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예산 멋대로 주무르는 부끄러운 어른들

예산 멋대로 주무르는 부끄러운 어른들
[한겨레 2006-07-06 14:24]    

[한겨레] 서울시교육청 56억 책정 시의회 심의 61%나 깎아
‘준비물없는 시대’ 물건너가나

서울시의회가 서울 지역 초등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학습 준비물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했다. 학부모·학생들의 기대를 잔뜩 받았던 ‘준비물 없는 시대’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월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위원회가 마련한 학습 준비물 예산은 56억8천만원. 서울시의회는 임기를 사흘 남긴 지난달 27일 교육비 추경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이 예산의 61%인 35억원을 깎아 21억원만 남겼다. 애초 71만 초등생 1인당 8천원씩 지원될 예정이던 학습 준비물 예산이 1인당 3천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게 됐다.

이에 대해 문도현 서울시의회 입법조사관은 “예산을 사용하게 될 2학기가 넉 달밖에 남지 않아 예산 조정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일부 초·중·고교에 99억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하기로 해, 선심성 예산 편성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습 준비물에서 깎인 예산 35억원도 전부 이곳으로 편입됐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임기가 다 된 시의원들이 전체 초등학생에게 돌아갈 수 있는 혜택을 빼앗아 지역구 관리용으로 썼다”며 “추가 편성된 예산이 과연 교육적으로 시급한 것들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원 예산에는 특정 학교 야구부 지원, 특정 중학교 빔 프로젝트 구입비 등이 끼어 있어 의구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개포동에 사는 학부모 이아무개(36)씨는 “티가 안 나는 예산이라고 이렇게 깎아도 되느냐”며 “지난 5월 소식을 듣고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도 성명을 내어 “추경예산을 편성해서라도 학습 준비물 예산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예산 삭감에는 서울시교육청의 방관적 자세도 한몫했다. 조향훈 서울시교육청 예산법무담당관은 “학습 준비물 예산 편성은 교육위원회와 합의된 사안이긴 하지만 우리 교육청의 뜻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나마 시의회에서 완전히 삭감하려는 것을 절반이라도 살리자고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창신동 노동자센터 지원금 담당공무원 집행 미적미적
올안 10억 미집행땐 반납해야

노동자와 그 자녀들을 위해 쉼터와 공부방을 마련하라며 중앙 정부가 지원한 예산 10억원이 관할 구청의 엉뚱한 ‘재테크 궁리’ 속에 여섯달째 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해 12월30일 행정자치부로부터 종로구 창신동에 ‘봉제사업장 여성근로자 지원센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10억원의 특별교부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구청은 지원센터용 건물조차 사들이지 않고 있다. 이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전순옥(52)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는 지난 1월 종로구청에 창신동 일대 3곳의 건물을 후보지로 올렸지만, 구청은 건물에 무허가 부분이 많거나 위법 건축물이라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이 예산은 올해 안에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반납하도록 돼 있어, 자칫 노동자 쉼터와 아이들 공부방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구청 쪽은 현재 뉴타운사업 예정지구인 이곳에 건물을 살 경우 이후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제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정철호 사회복지과장은 “8억원을 주고 건물을 산다고 가정할 때, 뉴타운사업 과정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건 5억~6억원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구청 관계자는 “(보상가를 적게 받아 손해를 보면) 행정감사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몸을 사린다.

구청 쪽은 뉴타운사업을 걸림돌로 거론하지만, 실제 창신동 지역은 후보로 지정됐을 뿐이어서 언제 사업이 이뤄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25개 뉴타운 사업 지구의 사업 기간을 1차 5년 4개월, 2차 9년 등으로 예상하고 있고, 창신동은 사업지구로 지정되더라도 그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전 대표는 “담당 공무원이 아예 ‘다른 곳에 가서 사라. 여기는 투자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구청이 오로지 건물의 투자가치만을 따지고 있는 동안 30여평의 좁은 공부방에서 52명의 학생들이 웅크리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