자 당 5분간 발언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 행진 둘째날 사회를 본 야기상이 젤 앞 중앙에 앉아 ‘1분’, ‘종료’ 등의 팻말을 들어올리고 있었고, 별로 늘어지지 않고 진행되는 편이었다. 

  동경에서 온 노조 위원장, 실행위원들, 국회의원, 무슨 단체 대표자들이 연설을 했다.

 그런데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특이하게도 무대위에서는 행사와 약간 무관하게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두 학생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예전 현민대회 흑백 사진을 A3 사이즈로 뽑아 들고 단상 옆이나 뒤에 서고 한 사람이 계속 사진 촬영을 했다. 객석에도 가서 사진을 찍고. 이들은 고교생 사진 창작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팀인데 기술자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팀이고, 뭔가 창작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사진기자는 한 명도 무대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면서도 이들의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또 매우 특이했다.

 나과 영택의 연설은 약 5분정도 였다. 준꼬상이 통역을 해주었는데 인사말과 소감, 지지 발언, 광주에 대한 이야기, 돌아가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다짐, 감사의 인사, 그리고 구호로 마무리했다. 외국의 공식 연설은 우리가 유일했고 TV에도 나왔다고 한다.

 비는 흩뿌리듯 계속 내렸다. 태풍때문인데 바람도 많이 불어 좀 추웠다. 마지막 아필(선언문) 낭독 시 오키나와 음악팀이 다시 나왔고, 청년 대표가 앞부분은 생략하고 뒷부분 한 문단만 읽는 센스를 보였다. 집회를 정리하면서 음악팀이 같이 연주를 하고 인터내셔날가를 합창했다.

 단상에서 내려오니 이미 매대를 다 정리해 놓았고, 야마시로 상과 인사를 나누고 남은 티셔츠등을 행사 자원봉사자들에게 기증했다.

 서둘러 버스로 다시 이동했고, 사람들이 더 왔기 때문에 오자와씨와 몇 명이 택시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버스로 숙소 도착했다. 오면서 이시카와가 저녁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을 예약했고, 에리꼬도 오기로 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 주점에 들어가 자리잡았다. 모두 28명정도 되었다. 1인당 3천엔(3만원 정도)에 술은 무한 리필, 음식은 코스로 나오고 모자란 것은 더 시키면 계속 준다는 약간 뷔페같은 곳이라고 진짜 좋아했으나 요리의 속도가 너무 늦어 거의 깡술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특히 더늠이 몰려앉은 테이블은 요리가 나오자마자 30초도 안되어 바닥을 보였고, 모두 배가 고파 화를 냈다. 어쨌든 10시 경에 식당을 나와 숙소에 돌아와서는 2차 할 사람들은 라면 끓여 먹고 술마시고 하면서 또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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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3)

3. 5月17日(平和行進2日目・西コース) 행진 2일째 서쪽코스

 요미탄에서 카데나까지 10Km 카데나에서 동쪽 코스와 합류

 

 오전 7시 출발. 오자와상과 히나타상이 일찍 숙소로 오셔서 방에 짐을 풀어놓고는 같이 출발했다. 오늘부터는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시다. 

 요미탄손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 공연 시간을 제대로 예측못해 늘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오늘은 사전 공연이란다. 부랴부랴 더늠 치배들은 옷을 갈아입고, 사민당 방송차 앞에서 풍물공연을 했다. 역시나 풍물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 중간에 끊으라고 하여 또 약간의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후 꽃다지가 두곡을 불렀는데 하나(꽃)라고 오키나와 민요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하나라는 곡은 7,80년대 활동가들이 잘 아는 노래라 오자와씨와 치바나 쇼이치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따라 불렀다.

 야기 상의 사회로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나와 연설을 했다.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씨와 오키나와 출신 국회의원 등.

 오자와씨는 20년 전에 오키나와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최근까지 동경에서 헤노꼬 투쟁 지지집회를 방위성 앞에서 매주 한 번씩 하는데 이 집회에 연대를 계속 해와서인지 자세히 알고 계셨고,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이해를 도와주셨다. 

 요미탄 시청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미군기지였는데, 시장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싸워서 결국은 반환이 된 땅이라고 한다. 그 때 시장을 지내며 끝까지 투쟁한 분이 현재 국회의원인데, 이 날 연설을 하셨다고, 매우 재밌게 연설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정광훈 의장님과 비슷)


 

9시가 조금 넘어 행진을 시작했다. 대오 제일 앞에 별모양으로 큰 상징물을 만들고 거기에 반전평화라고 써서 수레로 끌고 갔고, 또 황소의 탈을 쓴 사람도 있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 씨가 그 소를 끌고 갔다.

