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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젊은바다님의 [기독청년학생 희망만들기] 에 관련된 글.

소망이 현실이 되길 ........

나는 또 무엇으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처음
겨울의 찬바람이 채 가시지도 않은 3월. 세찬 바람사이로 내리쬐는 햇살과 휘감겨 흩날리는 눈발의 절묘한 향연을 보면서 우리들의 첫 만남이 있다. 작은 다락방에 옹기종이 모여 반가움을 나누고 기대를 나누고 희망을 키워가고... 모든 이들 하나하나 새로운 만남과 배움의 장을 한껏 기대하며 그렇게 처음을 열다.

발견
청년운동을 일궈 나간다는 것. 너와 나를 만든다는 것. 얽힌 실타래처럼 무엇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어디부터 풀어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운동의 현장 속에서 새로이 가능성을 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기독청년운동을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가 지향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기 위해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현장, 인간을 다시 기억해 내는 발견을 하다.

기쁨
어느 노랫말의 가사..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사막한가운데의 오아시스이며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나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신나는 일이다. ‘동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들과 함께 하다.

눈물
때로는 살아가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 울고 싶을 때, 그 어깨를 빌려줄 이들이 있었고, 맘 편히 기대 울다 잠들 수 있는 정을 가진 이들이 있다. 비록 서로에게 넓은 품은 되어 줄 수는 없어도 함께 눈물 흘려 줄 수 있는 서로가 되기 위해, 그저 함께 있어주는 무흔의 시간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너와 나. 한 방울의 눈물을 통해 세상이 정화되다.

아픔
너무 힘들고 아파서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앞에 두고 그를 마주하는 훈련의 시간. 조심스레 거울을 들고 내 몸의 여기저기를 비춰가며 내 상처 난 곳을 좀 더 살펴보다. 무관심속에 자라난 상처를 보듬으며 ‘미안하다’를 나직하게 읊조리다. 내 상처 보기 바쁜 우리네 삶에서 내 이웃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거울 앞에 서다.

우리의 삶은 배움의 연속이란 말. 평생을 배워도 그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
사람이 배움을 손에서 놓는 순간부터 빠지게 될 편견과 아집이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언제부턴가 배움을 게을리하게 되어 느슨해진 청년운동을 다잡아 보고자 ‘기독청년학생 희망만들기’라는 이름으로 3월 초부터 10주간 교육이 시작되었다. 지도자의 역할과 성품, 조직의 개념과 조직하기 기법, 의사소통, 조직운영 등의 구체적인 주제로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웬걸!! 처음에는 그냥 모여서 같이 강의를 듣는 교육과정인 줄 알았는데, 다음주에는 사람만나기 과제를 해오란다. 그러더니 몇 주 지나서는 사례연구도 해오고, 직접 계획한 그룹을 조직해서 계획서를 제출하란다!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입으로 고백되어지고 발견하게 되는 청년운동의 현주소를 보면서 매주 교육이 끝나면 고민 한보따리가 내 뒤를 졸졸 쫓아온다.
쉽지 않은 과제만 해도 벅찬데 서비스로 주어지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민들이라니... 점입가경일세.
그래도 매 주의 교육모임을 빠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 안에서 새로운 청년운동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며 이마를 치는 순간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저 알고는 있었지만 해석해 내지 못했던 청년운동의 아픔들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청년운동이라 불리는 현장에 많은 시간 있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이 곳에서 활동을 해온 다른 분들을 보면서 그 아픔을 더욱 적나라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내게 너무나 따스한 경험으로 다가온 이유는 ‘사람들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와 책들 그리고 좋은 세미나와 강의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봇물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앞에서 우리는 어쩌면 많은 배움을 얻고 있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삐까뻔쩍해 보이는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이들을 불러 영어로 쏼라쏼라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가슴 한켠 뭔가 허전한 것은 지울수가 없다. 왜일까. 왜일까. 왜일까. 그렇게 ‘학교’라는 현장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나를 붙잡고 물었던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이 빠졌더라. 삶이 빠졌고, 생명이 빠졌고, 이웃이 빠졌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이 빠졌더라. 빠진 것 많은 구멍숭숭난 책은 던져버리고 사람을 배우기 위해 이 배움의 현장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세대에 새로운 배움으로 거듭나는 발전된 청년운동을 만들기 위한 배움을 가졌다.

비록 지난 시간들 또한 액자 속의 추억이 되었지만
우리의 배움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그렇게 청년운동을 살아 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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