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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기는 살렸지만…서민 주거복지는 사상 최악

▣ 대한민국은 부동산 투기 왕국


2005년 5월, 희대의 부동산 투기범이 국세청 투기조사반에 단속됐다. 무속인 김 모(56) 씨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본인과 자녀들의 명의로 강남에만 40채의 아파트와 상가를 매입했던 것. 투기 규모도 규모지만 사람들을 더 놀라게한 것은 김 씨의 자금 조달 방식이였다.

김씨는 투기자금 134억원을 10여개의 금융기관을 통해 정당하게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입한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면서 대출규모가 계속 늘어나 김 씨는 합법적으로 투기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세청은 김 씨의 양도소득세 축소신고 외에는 달리 처벌할 방도가 없었다.

김 씨의 투기 사례는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일반인들의 부동산 투자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부동산 투기에 매몰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투기 그 자체가 갖는 불법, 부정당성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될 전망이다.

▣ 1998년 정부, 여당, 업계 한마음으로 건설경기 살리기에 나서

1998년 3월 17일, 전 국민이 IMF 금융‧외환위기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기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 정부 관계자와 여당 국회의원, 그리고 22개 건설관련 단체장이 모였다.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맞는 등 건설경기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긴급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몇 시간여의 회의 끝에 당시 정부대표였던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과 여당대표였던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특단의 대처를 내놓는다. “양도세를 우선 대폭 인하하되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세제개편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 날개 없이 추락하던 건설경기의 화려할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이후 기다렸다는 듯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해 5월 22일, 분양가 자율화와 양도세 한시 면제, 그리고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22 주택경기활성화대책’이 발표됐다. 또 한 달 뒤인 6월 22일에는 ‘주택경기활성화자금지원방안’이 발표되는 등 그해 12월 12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곤두박질 치던 부동산 시장은 그해 12월 드디어 상승 반전에 성공했다.

▣ 부동산 가격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건설업체 연쇄부도는 계속돼

부동산 가격은 오름세로 돌아섰지만 위기의 건설업체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우성건설을 비롯해 청구건설, 우방건설 등 중견 건설업체들이 줄도산을 맞았고 2000년에는 동아건설과 현대건설 등 우량건설업체들도 무너졌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262개에 이르던 매출 500억 이상 건설업체 수가 2001년에는 141개로 반토막 났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의 추가 규제완화 요구가 이어졌고 2001년 5월 23일, 국민의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5‧23 대책을 내놓았다.그로부터 2달 뒤 부동산 가격은 IMF 이전 가격을 완전히 회복했다. 또, 1998년을 기준으로 46,498개였던 건설업체 수가 2002년에는 62,165개로 26%가량 증가했다. 꺼져가던 건설경기에도 불씨가 살아난 것이었다.

▣ 상황 급반전, 2002년 한해만 전국 아파트 값 23% 뛰어

하지만 이때부터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 폭등을 우려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당시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이었던 이춘희 건설교통부 차관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5‧23 대책을 발표하고 한 달 뒤 당시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때부터는 투기대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있다.

2002년에만 전국 아파트 값이 23%나 뛰면서 2003년 5월 23일, 참여정부는 분양권 전매제한 부활과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23 부동산가격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2007년 1월 11일 분양가상한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1‧11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 개편방안’이 등장하기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친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나왔다.

하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참여정부 집권 이후에도 54%(2003년 2월 기준)나 상승했다.

▣ 10년간 요동치던 부동산, 드디어 잠시 안정을 되찾다

2007년 4월 27일,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서종대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장이 계획에도 없던 브리핑을 하겠다며 건교부 브리핑룸에 들어섰다. “전국의 주택가격이 몇 년 만에 동반하락하기 시작했다. 집값의 하락 안정세는 과거의 경험수치로 봤을 때 6년가량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발표문을 읽어내려가는 그는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서 본부장의 설명대로 일부 호재지역을 제외하고 이후 몇 달간 전국의 주택가격은 0.1% 대의 소폭상승과 하락을 이어가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이끌던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들은 몇 달 만에 많게는 1억원 이상 하락했고 강남지역에서도 청약률 제로 아파트가 등장했다. 비싼 아파트가 잘 팔린다는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고있다.

▣ 10년에 걸친 부동산 값 폭등, 서민 주거복지 땅에 떨어지다

하지만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외환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고통 분담의 주체였던 서민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진 집값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2007년 10월 현재 서울지역 아파트 3.3㎡당 분양가는 1,584만원으로 10년 전 479만원 보다 무려 3배 이상 올랐다. 이 기간 물가 상승률 39%보다 무려 6배가량 높은 상승률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 월 평균 소득 384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울에서 100㎡(구 30평)형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월급생활자 가구가 10.3년 동안 소득을 한 뿐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하다. 외환위기 이전 6.3년에 비해 4년이나 길어진 것이다.

전세가격 역시 크게 상승해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특히 전국의 주택보급율은 107%에 이르지만 자가점유율은 전국 56%, 수도권 50%에 그칠 정도로 무주택 서민의 주거복지가 크게 저하 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는 건전한 근로의식이 감소하고 부동산 투기를 내면화, 합리화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실제로 국민의 67.5%가 재산증식을 위해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국토연구원, 2006 토지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 주거양극화 심화, 저소득층 ‘주거비 때문에 생필품 줄일 정도’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결국 주거에 있었어도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아파트 3.3㎡당 가격은 5천 만원을 훌쩍 넘어 지방의 웬만한 아파트 1채 값이됐다. 이 아파트 한 채만 소유하면 지방의 아파트 한 동을 사고도 남는 셈이다. 이는 결국 무주택 서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거주비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저소득층의 26%가 주거비용 증가 때문에 생필품의 소비도 줄일 정도 인 것으로 나타났다(국토연구원, 2006 거주실태조사). 또 전국적으로 움막이나 판잣집, 비닐하우스 거주자도 11만명, 4만 5천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영구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저소득층도 19만 세대에 이른다.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부동산 거품이 1년에 500조씩 5년간 2,500조에 이른다.”며 "땅이나 집을 가진 상위 5%가 전체 불로소득의 82%를 차지"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재산은 가만히 앉아서 3,000조가 는 반면 나머지 95%는 한 푼도 늘지 않는 엄청난 양극화 현상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11/ 28 CBS특별취재팀 성기명/권민철/임진수/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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