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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2
    디카와 사진관
    공돌
  2. 2006/08/02
    내가 쓴 글 모음
    공돌
  3. 200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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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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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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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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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8/02
    노사간의 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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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8/02
    내 인생의 구원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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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와 사진관

2년전인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 신림동에 있는 사진관에 갔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얼굴에 있는 점을 빼고, 잡티제거 하고. 그런 후에 즉석에서 프린터기로 사진을 뽑은 다음 사진을 절단하는 칼로 여러조각의 사진을 자른 후 종이봉투에 담아가기까지 약 15분정도. 금방 끝난다. 현상시간이 그만큼 단축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아직도 증명사진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동네 사진관으로 간다. 사진관은 늙수구레한 아저씨께서 운영하신다. 요즘은 거의 일흔을 넘기시는 분이 많으니 아저씨라고 하는게 나을 듯하다. 사진찍고 현상하는데만도 반나절은 걸린다. 대충 몸만가면 돌려입는 양복입고, 빗질하고, 넥타이 고무를 확 조으면 사진촬영 준비끝.


내부의 시스템도 복잡하다. 조명빨을 잘받게 은색 우산같은게 걸려있고, 사진기는 측량기처럼 세워놓고 커다란 렌즈구멍에 눈을 갖다대놓고 찍으신다. 고개를 이렇게 저렇게, 몸을 약간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이렇게 모델은 작가의 지시에 따라 최고의 포즈를 만든다.


물론 사진관 내부의 냄새도 정겹다. 아저씨는 금방 식사를 하시다가 사진을 찍으시기 때문이다. 그윽한 된장 냄새가 사진관을 진동한다. 약 10분간 이리저리 하다보면 사진촬영이 끝나고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기고 사진관을 떠난다. 이 사진관이 그나마 첨단화된 것은 사진현상이 끝나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때려준다는데 있다.

 

그런데 사진의 호감도는 그렇다. 우리가 머리정돈하러 가는 미용실이 아무리 비싸도 잘하면 싼 곳보다 그곳을 선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 인격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괜찮을 곳을 찾기 때문이다. 사진은 더욱더 그렇다. 내 사진에 누가 칼이라도 꽂아봐라. 그만큼 사진은 인간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이다.


 

 

디지털 카메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 찍지 못하는 슬픔이 있지만 일단 증명사진에 관해서는 우리동네 사진관 아저씨를 능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사진관은 어렵기 그지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했듯이 일자리는 점점 소멸된다. 기계, 기술의 변화를 동반한 의식의 변화가 이렇게 생계를 유지했던 밥통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결과를 목도한다.

 

그러나 이것을 막을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싸게, 독점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현재에는 집에서도 사진을 프린터로 현상할 수 있으니, 이제 사진관의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옛날 큰 행사나 결혼식이 있을 때 터트리던 마그네슘 사진기는 더 이상 남한 사회에서는 구경할 수도 없다. 또한 현재에는 의미도 없는 추억거리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결혼식은 캠코더로 아예 영상을 남기니 사진사 아저씨가 찍는 사진은 필요한 만큼만 찍는다. 나머지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디카로 찍어준다. 그리고 메일로 날려주거나 홈페이지에 올려준다. 퍼가면 된다.


 

사람들은 사진관에서 사진 찍고 현상하는 것이 돈 아깝다고 한다. 얼마전 포털사이트에 증명사진을 '60원'에 현상하는 법이라는 '뜨는 이야기'가 게시되었다. 읽어보니 사진관 아저씨들 머리에 빨간띠를 맬 수 밖에 없겠더라. 아줌마는 이 때까지 증명사진 몇 장을 뽑으면 거의 만원인데, 집에서 디카로 찍어 포토샵으로 얼굴을 여러게 나열해서 뽑으면 굉장히 경제적이라고 소개했다. 더 노골적으로 단적으로 사진관에서 현상하는 것은 "돈아깝다"고 했다.


 

 

언뜻 보니 그러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밑에 있는 댓글이 종래와는 달리 '강추', '붐업'이런 게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시일야 방성대곡을 방불케 하는 장문의 글. 사진관을 하는 사람, 그를 옹호하는 사람, 사진관의 딸....여하간 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인격의 표상인 얼굴을 찍는데, 싼 맛으로만 모든 것을 이해하면 곤란하다.


