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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짧은 생각

38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8
    할러웨이-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공돌
  2. 2006/08/08
    두개의 글.
    공돌
  3. 2006/08/08
    카프카
    공돌
  4. 2006/08/07
    친구 유학가다
    공돌
  5. 2006/08/06
    "새는 좌우로 난다"에 대해..
    공돌
  6. 2006/08/06
    포도주
    공돌
  7. 2006/08/05
    오늘의 말씀.zwei
    공돌
  8. 2006/08/05
    오늘의 말씀(1)
    공돌
  9. 2006/08/05
    불편케 하는 글쓰기
    공돌
  10. 2006/08/05
    결과가 이렇군
    공돌

내가 둔한지..

일단 여기의 기능을 많이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의 기능은 일기장이다.

 

일기장이 논쟁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일정부분 열어 놓은 것도 가능할 듯 하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과 동료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여기와 집전화 뿐이니깐.

 

그리고 혹시나 캐즘 선생이 이 글을 보게 되면 꼭 한마디.

 

"선생의 블로그에서 글을 접었다 폈다하는 것 많이 신기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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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러웨이-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아직 손도 못대본 책이다. 하종강의 홈페이지에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출처는 밝혀야겠다.

 

http://www.hadream.com/ 여기에서 박종호 <말꽃마당> 56번, 진호님의 글.

 

그의 글을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그냥 이 책에 대한 설명이므로 다른 평가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책을 쓴 저자 할러웨이(John Holloway)는 본문에서 "권력의 논리에 빠져드는 저항의 논리"를 논박한다. 모종의 진보정당을 통해 의회 집권을 통해 세상을 바꾸던(베른슈타인), 전면적인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던(로자 룩셈부르크), 이는 결국 '국가(the state of nation)' 중심적인 저항이며, "의도적이던, 의도치 않았던, 권력의 룰에 참여하게 되는, 즉 자신이 저항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도리어 그것이 되어 저항하는 모순"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분석한 뒤,

 

"할러웨이는 이러한 시도들이 모두 역사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권력에 저항하려면 반(反)권력이 되어 저항해야 한다면서, "권력을 쟁취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기"에 대해 그 자신의 독특한 문체를 이용, 기염을 토한다."

 

기염까지 토했는지는 몰라도 반권력이 권력화됨을 비판하면서 게거품은 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대상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수사법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

 

이에 글쓴이도 "당연히 권력에 저항하려면 반권력적이어야 한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꽤나 상식적인 글을 어렵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인용이 누구의 이익에 혹은 누구의 손해를 가하는지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때, 사람들은 또 개떼같이 공박을 시작한다. '그를 욕하지마, 혹은 그는 비난받아 마땅해.' 그리고 내가 공격받게 되고, '내가 공격받고 있다. 뭉쳐라. 적들이다. 조지자.'. 이러한 수순들. 후지다. 요게 그들의 수사법이고, 우리의 수사법이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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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글.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과 집단의 문제가 다 그런 식이다. 일반적인 지지와 일방적인 반대만 있다. 중간적 입장은 매우 희귀하다. 양극단의 전선이 형성된 ‘전시체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전시체제’에서 ‘내부비판’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건 이적행위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내부의 문제는 스스로 곪아서 터질 대까지 내버려둔다는 게 사실상 철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강준만, '이건희 시대' 중에서 

 

중간적 입장에 대해서는 노동운동 진영도 동일한 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임금투쟁에만 주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 안정만이 취약해 자신이 혼자 가족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임금 인상에 매달리고 해고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사실 노동귀족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은 '기업별 교섭'이라는 한국의 노동조합체계다. 서구의 노조가 개별 기업의 '시장임금' 자체를 받아들이는 대신 국가 차원의 복지와 '사회적 임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타협을 추구했다면, 한국의 노조는 고립 분산적인 기업별 교섭을 통해 자기 회사 노동자들의 이익만 추구했다… 한국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오직 분파적 임금 인상에 매몰되는 '경제주의 전투성'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21(조계완 기자) 576호 '노동귀족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런 것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많으나, 현장에 뿌리를 박고 있는 노동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이러한 지적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동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래서 카프카를 인용해보았다. 앞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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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혁명이 증발하면 나중에 남는 것은 새로운 관료정치의 진흙뿐입니다. 괴로운 인류의 쇠사슬은 관청 용지에서 생겨납니다."

