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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과제국주의] 아펙의 전환점과 부시의 전쟁


 

2. 아펙의 전환점과 부시의 전쟁 : '인간안보'의 본질

 

패권적 지위를 위한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과 휘황찬란한 거짓말과 평범한 이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탐욕 속에서 '지지부진하다'는 평을 들어 온 아펙이 다시 부활한 계기는 바로 2001년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를 지지하는 도구 구실을 한 것이었다. 아펙이 새롭게 활력을 얻은 계기는 바로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아시아태평양 정상들은 '테러에 반대하는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인구 가운데 무슬림의 비중이 압도적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 부르나이의 정상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언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상들 가운데 그 누구도 워싱턴을 비난하는 언사를 쓰지 않았다. 당시 인도네이사 외무성 장관인 하산 위라유다(Hasan Wirayudha)는 이슬람의 폭발적인 반발을 경고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항의하는 수많은 대중적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메가와티도 마하티르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반대하지 않았다.

 

중국의 장쩌민과 러시아의 푸틴도 그랬다. 이 두 제국주의 강대국의 우두머리들은 워싱턴의 군사적 개입을 묵인하면서 자신들도 강대국으로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여겼다. 푸틴은 체젠 개입을, 장쯔민은 아프가니스탄의 옆의 신장 위구루 자치지구를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이로써 세계 최부국이 최빈국에 미사일을 퍼부은 희대의 악행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대륙에서 지지와 동의를 받았다. 부시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의 외교안보연구원은 세련된 어조로 2001년 상하이 정상회담을 이렇게 찬양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아펙 정상회의가 원래 아펙 의제와는 상관없는 다양한 정치안보적 이슈에 관한 효과적인 고위급 협의체로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상 문제와 안보문제 등 의제간 연계성 심화라는 흐름의 바탕 위에서 정상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아펙 내 정식 의제로서 안보 의제의 도임이 필요하다."('아태 경제협력체의 향후 발전방향' 조용균, 외교안보연구원)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고 중국은 WTO 가입이라는 성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8가지 항목의 반테러 성명이 있었다.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과 미국의 사이의 거래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부흥' 계획에 참여했다. 그리고 일본은 파키스탄에 자위대를 파견함으로써 남아시아에도 개입할 수 있는 사냥 면허증을 얻었다. 그리고 테러대책특별조치법과 자위대법을 개정할 수 있게 됐다.

 

2003년 방콕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는 이라크 파병에 관한 세부적인 방안들과 논의들을 끌어냈다. 정상회담 전후로 틈틈이 주요 나라 정상들과 단독으로 회담을 진행했다. 이 때도 고이즈미는 부시를 따로 만나서 일본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노무현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서둘러 파병을 결정하고 방콕으로 날아가 부시한테 파병 결정 소식을 선물로 안겨 줬다.

 

2003년 태국 정상회담은 아펙 회원국들의 군사주의적 안보공약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한 아펙 회원들 간 합의를 이뤄냈다. 2001년 상하이 회담 때 이런 조처들을 이끌어 내려다가 부분적으로 갈등을 빚은 것에 비하면 그들 처지에서는 대단한 진전이었다.

 

2001년에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의지에 관해서 회원국들간에 다소 이견이 있었다.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은 시큰둥했고 미국, 러시아, 일본, 호주는 적극 찬성이었다. 그러나 수차례 고위관리회의를 거쳐 태국 정상회에서 이 의제가 최종 채택됐다.

 

2003년 태국 정상회담에선 경제교역과 안보가 직결돼 있다며 10개 항목의 '대테러' 조처가 승인됐다. 그런데 반테러대책기구(CTTF; Counter Terrorism Task Force)의 내용을 보면 인간안보의 '대테러' 조치가 시민적 자유의 박탈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여러 항목 가운데 승객정보시스템 같은 내용은 분명히 출입국 규제이자 비행기 탑승객 모두에 관한 정보들을 철저히 심사하는 항목이다.

