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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짧은 생각

38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5
    괴물보다
    공돌
  2. 2006/08/04
    새는 좌우로 난다?(1)
    공돌
  3. 2006/08/04
    지갑 잊어먹음
    공돌
  4. 2006/08/04
    블로그 정리
    공돌
  5. 2006/08/02
    2006. 5.23의 글.
    공돌
  6. 2006/08/02
    뭐 파는 사람 대하는 법
    공돌
  7. 2006/08/02
    짜증나지만 내가 바뀌어야
    공돌
  8. 2006/08/02
    다시 관계론
    공돌
  9. 2006/08/02
    타인비판
    공돌
  10. 2006/08/02
    공동번역 성경
    공돌

결과가 이렇군

あなたは現代フランスの哲学者 サルトル です。

당신은 현대 철학자 사루토루(샤르트르)입니다.


非常に実際的なあなたは,頭で考えられた奇麗な言葉を嫌い,具体的に実践されたものを評価するところが あります。行動的で実行力があるので多くの人に 信頼されますが,独特の感性を持った人には嫌われる かもしれません。

 

매우 실제적인 당신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깨끗한(아름다운) 말을 싫어한다. 구체적으로 실천된 것을 평가하는 점(태도)이 있다. 행동적이고 실행력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에게 신뢰 받지만 독특한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特徴:(특징)
実際的で言葉だけでは納得しない。 실제적이어서 말만으로 납득하지 않는다.

適職:(천직)
雑誌記者,知事 잡지기사, 지사(이건 무슨 뜻인지?)

相性良:(적합성 좋음)
ソクラテス,バタイユ,メルロ=ポンティ 소크라테스, 바타이유, 메루로=폰티

相性悪:(적합성 안좋음)
プラトン,デカルト,カント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ラッキーワード:(럭키워드)
『実存は本質に先立つ』『アンガージュマン』 실존은 본질에 앞장선다. 안가-주만(ㅋㅋ'앙가주망'이겠다.)


精神レベル:B 思考レベル:A 実践レベル:A

정신레벨: B      사고레벨: A      실천레벨: A

 

요기서 하시면 됩니다.  http://www2.tky.3web.ne.jp/~bites/te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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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보다

괴물봤다.

 

공룡영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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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좌우로 난다?

블로그 대문에 글 하나가 올라와 있더라.

 

http://blog.jinbo.net/chasm/?pid=12

 

나는 이런 글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근데 읽으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좌파는 훈장이 아니다."

 

좌우당간 새는 날기만 하면 된다든지, 날아봤자 새라든지,

 

좌우파가 서로의 날개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혹은 묵인)하고 있다는 것한다든지. 결국 이런 보충적 관계라는지. 참 쓸데없는 지적이고 별 의미없는 성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결국 좌파의 순수성을 높여내자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리영희 선생의 "새"라는 메타포는 "사회"다. "날개"를  좌우파의 이념으로 치환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그렇다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의 문제는 좌파의 순수성, '우리가 정통'이라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나는 이들의 논의가 개신교 신도들의 '이단'논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나와 다른 자를 철저하게 구별하므로써 자신(기존 교회집단)의 권위를 회복하고, 기존 질서가 도전받는 일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단을 구별해 낸다고 개신교가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신도가 교회를 바꿀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새가 두 날개로 날든 말든 간, 새는 날아야 '살아'있는 것이다. 이제 닭을 보고 새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좌파의 순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로 자신이다. 적과 나의 구분은 사실 낡아빠진 개념이다. 왜냐하면 내부의 적과 얼치기들이 더욱 설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결국 좌파가 분열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새가 좌우로 날든 간에 안타까운 것은 두 날개 모두 심각한 관절염과 류머티스에 걸려있다는 점이다. 왼쪽 날개가 오른 쪽 날개를 도와줄 수 없다. 치료방법은 단 하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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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잊어먹음

재곤이가 사준 지갑.

그리고 현금카드와 교통카드.

신분증과 찜질방 포인트 카드.

 

 

"인생을 살면서 한 번씩 뜻하지 않게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그리 기분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쓰레기 같은 책들도 양장본이라는 이유로 일단은 책장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내가 손수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해 보아야 겠다.

새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뱀발: 지갑을 잊어먹어도 술은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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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정리

블로그 정리가 끝났다.

 

사실 계륵과 같은 글도 지우지 못하고 올려두었다. 그리고 쪽팔리는 글도 지우지 않고 올렸다. 그 때를 생각하면 글쓰기와 생각의 시계열적 흐름을 보면서 반성하기 위해서다.

 

 

실제 옮겨 놓고 싶은 글 중 하드 디스크가 맛이 가서 옮겨놓지 못한 글도 있다. 조만간 현찰이 마련되면 하드디스크를 복구해서 올려야 겠다.

 

 

그리고 진보넷 블로그로 이사를 감행한 것은 기쁜 일이다.

상업적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내내 광고나 대문에 있는 상품광고는 거슬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기는 좀 다르다. 그래서 상업적이지 않은 블로그를 옮긴 것을 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단 새집에 오니 마음은 푸근하다.

