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빵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법
지옥같은 빵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법
옥살이라는 것. 솔직히 징글징글하다.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살아본 사람은 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교도소라는 곳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폐쇄공간인지 그 안에서 인간대접 받는 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들다. 그만큼 정말 사람 피를 말리는 곳이 교도소라는 곳이다.
2004년 말 하이닉스 사내하청지회가 창립되면서 조직부장 이었던 나는 구속을 각오해야만 했다. 아니 어차피 구속될 거 한방 제대로 터뜨리고 들어가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거대자본과의 한판 승부는 자본을 비호하는 경찰과 맞장 뜨는 투쟁으로 이어져 갔고 마침내 2005년 노동절 제대로 붙었다. 일명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불리는 노동절 투쟁은 청주시내 핵심 관통대로에서 미친 공권력에 맞서 주유소를 배수진 삼아 쇠파이프로 무장한 노동자군대가 10시간 가까이 야간 혈투를 벌였다. 이 투쟁으로 미친 공권력에 의해 수십 명의 동지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고, 대오를 지키기 위해 나는 신나를 몸에 붓고 투쟁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 투쟁으로 즉각 수배되고 구속이 됐다.
어차피 각오한 빵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소위 빵투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갑한 상황 속에서 일단 ‘무식이 최고의 무기다’라고 믿고 그냥 밀어붙였다. 뭘 요구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소장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을 들어갔다. 역시 단순한 게 최고 였다. 단식 열흘 만에 보안과장을 만났다. 요구사항은 별로 없었다. “그냥 건드리지 마라” 였다.
그랬더니 정말 건드리지 않았다. 위는 다 해결이 되었는데 아래는 또 그게 아니었다. 요놈의 행형법이란게 정말 웃긴다. 규정을 내리려면 제대로 내려놓던지 운동시간은 1시간 이내, 면회시간은 30분이내.. 이딴 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에서는 자신들 편의에 따라 운동 30분, 면회시간 10분, 이런 식이다. 역시 무식이 최고다. 그냥 시간이 지나도 운동한다. 면회한다. 그러면 짬밥이 되는 부장급 교도관들은 슬쩍 모른 척 하는데 요놈의 담당급 교도관이 문제다. 젊은 혈기에 덤벼들면 멱살잡이까지 간다. 그러면 관구계장은 ‘징벌’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 요기서 밀리면 끝이다. 그냥 들이박고 맘대로 하라고 들이댄다. 십중팔구는 꼬리 내린다. 그러면 내 운동시간과 면회시간은 내가 하기 싫을 때까지 한다.
그리고 행형법이란게 교도관은 “평어”를 쓰도록 되어있단다. 평어? 참 힘든 단어다. 간단하다. 내가 들어서 불쾌하면 그건 평어가 아니다. 그런데 교도관들 요걸 핑계 삼아 반말에 심하면 욕지거리다. 똑같이 하면 된다. 반말 쓰면 나도 반말하면 되고, 존댓말 쓰면 나도 존댓말 쓰면 된다. 그럼 딱 두 마디 하고 나면 존댓말을 쓰게 된다. 요런게 몇 차례 되면 서서히 교도소 내에 소문이 퍼진다. “공안수 한놈 있는데 건드리지 마라. 엿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소장-보안과장-김용직’이라는 소위 교도소 내 넘버 쓰리가 되었다. ㅎㅎ
싸움의 기술?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必死卽生
아! 밖에 있는 동지들. 가끔 안의 빵투쟁 소식 접하면 슬쩍 집회신고서 한장 던져놓으면 더 편하다.
1년 6개월의 빵살이. 힘든 때도 있었다. 항소심때 그냥 실형 살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사는데 접견온 변호사가 집행유예로 나갈 수도 있다는 한마디를 던졌다. 쓸데 없는 기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나갈 수 있다며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조급해지고, 그러다 막상 실형이 떨어지니 정말 절망 속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다.
빵살이 정말 중요한 수칙. 빨리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일찌감치 버려라. 그리고 넉넉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우리 같은 사람들. 어차피 각오하고 싸우는 거니까, 내가 투쟁한 만큼 형량이 떨어지는 거니까, 제대로 싸웠다 싶으면 ‘아! 1년 6개월 (검찰이 거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건다. 이게 최하형이다)이구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편하다. 그러다 중간에 나오면 좋구.
