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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저체중 정부, 이제 건강한 정부로 가자

한때 ‘깡마른 몸매’가 유행하면서 실제 저체중인 여성들이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친 다이어트로 건강을 해친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같은 사회현상은 마치 저체중인 한국사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을 연상시킨다. 국가재정, 복지예산, 공무원수 등등 객관적인 수치는 모두 저체중임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러다가 뚱뚱해진다”며 잔뜩 겁을 주는 모양새다. 극심한 양극화와 세계 최고의 저출산 등 이미 사회 구석구석은 식사장애로 인한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말이다.

저체중 한국사회 놓고 벌어지는 ‘작은 정부론’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큰 정부적 규제철학을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전환해야 한다”며 “공무원 수 증가가 규제 증가로 이어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작은정부론이 또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한다며 세계흐름에 역행한다던 일부 언론의 그동안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세계는 다 작은 정부로 가는데 우리만 큰 정부로 간다’, ‘실패한 유럽식 복지모델 왜 따라가나’, ‘거꾸로 가는 큰 정부’, ‘공무원 늘리는 간 큰 정부’….

이들은 마치 큰 정부는 방만한 정부, 작은 정부는 효율적인 정부, 그래서 큰 정부는 선이고 작은 정부는 악인 것처럼, ‘큰 정부’에 부정적 덧칠을 하고 그 부정적 이미지를 참여정부에 덮어씌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지향한 것은 큰 정부가 아니다. 물론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도 않았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것이 옮고 그른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각 나라가 처한 여건과 시대상황에 따라 국가의 역할과 재정규모를 적절하게 조절해나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과연 한국은 ‘큰 정부’일까, ‘작은 정부’일까. 논란의 핵심은 크게 정부 재정규모, 공무원 수, 규제 건수 등 3가지로 모아진다. 여기에 추가로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정부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공무원 수 선진국의 1/3… 서비스인력 부족

‘큰 정부’ 논쟁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이 공무원 숫자다. 일부 보수언론은 프랑스, 일본 등 일부 국가의 인력감축을 들어 세계는 작은 정부로 가는데 우리만 큰 정부로 간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저체중 환자에게 다이어트 처방전을 주는 것만큼 무책임한 주장이다.

총인구 대비 공무원 비율이 우리나라는 2.8%로 미국(7.0%), 프랑스 (7.8%), 영국(7.9%) 등 선진국의 1/2∼1/3 수준이다. 작은 정부라고 언론이 추켜세우는 일본(3.5%)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특히 교육, 보건, 치안, 고용, 복지 등 대국민 서비스 분야 공무원은 절대인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소방관 1명이 불을 끌 때 일본은 2명이, 우리 경찰관 1명이 도둑을 쫓을 때 미국은 2명이 쫓는다. 우리 공무원이 슈퍼맨이 아닌 이상 선진국과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참여정부 들어 증원된 국가공무원은 모두 5만7000여 명이다. 이중 교원이 51%로 절반을 넘는다. 나머지도 경찰 11%, 보건·환경 6%, 집배원 5%, 고용지원 5%, 교정 3%, EITC(근로장려세제) 3% 등으로 총 84%가 대민서비스 인력이다. 이 분야 인력 증원은 실제 대국민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졌다. 초중등 학급당 평균학생수가 2002년 35.2명에서 2006년 32.9명으로 줄어드는 등 교육여건이 향상됐고, 특허심사 대기시간이 평균 22.6개월에서 9.8개월로 대폭 줄어드는 등 각종 민원처리기간도 단축됐다.


규제 건수보다 내용이 중요

일부 언론은 전체 규제건수가 늘었다는 이유를 들어 참여정부가 큰 정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규제의 수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필요한 규제인가 불필요한 규제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참여정부 들어 규제가 일부 늘어났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14개), 건강기능식품에관한법률(25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8개), 수도권대기환경개선에관한특별법(8개) 등 주로 새로운 산업발생에 따른 것이거나 국민의 생명, 건강 및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였다.

이런 내용은 보지 않고 “공무원 증가로 규제만 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공무원 증가와 규제강화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교육부, 경찰청, 법무부, 국세청 등은 공무원 증가가 많았던 대표적 기관이지만 규제수가 오히려 감소하거나 변화가 없었다.

참여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과 시민사회에 대한 간섭과 규제를 늘일 생각이 없다. 시장의 창의성을 억제하는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의 불공평한 관행을 개선하거나 환경보호, 국민의 생명과 건강, 부동산 등의 규제는 민생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욱 섬세하게 보강되어야 한다. 그동안 불필요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으나 새로운 규제가 신설되면서 전체적으로 규제 건수가 다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증가 속도는 점차 둔화되고 있다.

GDP 대비 재정규모 OECD국가 중 최하위

논란에서는 한발 밀려있지만 정부의 크기를 가늠하는 첫 번째 기준은 사실 국가재정규모다.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들어 국가 빚이 늘었다거나, 조세부담률이 일본이나 미국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한국이 '큰 정부'라고 주장한다. 일부 국가의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을 예로 들며 세계는 작은 정부로 가는데 우리만 역행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서 있는 현 위치를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2005년 기준 GDP 대비 28.9%로 OECD국가 평균 40.8%에 훨씬 못 미친다. 독일(46.9%), 영국(44.7%)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정부'로 불리는 미국(36.6%), 일본(38.2%)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특히 재정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들 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가채무나 조세부담률도 마찬가지다. 2006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3.4%로 OECD평균(77.1%)의 절반 이하다. 조세부담률도 20%수준으로 OECD평균을 크게 밑돈다. 일본과 미국의 조세부담률이 한국보다 다소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나라는 부족한 재정을 세금 대신 엄청난 빚으로 매웠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대비 179.3%로 무려 우리의 6배고, 미국은 61.5%로 2배 규모다.

양극화, 저출산… 시장이 저절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다. 객관적인 국제 통계자료는 이처럼 한국이 작은 정부임을, 그것도 아직 한참 작은 정부임을 말해준다. 더구나 우리는 고도성장에 치중하느라 그동안 국가가 담당해야할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심화 등 우리가 처한 현실은 국가의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한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로 보육과 노인수발은 이제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가 되었다. 성장이 반드시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시대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사회안전망도 보다 강화돼야 한다. 실직자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고용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인적투자 역시 국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러한 문제는 시장이 저절로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세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과제를, 다가오는 재앙을 방치하자는 주장과 같다. 복지지출이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되는 현실에서 지금보다 더 작은 정부로 갈 경우 복지는 무너진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없게 된다. 참여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게 아니다. 시장의 활력을 존중하면서도 정부가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규모가 아니라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가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체중감량이 아니라 영양분을 섭취하고 '건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출처 : 국정브리핑 200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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