 

- 박홍규, 카프카평전,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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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유학가다

짧게 지금 이 기분만 남겨둔다.

 

모호한 감정들. 그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교감들이 스쳐 지나간다.

 

갈테면 즐거이 가라.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 새로 태어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니깐.

 

잘 갔다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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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새는 좌우로 난다&quot;에 대해..

난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언어의 메타포적인 것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대가리가 날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디로 날아갈지의 방향. 왼쪽이든 오른쪽 날개든 간에 사실 모든 방향은 대가리가 결정하는 것인데.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다시 정돈해서 써봐야 겠다. 그냥 글쓰기 연습으로 말이다. 이미 말한 것과 같이 이 같은 생각의 본질에는 변함은 없다. 

 

글쓰기 연습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너무 거칠고 논리적 전개가 너무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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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김정환 선생이 술은 정신과 관계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싼 술은 좋은 술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 싸구려 술은 속에 별로 좋지도,

 

두뇌작용에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9천원짜리 한 병 마셔봤는데, 병마개를 여는 것부터

 

영 시원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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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zwei

김규항의 말.

 

아이들은 제 아비의 계급이나 지역 따위에 아직은 제 정신을 앗기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요기서 봤다. http://gyuhang.net/archives/2003/11/

 

과연 그런가? 그이의 글과는 관계없이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너무 얕잡아 보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 알건 다안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책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스타크래프트(나는 다행히도 할 줄 모른다)를 부자든, 서민이든 다 하는 것과 같은 것 처럼. 여하간 이 이상의 언급은 오바다. 넘어가자.

 

아이들(가능하면 어린이들이라고 쓰자.)은 경험과 돈만 없을 뿐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버나드쇼가 말했듯이, 역사가 경험을 통해 진보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에 대한 대응방식으로부터 진보했다는 이야기. 이걸 어릴 때부터 배운다.

 

어린이들, 무섭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지극히 정상이다.

김규항은 아마도 정말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러한 계급과 지역(아마도 지역감정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역색이 강한 말투라도 서울말에 대해 크게 위력을 못가진다 )이 언제가는 그들의 정신을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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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이나리의 <열정과 결핍> 중에서 읽은 부분.

 

이윤기와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다음 구절. 41쪽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

 

스파르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아버지, 칼이 너무 짧아 찌를 수가 없어요."

"얘야, 한 발 더 가까이 가서 찌르려무나."

 

두울.

 

미꾸라지를 산 채로 횟집까지 운반하려면 그 안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된다지요. 메기로부터 달아나려는 필사의 생존본능이 미꾸라지의 수명을 한참 늘려 놓는다는 겁니다.

 

이 둘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카네기의 말이다. 출처는 모르나, 카네기의 말.

 

'바람불지 않을 때에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성공과 결부되어 부담스럽다.

목적에 도달하는 것만이 인생의 참 맛인가. 오늘은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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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케 하는 글쓰기

1. 여기 기능을 좀 더 연구해야 겠다.

 

 

2. 글쓰기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성격성 육체적으로 말로 상대방을 불편케하는 일에는 익숙한 터라,

 

글로 토론하는 것은 장시간 사색을 요하는 일이라

 

나로서도 구차한 변명이 많아진다. 불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어디서 주워서

 

끌어다 퍼담아 쓰는 나로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글은 일기에 가깝다. 덧글 쓰신 양반의 글에도 내가 그리 적어놓고 왔다.

 

피해를 가지 않도록 일기를 써야겠다. 쓸데없이 남의 글이 봐가지고.

 

 

3. 그리고 오늘에야 알았다. 글을 쓰면 블로그 대문에 쳐발리는 것을 모르고 쪽팔리게

 

요기 안방에서 뒹굴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으니. 빠른 시일 내에 '기능'을 전수받고

 

학습과 반복훈련을 거듭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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