 

다만 선택적으로 글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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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23의 글.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빛과 공기의 고마움을

알게 해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한 결론의 프로세스는

각자가 설계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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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파는 사람 대하는 법

정말 갑갑하다. 일전에 여기에도 글을 올려 두었는데 길게 설명하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짧고 굵게 설명하겠다.

 

분식집이든 밥집이든 횟집이든 술집이든 각각 10번씩 가봤을 것이다. 그 중에 1집이라도 맛있는 집이 있으면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찾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100집을 다니든 200집을 다니든 다녀봐라. 그리고 찾으면 기분 좋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 내가 돕는 그 상대방도 10명 중에 1명만이 진실로 나의 도움을 갈구한 자가 있었다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도운 사람 중에 1명도 그런 사람이 아닌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100명을 돕고 그 중에 1명이라도 나의 도움이 자신의 삶에 작은 힘이 되었다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거 싫으면 괜히 그런 사람들 욕하지 말고, 자기가 받은 상처와 진실로 도움을 구한 사람이 받은 상처와 비교해보기 바란다. 그것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살아라. 그리고 절대 자기나 자신의 식구나 친척이나 애인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살든지 말든지. 같은 처지에 느끼게 될 때는 이미 늦다.

 

여기에 대한 예전 글은 요기. http://blog.jinbo.net/laborman/?pid=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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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지만 내가 바뀌어야

좋은 깨달음이긴 하다. 문제는 간단하고 대답도 비교적 간단하다.

 

먼저 어설프다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어설프니깐 늘 제대로 작동하지도,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설프다는 것이 계속 유지되면 결국 "만만한 놈"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배려의 정도를 낮출 것. 이건 정말 하기 싫은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남들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지네들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게 내버려두어도 곧잘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포기다. 그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결국 뒤통수에 다가 또라이 소리를 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셋째, 같은 조건이라고 할지라도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면 다 똑같은 법이다. 자기는 유능하고 잘 나 보일지 몰라도 어짜피 대동소이한 것이다. 백날 노무사 자격증 따봐라, 무시하는 놈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고, 또한 돈을 많이 벌든, 실력이 있다고 정평이 나든 싫은 놈 눈에는, 인정하기 싫은 인간에게는 다 싫게 보이는 법이다.

 

넷째,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고, 그들끼리 하도록 내버려 두자.

 

다섯째, 혼자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경계하지 말고 종래 하던 대로 홀로 가자. 괜히 이것 저것 붙들고 신경쓰다보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버릴 때는 확실하게 버리고, 아닌 것은 딱 잘라 아니라고 하자. 적당히 상처를 주는 것도 양자에게 좋은 치료제다. 괜히 이곳 저곳 붙어 먹지 말고, 떠날 때 확실히 떠나자. 그게 또 볼 때 또 좋다.

 

여섯째, 분명한 계획, 일일, 일주, 월간, 분기 계획을 잡아서 생활하자. 일주단위는 항상 깨지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일일 단위로 해서 일주 평가, 월간 평가하는 방식으로 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곱째, 수세적으로 놀지 마라. 공세적으로 늘 공세적으로 그냥 야성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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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계론

정말 멀었다. 한참은 멀어도 멀었다.

 

관계는 고착화된다. 고착화된 관계는 양자가 다 부서지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쉽지는 않다.

 

관심, 존중, 책임, 배려, 용기, 학습, 인내....Erich Fromm이 말한대로의 Skill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연장선에서 모든 것을 관통하는 직관과 예지를 함께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계속 종래의 패턴으로 다시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일정한 패턴과 사고를 가지고 사물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상을 바꾼다거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이로움, 혹은 충격 등은 사고를 확장시키게 된다. 이전 깨달음과 같이 문제는 다시 반복된다.

 

"사고의 폭발적인 확장은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진행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자세에서 내 자신이 멀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자각하고자 글을 남긴다. 여기에 있는 글들이 새롭게 느껴진다면 결국 나는.....(여기서 담배를 하나 문다.....)....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여하간 세상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 주어야 한다. 어느 하나에서 승리하면 어느 하나를 포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잃게 되면 어느 하나를 얻기는 어렵다. 그래서 삶은 처절하다. 논리의 눈이 아닌 세계를 관통하는 관점. 아직은 너무 멀었다.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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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비판


타인비판은 별로 자신에게 도움되지 않는다. 또한 자기비판도 늘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먼저 자기중심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기능적으로 사는 것이 무조건 부정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자신 세계 속에 기능적인 세계와 가치지향적 세계가 함께 공존하는 성공할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나 스스로 누군가를 굳이 배려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오케이이가 아닌데 오케이 할 필요도 없다. 호감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가식의 자신을 발가벗겨 맨살이 떨어져 나가다록 매질을 하고 그것을 참아야 한다. 누군가 이기적이라는 비판에 자신이 잘해나가고 있다고 믿으라. 그것이 가장 솔직한 내 성찰의 과정이다.

 

그리고 용서하지 마라. 함부러 용서하지 마라. 용서할 것에 대해 가혹하게 너무나 가혹하게 대하라. 그리고 가혹하게 대하는 만큼 나 자신도 용서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용서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빈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아무 것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과정은 설명될 필요가 없다. 오직 결과만 보여지거나 보여줄 수 있다. 결과가 과정을 설명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비정상적인 방법이나 수단이라고 할 지라도 다른 여지가 없다면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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