어제와는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민들도 많았고, 한적하고 벌판이 펼쳐져 있는 기분좋은 길로 행진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곧 엄마 아빠에게 안기거나 업혀서 갔는데, 그 엄마 아빠들이 끝까지 행진을 계속 했다. 정말 대단한 의지, 체력이다. 

 카데나 근처로 가면서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카데나 미군기지 철망을 따라 계속 걸었는데, 정말 길게 계속되는 철망을 보며 걸어야 하는 것은 괴로웠다. 그러니 상점하나 보기도 힘들고, 맥주 한 캔을 못사먹었다는 거...


 역시 기차박수, 8박자 구호 등을 외치며 걷는데 오늘은 일본인들도 구호를 많이 외쳤다. 주로 오키나와의 신기지 건설 반대, 000 반대등의 구호가 많았는데 앞부분은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뒷부분 한따이! 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 같이 동참하는 의미이니까...

 히나타 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많은 오키나와, 일본인들이 따라했다. 목소리가 정말 끝내준다.

 한참을 걷다보니 역시 우익이 출현했다. 우익은 항상 행진대오 우측에 출현한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차량(7~8대)이 정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정말 시끄러웠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만 또 씩씩거리고...

 오자와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경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동경에서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이 우익을 통제한다고 했다. 이시카와에게 풍물을 치면서 가자고 했다. 우익들 소리가 안 들릴테니 신나게 풍물치며 가자고. 이시카와가 우리차의 기사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차가 막혀서 그런지 금방 온다고 했는데 도통 나타나질 않는다. 11시쯤 휴식을 위해 어딘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우익 차들이 에워싸고 난리가 났다. 다시 출발하려 하는데 그 때서야 우리버스가 도착했다. 잽싸게 악기를 내려서 메고 풍물을 치면서 대오를 따라갔다. 이시카와는 “재밌다”고 한다. 우익들이 출현했지만 우리의 풍물소리가 더 컸고, 대오 앞쪽과 뒤쪽으로 인도를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풍물을 치지 몇몇 사람들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익들은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사라졌다. 우리는 나름 의기양양해 하며 오후엔 더 신나게 쳐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어제보다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이시카와가 와서 주최측에서 우익에 대해서는 무시가 기본 입장이라고 하며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특히 인도로 올라가는 일은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절대 안된다고...

 점심 이후 출발할 때 잠깐 풍물 공연을 하고, 다시 행진 시작하면서는 악기를 차에 실었다. 지루한 오후 행진... 우익들은 다시 나타나 계속 떠들어 댔다.(유턴을 해서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방해함) 기지 입구에서 잠시 항의집회를 했다. 그냥 서서 구호만 열댓번 외쳤다. 

정리집회 장소인 아메리카 타운의 공원입구까지 거의 다 와서 행렬이 멈추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침 가게가 있어서 맥주나 사자고 들어가려는데 이시카와가 우익들이 있기 때문에 따로 행렬과 떨어지면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앞쪽으로 가봤다. 그랬더니 우익들이 흥분해서 차량들로 공원 입구를 막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을 하고 우익 몇 명이 대오 쪽으로 달려들려 하자 자기네 일행들이 말리는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충돌이 생길 뻔 했던 거 같다. 

 우리일행은 무시라는 전술이 가장 힘든 전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지쳐 있었지만, 오키나와인들과 행진 대오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36년을 지속해 오지 못했을 것이고, 충돌을 하거나 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하여 잡아간다고 했다. 어쨌든 5.15 평화행진을 해마다 계속 진행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 방침일 것이다. 뭔가 끈질기게 버텨온 힘이 있긴 있는 듯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자 팥죽(?)과 음료, 사탕을 나눠준다. 동코스 (어제 헤노꼬부터 걸어 내려온)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며 산호를 줍기도 했다.

 그러다가 맥주라도 먹고있자는 제안에 더늠의 세움이와 정기가 사러갔다. 그런데 간지 삼사십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걱정하던 이찬영이 찾아다니고 했으나 못찾았다. 큰일이다 싶어 다시 몇 사람이 찾으러 가려는데 나타났다. 길을 잃고 헤맸으나 결국은 그래도 스스로 찾아온 것이 다행이다.

