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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머릿수는 권력인가 무력(無力)인가

내 대학생활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새내기였던 시절,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가 돌아가셨을 때다. 얼치기 사회주의자였던 나는 대정부투쟁이 필요하다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 전까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해다니던 학생회 선배들과 함께 거의 매일같이 광화문 앞에 나갔다.

 

광화문에선 소위 '국민적 분노'가 표출되고 있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평범한 사무직 가정부터, 발랄하기 그지 없는 청소년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김선일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것을 방치한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나 광화문 촛불집회는 지리했다. 주최측은 연일 반미구호를 내세울 것이냐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도덕적인 구호만을 내세울 것이냐를 놓고 싸우는 듯 했고, 그나마 급진적 학생들의 돌파전술을 지원하기는커녕 무마시키기에만 바빴다. 매일같이 저녁에 청승맞게 촛불이나 쥐고 앉아 앞에서 아침이슬, 광야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을 반복적으로 불러대는 모습이나 구경하고 있어야 했다. 당시 비운동권이었던 관악 총학생회는 자신들이 비운동권이지만 책임있는 사회의식을 가졌음을 보이고 싶었는지 3보1배를 벌이지만, 광화문은커녕 봉천고개를 넘지도 못하고 경찰의 봉쇄 앞에 그냥 엎드려 있었다.

 

'국민적 분노'는 그랬다. '대중이 나섰다'는 말은 내겐 상투어에 불과했다. 같은 해 봄에 있었던 탄핵정국과 여름의 파병반대 정국, 그 이전의 2003년 열사정국 등을 기억하며 나는 대중과 조직, 개량과 변혁, 권력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더랬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국민적 분노'는 터져나왔다. 그 귀한 소고기 먹고 죽을지도 모른다니 이 어찌 아니 걱정되겠는가. 그들이 광장으로 나왔고, 세간에선 또 국민의 힘이니 대중의 권력이니를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단 한 번이라도 무정형의 대중들이 내세우는 혼란스러운 - 대체로 자기이해조차 결여된 - 무정형의 목소리가 권력을 가졌던 적이 있느냐고. 단 한 번이라도 체계적인 이해를 가진 결집된 세력이 명확한 조직적 계급과 함께 투쟁하지 않고서 변혁이 일어났던 적이 있느냐고. 그것이 내가 저 한 명의 순진한 '대중'의 말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중의 머릿수는 권력이 아니라 무력(無力)이다.

 

p.s. 그러나 또 다시... "체계적인 이해를 가진 결집된 세력이 명확한 조직적 계급과 함께"라는 말을 들으며 '그래 나다!'라고 말할 세력은 많고도 많지만, 그 가운데 과연 누가 저 말에 정말 어울릴지. 체계적인 이해도 같지 못하고 결집되지도 않았으며 명확한 조직적 계급과 함께하지도 않는 자들이 명망가 한둘 TV 카메라에 좀 나온다고 깝치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름의 체계적인 이해는 갖고 있으나 조직적 계급과 함께하지 않는 자들, 명확한 조직적 계급과 함께하지만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한 자들, 양쪽 모두 갖췄지만 그 양적인 측면에서 자격 미달인 자들... 그래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단순한 동조자는 오늘도 그저 술병이나 까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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