 

디카로 찍은 사진과 사진사의 사진은 일단 차이가 있다. 동네 사진관이 가지는 의미.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가끔씩 신문지상에 영정사진을 공짜로 찍어주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밥통만한 사진기로 어르신들을 찍는 모습은 아름답다. 사실 디카로 찍어도 무방하지만, 그건 좀 그렇지 않다.

 

갈 길을 천천히 준비하고 싶은데 디카로 찍어서 프린터로 뽑아주면 그건 좀 그렇다. 디카는 보통 인스턴트의 상황에서 인스턴트식으로 찍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의 부모님께는 그렇게 하겠다고 화끈하게 그런다면 말리고 싶지는 않다. 안봐도 비디오다. 괜히 그 일로 싸우지는 말았으면 한다.


 

아까 결혼식 이야기를 했는데, 결혼식 당일에 남기는 사진은 몇 장에 불과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결혼식 입구에 들어설 때 보이는 것 중에 신분상승에 환장한 사람처럼 유럽식 복고 복장을 한 청년과 숙녀가 함께 찍은 '왕어색' 사진들이다. 비싸기도 완전 비싸다고 들었다. 물론 혹자는 집단 사기의 연속극이라고 했다. 거의 예술적으로 오해의 단계를 뛰어넘어 신원확인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까지. 그건 사진관에 맡긴다. 일단 복장이 안되고, 그렇게 찍을 형편도 안되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런 사진이 사치인지, 아니면 인생에 한 번(혹은 두번?)밖에 없는 혼인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자기들끼리의 "쇼"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굳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집집마다 하나씩 걸어두는데 우리집에 하나 걸어두는 것도 좋고, 또한 부부싸움이나 집안에 우환이 겹치면 그런 사진은 심리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관이 계속 명멸하는 가운데, 사양산업이 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돌파구는 이런 사진을 찍거나 젊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도록 낮은 가격과 빠른 인하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포토샵 기술도 하나의 조건이다. 고급사진을 찍는 방법도 그 중 방법이라면 방법이다.그렇다면 이것만이 살 길인가.


 

 

말이 이리저리 튀었다. 무엇보다 사진관이 살아남는 건 추억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어릴 적 엄마손 잡고 증명사진 찍고 자장면 얻어먹고 집으로 오던 그 추억. 그렇다고 사진관에서 사진 찍으면 자장면을 공짜로 주는 티켓을 줄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결국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남은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면 사진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버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갑자기 여행스케치의 노래 중에 "꿈을 찍던 사진관 김씨 할아버지"라는 곡이 있다. 가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런 꿈을 찍어주마 우~~
못생긴 마음 삐뚤어진 마음도
할아버지 앞에선 환한 웃음으로 바뀌네
난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

 

그렇다고 사진사에게 심리치료사나 영적 지도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진사는 최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관에 틀어박혀 있을 필요가 없다. 먼저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디카로 찍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디카로 더욱 잘 찍을 수 있는 사진촬영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 이것도 그리 돈 안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서비스 차원에서도 고려할 만 하다.


 

또한 최근에 아기 사진관, 무슨 사진관 하면서 특화된 사진관도 많다. 놀이방을 같이 운영하면서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비용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놀이방에 전속적으로 채용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일단 일자리 1개는 늘어난다. 물론 사진가격을 사진사가 독점으로 매길 수 없다는 공정거래의 기본원칙은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진은 굉장히 잘 찍으면 된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과장되게 잘 나오면 더욱더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렇다면 또 한번 사진관에서 나오라. 그리고 우리집에서 일상적인 사진을 굉장히 멋지게 연출해보라. 가령 새집을 짓는다거나 입주한다거나 이럴 때 한 장의 사진을 찍어보자. 멋있는 집을 배경으로 가족이 집단적으로 찍는 것. 이거 의미있다. 사진은 기록이자 예술이고, 화합이자 찬라의 평화를 가져온다.


