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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5
    오늘도 술 한 잔...(3)
    초보좌파
  2. 2006/12/22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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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12/07
    나무에 둥지 튼 환경운동가
    초보좌파
  7. 2006/12/07
    선거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
    초보좌파

오늘도 술 한 잔...

난 이혼하고 난 후, 경제적으로 넘 힘들어서 부모님댁에 들어와 기생하고 있다. 특히, 강제전보로 7시 전에 출근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다섯살 난 아들을 양육하기가 힘든 면도 있다..7시 전에 아이를 맡아 주는 곳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더욱 어쩔 수 없이 부모님댁에 머무르고 있다...그러나, 하루빨리 부모님댁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다...왜냐면,

 

난 내가 소위 "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이 사회의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꿈꾸며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난 내가 억압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이 사회에서 40년 가까이 남성으로 살고 있었다. 더욱이 난 장남이다. 이 사회에서 - 남성중심문화의 사회 속에서, 특히 장남으로서 - 난 사회발생적(자연발생적의 반대 개념^^:)으로, 체득적으로 남성으로서의 온전한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에서든, 생활에서든...

 

결혼 후, 가정에서 나는 무소불위의 가장이었다.."운동"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나에게 전 아내는 식모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 잘난 대의를 위해 "운동"을 하고, 전 아내는 그런 나를 뒷받침할 수밖에 없다는...내가 생각했든 생각하지 않았든...그런게 나의 모습이었다..."운동"이라는 명찰이 달랐을 뿐이지, "돈벌어다 주는" 남성으로서 이 사회의 남성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또한, "운동판"에서도,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나이"와 "경험" 그리고 "특별한 경력"이라는 전제에서, 남성적 문화인, "군사적 위계 질서"와 "권위", "성차별"과 "성역할"의 형태로 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동지라 일컬었던 "여성"들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남성"(여기서 여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이)들을,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짱돌을 던지는 것은 남성의 몫이라면, 짱돌은 깨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든가, 대단한 경력의 선배에게 주눅든 나의 모습이라든가, 내가 옳기에 넌 틀렸으니 넌 활동가도 아니라든가 하는....성역할에 기반한 성차별과 이분법적 사고 방식 등에서 말이다.

 

난 이혼의 과정에서 - 소위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깨뜨리는 행위가 얼마나 비난받고 있으며,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 - 도덕적 엄숙주의, 가족주의 등을 통하여 -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소위 "주류"로 일컬어지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경계의 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소위 "정상적인 가정"를 박차고 나온 사람이 남성이면 사람들은 그나마 "대단한 용기"라고 말하고, 그 사람이 여성이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보는 세상에서, 난 남성이라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말이다....웃기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번에 집에서 생긴 일도 아직 내가 벗지 못한, 남성으로서의 권위...그 연장선일 뿐이었다.

난 이혼하고 난 후, 부모님댁에 들어가야 했을 때, 다시는 위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난 아버지와는 집안의 권력을 다투는 꼴이었고,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두 남자의 식모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같은 식탁에서 밥 먹다가도 바로 옆에 주전자가 있으면서 어머니에게 물 따르라고 시키는 사람이다...전형적인 마초다...어머니는 묵묵히 물을 컵에 따라 준다...나는 그런 아버지를 정말 싫어했고 싫어한다...그러나 실상 현상이 좀 달랐을까? 난 아버지랑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얼마 전, 술 먹고 한참 늦게 들어 왔다...아니, 몇 번 그랬다...집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부탁하고는 한다...어제는 아버지가 나에게 엄청 화를 내셨다...이유는 하나였다...이혼한 놈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정신차리지 못한 다는 것이었다...아버지가 살아온 배경을 알기에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이미 예전에 정리되어서 아버지의 말은 무시할 수 있었다...왜냐면, 아버지 자신은 어떠했는지 모르는 거니까...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가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네 아버지를 뒷바리지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너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냐? 그걸 생각하면 네가 괘씸하다. 이혼한 녀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물론, 어머니는 나의 이혼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로서는 믿고 있었던 아들이 하늘을 무너지게 한 꼴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어머니의 그 말 - "이혼한 녀석" 운운이 아니라 "너의 뒷바라지"라는 말 - 이 넘 충격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부모님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아들이랑 단 둘이 사는 걸로 생각하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나의 생활의 많은 부분은 사실 어머니를 또다른 "식모"로 은연중에 설정하고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것이 나의 충격이었다..

