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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올림픽
    공돌
  2. 2008/08/12
    3-2일
    공돌
  3. 2008/08/12
    3-1일
    공돌

올림픽

1. 경기장 반대편에서는 폭탄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울린다. 안타깝다. 스포츠가 과연 평화를 담지할 수 있는 기제가 되는가. 배고파도 지네들의 나라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목숨처럼 큰 행복으로 생각하는 인민들에게는 눈물겨운 일이다. 그래도 나 또한 올림픽을 보면서 열광을 하고 있다. 인민이 우매하다고 말할 자격은 나에게 없는 셈이다.

 

2. 상업화된, 천문학적 돈을 하룻밤에 갖다붓는 일은 올림픽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미 88년 서울올림픽때도 그랬다. 성화봉송로를 위해, 단 몇 분을 그 길을 뛰는 자들을 위해 철거민들이 생기고 그들은 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2008년 올림픽 개막식, 베이징의 하늘에 들이부었던 상상력은 인민의 현실을 외면한 채 밤하늘을 밝혔다.

 

3. 유도선수 최민호의 눈물. 그들이 태릉선수촌에서 지옥같이 훈련할 때 좀 산다는 나라들도 그렇게 살인적으로 운동을 시키는지 몰라도, 그렇게 빡시게 훈련을 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최민호는 포상금과 연금을 받게 되었고, 그것을 부모님을 위해 집을 사드리는데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효자는 이번 올림픽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국의 마크를 가슴에 달고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을 해야할 이유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40대 수영선수가 '40대에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야기에서 그런 여유가 나올 정도라면, 우리처럼 죽기살기로 사람잡는 훈련을 강요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결국 죽기살기로 운동하고 온둥을 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운동이 신분상승, 어느 정도의 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저 씁씁하기 그지없다. 생계를 보장해주면서, 운동할 수는 없는가.

 

라면만 먹어야 금메달을 따는가. 그게 의미가 있는가. 되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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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일

1.

 

이사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관찰의 시간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몸이 아픈 시간 동안 내가 내 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야 할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편함이 여전히 있으나 이 집을 떠나게 될 때에는 많은 것을 비우게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2.

 

이사를 하면서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같이 하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둘째, 상대방의 기억을 존중하되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셋째, 지나친 기대에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늘 모든 일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상대가 어떤 일에 쉬이 관성화되거나 습관화될 일에 대해서는 채근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다섯째, 내가 모범이 되도록 일하되 그 어떤 보상을 바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3.

 

지난 2주 동안 모든 정리의 시간이 끝났고,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과정만 남았다. 결혼은 희극과 비극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이유도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그 무엇보다 내가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회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에 능가할 정도의 반대할 용기도,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결혼이라는 선택에 대해 내가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최소한 방어할 수 있는 개별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복지이며, 인간이 사랑을 뇌가 감당하는 정도의 화학작용이 아닌 책임감을 통한 자기수련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4.

 

내일은 이사. 회사 복귀도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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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 노회찬 대표님이 주례를 응하신 답장

 

편지 잘 받았습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너무 정성스럽게 글을 쓰셔서 한자 한자 읽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주례를 자청할만큼 두분을 잘 알고 있지 못한데다

지난 선거 후 스스로 뒤를 돌아보며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갖길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분의 글을 몇차례 읽으며 오랜만에 제가 주례선정을 두고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고민이 두분에게서 반복되고 있더군요. 저는 결국 저보다 한발 먼저 출발한 노동운동의 선배님을 택했습니다. 

 

 

제게 자격이 있다면 두분보다 한발 앞서 새시대를 갈구하며 걸어 온 것뿐입니다. 

안면부지의 분들이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두분의 새출발에 조금이라도 격려가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두분의 진지한 고민이 이미 저에게도 작지 않은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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