 

또한 사진관이 수동적으로 기다려서 될 일인가? 명절을 놓쳐서는 안된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다. 이렇게 떼거지로 모이기는 쉽지 않다. 가끔씩 새로운 주인공도 나타난다. 조카, 사촌동생, 육촌동생들이 태어난다. 고향에서, 혹은 친정, 시댁에서 찍어둔 사진. 이것도 의미있다. 그냥 찾아가라. 발품을 팔아줘야 한다. 아니면 전단이래도 뿌려야 한다. 자본주의적 공세에서 사양산업의 쇠퇴일로를 점진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이건 의식운동이다.


 

 

모두가 시즌이 되면 찍는 사진말고, 동호회나 산악회 이런 건 무조건 가야한다. 사진사의 건강과 보람, 그리고 약간의 금전적 이익도 추구할 수 있다. 잘 찍은 사진. 멋진 액자에 담아서 줘봐라. 이건 감동된다. 남편이 이걸 가지고 집에 걸어두기 위해 못질하는 모습은 거의 거룩하기까지 할 것이다.


 

딱딱한 집단일수록 사진을 많이 찍으면 좋다. 가령 노동조합의 예를 들어보자. 집회때 왕창 모여있는 사진보다는 집회의 진정성이 담긴 인물사진을 찍는 것도 가치있다. 또한 단합대회때 공차는 모습만 찍지말고 재미있는 게임을 통해 좋은 사진을 연출하는 것도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데 작은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기록의 가치와 동시에 집단의 모습을 순화할 수 있는 기능도 사진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글에서는 단지 사진관에 관련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렇지만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단순히 추억에 의존해서만, 동정심에 기대어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라지는 모든 직업에 대해 단결해야 한다. 그래야 추억도 지켜질 수 있는 법이니깐.


200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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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 모음

노사저널

http://www.nosanews.com/Nosa_WebZine/WebZine_Detail.asp?w_id=231&t_seq=4937

 

오마이뉴스

[사회] [주장] 피살 동영상 네티즌이 엠바고 해야

2004-06-24 오후 11:24:35

[사회] '산재법'을 바꾼 한 택시노동자

2003-01-09 오후 1:14:03

[사회] 한국 가톨릭은 병원파업의 분쟁해결에 앞서야

2002-09-15 오전 1:34:02

[사회] 갱년기에 들어선 우리 어머니들을 위해

2001-11-16 오후 7:12:09

[사회] 노레보가 입성하기를 기다리며(2)

2001-08-16 오전 1:47:29

[사회] '노레보'가 입성하기를 기다리며 (1)

2001-08-14 오전 1:46:33

[사회] 택시강도 당한것도 억울한데

2001-01-20 오후 7:42:19

[사회] 횡단보도 앞에서는 모두 다 전력질주

2001-01-13 오전 2:48:29

그냥 모아서 이렇게 보관하는 편이 낫다. 보관할 필요까지 있을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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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관계론"

관계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교각사이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교각이 절단되면 결국 관계는 파괴된다. 우리가 만나도 만나도 일정한 사람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특히 가족. 동생이건 오빠건 형님이든 간에 항상 싸우거나 티격태격하는 사이라면 그런 관계와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계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태도의 문제는 일정한 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변화하지 어렵다. 그게 소위 선입관이라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관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미 형성된 관계는 익숙해진터라 그것이 쉬이 변화되거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로 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예수가 고향인 나자렛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거의 돌맞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성경구절에는 "어디서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쓰여져 있다(마르코 6장 4절). 결국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집 꼬마아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목수집 아이로 본 것이다. 이런 관점과 태도는 개선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변화해도 상대방이 그러한 변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관계는 기존의 관계를 더욱 고착화하게 한다.