 

내가 직접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고 나랑 아들의 빨래를 하고,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고, 반찬거리 재료를 나름으로 준비하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되도록 집에 일찍 들어 오려고 하고..늦을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리고...

그랬다손치더라도....은연중에, 말 하나 행동 하나에 혹시 어머니를 또 다른 "식모"로 생각하는 것이 없지 않았을까?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계시니까 좀 더 내가 남성으로서의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나마 내가 챙긴들 부족한 부분은 있을 터...그걸 "부"가 아닌 "모"에게 강요하게 되는 이 구조 속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또다른 식모는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 충격이 아니라, 그 말 자체가 충격이었다...

이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초등학교도 못 가시고, 막내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평생 그저 온갖 희생과 억압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오신 그 사람....

난 지금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름대로 한다"는 게 내 몸에 배인 남성으로서의 할 만큼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변명은 아닐까...

 

그래서,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그건 맞는 말이다...내가 여성이 아니라서 여성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여성이 되려는 만큼 내 의식과 실천은 변하지 않겠는가...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그 몫을 온전히 해내는 그 순간..그만큼 내 삶은 생활 속에서의 억압과 그 극복을, 또 다른 측면에서 느끼고 의식하고 실천하지 않겠는가...그러면서 내가 더욱 달라지지 않겠는가....그동안 소위 "주류"속에 있었다면(ㅋ~~주류와 비주류의 개념은 영 마뜩치 않지만...그동안 내가 그런 분류를 당연히 생각했었으니까),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나를 더욱 다르게 만들지 않을까? 나는 교육노동자로서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것의 시작은 이런 일상에서의 나의 변화부터가 아닐까?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것은...낭만적 사랑의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왜냐면, 생각만큼 현실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당장, 독립할 돈도 없지만, 독립해서 산다면 난 나의 생활 패턴이 지금과는 참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여전히 난 마초적이다.....

 

달라지려고 한다지만, 달라지려고 노력했다지만....난 아직도 내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것이 두렵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곱씹어져서, 어머니에게 넘 죄송해서 오늘도 술 한 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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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아들과 이야기책을 읽었다.

취학 전 아동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만든, 어느 생활공동체에서 기획해서 나온 책 중 하나였다. 농사에 관한, 더 적확히 말하자면 "벼가 어떻게 자라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봄에 씨를 뿌려서 가을에 수확하는, 그 과정을 농사짓는 그림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아들과 그림책을 하나씩 넘기며 같이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아니 인간중심적이라는 생각말이다.

 

이 책에서, 벼를 갉아 먹는 벼멸구는 소위 '해충'이고, 그 벼멸구를 잡아 먹는 메뚜기는 소위 '익충'이라는 (책에서 '해충'과 '익충'을 구별해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벼에 해가 되는 것들은 골칫거리이고, 그 해가 되는 것들을 잡아 먹는 먹이 사슬의 강자는 '고마운' 것들이라는 식이다.

"고마워요, 메뚜기", "고마워요, 개구리" 이런 식.....

 

그런데 이런 시각은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의 이해관계에서 보는 관점이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시각은 쌀을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난 아이들의 이야기책 속에서는 최소한의 전제로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바라보지 말고, '생명'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는 시각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벼멸구는 인간에게 해가 되니까 골칫거리가 아니라, 벼멸구도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지구의 한 생명으로서 자신의 식량인 풀잎(인간에겐 벼)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고마워요, 메뚜기"라면 "미안해요, 벼멸구"라는 것도 함께 녹아들어간 이야기....