 뒷부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정리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시카와상이 급하게 공연 팜플렛 원고를 보내줘야 한다고 먼저 출발하자고 하여 버스로 이동했다. 가까운 휴게소 피씨방 앞 공터에서 이시카와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30분 가량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메구미 언니와 나가이 상이 와 계셨다. 메구미언니는 일찍 도착했지만 어차피 행진대로에 결합할 수 없으니 몇군데 관광을 했다고 한다. 언니도 오키나와가 처음인데 건물도 경치도 전부 너무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확실히 일본이 아니라고 했다.  

 밤 9시 40분쯤에 빨래를 돌려놓고 (한 번 돌리는데 100엔이다) 조성일, 박미영, 이찬영, 김영택, 이은진, 메구미, 요오꼬 상이 함께 극장 답사 갔다. 극장은 숙소에서 시장길로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영화극장이기 때문에 조명도 별로 없고, 음향은 따로 셋팅을 한다고 했다. 예상대로 무대는 상당히 좁았다. 그러나 현장에 강한 우리 아니던가...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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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2)

2. 오키나와 평화행진 1일차

5月16日(平和行進1日目・東コース) 평화행진 1일차. 동쪽 코스로 헤노꼬에서 킨까지 18 Km (9시부터 17시까지)를 걷기로 되어 있었다.


 6시 30분에 미리 빌린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비가 많이 내려 비옷과 우산등을 준비하고,

또 더늠은 공연을 위해 악기와 의상들을 준비하느라 짐이 하나 가득이었다.

서둘러 차로 출발하고 차내에서 주먹밥과 삼각김밥을 먹고 8시 헤노꼬 도착하였더니

비는 간데 없고 뜨거운 뙤약볕으로 바뀌어 있었다.

헤노꼬 기지 반대 투쟁 농성장으로 들어서니

미찌루라는 젊은 여성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이 삼신을 들고 맞아준다.

미찌루는 만월(滿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삼신(일본에서는 샤미센이라고 하는 비슷한 악기를 오키나와에서는 삼신-세개의 선-이라고 함.

일본에서는 고양이 가죽으로 만들고, 오키나와는 뱀가죽으로 만든다고 함))으로

아리랑도 연주를 했고, 또 오키나와 민요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꽃다지 성일이의 기타를 꺼내서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미찌루는 19일에 있을 콘서트 때 긴조시게르씨의 타이고(오키나와 북) 연주를 한다.

 헤노꼬 농성단은 보통 아침에 모터보트를 타고 나가 시위 및 감시를 하는 데

지금은 태풍이 와서 배가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이 맘 때가 우기인데 올해는 우기가 조금 늦게 오고 태풍이 오는 중이라고 한다.

9시가 조금 안되서 바닷가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시작했다.

더늠은 미리 차에서 옷을 갈아있고,

한국에서 주로 하는 것처럼 멀리서부터 악기를 치면서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왔다.

주최측은 이런 공연을 처음보기 때문에 공연단을 자꾸만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또 중간에 끊으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흐름이 있는데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고만...

하여간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런 후에 꽃다지가 공연을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두곡이었다가 한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위처럼 한곡을 같이 불렀는데 방송차량의 음향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마이크가 하나 밖에 없어, 결국은 그냥 모두 기타 반주에 생소리로 불렀다. 

집회에 참여한 대오들은 수도국 노조 조합원들이 많았고,

헤노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석하셔서 많은 격려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헤노꼬 분들은 농성장을 지켜야 하므로 행진은 하지 않았다.

집회는 주로 연설로만 계속 될 뿐 다른 프로그램은 전혀 없었다.

워낙 그렇게 진행을 해와서인지 사람들은 그냥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9시 반이 좀 넘어서 행진을 시작했는데, 진행차선 한 차선을 따라 행진을 하고

자원활동가들인지 단체티를 입은 젊은 이들이 깃발을 들고

차선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질서유지를 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언덕들이 많이 있는데다가 아침에 비가 와서

땡볕에 대응할 준비를 못했기에 우리들은 무척 힘들었다.

다들 조용히 걷는데 한국 행진단은 8박자 구호와 기차박수를 치면서 행진했다.

(주요 구호 : 평화헌법 사수하자. 오키나와에 신기지 건설 반대한다.

