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짧은 생각

38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29
    웃기는 짬뽕
    공돌
  2. 2006/12/29
    급제동
    공돌
  3. 2006/12/28
    조엘
    공돌
  4. 2006/12/27
    사랑
    공돌
  5. 2006/12/05
    김규항씨의 말
    공돌
  6. 2006/11/30
    위기
    공돌
  7. 2006/11/23
    정확하다는 것
    공돌
  8. 2006/11/21
    천장지구
    공돌
  9. 2006/11/17
    만남
    공돌
  10. 2006/11/13
    공돌

웃기는 짬뽕

짬뽕이 웃겨주는가. 아니면 짬뽕 자체가 웃긴 것인가.

 

둘 다 그렇지 않다. 짬뽕을 먹는 놈이 웃길 수는 있어도

 

짬뽕 그 자체가 해학이나 유희는 아니다. 유머는 더더욱 아니고.

 

오히려 짬짜면, 볶짬면, 탕짜면, 탕볶밥 등이 더 유머에 가깝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급제동

호접지몽.

 

그리고 경제적인 손실을 생각하라.

 

뭔가 잘못 빠져나가고 있다. 그건

 

단순한 호기였다. 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엘

전순옥의 남편, 크리스 조엘의 말

 

누구누구를 지칭하면서,

 

"강남 게바라들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랑

사람은 자기를 객관화 할 수 있다.

 

그래서 늘 자기자신을 평가한다.

"난 내가 싫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르시시즘적인, 이기적인, 자아도취적

발상으로 매도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를 사랑한다. 그래야 너도 사랑할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규항씨의 말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십대라면 데모 현장에 열심히 나가는 게 중요하다.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맞으면서 현실을 몸으로 통증으로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7007&ar_seq=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기

위기는 안오면 그만이다. 그러나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확하다는 것

정확한 용어, 정확한 문장, 정확한 뜻. 쓰면 좋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TV에서도, 좀 배웠다는 사람이 자기보다 덜 배운 사람에게도, 어른이 아이에게도

본질이 전달되면 되는 것이지 일상생활에서 지나치게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태양은 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양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태양은 뜨지 않는 것이라고 교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어차피 아침과 낮과 밤만 구별하면 그만이다. 그게 본질이니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천장지구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장생 고능장생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노자(老子) 도덕경 제7장

 

하늘과 땅은 길고 오래 간다.
하늘과 땅이 그토록 길고 오래 가는 이유는  존재하려고 스스로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오랫동안 존재한다. 그래서 성인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는 것으로 남의 앞에 서는 것을 삼는다. 세상의 밖에 자신을 둠으로써 자신을 보존한다. 이것은 (작은) 사사로움을 버리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럼으로써 능히 사사로움을 얻느니라.

 

도덕경 제7장에서 핵심은 "천장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능)장생"에 있다.

그래서 성인에게도 "외기신이신존"함으로써 진짜 사사로움, 즉 "고능성기사"를 얻는데 있다. 본질이 "비이기무사사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사로움에 얽매여 살아간다. 그러나 사사로움을 얻기위해서 살아간다는 의미는 결국 무엇에 대한 지속적인 갈망 혹은 욕구가 사사롭게 인식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갈망과 욕구, 이기를 버릴 때 진짜 사사로움을 추구하면서 얻어지는 질과 양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사사로움을 버린다는 것은 사사로움을 추구하면서 얻어질 수 있는 행복의 크기를 능가하기 위한 방법론적 시도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바로 세상 밖에 자신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노자철학의 응축된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과연 세상 밖에 자신을 둘 수 있나.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는 제7장에서 강변하고 있는 노자의 이야기가 사실상 "체험, 삶의 현장"에서 적용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내가 노자철학을 무용성의, 무기능의, 불임의 철학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마힐이 세상 밖에서 자신을 두지 않고 세상 속에 자신으로 둠으로써, 세상이 아프니 자신도 아플 수 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자기 존재를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자철학의 모든 부분이 무용하고 무기능한 것은 아니다. 노자철학이 자신에 대한 관찰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기초를 변증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세가 교정된다고 인간의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체질이 바뀌어야 삶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 때로는 노장사상에 대한 매력도 많이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노장철학,학, 특히 노자를 읽으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근거를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만남

예전에는 그랬다. 친구들과, 혹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전화연락을 하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변동이 없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 때는 참으로 설레는 일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포함되어 있던 모임에 참석할 때면 몇 일이고 뛰는 가슴에 꼴같잖은 상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만남의 여운도 컸다. 그런데 지금은 덜 그런 것 같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거나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서, 또는 문자 메세지를 쏴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실시간으로 만남을 거절하거나 연기할 수도 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본다. 최근 나는 설레는 마음에 누구를 기다리고 만나봤는가. 핸드폰이 생기면서 설레는 모임이나 만남은 줄어들었으나 편리함과 신속함을 얻었다. 설레임과 여운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은 편리함과 신속함이다. 또 하나 더 있다.

 

핸드폰 덕분에 거짓말도 많이 늘었다. 약속장소에 출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응. 가고있어."라는 기망행위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약속시간을 잘 어기는 사람은 핸드폰 덕분에 만성적인 거짓말로 자신에 대한 신뢰수준을 성찰하게끔 한다. 그래서 핸드폰이 마냥 문명의 이기니 뭐니 하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때로는 구분이 안간다.  

 

손바닥 절반도 안되는 기계가 내 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한다. 그러나 그 조그만 기계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있다. 그래서 단순히 기계라기 보다는 역사적 산물이고 문화적 현상을 만드는 대상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산에 오르는 것은 몸을 정상에 두기 위함이 아니다.

마음을 두기 위함이다.

정상에 두는 마음은 항상 낮아지려고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산에 오르는 과정은 바로 그것을 방해하는 몸과 마음의 명령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것는 내가 해야 하는 바이자 민주노총에게 바라는 바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