틈틈이 동지들과 교류도 열심히 해라. 지금은 밖에 나와 열심히 투쟁하는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동지와 유성기업의 엄기준 동지 등. 빵살이 하면서 같이 편지도 주고받고, 같이 투쟁 시기 시기 동조 단식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줄줄 흘러간다.
빵살이 수칙 또 하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빵살이가 헛된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으니 스스로 철의 규율로 살아야 한다. 내 경우 시간표 딱 짜놓고 치열하게 살았다. 기상과 더불어 한시간 요가하고, 아침 먹고 신문보고, 한시간 동안 달리기 하고, 한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점심 먹고는 컴퓨터 배우러 가고, 돌아와서 공부하고, 저녁 먹고 TV시청 후 한시간 공부하고 취침. 뭐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나만 이리 산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노동쪽 공안수들은 치열하게 운동하고 공부한다. 1년 6개월이면 배에 王자는 새겨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수칙. 넉넉하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
담배 끊지, 술 끊지. 주기적으로 단식해서 몸의 노폐물 빼내지, 나오는 음식은 나름 웰빙식으로 보리밥에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건강은 끝내주게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밖에서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한 책을 일주일에 두권 이상은 읽을 수 있지, 정기적인 운동으로 몸짱되지. 컴퓨터도 가르쳐 주니 컴도사 되지. 이렇게 맘 편히 살아야 한다.
아. 그리고 옥담 밑에 텃밭도 가꿔보면 좋다. 상추, 치커리,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등등 가꾸는 재미도 있고, 수확물이 나오면 사동의 다른 수용자들 나눠먹으며 인심 써서 좋다.
빵살이 정말 지긋지긋 하다. 그렇지만 나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면 그나마 살만해 진다. 단. 투쟁한 만큼만 그 댓가가 다가온다. 제대로 싸우면서 즐겁게 넉넉하게 어쩔 수 없는 빵살이 즐기며 살자.
빵생활 노하우 배울 동지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란다. 정리된 노하우 E-mail로 전수해 줄 수 있다. 요거 가지고 많은 동지들이 나처럼 좌충우돌 헤메지 않고 초반부터 빵살이 편하게 하고 있다.
2004년 말 하이닉스 사내하청지회가 창립되면서 조직부장 이었던 나는 구속을 각오해야만 했다. 아니 어차피 구속될 거 한방 제대로 터뜨리고 들어가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거대자본과의 한판 승부는 자본을 비호하는 경찰과 맞장 뜨는 투쟁으로 이어져 갔고 마침내 2005년 노동절 제대로 붙었다. 일명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불리는 노동절 투쟁은 청주시내 핵심 관통대로에서 미친 공권력에 맞서 주유소를 배수진 삼아 쇠파이프로 무장한 노동자군대가 10시간 가까이 야간 혈투를 벌였다. 이 투쟁으로 미친 공권력에 의해 수십 명의 동지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고, 대오를 지키기 위해 나는 신나를 몸에 붓고 투쟁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 투쟁으로 즉각 수배되고 구속이 됐다.
어차피 각오한 빵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소위 빵투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갑한 상황 속에서 일단 ‘무식이 최고의 무기다’라고 믿고 그냥 밀어붙였다. 뭘 요구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소장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을 들어갔다. 역시 단순한 게 최고 였다. 단식 열흘 만에 보안과장을 만났다. 요구사항은 별로 없었다. “그냥 건드리지 마라” 였다.
그랬더니 정말 건드리지 않았다. 위는 다 해결이 되었는데 아래는 또 그게 아니었다. 요놈의 행형법이란게 정말 웃긴다. 규정을 내리려면 제대로 내려놓던지 운동시간은 1시간 이내, 면회시간은 30분이내.. 이딴 식이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에서는 자신들 편의에 따라 운동 30분, 면회시간 10분, 이런 식이다. 역시 무식이 최고다. 그냥 시간이 지나도 운동한다. 면회한다. 그러면 짬밥이 되는 부장급 교도관들은 슬쩍 모른 척 하는데 요놈의 담당급 교도관이 문제다. 젊은 혈기에 덤벼들면 멱살잡이까지 간다. 그러면 관구계장은 ‘징벌’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 요기서 밀리면 끝이다. 그냥 들이박고 맘대로 하라고 들이댄다. 십중팔구는 꼬리 내린다. 그러면 내 운동시간과 면회시간은 내가 하기 싫을 때까지 한다.