 

결국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지기 바란다면 예수처럼 기적을 행하거나 인류를 위해 죽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수 있다. 다만 상대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계기로 부터이다. 그런 계기의 형성, 계기의 형성은 간접으로든 직접적으로든 경험(experience)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도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선생을 요구하게 된다. 스승이라고 칭할 수 있는 좋은 선생.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험을 극대화하고 경험 속의 깨달음을 그 범위 내에서 국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스승의 존재가 바로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간 관계에 있어 상대의 변화된 태도를 바란다면 스스로의 계기 형성과 그리고 행동, 자신 스스로의 태도변화. 그러한 과정을 극대화 하는 스승의 존재. 이로써 상대방이 나의 계기와 경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그러한 경험치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이 행동과 결부될 때 상대방은 한 개인의 변화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태도를 달리할 수 있다......아~어렵다..무슨 말인지...내가 써도써도~~~

 

20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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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와 예술

생활이 단조로워지니 잉여가 발생한다. 그리고 잔뜩 모아두었던 일들을 해본다. 3일 동안 연주곡 하나를 만들고 있고, 그저 촌스럽게 완성되어 가고는 있다.

 

그림은 더이상 진척이 없다. 이게 멈춰버린게 중학교 이후같다. 그려봐야 새로움이 없고 그냥 약간의 기술발전과 모방 능력이 향상된 것 이상 별 볼일이 없다. 계속해왔던 붓글도 늘지를 않는다. 붓도 개털이라 더 이상 발전이 없다. 고달프다. 저번 달에는 석고 5kg로 사서 본을 뜨려고 했으나 역시 실패. 이건 예전보다 실력이 가면갈수록 나빠진다. 이제는 좀 겁난다. 치우기도 두렵고... 

 

그런데 마음의 잉여는 많이 생겨서 여러가지 하지 못했던 예술이라는 이름의 일들을 하고 있으니 즐겁기는 하다. 경제적 잉여가 있어도 정신적 잉여가 없다면 결국 예술은 사치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잉여는 바로 예술을 창출하는 가치이고, 조건이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 볼 때 임옥상은 대단하다. 그래서 존경하고 그의 세계관이 부럽기보다는 탐구대상이 되어감에 늘 기쁘다.

 

20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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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볼모로 한다고 왜 안적나

"학생들 안뽑겠다고 하면서 사립학교의 연합체가 학생들을 볼모로 학교를 개인소유화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요런 기사는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전교조가 학생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고자,  교원평가를 반대하고자 하면 학생들을 볼모로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전교조가 수업을 안했는지,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집단행동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나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가 학교의 50%만 접수하면 공교육은 당연히 달라지는데, 무슨 작은 정부니 지랄이니 하면서 계속 공공부문을 민간에 팔고 민간은 외국에 팔고. 이런 연속된 순환을 계속하니 정부도 이제는 손을 싹싹빌면서 정책을 이끌어나가는 형국이다.

 

병원도, 장애시설도, 보육시설도...모든게 국가는 이제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오직 법과 원칙만 외칠 뿐!

 

20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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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니네들 가소롭다

부산이 서울보다 살기가 않좋다. 사투리쓰면 촌스럽다. 지방대출신이 서울에 와서 출세했다. 등등등.

 

이런 개소리들은 수차 들어봤다. 물론 그들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기만 하면 이렇게 공격한다. 설사 앞설 것 같아도 이렇게 경계한다. 

 

자기가 하는 일, 자신의 주변 사람들, 저기의 부모, 자기의 출신대학, 자기의 정신과 생각, 주위에서의 인정. 요런 것들을 무기로 사람을 조지기 시작한다. 특히 오늘은 학벌에 대한 얘기다. 나도 대가리에 똥만 차서 지방대 밖에 못갔는데, 서울에 돈2000만원을 갖다바치면서 소위 명문대 간판을 하나 달기는 했다. 그게 사실은 좆같은 거다. 얄량하게 노무사라는 자격증에 공부좀 했다고 학위를 얹으면 장사가 잘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고, 3학기부터 심각하게 나는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나는 이 대학을 잘 왔고, 본교생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나는 간신히 이 대학을 버티면서 졸업까지 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짧지만 긴 2년 반의 시간을 깡그리 개무시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때 내가 우리 대학원에서 똥폼잡고 무시때린 일은 없나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학에서 간판따고 간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비난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나는 그런 비난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안오면 되는 것이고, 오면 열심히 하면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니는 사람도 실망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이러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대학에 다니는 사람의 잘반이 이 대학의 문턱을 넘는 대학을 다닌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서울대, 연고대, 이대 등등 내노라하는 대학에서 우리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는데 나는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다니는지 궁금하지고 않으며, 관심도 없다. 그런데 꼭 밖에 있는, 우리 대학원을 다니지 않는 서울대, 연고대, 이대 등의 출신들이 우리 대학원을 밟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간부입장에서는 우리 대학원이 개량화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그것도 우리 대학원에 와서 개량화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무사들 중 학벌이 좀 된다는 사람은 학벌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대학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경력이 좀 되면 시험치고 돈만 알뜰히 부으면 다닐 수 있는 대학원으로 생각하니깐 그러하다.

