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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비폭력

무화과님의 [겁쟁이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렸다. ] 에 관련된 글.


트랙백 건 원글의 '지나가다'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댓글러는, 비록 혁명적 공산주의를 열렬히 응원하고, 깔끔한 것과 예쁜 것이 아니면 무의식적 거부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중간계급적 정치취향을 경멸하고, 방어적 폭력의 사용을 옹호하는 본인이지만, 정말 짜증나는 타입의 꼴통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다.

 

사실 애초에 이 주제에 대해 각자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끼리 얘기를 나누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페미니즘이나 아나키즘 쪽에 큰 지향을 갖고 계신 분들은 대체로 전일적 비폭력을 주장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나처럼 혁명적 공산주의 운운하는 사람들은 폭력을 옹호하곤 한다. 아나키즘 쪽에서도 보다 낡은(?? 물론 시기적으로의 얘기다. 1930년대 스페인에서의 그것처럼) 지향에 속해 계시는 분들은 폭력을 옹호하기도 한다. 어쨌든 명확한 건, 이 점에 대해 각자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얘기를 열심히 나눠봤자 사실 별 해결될 게 없다는 것 정도다. 왜냐? 상황을 파악하는 서로의 기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어느 쪽의 기준을 어느 시점에 꺼내드는 것이 옳으냐를 실천적으로 검증받을 수밖에 없고, 말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히 해두고 싶은 것은, 혁명적 공산주의자가 전일적 비폭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절대로 혁명에 폭력이 필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적 운동을 이념과 윤리로, 규범과 당위로 전도시키기 때문이다. 현실적 운동은 윤리와 규범과는 별개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떤 국면에서는 투쟁의 승리를 위해 일종의 폭력이 요구될 때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전일적 비폭력을 '선동'하는 사람들은(물론 그런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면 큰 문제도 없고 내 알 바도 아니다) 이런 국면에 쉽게 혁명의 적이 된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 같은 이유에서 어떤 국면에서는 투쟁의 승리를 위해 어떠한 폭력도 요구되지 않거나, 오히려 폭력이 적극적으로 거부되어야 할 때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럴 때는 '지나가다'가 혁명의 적이다.

 

'지나가다'라는 꼴통은 오히려 폭력의 사용을 규범화시킴으로써 거꾸로 물구나무선 규범화를 수행하고 있다. 그의 어법에서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기회주의가 되고, 여성과 장애인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은 '숨는 것'이 된다. 어떤 당위적 윤리를 중심으로 판단할 때 살아있는 녹색의 현실들은 모두 잿빛 스틸컷이 되는 것이다(여담이지만 이런 현상은, 비폭력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물론 폭력을 규범화시키는 경우보다 비폭력을 규범화시키는 경우가 더 '양식있는' 분들일 경우가 많아 눈쌀 찌푸릴 정도의 꼴은 보지 못했지만, 문제는 그 '양식'까지도 포함되는 하나의 중간계급적 '아비투스'에 있다). 아마 그의 눈에는 지금 다음 아고라에서 촛불집회에 폭력 사용자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대중들이 다 경찰 프락치거나 후진적 기회주의자로 보일 것이다. 그러한 발언과 판단이 나오는 맥락, 현실적 조건, 국면적 상황과 이후의 전망 같은 것에 대한 총체적 판단은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 소위 '빡센' 레토릭에 전투적인 단어들을 섞어 쓰면 혁명투사가 되는양 처신하는 것은 사실 혁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큰 해가 된다. 이상화시키고 규범화시키는 현실 전도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든 사태를 왜곡하곤 한다. '혁명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 현실이 모순을 안은 담지체 자체이기 때문에,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현실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p.s. 그냥 그랬는갑다 하고 지나가면 될 남의 싸움에 굳이 트랙백을 걸어서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까지도 소위 한국의 '혁사'라는 사람들에게서 저런 분위기가 벗겨지지 않고 있는 점을 최근에 다시 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다'처럼 대놓고 얘기하진 않더라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극좌 유아주의적 편향이,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가도 저런 악과 깡으로 이 인고의 극우 제국에서 혁명을 말할 수라도 있는 싹을 지켜오신 분들인데 하는 생각에 다시 한숨만 내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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