 

미트릭스(메트릭스 패러디 애니메이션)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육고기가 어떻게 대량 생산되고 있는가를 이야기(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윤을 위해 우리의 먹거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는가를 이야기할 뿐이다.(물론,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다른 문제까지 섞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난 미트릭스에서,우리가 먹는 고기 즉 생산과정에 있는 그 고기의 실체인 소, 돼지, 닭 등에 대해 '생명'이라는 시각으로의 접근이 아쉬운 것이다.

소, 돼지, 닭 등이 식탁에 올려지기 전까지의 비위생적인, 비인간적인 측면의 강조가 소, 돼지, 닭 등이 '생명'이라는 부분을 잊게 하지는 않는가 말이다.

극단적으로 인간적이고, 위생적인 생산 과정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먹건 안 먹건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것이든 그 전제가, 인간존중이 아니라 생명존중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중심이 아니라 생명중심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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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릭스

문화연대의 풀장통신을 메일로 받고 있다.

이번 호에,

KBS스페셜 [광우병 쇠고기]에 잠깐 나오는 "미트릭스 1,2"(메트릭스 패러디 애니메이션-루이스폭스 제작,연출)가 있기에 잼나게 봤다...[광우병 쇠고기]편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한 터라 "미트릭스 1,2"가 궁금했었다...

 

생명조차도 이윤을 위한 도구일 뿐인 자본주의....

웰빙으로 포장된 또 다른 미트릭스...하다못해 웰빙 햄버거라며 맥도날드에서 "웰빙"을 떠들어댈 정도니...웰빙과 건강은 이윤을 위한 또 다른 미트릭스가 분명하다...이노무 사회에서는 말이다...

 

"저항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폭력,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채식의 시작이다...."라는 문구를 읽고, 채식(정확히 말하면 고기와 그 부산물을 먹지 않는다. 아직 어패류는 극복 못했다^^;)을 시작한 지 7개월....학교 급식에는 어김없이 출처가 분명치 않은 고기류의 음식이 꼭 1-2가지씩 올라온다...그래서 어쩔 땐, 김치와 밥 최악일 때는 노란무우와 밥만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하지만 하루 3번, 내가 무얼하려고 하는가를 스스로 확인한다는 것은 내 일상에 건강한 긴장을 불어 넣는다....

 

http://culturalaction.org/webbs/trackback.php?board=cncr_7_1&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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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은 계속 된다^^

중구난방...

국어사전 : 뭇사람의 말을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마구 떠듦’으로 순화.

 

아마도 그 의미는 "여러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일게다...

무언가에 맞추기 위한 "입(말)"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말할 수 있는 "입(말)"....어떤 기준-그것이 도덕적 계율이든, 조직적 규율이든, 관습적 제도이든, 이데올로기적 맞춤법이든-에 맞추어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그래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해도 입으로 꺼낼 땐 무언가의 기준에 합당하게 자신의 말을 맞추어 나가는...그런 말하기가 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소통 방식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난 그랬다.

인생 선배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도록,

운동 선배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도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도록,

나의 말은 이미 자기 검열을 거쳐 윤색되어 나온다...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만족해 하면 난 행복했다....

 

이건 아니잖아~~~!!!

 

내 "말"이 그러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의 범주 안에서 허용되지 않는 말은 배제 혹은 배척의 대상, 공격의 대상이었다. 내 말은 적어도 옳은 편에 들고 너의 말은 최소한 틀린 편에 서 있다는 식...이게 옳으면 그건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과 말....그래서 '수렁에서 건진 내 딸'마냥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는, 소명의식까지 있었던가 보다...

 

사람들이 모였다. 많지 않은 숫자...그러나 숫자가 뭔 대수랴...사회의 여러 의제, 그리고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서 함께 혹은 각자 나름의 모색을 또 다른 가능성 등을 찾아 보자는 의미로 모였다....그 이름이 '중구난방'이다...