 

모두 자기가 잘난 맛에 살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비난 받지 않고 싶어서 사회의 일정한 틀 속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을 자기는 벗어난 듯이 이야기 한다. 나는 그게 웃기다는 것이다. 한 서울대 출신이 나는 학벌에 대해서 그런 우월감 이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말하는 족족히, 그리고 풍기는 냄새가 그런 우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으면 그건 나만의 컴플렉스 때문인가?

 

재차 말하건데, 나는 누가 서울대건, 연대건, 고대건, 이대건 간에 이 따위 생각을 하는 작자들에 대한 실력을 인정하기 앞서 인간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비판하고 싶은 것이다. 지방대에 시골출신이라고 얏보는 관념들이 있는 한은, 또한 그들이 그것을 부인하면서도 행동과 말 속에서 나타나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은 그들과 내가 함께 이 세상에서 같은 지향을 바라며 살 수 없다.

 

머리가 나쁘고 수능이나 학력고사 잘 못친 것이, 공부를 좀 덜한 것이 죄가 된다면 일단 우리 부모부터 죽어야 한다. 자기들 부모가 얼마나 잘났는지 몰라도 이렇게 죽을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똑똑히 새겨야 할 것이다. 학벌이라는 것은 결국 조금 안다는 것을 가지고 소소한 권위에서 시작하여 말단의 권력으로, 그리고 뭉치면 집단적 이기주의로 똘똘말린 권력의 중앙부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제발 좀 착하게 좀 살아보자. 내가 누군가를 밟으면 언젠가는 나도 밟히기 마련이다. 밟히면 결국 누군가는 일어선다. 많이 밟을 수로 언제가는 밟은 사람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 이 광대무한한 우주에는 자기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로 인해 고통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우주의 징검다리를 왕래해야 한다.

 

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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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새파란, 청춘의

꽃다운 여인이 촌스런

치마를 입고서 낯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혹시나 모르는 늘어진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살포시 가리며.

 

저 높은, 하늘을

꽃다운 여인은 바라다

보면서 낯선 사람 중 한사람

호감을 가지며 술한잔 하자고 나에게

어디로 어디로 오라고 이야기 하면서.

 

다함께, 모여서

마시는 술잔을 누구가

마다하겠냐만은 늦은 시간

집에다 데려다 준다고 취한 술김 내부으며

꽃다운 여인을 집에다 데려다 주면서.

 

멋모른, 그녀는

고맙다 차한잔 하라고

새파란 청년은 그녀를 보면서

불거진 아랫도리 오만가지 상상에

제버릇 남못주고 사고를 치면서

 

너에게,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 존재이냐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기치면서

불거진 아래도리 죽어가면서

제버릇 다른여자 찾아가면서

 

여기서, 저기서

남자들 모인곳 나는 그년과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돌아다닐 때

그녀는 그 동네를 떠나 가면서

 

개새끼, 소새끼

남자는 다그래 나는 그놈이

사랑 한다고 조잘거릴 때

결국은 실수였고 그러지 않겠다며

다짐을 했건만 한순간 무너지면서

 

마음이, 열리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나는

살아야 되는가 생각해 보면서

아픈 가슴 쓸어보며 정리한 마당에

그 새끼 결혼식 한다고 하면서

 

오라고, 전화를

하면은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한때의 불장난 자나깨나 불조심

지나간 일 쓸데없이 생각해보면

나오늘 아무일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조용히

지내고 싶고나 영원히 사랑을

채워가면서 그 사랑 남에게 나눠주면서

촌스럽고 꽃다운 여인이고파.