그리고 행형법이란게 교도관은 “평어”를 쓰도록 되어있단다. 평어? 참 힘든 단어다. 간단하다. 내가 들어서 불쾌하면 그건 평어가 아니다. 그런데 교도관들 요걸 핑계 삼아 반말에 심하면 욕지거리다. 똑같이 하면 된다. 반말 쓰면 나도 반말하면 되고, 존댓말 쓰면 나도 존댓말 쓰면 된다. 그럼 딱 두 마디 하고 나면 존댓말을 쓰게 된다. 요런게 몇 차례 되면 서서히 교도소 내에 소문이 퍼진다. “공안수 한놈 있는데 건드리지 마라. 엿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소장-보안과장-김용직’이라는 소위 교도소 내 넘버 쓰리가 되었다. ㅎㅎ
싸움의 기술?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必死卽生
아! 밖에 있는 동지들. 가끔 안의 빵투쟁 소식 접하면 슬쩍 집회신고서 한장 던져놓으면 더 편하다.
1년 6개월의 빵살이. 힘든 때도 있었다. 항소심때 그냥 실형 살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사는데 접견온 변호사가 집행유예로 나갈 수도 있다는 한마디를 던졌다. 쓸데 없는 기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나갈 수 있다며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조급해지고, 그러다 막상 실형이 떨어지니 정말 절망 속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다.
빵살이 정말 중요한 수칙. 빨리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일찌감치 버려라. 그리고 넉넉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우리 같은 사람들. 어차피 각오하고 싸우는 거니까, 내가 투쟁한 만큼 형량이 떨어지는 거니까, 제대로 싸웠다 싶으면 ‘아! 1년 6개월 (검찰이 거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건다. 이게 최하형이다)이구나’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편하다. 그러다 중간에 나오면 좋구.
틈틈이 동지들과 교류도 열심히 해라. 지금은 밖에 나와 열심히 투쟁하는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동지와 유성기업의 엄기준 동지 등. 빵살이 하면서 같이 편지도 주고받고, 같이 투쟁 시기 시기 동조 단식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줄줄 흘러간다.
빵살이 수칙 또 하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빵살이가 헛된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으니 스스로 철의 규율로 살아야 한다. 내 경우 시간표 딱 짜놓고 치열하게 살았다. 기상과 더불어 한시간 요가하고, 아침 먹고 신문보고, 한시간 동안 달리기 하고, 한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점심 먹고는 컴퓨터 배우러 가고, 돌아와서 공부하고, 저녁 먹고 TV시청 후 한시간 공부하고 취침. 뭐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나만 이리 산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노동쪽 공안수들은 치열하게 운동하고 공부한다. 1년 6개월이면 배에 王자는 새겨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수칙. 넉넉하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
담배 끊지, 술 끊지. 주기적으로 단식해서 몸의 노폐물 빼내지, 나오는 음식은 나름 웰빙식으로 보리밥에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건강은 끝내주게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밖에서 1년에 한권 읽을까 말까한 책을 일주일에 두권 이상은 읽을 수 있지, 정기적인 운동으로 몸짱되지. 컴퓨터도 가르쳐 주니 컴도사 되지. 이렇게 맘 편히 살아야 한다.
아. 그리고 옥담 밑에 텃밭도 가꿔보면 좋다. 상추, 치커리,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등등 가꾸는 재미도 있고, 수확물이 나오면 사동의 다른 수용자들 나눠먹으며 인심 써서 좋다.
빵살이 정말 지긋지긋 하다. 그렇지만 나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면 그나마 살만해 진다. 단. 투쟁한 만큼만 그 댓가가 다가온다. 제대로 싸우면서 즐겁게 넉넉하게 어쩔 수 없는 빵살이 즐기며 살자.
빵생활 노하우 배울 동지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란다. 정리된 노하우 E-mail로 전수해 줄 수 있다. 요거 가지고 많은 동지들이 나처럼 좌충우돌 헤메지 않고 초반부터 빵살이 편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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