 

이것이 철저하게 실험된 사례가 있다. 2003년 방콕 정상회의 때 그랬다. 2003년 태국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무기를 찾는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혹시 모를 무기 운반을 막기 위해 트럭도 고속도를 달릴 수 없게 했다. 모든 거리에서 몸 수색을 일삼았고 5개 국립호텔 방문자들에 대한 검문검색이 유별났다. 미대시관 근처는 무장경찰이 몇 겹씩 삼엄하게 경비해 전시를 방불케 했다. 탁신 태국 총리는 군대를 동원해서 캄보디아 노동자 6백여 명을 며칠 만에 사냥하듯 잡아들여 해외로 송출시켜 버리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김없이 아펙 회의가 있던 도시에서는 검문검색과 보안수색대, 대규모 경찰 동원이 횡행했다.

 

2004년 산티아고 12차 정상회의에서도 이틀의 회의 가운데 하루 전체를 안보 문제 다루는 데에 할애했고 여기서 10개항의 대테러 조치사항을 승인했다. 대량살상무기 위험 제거도 그 중 하나였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국가인 미국의 주된 요구사항이었다.

 

2004년 11월 21일 열린 안보분야 1차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 요구를 적극 지지하며 "테러에 대한 효과적 대응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며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고 대테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의 접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아펙의 표어는 2001년 정상회담 이후 해마다 확인됐다. 2001년 상하이 정상회담은 "9.11 테러 공격은 우리의 활동에 새로운 도전을 제공한다. 아펙 회원국들은 이런 도전과 맞닥뜨려야 한다"고 선언했고 2002년 멕시코 로스카보스 정상회담은 "우리는 테러리즘이 우리의 목표와 대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할 것이다. 그리고 테러리즘을 제거하기 위한 지역적 노력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2003년 방콕에서는 "우리는 지역의 무역과 투자뿐 아니라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들에 맞서 우리의 사회를 방어하는 데 동의한다"고 선언했다.

 

아펙의 '반테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2003년 태국 아펙회의 당시 꾸려진 아펙 내의 반테러대책기구(CTTF)의 행동계획에 잘 나와 있다. 그것에 따르면 화물, 여행자 방어, 해양 방어, 비행기 방어, 사이버 안전, 지역이민경보 체계의 원리들과 방법들을 새롭게 짜야 한다. 그런데 위의 내용들에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지역이민정보 체계(The Region Immigration Alert System)는 이주자 규제라는 목적에 잘 들어 맞는다. 아예 반테러대책기구의 활동을 다루는 <테러리즘에 맞서 관광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안전/보안 대책>(APEC Tourism Working Group, October 2004)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각국에서 경찰력과 법 강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 문서에는 아예 몇 장에 걸쳐 '로드맵'이라는 제목으로 각국의 반테러법들이 소개돼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애국자법, 호주의 반테러 계획, 대만의 반테러리즘 프로그램,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영국의 CCTV 대량 설치 등이 추천되고 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에서 입안된 반테러법이 얼마나 많은 사회 문제를 낳았는지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입증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10월 26일 만들어진 미국의 애국자법은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과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조지 부시가 애국자법을 만들 때 참고한 영국의 '테러리즘법 2000'은 테러리즘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정의한다. "[테러리즘]은 '공공이나 공공의 일부에 영향을 미치거나 협박하기 위한 [행동]'과 '정치/종교/이데올로기적 대의'를 성취하기 위한 행동에까지 확장돼야 한다." 심지어 애국자법 215조는 정부가 테러 수사와 관련해 도서관/서점 등을 포함한 '영업기록'을 몰래 조사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1년 10월 26일 법 제정 이후 알래스카/하와이 의회 등 1백 40여 개 중소도시들이 이 법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아펙은 이와 같은 반테러법이 아시아에서 확산돼야 한다며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이 법의 제정과 확산이야말로 반테러 활동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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