 

200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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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세상사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분노가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는 쉬이 삭히게 마련이다. 주변에서도 만류한다. 정작 중요한 분노는 삶의 가치와 철학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화를 다스리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분노가 있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분노. 물로 나에 대한 분노는 늘 존재한 것이므로 내가 날을 세우고 항상 반성하게끔 하지만 내가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그렇게도, 그렇게도 아무 생각없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사람들이 버젓이 결혼해서 잘먹고 잘산다는 사실이다.  

 

내 대학원 동기인 형이 있다. 노조간부 10년하고 이제는 가정에 충실하리라 자신도 형수도 소원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형수는 자궁암이고, 아버지는 췌장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가정에 충실하게 되었단다. 그 잘난 가정에 충실하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단다. 휴가도 내어 형수와 잠시 수술전에 여행도 다녀온다고 한다. 나는 해줄게 없어 하얀 봉투에 돈 10만원 넣었다. 그리고 겉봉에는 이렇게 썼다.

 

"형수요. 형님 신경쓰지 말고 맛난 것 드시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나도 용서할 수 없고, 나도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살 것이고 또한 구차하지 않겠다. 다만 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 누가 준 고통을 내가 함께 감내하기 힘들다. 특히 그를 알면 더더욱 나는 감내하기 힘들다. 왜냐면 나는 그들을 심판할 자격도, 혹은 그들의 가족을 해할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와 관계없는 고통을 내가 왜 져야 하는가. 누구도 나를 돕지 않으며 나의 앞길을 앞가림해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다. 의지하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결국 자기의 길을 지체할 뿐 시간 낭비일 뿐이다. 다만 내가 타인의 고통을 같이 짊어지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한 것만 나는 책임을 지고 싶다. 가증스럽게 떠들고 싶지도 않으며, 그들을 앞에 앉혀놓고 불편하게 위태롭게 비판하고 싶지도 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것은 고통받은 자들은 왜 그들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인가! 왜! 왜! 왜!

 

200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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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간의 형평

1..........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20미터의 고공 작업로에서 인간의 중력과 몇 방울의 가연성 물질을 담보로 자신들의 처절하고도 지극히 단순한 요구를 11일간 주장했다. 아니 그 요구를 같이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는 인정해 달라고 했다.

 

2.........

 

그러나 사측은 이러한 요구와는 무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경찰은 어떻게든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방패와 곤봉, 도끼로 무장하고 언제든지 위태로운 저들의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서 대기 중이었다. 나는 미시적으로 사측과 경찰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최소한 지킬 것만 지켜주면 나머지의 것은 우리가 책임지기 마련이다.

 

 

나는 사측이 인간적인 욕구를 담보로 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인도적 배려는 커녕 사회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의 방문까지도 깡그리 무시한 것도 현대와 동종업계의 자본의 이해가 달려있는 사안에 대해 "협상의 벼랑끝 전술"이라 이해하면 백번 만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현대하이스코 자본의 벼랑끝 전술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벼랑끝 전술은 물리적 위치에서도 차이가 났다.

 

3. 의문발생

 