미국놈들 물러가라 등등... 김창곤, 박선봉이 주도)

그러나 그도 잠시 모두 지쳐서 묵언 수행을 하듯이 걷기만 했다.


  ** 평화헌법이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 자체 반성을 하면서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평화헌법을 제정 (9조)했으나 오키나와는 이 헌법에서 예외로 미군지기가 몰려 있는 곳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헌법을 지키자 라는 의미와 이 조항을 최근 개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것임. 

 

 11시 쯤 어딘가 주차장 같은 공터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바나나와 음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햇빛은 쨍쨍한데 약간의 비가 오락가락 한다.

잠시 휴식하고 또 행진.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계속 행진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힘든 것 같았다.

서울에서 사전 점검회의를 할 때는 걷진 않아도 되고 차로 이동하면서

중간 중간에 공연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전달 받았었다.

점심 식사 시간. 어딘가의 시청 혹은 구청 이었는데 주차장 바닥에 앉아

주최측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었다.

리는 밥을 먹으면서 오후에 꼭 걸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도 맨날 길바닥에서 사는데... 여기까지 와서 굳이? 뭐 이런 기분들이었다.

하지만 이시카와는 단호했다. 평화행진에 참가하기로 했고,

전체 일정을 같이 해야 하므로 걷는 건 의무라는 것이다. 뭐... 사실 굳이 할 말이 없다.

기양 걸을 수 밖에... 사실은 내가 정말 허리가 많이 아파 도저히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 쉬기가 미안해서 다같이 걷지 말 것을 제안한건데 어쩔 수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아보기로 했다.

중간 중간에 상점이 나타나면 맥주를 사서 마시면서 걷기도 했고,

잠시 앉아 마시고 출발하기도 했으나 대오가 곧 사라지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참 힘들었다.

식사 후에는 그냥 밋밋하게 걷지 말고 풍물을 치면서 행진을 하기로 했다.

풍물을 치기 시작하면서 대오는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뭐 특별히 공연을 보거나 집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행진을 하면서 풍물을 계속 치자 조용하던 마을에서(오전에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음)

사람들이 튀어나와 지지하는 손짓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특히 초등학교를 지날 때에는 아이들이 행진 대오를 보려고 담장을 따라 뛰면서 환호하고

“아리가또~~”(고맙다)라고 외쳤다. 초등학생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럴 걸 왜 조용히 걷기만 하는지 좀 의문이 들었다.

대 시민 홍보도 아니고, 각자의 실천 중에 하나인 걸까?

오전 내내 걸으면서 특히 더 힘들었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던 것 같기도 했다.

땡볕에서 더늠이 한 시간 넘게 공연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

장구 가락에 맞추어 박선봉이 민요를 몇 곡 불렀다.

그 이후에도 악기를 차에 실어놓고 계속 행진을 했는데

나는 허리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차에 타고 이동을 한 후 우익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방송차 한 대와 검은 찝차 한 대에 천황의 군대라는(菊軍) 표시와

일장기(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기운이 뻗쳐 나가는)를 두르고 시끄럽다는 둥,

북한으로 가라는 둥 계속 방해를 하면서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다른 행진대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우리들 일행은 열받아 욕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힘들다가도 우익들이 출현을 하면 기운이 펄펄 났다나 뭐라나... 이구구..

킨에 도착하여 정리집회를 한 후 5시 정각에 해산을 했고, 모두들 차에 올랐다.

숙소로 돌아와서 식사당번을 정했다.

첫 번째 식사 당번은 나와 정혁, 그리고 선봉형.

준비된 게 없었기 때문에 라면을 끓여 햇반을 몇 개 사서 먹었다.

이후에는 각자 알아서 돌아다니며, 혹은 숙소에서 술자리를 벌였다.

이시카와를 집에서 쉬고 푹 자라고 보냈는데 8시도 안되어 신문에 난 기사를 가지고 달려왔다.

어제 인터뷰한 것도 나왔고, 오키나와 타임즈에도 꽃다지 사진이 아주 크게 나왔다.

이시카와하고 술집에 갔다. 이시카와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해서는 “내가 없었으면 이 행사 못했겠지?” 한다.

맞어... 네가 아니었음 어떻게 여기를 오겠다고 했겠니. 그리고 어떻게 성사가 가능했겠니...

고맙다. 또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 계기를 기회로 너도 오키나와에서 너의 자리를 찾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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