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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눈치보다 또 ‘원점’…복지위서 여야 합의 깨져

의료사고 발생시 과실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렵게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까지 이끌어냈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국회 본회의는 고사하고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는 등 헛돌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29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은 지난달 11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합의가 깨지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법안소위로 되돌려 보내졌고 차일피일 심사가 미뤄지고 있다.

4일과 오는 8일 복지위 법안소위가 다시 열리지만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은 28개 심사대상 법률안 중 가장 뒤로 밀려나 있다. 일정상 실제 심사가 이뤄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법안의 핵심사항인 ‘의료사고 발생시 과실입증 책임 전환’에 대한 논의가 워낙 팽팽하게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안은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의료분쟁조정법 관련 긴급토론회는 이 같은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의료계 측은 “입증 책임 전환이 이뤄질 경우 의료인의 방어·과잉진료와 중증환자 진료기피 등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병원 문을 닫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정보의 비대칭적 특성을 감안해 의료인이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의료기록 허위기재에 대한 명확한 규제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의료인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인재 변호사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의료진이 진료에 관한 경과를 상세히 기록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의무기록 감정 회신 결과가 거의 대부분 환자 측에게 불리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환자 측은 감정서를 작성하는 의료진이 틀림없이 피고 측 의료진과 연결되어 있다는 불신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주수호 회장은 “현재 의료법상에는 진료기록을 정확히 기재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며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환하면 다수의 국민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번 법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복지부 김강립 의료정책팀장은 “이 제도 자체는 양 당사자가 동의해서 수용해야 작동한다”면서 “양 당사자가 극명하게 입장을 달리할 경우 수용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수 있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홍진수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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