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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1/15
    체벌
    공돌
  2. 2010/11/15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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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11/08
    신문 몇 개
    공돌
  4. 2010/11/01
    이소선, 만나다
    공돌

체벌

서울교육청 체벌금지 대처 '황당 매뉴얼' 발표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01114002305&subctg1=&subctg2=

 

체벌금지 10일…학생들 "인권조례 없애주세요"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61449

 

몇 개 기사를 읽었다.

체벌에 대해 반대 논조를 가진 신문들이 다수 있다.

물론 각자의 입장은 존중한다.

그런데 체벌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는 아니다.

보수라고 열라 패야한다고 주장하고

진보라고 어르고 달래는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진영론으로 흡수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언론들에게서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인권조례를 만들어 체벌을 금지토록 한 것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요청 때문일 뿐이다.

다만 그 요청을 진보적 교육감이 수용했을 뿐이다.

체벌금지가 진보적인가? 물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진보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건 착시다.

체벌금지는 인권의 당연한 요청이다.

만약 보수적 교육감이라도 체벌금지를 결정했다면

난 그이를 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때리지 않고 교육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을 누가

가졌냐의 문제였다고 본다.  

진보적 교육감을 그걸 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진보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철학에 대한

확신의 문제였다.

 

체벌문제에 진영논리가 개입되면서 체벌금지 문제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체벌금지를 깨는 것은 곧 진보적

교육감을 깨는 것으로 등식화되었다.

그러니, 언론에서 헤드라인으로 뽑은 꼬라지들 하며,

다시 육체로 소통하라는 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봐, 때려야 되는데 안때리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잖아,

도리어 때려 달라고 하잖아, 몸뚱이 때리는 것 보다는

벌점 때리는 걸 더 아파하자나 하며

아이들을 위로한다. 지극히, 위했던 거 처럼.

 

아이들 볼모로 니네들 주장을 뒷받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바들아. 눈을 돌려 다른 곳에서

국격을 찾지 말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품위있게 훈계할 수 있는지를 되물어라.

아님 대안이나 찾아보든가.  

 

시장을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도

남의 몸에 함부러 손을 대는 것을 쉽게 허용하려 하는 그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체벌하고, 채찍질하는,  

자책이다. 때리지 않고서도 교육하지 못했다는. 그 자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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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609021342&section=03

 

지20이든, 쥐20이든, 지100이든, 쥐10000이든 간에 난 상관없이 잘 살았다.

국격이고 나발이고, 사전에도 없는 말은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술에 취해 벌건 떡볶이와 순대를 길바닥에 질질 흘려가며 잘도 쳐 잡쉈다.

떡볶이랑 오뎅국물이 떨어지는 것과 국격이 떨어지는 것은 상관없다며.....

 

국격이란 게, 도대체 뭔가. 난 그 말 자체가 여전히 이상하게 들린다.

국가에 격을 부여한다? 국가가 인격체인가? 국가 마다 격이 다른가?

높은 격을 가진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무슨 기준으로 격을 다룬단 말인가?

20개국 중 가장 격이 높은 나라는 어디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오뎅과 국가의 격은 무슨 관계인가? 근데 자기는 오뎅을 먹고선 남보고 먹지 말라고 하는가?

오뎅도 격이 다른가? 오뎅격은 누가 정하는가? 게다가....

또한 국가브랜드와 무슨 관계인가? 국가가 상품인가? 원산지는 어딘가?

국민은 OEM으로 생산되는 공산품인가?

 

불만은 곧, 환호성으로 바뀔 터.

여튼 그렇게 또 아시안 게임은 시작됐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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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몇 개

"아이들에게 실패할 권리도 줘야 합니다. ‘자유롭게 하되 책임은 네가 져라’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47504.html

어른들이 아이들의 실패할 권리를 앗아가는 건, 결국 책임지기를 두려워 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자유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런 자유를 탐닉해 보지 못한 탓이다. 자유를 통제하면 그 만큼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1104144547&section=02

어제 전태일 40주기. 40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소선은 40년째 노동자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같은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지금. 41년은 달라야 한다. 역사적 유산과 집단적 노력, 그건 전태일과 노동자 단결로 귀결되어 야 한다. 그 귀결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건 차별없는 노동의 보상이다.

 

"며칠을 때리면서 취조하고, 또 학생들은 깍듯이 대우하면서 우리는 가족 면회도 안 시켜주고 차별했어요. 심지어 임미경이란 친구는 16살이었는데 주민번호 뒷자리를 다 0으로 바꿔 써서 기어이 구속시켰다니까요."
지금은 깍듯이 대우할 학생마저 없다. 어제 집회에서 학생 대오는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사라져가고 있는, 소위 운동권 동아리들. 이미 운동권 동아리를 경유할 시간 없이 노동자 신분으로 곧장 바뀌어 가는 지금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배경의 인권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
이 정권에서 합의란 권력자들의 합의만 존재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들과의 소통은 불필요한, 장애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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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만나다

비교적 건강하셨다. 유가협에서 어르신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라 몇 시간 동안 회의가 결론에 이르지 못하자,

 

화투회의(?)를 시작하셨다. 어머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도 안오길래 보니 회의도 회의지만,

 

그쪽도 있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고. 그런 날은 정말 어머니껜 행복한 날이지뭐.

 

여튼 닭죽을 이빠시 끓여 유가협에 갖다드리고 고잉투 마이홈.

 

얼굴이 얼마 전에 비해 좋아지셔서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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