과연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에게 시혜적으로 베풀었던 것들을 철회하라고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에게 실력을 쌓으라 한다. 그만큼의 힘을 가졌으니, 법이 더이상 후견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짱구들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 속에서 어떠한 관념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의 시선에는 대기업 노조와 오버랩되는 총파업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막대한 손실만, 그것도 정확히 계산되지 않은 추정치에 불과한 손해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게 되면 입는 노동자 개인의 손실과 노동조합의 손실, 그리고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또한 노동조합이 힘을 가졌다고 치자, 그래서 국가의 후견을 더이상 기대하는 것은 노사의 힘의 균형에 반한다고 하자. 그러면 헌법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가 노동조합의 인정이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한 힘의 균형은 힘으로 싸울만한 상대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있고, 하나는 사무실에서 음식 배달해가며 버티고 있는데 이 둘이 결과적으로 대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양자는 대등하니깐 국가의 후견은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의 위기논쟁과 관련해서도 일부 학자들이 노동조합의 공공성과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는 그것을 노동조합이 꼭 해야하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영원히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천착해서는 안되지만 근로조건이 도저히 조건이라기 보다는 족쇄에 가까우면 일단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조금 살만해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챙겨가면서 투쟁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한 잔 사고,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 가입도 하고 기부도 좀 하고, 이게 규모가 커지면 노동조합 차원에서 공공성 투쟁을 통해 민중의 삶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조금씩 전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 따위 얘기는 나같은 돌머리도 하는데, 문제는 노동조합만 책임을 묻고 왜 사용자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묻지않는지 궁금하다. 물론 학자가 아닌 활동가는 문제가 다르다. 학자는 적어도 노동조합과 자본가 양자에게 동일한 무게의 질책과 동시에 동일한 양의 책임과 숙제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솔직히 노조만 하구잽이인냥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니 나도 한 숨 밖에 안나온다. 솔직히 이건 노동조합이 이제껏 책임을 그리 많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발적 이익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현대하이스코 정규직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꼬리표에 씨팔 무슨 정규직 비정규직 이 따위를 언제부터 달았는지 모르지만, 일단 얘기가 딴 쪽으로 샐까봐 입을 틀어막는다. 나는 또 백번 천번 양보해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고용불안"때문에 아무런 투쟁을 하지 못했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나서서 싸우면 자기 일도 아닌데 내가 피해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상은 결국 두 가지의 사고가 전제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는 같이 투쟁하면 같이 죽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일이 아니면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상식인 듯 보이지만, 상식과 거리가 멀다. 이는 같이 투쟁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정규직 노조의 근거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노동조합은 자기 일에 대해서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이다. 고용안정을 어떻게 단단히 약속받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고용안정이 이 땅의 노동운동을 강고하게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치 않는다. 문제는 차별이다. 차별없는 것이 단단한 고용안정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차별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결과적으로 평등 프로젝트는 안하겠다는 것이지 뭔가!

 

이처럼 모든 것은 형평성의 기술없이는 어느 하나의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청에서 나오는 금속성의 카랑진 목소리는 한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로조건을 위해 투쟁하였던 과거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같이 투쟁할 동지가 있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같이할 동지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럽다.

 

파업을 지원하는 100명의 학생들도 고맙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이 1명이라도 나와서 그들에게 빵과 우유를 지원하고, 경총에서 1명이라도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정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한 방화수를 준비해 왔다면 오늘날 남한 사회의 저거들 잘묵고 잘살기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은 틔일 거라는 볼멘소리를 해본다.

 

20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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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구원투수

수퍼스타 감사용. 이제 그는 패전처리 전문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로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7회말! 누구도 등판하고 싶지 않은 그 마지막 게임의 끝자락에서 그는 희망을 던졌다. 그 희망은 결국 오늘의 아름다운 호투(好投)로, 내일에 대한 당찬 전투에 임하는 굳센 신념을 둘레 7인치에 무게 145g의 작은 야구공에 알차게 담아 던졌다.

 

그렇게 알지고 속꽉찬 암팡진 그 구원투수를 생각할 때마다 내 인생에 그만한 구원투수가 있음에 나는 너무나 고맙고 새삼 감사하다. 우리가 그렇게 구순하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면서도 서로 깊이 있고 미쁘게, 곰비임비 살아온 것이 정말 고맙다.

 

나도 그대처럼 게임의 승패에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잡은 공을 열심히 던지되, 던진 공은 미련없이 놓아주었으면 한다. 언젠간 그대와 같이, 나처럼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 사람에게 구원투수가 되고 싶다. 절망이 담긴 공에 분노를 담아던지기 보다는 공이 가야할 곳을 찾아주는 직관과 냉철함, 그러면서도 단 한개의 공이 누구에게 가야할 지를 아는 계산없는 그 대범함.

 

우리가 가야할 곳. 그리고 치뤄야 할 게임은 많다. 그리고 두려움과 낯섬, 익숙함과 안정됨의 경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나비가 되어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질문에 이미 대답을 가지고 있다.

 

"날으는 나비가 아니더라도 헤엄치는 나비가 되어주마."

 

20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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