 

구로민중항쟁(부정투표함 사건), 노동자의 문화, 대안교육...지난 번에는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주제로 초청손님의 간단한 발제와 중구난방이 이어졌다...

 

중구난방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다...아! 물론 이건 중구난방 뒷풀이에서 자연스럽게 약속비스무리(구체적으로 손가락 걸고 약속한게 아니라 그냥 뒷풀이에서의 암묵적 약속^^;)하게 한 것이다...

 

하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라는 비판은 하지 말자.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으로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하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맞고 틀린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는 솔직하게 한다. 서로 궁금한 것, 자신의 생각, 자신의 처지 등....말하고 싶으면 하고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모임 때마다 참여자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서로 소개를 한다. 이름도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 학벌, 성별(?) 등등 우리를 무엇으로 나누거나 묶으려는 것에 대해서 거부한다....공감으로 듣고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다...그래서 중구난방이다...그 곳에서 각자 혹은 함께 필요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둘째는, "술은 한 손으로 따른다"

우스갯말로 "싸가지 없음을 실현하자"이다.ㅋㅋㅋ 술은 마시기 싫으면 안 마셔도 누가 뭐랄 것인가. 혼자 따르고프다면 굳이 말릴 이유까지야. 하지만, 서로 따라 주며 오가는 정도 느끼고프다면 한 손으로 따르자는 말이다. 나이, 선후배, 성별 기타 등등을 모두 마다하며, 싸가지 없음에서 소박하지만 자유로운 인간 관계를 느껴보자는 것이다. 일상 생활 속의 모든 권력 관계는 이 속에서만큼은 해체해보자는 말이다...거창하게 말해보자면 말이다^^

 

중구난방이 끊길 뻔했다...그러나 이 자리가 신선한 산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기에 계속 하려고 한다...

 

다음은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중구난방을 열게 된다.

- "연분홍치마(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에서 한 분을 초청하야 이야기 듣고 중구난방을 마련한다.

- 2007년 1월8일 19:00

- 장소는 합정역 연분홍치마 사무실

- 회비는 뒷풀이비 정도면.....

- 2명 이상만 확실히 온다고 하면 무조건 한다, 중.구.난.방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지만....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끼리 소박한 자리를 만들어 서로를 살찌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답니다....

참, 관심있는 분은 누구나^^ 어서 오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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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기쁘다

1. 이 곳 학교로 복직한 지 한 달이 지나간다. 부천에서 이 곳 시흥의 학교까지 자가용으로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나마 아침에는 교통체증을 피하려면 오전 7시 전에 집에서 나와야 한다. 최소한 내 출퇴근에서만큼이라도 자가용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자가용을 반인간적, 반환경적 문명의 대표적인 것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왕복 2시간을 앞 차의 꽁무니만 쳐다본다는 것이-그것도 매일-영 못마땅했다.

   그러다가 직행 대중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큰 맘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6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물어 물어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고 행여 버스를 놓칠까 작은 눈 부릅뜨고 드디어 버스를 탔다. 잘 모르는 곳에 내려야 하는 지라 긴장하며 한 정류장 한 정류장을 유심히 바라보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ㅋㅋㅋ 1시간여만에 도착하였다...

   드뎌 자가용을 놓게 되었고, 드뎌 한 시간(왕복 2시간)의 나만의 시간을 또 확보한 지라....넘 기쁘다...그 2시간 동안 무얼 할까??? 행복한 계획을 잡아 본다....ㅎㅎㅎㅎㅎㅎ

 

2. 집에서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에 학교에 좀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면, 수업시작까지 1시간 정도 남는다...앉자마자 컴부터 켜고(이것도 병이다, 중독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날 수업할 내용을 훑어 본다...복직하고 한 달쯤 지나자 이건 좀 아니다 싶다...일찍 온만큼-그나마 평상시 운동량도 부족한대-운동 겸 아침을 즐기고 싶다. 아침을.

