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팍팍한 생활을 몇 년간 지속해 오다 보니, 2006년에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 나왔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쳤었던 모양이다. 우연히 알게 된 영화평론 홈페이지(http://djuna.cine21.com)에서 여러 영화평을 둘러보던 도중 발견하고 바로 구해 봤다. 실로 얼마만에 영화감상인지 -_-;;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아일랜드 독립 투쟁... 사실 영화에서 닳고 닳을 정도로 써먹은 소재로는 홀로코스트 뺨치는 정도일 것 같다 -_-;; 물론 아일랜드 독립 투쟁은 고귀하고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투쟁이지만, 글쎄다, 외국 압제자에 대한 '백인들의' 투쟁이라는 성격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가장 유명한 좌파 감독이자 계급적 시각을 잃지 않기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이 민족주의 투쟁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이 처음엔 좀 의아하긴 했는데, 뭐 아니나다를까, 감독은 1920년대의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을 사회주의 투쟁의 투사로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없었던 성격도 아니고... 1916년 더블린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언급된다.

 

영화의 플롯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1920년 평화로울 수 있었던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공공집회 금지 명령을 어기고 헐링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영국군이 청년들을 검문하던 도중 자신의 이름을 영어가 아닌 게일어(게일어의 정의에 대해선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4334)로 대며 반항했다는 이유로 한 17세 소년이 구타당해 죽는다. 마을 주민들은 테디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를 조직하고, 본래 런던에서 의사가 되려던 테디의 동생 데이미언도 영국군 수송 거부를 하려다가 구타당하는 기관사를 보고 다시 돌아와 군대에 합류한다. 끈질긴 항쟁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도 압제에 저항한다. 그러던 와중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의 테두리 안에서 자치주로 남는다는 내용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정전선언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위해 몸바쳐 싸운 자원군들은 이 협정을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테디는 자치주를 지지하여 공화국 정부의 편에 서고, 데이미언은 완전 독립을 지지하여 반군의 편에 선다. 정부군의 무기를 털어가려던 어느 한 밤의 작전에서 데이미언은 체포당하고, 테디는 전향을 호소하지만 데이미언은 거부한다. 다음 날 데이미언은 테디의 구령에 따라 총살당하고 쓰러진 동생의 주검 앞에 테디는 오열한다.

 

내용을 거의 다 말했지만 어차피 플롯 자체가 그리 중요한 영화가 아니니 상관은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좌파 지식인이 20세기 초 좌파 투쟁의 역사를 그릴 때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뻔한 이야기들이니까(평범한 사람들 눈앞에 실체화되어 나타난 압제, 영웅적인 투쟁, 내부의 개량주의/타협주의의 등장, 내분 속에서 비극적으로 갈라지는 밀접한 관계의 누군가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의 이전 작품인 <랜드 앤 프리덤>과 그 플롯상에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원래 20세기 초 우리들의 투쟁이 그랬었으니까.

 

그러나 켄 로치의 진정한 가치는 좌파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얘기를 또 반복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뻔한만큼 보편적이었던 그 기억들을 무수한 레퍼토리를 통해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시연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영화가 감동적인 것은 지루한 연설을 늘어놓는 정치선동이어서도 아니고,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해서도 아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고귀해지는 시점에 나타나는 보편적 인간 군상들을 마치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모델링하여 스크린 앞에 배치하고, 그 캐릭터들을 카메라가 잡아낼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잡아냄으로써 우리 앞에 미적 전율을 선사한다. 아마 켄 로치 영화를 가장 잘 평가해낼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그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일 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이러한 켄 로치 영화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전형적인 인물(과거 투쟁 경력을 가진 노동계급, 유약하지만 정신적으로 강인한 지식인, 현실적이기에 비틀어지는 지도자 등)과 전형적인 사건(예를 들면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재판 장면)이 배치되지만 켄 로치의 질서 안에서 그 전형성은 인간 존재를 자극하는 보편성으로 변한다. 우리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재판 장면과 <랜드 앤 프리덤>의 마을 회의 장면 사이에서 강렬한 데자뷔를 느끼지만, 그것은 고루한 형태의 반복이 아닌 마땅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본질의 편린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보편적이기에 몰입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과 사건들 속에서, 그 비극적 폭발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예술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답하는 하나의 해답이다. 이러한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두 개의 명장면이 영화 초중반의 밀고자 처형 장면과 영화 마지막의 데이미언 처형 장면이다. "우리가 만드는 아일랜드가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밀고자 처형 장면에서의 데이미언의 명대사는, 극도로 슬프고 혼란스러운 상태의 극중 인물에게서 기습처럼 튀어나와 가슴을 울린다. 데이미언 처형 장면은... 말이 필요없다. 사실 별 말도 없다. 그러나 고개를 꼿꼿이 쳐든 데이미언과(물론 당당함의 표출이라기보단 죽음의 공포 앞에 몰아쉬는 숨 때문이지만) 고개를 숙인 테디를 옆면에서 대칭적으로 잡아내는 미쟝센은 고전적인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테디가 총살 구호를 붙이기 위해 물러서고 난 후에도, 곧 다가올 죽음 앞에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다잡는 데이미언을 계속해서 측면 컷으로 집요하게 붙잡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 마지막 죽음에 실로 격하게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 장면에서 데이미언을 연기한 킬리안 머피의 연기는 정말 S급.

 

그러나 영화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일단 플롯의 호흡이 너무 길다는 점... 담뱃갑 명중 장면 같은 건 사실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_-;; 그러다보니 결정적으로 평화협정 선언 전과 후의 균형이 맞지를 않는다. 어찌보면 평화협정 선언 전보다 후가 격렬한 비극적 갈등이 터져나올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은 간략하게 정리되기만 하고 급하게 최종국면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형제의 갈등이라는 또 하나의 도구 역시 빛이 바래는 그런 느낌.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켄 로치가 이제 20세기 초 역사물은 그만 만들어줬으면 한다는 점. 사실 <랜드 앤 프리덤>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 넘칠락말락 하는 것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자체의 완성도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 역사물을 너무 많이 만드는 좌파 영화감독은 80년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한국 좌파 운동가와 마찬가지로.... 추해질 수 있다.

 

피씨방에서 보는 바람에 정말 펑펑 울고 싶었던 장면에서 울지 못했다는 것만 천추의 한으로 남는 영화다. 감정적 고양으로 존재를 좀 윤택하게 가꾸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