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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8 가난은 ‘나랏님’만이 구제할 수 있다.

가난은 ‘나랏님’만이 구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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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의 화두는 ‘경제발전’였다. IMF를 겪으며 신자유주의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폭 늘었다. 커져가는 빈부 격차속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들은 자신들의 빈곤이 자신들의 무능함이라 생각하며 자포자기한 인생을 살거나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따라서 전국민적 관심사는 이런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 경제발전을 이뤄 질 좋은 일자리를 늘려줄 사람, 전과가 십몇범이던, 인권의식이 있던 없던, 그런 사람을 뽑아야 했다.

  

빈곤이 개인적 무능 때문인가?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자본주의, 그중 제일 극악한 ‘신자유주의’라는 제도가 문제였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장애물을 걷어 없애주는 괴물이다. 부자들의 세금을 깍아주고, 독점규제 등 온갖 법 제도를 완화 또는 폐지해 주고, 국가간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주고, 자유무역으로 후발국가를 마음대로 휘젓고, 비정규직을 확대해 수탈을 용이하게 해주는 전지전능한 제도였다. 문제는 이런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곤 확대, 통제불능의 금융자본,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전 세계가 금융위기, 공황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결국 현재의 빈곤은 개인적인 이유가 아닌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사회의 시스템에서 유발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빈곤의 치유는 사회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첫 해법이 바로 ‘복지’다. 이런 이유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세계 지도자들이 너도 나도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몇 년전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신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했을때 택도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했던 국민들이 무상 급식 사태를 겪으며 ‘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구나’라며 인식을 전환시키고 있다.

  

그런데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두가지 시선이 충돌한다.

무상급식을 주장했을때 한나라당에서는 ‘저소득 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급식’을, 진보진영에서는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일면 한나라당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장은 어떨까? 한창 자라나는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너희 부모는 부자라서 급식비를 내야하고, 너희 부모는 가난해서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국가에서 베푸는 무상급식 대상 아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게 시혜적 복지이다.

  

반면 재산, 신분등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노동, 의료, 교육, 노후 등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이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보편적 복지다.

‘어머니 뱃속에서 무덤까지’ 출산한다고 몇푼의 장려금이 나오는 시혜적 복지는 결코 1.28명의 저출산을 막을 수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출산에서 양육, 대학 교육까지 무상으로 이뤄지는 보편적 복지 덕에 출산율이 2명까지 늘어나고 있다. 실직후 4년까지 실직전 임금의 60%-90%를 받아 생활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무료로 재취업 교육을 시행하니 ‘해고는 살인이다’며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명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OECD 국가 중 60대 이상 노인들의 자살율이 1위인 사회에 살고 있다. 북유럽의 노인들은 연금과 무상으료 정책으로 넉넉한 노후를 보장받는다.

  

누구나 평등하게 행복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주는, 보편적 복지가 정답이다. 가능하냐고? 북유럽 사민주의국가들은 1인당 GNP 1만달러 시대에 이런 복지제도를 완비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2만달러가 코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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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17:29 2010/09/0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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