   그래서 학교 주변을 훑어 보니 자그마한 동산 옆으로 시민공원이 있다. 그래! 시민공원에 아침 산책을 가자...까짓거 인터넷을 아침부터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잖은가...핸폰없음 왠지 불안하고, 차없으면 왠지 갑갑하고, 인터넷 안하면 왠지 답답한, 그런 거를 극복하긴 힘들겠지만 그것으로부터 좀 여유로와져야 하지 않을까?...아침 산책을 나가보니 맑고 차가운 공기가 나의 뇌와 폐를 돌아 온 몸을 가볍게 해준다...그러다가...산등성이 곁으로 난 작은 산책로를 발견했다!!!! 오늘 아침에!!!!

   작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보니 솔밭 사이로 작은 길이 쭈욱 나 있다. 작은 산이지만, 아니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자그마한 등선이지만 솔밭 사이로 난 길이 꽤 운치있다. 조용한 이른 아침에 새소리마저 들려오고, 솔밭이 밤새 품은 맑은 공기도 가득하고, 내 발 밑에 깔려 있는 푹신한 흙과 나뭇잎은 내 몸뚱아리의 오랜 역사에 묻혀 있던 본능의 욕망을 충만하게 해주고.......

   빡빡한 일상과 무기력한 일상,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도시 속에서 짧은 시간, 짧은 공간이나마 이러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넘넘 기쁘다...내일 아침도 기다려진다...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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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둥지 튼 환경운동가

인천이 나에겐 익숙하다...계양산에서의 힘겨운 투쟁을 보며, 블로거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계양산 소나무에 둥지 튼 환경운동가
     
“인천의 마지막 남은 숲을 지키자”

이유진 기자
2006-12-05 21:50:24


“또 비가 온다. 밖의 생활이 길어지니 날씨에 민감해진다. 비, 바람, 어둠. 각각 다 나름의 매력은 있겠지만 한꺼번에 나타나지는 말아라. 제발.” (신정은/인천녹색연합 활동가)

아침 기온이 영하 7도. 추운 날씨다. 지금 계양산 10m 높이 소나무 위에서 신정은(28) 활동가가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10월 26일부터 시작했으니 나무 위에 올라간 지 40일이 넘었다.

롯데건설은 지난 7월 신격호 회장이 소유한 계양산 북쪽 목상동, 다남동 일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과 테마파크형 근린공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인천시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는 이 부지에 대해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안’을 통해 골프장 건설이 가능하도록 행정허가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신정은 활동가의 소나무 숲 시위가 시작된 후, 롯데건설이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사업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테마파크형 근린공원 부지 일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밝혀져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롯데건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올해 5월 군부대 인접지역 계양산 임야 5만여 평을 훼손하고 골프장용 잔디씨를 심는 등 불법 형질변경을 추진했다.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인천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12월 26일로 미뤄졌다. 롯데건설이 당초 27홀규모로 짓겠다던 골프장을 환경단체가 농성중인 솔밭능선 양쪽에 9홀씩 18홀(18만6천평) 규모로 건설하고, 테마파크 부지도 2만8천평 줄여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신정은 활동가는 규모만 줄어들었지 골프장 건설 강행이라는 사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계양산은 반딧불이가 살고 있고, 도롱뇽과 버들치 등이 서식하는 청정지역이다. 개발로 신음하는 인천에 남은 마지막 숲이다. 계양산 롯데골프장 계획부지에는 인천시에서 2년간 조사를 거쳐 인천에서 제일 생태계가 우수한 지역으로 선정한 생태계보전지역 대상지가 포함되어 있다. 하루 1만여 명의 인천시민과 주변지역 시민들이 찾는 매우 중요한 자연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 날짜는 지나가고 추위도 더해지고 있다. 계양산 상황을 알고부터 ‘롯데’라는 기업이 우리 생활에 참 많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됐다. 씹는 껌에서부터 유통, 카드, 아파트까지. 그래서 나의 생활에서 ‘롯데’를 밀어내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롯데카드도 안녕이다. 그러고 보니 안면도 꽃지 해변에 들어선 대형 리조트도, 부산 낙동강 하구 철새들의 낙원을 가로지르는 명지대교도 롯데건설 작품이다.

