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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몇 개

"아이들에게 실패할 권리도 줘야 합니다. ‘자유롭게 하되 책임은 네가 져라’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47504.html

어른들이 아이들의 실패할 권리를 앗아가는 건, 결국 책임지기를 두려워 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자유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런 자유를 탐닉해 보지 못한 탓이다. 자유를 통제하면 그 만큼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104144547&section=02

어제 전태일 40주기. 40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소선은 40년째 노동자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같은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지금. 41년은 달라야 한다. 역사적 유산과 집단적 노력, 그건 전태일과 노동자 단결로 귀결되어 야 한다. 그 귀결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건 차별없는 노동의 보상이다.

 

"며칠을 때리면서 취조하고, 또 학생들은 깍듯이 대우하면서 우리는 가족 면회도 안 시켜주고 차별했어요. 심지어 임미경이란 친구는 16살이었는데 주민번호 뒷자리를 다 0으로 바꿔 써서 기어이 구속시켰다니까요."
지금은 깍듯이 대우할 학생마저 없다. 어제 집회에서 학생 대오는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사라져가고 있는, 소위 운동권 동아리들. 이미 운동권 동아리를 경유할 시간 없이 노동자 신분으로 곧장 바뀌어 가는 지금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배경의 인권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
이 정권에서 합의란 권력자들의 합의만 존재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들과의 소통은 불필요한, 장애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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