환경에 대한 가치가 경제가치에 한참 밀리고 있다. 그래도 성미산이나 도봉산처럼 주민들이 아끼던 산을 지키는 지역운동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계양산 골프장 건설도 반드시 막아서 우리 동네 뒷산을 지키는 일에 성공하는 기록이 지켜지길 바란다. 이제는 인천시민들이 나서줘야 할 때다. 계양산을 지키는 일은 환경운동가들의 몫만은 아니기에.

“나는 작은 행동이지만 나무 위의 시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계양산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시민들이 계속 이용할 수 있는 쉼터로서 공원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제한된 공간에서 혼자서 지낸다는 것. 롯데와 골프장이 생기기를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위협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계양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녹색연합 활동가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결정에 힘을 얻는다. 부디 나무 위의 생활이 길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내려올 수 있기를.” (신정은. ‘나무 위 시위를 시작하며’)

‘나무 위 시위’를 시작한 지 20일째인 11월 14일, 신정은씨 활동가는 힘이 되는 문자 편지를 받았다. “요즘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커다란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계양산 산새들이 모일 때마다 재잘대겠죠?”

계양산의 소나무 숲이 영원히 푸르를 수 있기를, 계양산 소나무 숲 위의 커다란 새가 건강히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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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

오늘부터 전교조 선거가 시작되었다.

위원장, 지부장, 지회장, 전국대의원을 선출하는, 소위 전교조 4대 선거이다.

나도 전교조 경기지부 시흥지회 전국대의원 후보로 출사표를 던지고 출마했다.

 

그런데 선거 운동이라는 것이 정형화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대상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부르조아 선거판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선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나도 그랬다.

 

후보는 학교를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정세나 정책 등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선전하기도 하지만 결국 "잘 해 볼테니 한 표 부탁한다"이다.

선거운동원들은 - 평상시에는 한 번도 안 하던 전화를 -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하고, 문자도 보내고, 메일도 보내면서 역시 "잘 해 볼테니 한 표 부탁한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부르조아 선거랑 별반 다를게 없다.

 

나도, 나름으로는 현 정세나 교원평가의 문제를 선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각 학교 분회장(학교 내의 전교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하고, 학교 방문을 하면서 준비한 선전물 돌리고 "지지"를 호소한다.

"교원평가가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 교원평가 저지를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 지지부탁한다"

 

정세에 대한 입장이나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이 다르건 간에, 이런 선거 운동의 양태는 똑같다. 조합원을 철저히 대상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선거가 어차피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주장이 이러하니 나를 선택해 달라는 이야기 속에 조합원들의 이야기는 들어갈 틈이 없다. 찍어줄테니 나 대신 열심히 해보라는 이상의 것은 꿈꾸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피선거권자와 선거권자는 이분화되며, 선거권자는 대상화되는 것이다.

 

이러면 어떨까?

선거에는 쟁점이라는 것이 있다. 쟁점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쟁점을 조합원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선거. 유세는 그저 앉아서 내 이야기를 잘 들으라는 것 이상이 아니다. 전화든 문자든 메일이든 그저 우리를 선택해 달라는 것 이상이 아니다. 차라리 학교나 지역에서 조합원들을 초청해서 쟁점과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여기에서 각 후보들은 그러한 조합원들의 이야기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대안과 조합원들의 대안을 공유하는 자리. 그러한 자리들을 각 지역의 선거운동원들이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조합원들을 초청하는 자리. 후보가 주인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주인이 되는 자리.

 

현재 조합원들의 주체적 인식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는 나의 책임을 그네들에게 떠 넘기는 꼴일 뿐이니까. 대신 더 이상 조합원들을 대상화하는, 기존의 선거 운동 방식은 그 어떤 의미도 갖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는 선전선동의 장이 아니라, 토론과 모색의 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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